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58
00861 861화
태수도 그건 알고 있었다.
가장 이식 성공률이 높다는 가족끼리 이식을 해도 면역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다.
반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의 신장을 이식받아도 잘 사는 사람이 있다.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현상이다.
그런 면역거부반응을 억제하는 약이야 개발되었지만 증상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태수가 여전히 조용히 있자 제임스가 이어서 말했다.
“수술 자체는 성공이라는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내가 보장해.”
“…….”
“그리고 닥터 최는 내가 가져다준 신장으로 수술한 거야. 그냥 수술한 게 아니라 몇 번이고 거부 반응 테스트를 하고 수술한 거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
태수는 김혁권과 NGO 의료진들과 몇 번에 걸쳐 이식거부반응 테스트를 했다.
그때마다 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약간이나마 안심하고 진행한 수술이었다.
이런 검증에도 불구하고 만약 라함에게 이식거부반응이 발생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순전히 환자의 운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제임스는 그걸 강조해서 말했다.
“만약 면역거부반응이 생긴다면 그건 내가 수술했어도 막을 수 없는 일이야. 닥터 최에겐 어떤 책임도 돌아가지 않을 거고.”
제임스의 말을 들으며 태수는 봉투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이 수술한 라함이 자그마한 차도라도 보여야 기쁘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수는 그 생각을 정중하게 표현했다.
“그럼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주십시오.”
“지켜봐야겠나?”
“네. 그게 아니라면 저 스스로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런가.”
“지금부터 만 하루.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때는 두말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태수의 눈에 신념이 가득 서렸다.
제임스와 스미스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 뒤로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눈 후였다. 태수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일어나며 말했다.
“깨어날 시간이 된 거 같습니다.”
“소회의실에서 보도록 하자고.”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태수는 양해를 구하고 스미스의 방을 나섰다.
탁.
문이 닫힌 순간이었다.
덤덤한 표정을 짓던 제임스의 얼굴이 점점 밝게 변해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스미스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좋나?”
“눈앞에 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데도 사양할 타국의 의사가 몇이나 될까?”
“별로, 아니 거의 없겠지.”
“그런데 닥터 최는 거부했어. 환자의 경과가 좋아야 떳떳하게 받을 수 있다고 말이야. 내가 저런 의사를 어떻게 싫어하겠나.”
제임스의 밝은 대답을 들은 스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 다 여러모로 대단해.”
“뭐라 해도 상관없어. 좌우간 이로써 난 또 하나의 목적도 이룬 셈이니까.”
“그건 닥터 최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
“최소한 거부하진 않을 거야. 그에게도 언젠가 필요한 순간이 올 테니까 말이야.”
제임스의 말에 스미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태수는 스미스의 방을 벗어나 중환자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젠 날카로운 두 의사의 의심에서 완전히 벗어났단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태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카프레네와 수술하는 모습이 놀랍도록 똑같단 점이다.
지식이 전이될 때 손기술까지 넘어온 건 결코 아니었다. 여태까지 전혀 다른 손놀림으로도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이런 의심을 받게 된 건 수술 방법이 너무나 독특했던 탓이다.
다른 수술이었다면 의심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카프레네가 고안한 수술법이라 태수는 그 방법대로 진행했을 뿐이었다. 그게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억지로 수술 방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이젠 누군가 같은 의심을 보이더라도 스미스와 제임스를 증인으로 세울 수 있었다.
세계 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의사였기에 누구도 반박할 순 없을 터였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태수는 그 부분이 조금 헷갈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제임스와 스미스와의 신뢰 관계가 깨지지 않았다는 게 태수를 행복하게 했다.
곧 ICU로 들어간 태수는 담당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라함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SICU(흉부외과 중환자실)과 똑같은 구조라서 찾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제 김혁권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태수는 김혁권이 자리하고 있는 병실을 발견하고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스르릉.
태수가 부드럽게 열리는 유리문을 통과하자 김혁권이 말했다.
“아직 안 깨어났습니다.”
“시간은 얼추 된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꼼짝도 안 하고 지켜보고 있죠. 그보다 제임스와 스미스랑 이야기는 잘 끝났습니까?”
김혁권이 묻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습니다.”
“그럼 이제 흉부외과 전문의에 외과 전문의까지 추가되는 거네요.”
“아니요. 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받는 건 내일로 미뤘습니다.”
태수의 말에 김혁권이 화들짝 놀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걸 왜 미뤄요?”
“라함의 상태는 확인해야죠.”
“나 참. 한국에서는 그거 따려고 눈에 불을 켜는데 누구는 주는 것도 밀어내네.”
“수술을 집도한 의사라면 최소한 환자의 초기 문제까지는 해결해야죠.”
태수의 말에 김혁권이 어이없단 듯 바라봤다.
“누가 무시하랍니까. 내 말은 주면 받아 둬야 한다는 겁니다.”
“라함은 괜찮을 거니까 하루 늦게 받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사람 참 고지식하긴.”
김혁권이 어깨를 들썩이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수와 김혁권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바이탈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조금 체온이 높고 혈압이 올라간 정도.
수술 직후 이작손이 hypertensor(승압제)를 투여한 탓이다.
혈액이 빠르게 순환해 신장의 기능을 계속 끌어올리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체온도 정상보다 조금 높았다.
그 외에는 별다른 문제 없었다.
