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55
00858 858화
자신의 역량에 맞는 수술인지, 환자의 생명은 안전한지 그런 걸 민감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임스는 물론이거니와 이작손과 브레드 김, 그 외에 김혁권과 다른 간호사들까지 태수를 향한 눈빛에 불안함은 깃들지 않았다.
그러니 태수가 스스로를 낮게 평가할 필요는 없었다.
농담으로 긴장감을 날려 버린 태수는 한결 더 편안해진 얼굴로 변했다.
정말 힘든 수술에 비하면 신장이식은 그렇게 까다로운 수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걸 믿으면 된다.
태수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집도의가 참관인에게 물을 필요는 없지.”
“그럼……. 어?”
태수가 다시 스텝들을 둘러보다 참관실에서 시선이 멈칫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스미스와 몇몇 중년인들이 자리하고 있던 탓이다. 양복 차림으로 봐서는 존스홉킨스 병원 의사들이 아닌 것 같았다.
태수의 시선이 참관실에 고정되어 있자 제임스가 물었다.
“저들이 있으면 신경 쓰이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모르는 얼굴들이라 그러나? 자네 수술 보겠다고 여기저기서 날아온 모양이지.”
제임스가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태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 테스트 시험과 거의 모든 부분이 일치했다.
달라진 건 스미스와 제임스의 위치 정도였다.
그렇다면?
태수의 시선이 제임스에게로 향했다.
제임스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클립보드에 무언가를 기입하고 있었다.
“수술 시작까지 낭비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아.”
일부러 내뱉는 말이다.
그 말에서 2가지 의미가 동시에 느껴졌다.
하나는 수술을 빨리 시작하라는 의미.
그리고 또 하나는 정에 이끌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단 의미다.
그럼 제임스와 저 사람들이 심사관?
태수는 이제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제임스가 만들어 준 기회가 분명했다.
태수는 반대편에 선 브레드 김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알고 있었죠?’
그렇게 묻는 눈빛이었다.
그 뜻을 알아챘는지 브레드 김은 슬쩍 시선을 위로 피했다. 그 옆에 선 루미에 간호사는 괜히 수술 도구를 정리하는 척하고 있었다.
태수의 시선이 이작손에게로도 향했다.
“캐서린, 이번 수술에 필요한 건…….”
이작손도 캐서린 간호사와 딴짓 중이었다.
태수가 마지막으로 김혁권을 바라봤다. 다른 스텝들과 달리 김혁권은 태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뭐 잘못됐어?”
너무 당당한 질문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잘못된 거 같은데, 그게 잘된 거 같습니다.”
“말도 참 어렵게 하네. 그보다 언제까지 벌을 서고 있어야 합니까?”
“마음 가라앉힐 시간을 드린 건데요.”
“너무 가라앉아서 축 처지겠습니다.”
“그럼 시작해야죠.”
태수의 말을 들은 스텝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집중했다.
태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시선을 깊게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들도 피하지 않고 옅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떤 마음인지 알아챈 태수는 차분하게 선언했다.
“renal transplantation(신장이식술)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브레드 김이 크게 외치고 뒤를 따라 스텝들도 합창했다.
그리고 태수의 첫 이식수술이 시작되었다.
이식수술도 기본적인 과정은 똑같았다.
복부를 가르고, 환부를 벌려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태수가 먼저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탁.
말하지 않아도 메스가 다가왔다.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일이라 태수는 덤덤하게 받아 들고 복부를 갈랐다.
그러자 브레드 김의 손길이 조금 분주해졌다.
“썩션, 보비.”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걷어 내는 건 역시 그의 몫이었다.
지혈이 어느 정도 이뤄진 즈음이다.
턱.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가 알아서 다가왔다.
그걸 받아 든 태수는 바로 설치를 시작했다.
“발포어 설치 시작합니다.”
“지혈 끝. 돕겠습니다.”
브레드 김이 손을 더하자 발포어 설치도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신장은 대장의 뒤쪽에 위치한 장기다.
척추를 따라 흐르는 하행대동맥과 아래대정맥을 기준으로 좌우에 각각 존재한다.