걱정했던 소변도 일정한 시간마다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장이식 후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소변인데 그게 문제가 없으니 마음 졸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무사히 깨어나야 더 안도할 수 있는 게 태수와 김혁권의 마음이었다.
라함이 깨어나길 기다린 지 30여 분이 지난 후였다.
“으음.”
미약한 신음 소리와 함께 라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소리에 태수와 김혁권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라함이 반쯤 눈을 뜰 때까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이내 라함의 눈이 반개했다.
그제야 태수가 먼저 불렀다.
“라함, 라함?”
“닥터…….”
말은 거기까지밖에 하지 못했지만 태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섣불리 안심하기에는 일렀기에 태수는 몇 가지를 더 물었다.
“라함, 자신의 풀네임을 기억합니까?”
“압둘…… 라함.”
“좋습니다. 그럼 제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죠?”
“통역…… 사.”
그 소리에 김혁권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머리에 문제 있네. 다시 주무시렵니까?”
“…….”
라함은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 순간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태수는 다소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무사히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신의…….”
“네, 이것도 신의 뜻이죠.”
끄덕.
라함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막 깨어난 환자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지금은 좀 더 쉬면서 신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게 좋았다.
태수와 김혁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도 서둘러 라함과 헤어지진 않았다.
라함이 다시 잠들 때까지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린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라함이 잠들자 태수와 김혁권은 밖으로 나왔다.
김혁권이 태수에게 물었다.
“일단 의식을 찾고 3시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급성면역거부반응은 없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안심해도 될 정도죠.”
“게다가 소변도 졸졸 나오는 거 보니까 신장도 큰 무리는 없는 거 같은데.”
“아마도요.”
태수는 아직 확신하지 않았지만 김혁권은 반대였다.
“그럼 문제없네. 갑시다. 이 좋은 날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지.”
“모두 같이 식사만 하시죠.”
“아직도 자신을 의심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소심한 건지.”
김혁권이 투덜거렸지만 태수는 미소만 지어 보였다.
최소한 하루는 지나야 면역거부반응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태수는 그 시간이 지날 때까지 스스로 응급 대기를 할 생각이었다.
소회의실에 도착한 후, 태수의 생각을 김혁권이 전달하자 NGO 의료진들은 찬성했다.
이작손이 먼저 말했다.
“수술 자체에 문제가 없어도 찝찝하게 술 마시는 거보다는 낫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면역거부반응은 언제나 불시에 시작되니까요.”
브레드 김이 수긍하자 루미에 간호사와 캐서린 간호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환자였다.
태수가 무사히 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의견이 일치되자 김혁권이 한 소리 했다.
“왜 다들 닥터 최의 실력을 못 믿냐고.”
“믿습니다. 그걸 의심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나도 알아요. 아는데…… 좀 마시고 싶은데.”
김혁권의 말에 태수가 양해를 구했다.
“딱 하루만 참으세요.”
“젠장.”
김혁권은 결국 고개를 돌렸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 아쉬운 표정은 아니다.
왜 다들 태수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지에 대한 불만이었다.
태수에 대한 김혁권의 신뢰는 그만큼 단단했다.
만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오후에 태수는 라함을 다시 찾아갔다.
어제보다 좀 더 붉어진 얼굴을 보니 신장이 혈액을 제대로 여과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뇨 치료도 같이 하고 있어 얼굴에 살이 조금 붙은 모습이다.
태수는 라함에게 조용히 물었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거의 20시간 가까이 잔 거 같습니다.”
“아주 좋은 현상이네요. 많이 자야 회복이 빠릅니다.”
“닥터 최가 수술해 줬으니 회복이야 무조건 되겠죠.”
라함은 김혁권만큼이나 태수에 대한 믿음이 강렬했다.
태수는 고마움에 미소를 지으며 몇 가지를 확인했다.
손에 들려 있는 차트와 비교해 보니 역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주 경과가 좋은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럼요.”
“회복 중이시라 길게는 이야기하지 못하겠고, 간간이 들르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라함은 태수를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제 수술받은 사람답지 않을 정도로 인자한 얼굴이었다.
라함의 경과를 확인한 태수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중환자실을 나서 휴대폰을 들었다.
“제임스.”
“닥터 최, 라함 상태는 어떤가?”
“찾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난 자격증을 준비하지.”
제임스는 태수의 힘찬 목소리만으로도 경과를 예측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태수와 제임스는 며칠 전 마주했던 노천카페에 똑같이 자리했다.
오늘도 역시 두 사람 사이에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제임스는 어떤 말도 없이 봉투부터 내밀었다.
“외과 전문의 자격증이야.”
“이젠 받아도 될 거 같습니다.”
“참, 그 고집하고는.”
“그러게 말입니다.”
태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런 건 그 자리에서 확인해 주는 게 제 맛이었다. 바로 내용물을 꺼내던 태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흉부외과 자격증은 한 장이었는데 이 봉투 속에는 2장의 종이가 들어 있던 탓이다.
얼른 꺼내 펼친 태수가 멈칫했다.
1장은 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증이 확실했다.
그런데 다른 1장은?
놀랍게도 NGO 소속 의사들에게 발부해 주는 소속 증명서였다. 네팔에 가기 전에 발부받았던 일회성 소속 증명서가 아니라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거였다.
태수가 깜짝 놀라 제임스를 바라봤다.
“제임스, 이건…….”
“받아 주겠나?”
제임스의 질문은 짧고 굵었다. 가부간의 결정만을 듣겠단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