복부를 넓게 벌려도 신장이 먼저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장이 먼저 스텝들 눈에 보였다.
태수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김혁권은 바로 그의 손에 수술 도구를 얹어 줬다.
아직까지 서로 대화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만큼 태수와 김혁권은 같이 수술한 경험이 많았다.
몇 번 손이 오가자 장이 젖혀지고 그 뒤에 있는 신장이 드러났다. 검사 영상으로 확인한 대로 양쪽 신장 모두 상당히 망가져 있었다.
오른쪽 신장은 노랗게 변색되고 군데군데 구멍이 뻥뻥 뚫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상태가 괜찮아 보인 왼쪽 신장도 정상인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이번 수술의 목표는 오른쪽 신장을 이식하는 거였다.
신장이식은 다른 장기의 이식수술과 다른 점이 있었다.
폐나 간을 이식할 때는 기존 장기를 들어내고 새로운 장기를 연결한다.
하지만 신장은 기존 장기를 떼지 않고 그 아래쪽에 추가로 장기를 설치한다.
2개의 신장이 총 3개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쉬운 수술?
결코 아니었다.
단순히 장기만 연결하는 수술이 아니다. 만성신부전이 진행되는 왼쪽 신장에 대한 조치도 이뤄져야 했다.
새로운 신장을 이식하고, 왼쪽 신장까지 수술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체력도 많이 필요했다.
며칠 사이 체력을 회복한 태수에겐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태수는 환부를 직접 본 이 순간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서 제임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참관실에서 스미스와 심사관들이 뚫어지게 바라본다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직 하나.
신장이식과 왼쪽 신장을 조치하는 것.
즉, 라함의 건강뿐이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태수는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새로운 신장부터 이식하겠습니다.”
“잠시만……. nephron(신장) 준비됐습니다.”
잠깐 자리를 떠난 김혁권은 곧 커다란 밧드(철제 그릇)을 들고 왔다.
얼음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분홍색의 건강한 신장이 놓여 있었다.
시리아에서 출발해 오늘 아침에 도착한 공여자의 신장이다.
공여자.
그 사람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후였다.
태수는 그 마음 하나로 공여자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다. 공여자를 생각하면서 신장이식을 하는 게 더욱 잔인한 일인 탓이다.
태수는 이식할 신장을 쥐고 라함의 몸속으로 옮겼다. 그리고 위치를 잡자 브레드 김이 다양한 수술 도구를 이용해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역시 어시스던트하는 브레드 김의 손길이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완전히 고정된 게 아니라 수술하기 편할 정도로만 고정시켜 놓은 상태였다.
태수는 브레드 김에게 말했다.
“바로 혈관 연결 들어가겠습니다. 믹스터, 지혈클램프.”
“가이드 와이어, 디바키.”
브레드 김이 수술 도구를 손에 쥔 순간이었다.
태수는 오른쪽 신동맥을 지혈클램프로 꽉 물었다. 주둥이가 교차되듯이 꽉 물린 지혈클램프는 신동맥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했다.
브레드 김은 신동맥을 잡고 태수가 보기 좋은 위치로 올렸다.
그사이 태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메젠…….”
탁.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술 도구가 손에 올라왔다.
부탁하려 했던 메젠바움이었다.
태수가 힐끔 쳐다보자 김혁권이 말했다.
“나 김혁권이야. 나보다 닥터 최에 대해 잘 아는 간호사가 없다고요.”
“든든합니다.”
“그럼 얼른 계속해요. 너무 뚫어지게 봐서 닳으면 현미가 닥터 최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송현미 간호사의 이름을 들먹이며 김혁권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눈빛은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눈빛이다.
태수와 수많은 수술을 경험하며 다져진 눈빛이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기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갑니다. 신동맥 excision(절제) 시작.”
“신동맥 잡았습니다.”
“이어서 새로운 신장과 anastomosis(문합) 들어갑니다.”
태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자 당연하다는 듯이 니들홀더가 도착했다.
그는 수술 도구를 확인하지도 않고 환부로 가져갔다.
실제로는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끝이 날카로운 수술 도구가 많기에 확실히 확인을 하고 수술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태수는 손에 느껴진 수술 도구의 크기와 무게를 정확하게 감지했다. 그리고 김혁권의 보조 실력을 믿었다.
잠깐 확인하는 시간을 줄였을 뿐인데도 수술 속도가 달라졌다.
턱, 턱.
태수가 손을 내밀면 김혁권이 수술 도구를 알아서 척척 내밀었다.
때로는 김혁권이 자청해서 수술 도구를 쥐고 태수를 보조하기도 했다.
그조차도 김혁권은 말하지 않았다.
태수도 오더를 내리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카슈미르에서 수술했던 그 순간을 두 사람 모두 잊지 않고 있었단 이야기였다.
존스홉킨스병원의 수술 간호사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송현미, 이선정, 김수진 등 간호사들이 아무리 태수를 좋아해 준다고 해도.
김혁권과 같은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순 없었다.
제임스도 그 모습에는 조금 놀랐다.
김혁권이 비공식적으로 수술 보조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NGO 캠프에서는 많은 인력이 있기에 김혁권을 굳이 태수의 보조로 수술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그때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이제야 확인하는 중이었다.
‘이런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았다니.’
제임스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늦장을 부렸다는 걸 이제야 실감했다.
수술실은 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집도의 쪽은 조용한 데 비해 어시스던트 쪽은 시끄러운 모습이었다.
“후크, 썩션, 뱁콕, 디바키…….”
브레드 김이 루미에 간호사에게 수술 도구 교체를 부탁하는 소리였다.
그들도 많이 호흡을 맞췄지만 수술 도구만큼은 오더를 내려야 했다.
그런 걸로 봤을 때 태수와 김혁권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별개로 태수와 브레드 김의 호흡은 무척이나 좋았다.
신속대응센터에서 많은 수술을 집도하고 어시스던트한 탓이다.
두 사람 모두 그때보다 실력이 발전한 만큼 수술은 정말 일취월장(日就月將)이란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런 수술실 풍경을 바라보는 스미스와 심사관들도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사관들은 모두 클립보드를 들고 펜을 쥔 상태였다.
하지만 태수를 평가하기 위해 준비한 평가서에는 단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만큼 태수와 브레드 김의 수술에 빠져들었단 이야기다.
그나마 스미스가 냉정한 시선으로 수술을 속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닥터 최와 저 널스 김이란 간호사는 거의 한 몸이야. 브레드 실력도 무척 좋아졌고 루미에 간호사의 보조도 전보다 더 좋아졌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느리다고 느껴질 정도니…….’
태수와 김혁권이 얼마나 찰떡궁합인지 느끼는 순간이다.
스미스는 그걸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수와 김혁권이 카슈미르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고 있던 탓이다.
심하면 하루에도 몇 번의 수술.
그게 2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중간중간 수술을 하지 않았던 기간도 있지만 반대로 더 많이 수술한 날도 수없이 많았다.
스미스도 제임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그 외에 알려지지 않은 수술까지 더한다면 평균 수치가 더 올라갈지도 모른다.
태수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집도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는 걸 지금 태수와 김혁권이 똑똑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스미스를 깊게 생각하게 했다.
‘꼭 온실 속에서 키우는 화초가 멋진 건 아니었어.’
그 이후에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고심에 빠진 얼굴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보다 더욱 빠른 건 태수와 브레드 김의 수술 속도였다.
오른쪽에 새로운 신장을 이식하고, 왼쪽 신장의 이상도 대부분 조치했다.
그렇다고 망가진 왼쪽 신장이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겠지만, 건강만 신경 쓰면 더 악화되는 건 막을 수 있게 조치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간중간 라함의 안색과 신체 반응을 토대로 간까지도 체크했다.
덕분에 간 이상으로 수술이 지체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환부를 닫고 봉합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다이렉트로 진행됐다.
이윽고 태수와 브레드 김이 동시에 라함의 몸에서 손을 뗐다.
“봉합 끝! 바이탈은요?”
“오케이. 양호해. 뭐 이런 의사들이 다 있어.”
이작손은 질렸다는 얼굴로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