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66
00869 869화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택시 기사가 말했다.
“받으세요.”
“아니, 이걸 제가 왜…….”
“나도 좋은 일 한 번 합시다.”
“네?”
태수가 영문 모를 얼굴로 바라보자 택시 기사가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태어나서 아직 이렇다 할 좋은 일 한 번 해 본 적 없습니다. 구세군도 그냥 지나치는 놈입니다. 그런 놈에게 착한 일 할 기회 좀 주쇼.”
“…….”
“이거 몇 푼 안 되지만 애들 피자라도 한 판 사 주시고, 치킨이라도 한 마리 시켜 주세요. 그리고 선생님들도 좀 드시……. 그러기엔 너무 적긴 하네.”
택시 기사의 난감스런 말에 태수는 질색했다.
“아닙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사님 마음은 제가 충분히 알았으니까 다시 넣으세요.”
“거참, 사람 민망하게. 선생님, 그냥 눈 한번 질끈 감고 받아 줘요.”
택시 기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돈을 내밀었다.
태수가 여전히 받지 않자 아예 몸을 뒤틀어 좌석과 좌석 사이로 내밀더니 손에 쥐여 줬다.
그리고 그 손을 꼭 오므리며 이어서 말했다.
“복잡한 건 모릅니다만, 이거 하나만 부탁합시다. 앞으로 진짜 많이 아픈 아이들 수술하신다면서요. 나을지도 모르고, 못 나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요.”
“네.”
“거창하게 모두 살려 달라는 말씀은 안 드릴게. 의사도 사람인데 모든 병을 어떻게 고쳐. 그런데 선생님.”
“…….”
태수가 가만히 바라보자 택시 기사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아이들 한 번만이라도 희망이란 놈 느끼고 웃게 해 줘요.”
“음.”
“부탁합시다.”
한 번만 웃게 해 달라.
마음을 파고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부탁을 하는 택시 기사의 눈빛이며 말투까지 모든 게 진심이었다.
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그 부탁은 이미 못 들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제가 오기도 전에 한 아이가 세상을…….”
태수는 뒷말을 일부러 흐렸다. 그러나 그 뜻은 택시 기사의 귀에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택시 기사의 표정도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애써 밝은 얼굴로 말했다.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요. 내 새끼 아니라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겁니다. 그건 인정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
“다른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 아이들은 웃게 해 주실 거잖아요. 그렇죠?”
“장담하기 힘드네요.”
태수는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냥 알았다고 해도 될 일이다.
그런데 저절로 이런 대답이 나오는 건 택시 기사가 그만큼 진심으로 말하고 있기에 속마음을 털어놔야 했다.
오다가다 만날 수 있는 수많은 택시 기사 중 한 명이다.
태수도 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야기는 너무도 특별했다.
그가 소문을 낸다면 비난 여론이 들끓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 진중한 택시 기사 눈빛에 없는 말을 지어낼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택시 기사는 그런 태수에게 말했다.
“살리고 못 살리고, 물론 중요하겠죠. 그런데 내가 부탁하는 건 꼭 살려 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힘든 시간 버텨 왔을 아이들을 그냥 한 번만 웃게 해 달라는 겁니다.”
“그건…… 네, 그건 노력해보겠습니다.”
태수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애써 대답했다.
그제야 만족하는지 택시 기사가 말했다.
“애들이 기뻐하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니까 그 돈은 그냥 받으시고. 거절하시면 진짜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택시비는 받아야 되니까…….”
앞뒤 말이 확 바뀐 택시 기사가 다시 운전대 방향으로 앉아 뭔가 주섬주섬거렸다.
태수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이 택시 기사는 다시 뒤로 돌았다. 그의 손에는 메모지와 펜이 들려 있었다.
“여기에 사인 좀 해 주세요.”
“사, 사인이요?”
“최 선생님을 내가 언제 또 만나겠습니까. 그러니까 택시비 대신 사인 하나 시원하게 해 주고 가요.”
“택시비는…….”
“여기에 사인하시라니까.”
택시 기사는 재촉하듯 메모지와 펜을 태수 가까이 내밀었다.
태수는 영 어색한 얼굴로 메모지에 사인한 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선생님.”
“펜대하고 인연도 없는 놈한테 무슨 선생. 선생님은 그쪽이고, 나 같은 놈은 그냥 기사라고 해요.”
“이런 마음을 보여 주신 분에게 어떻게 그럽니까. 선생님이 맞으십니다.”
태수가 도대체 물러서지 않자 이번에는 택시 기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 참, 팔자에도 없는 선생 소리를 다 들어 보네.”
“그보다 선생님.”
태수가 진지하게 다시 부르자 택시 기사의 표정도 조금 진중해졌다.
“말씀하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두 잘될 거란 장담은 못 드립니다. 하지만.”
“…….”
“선생님 말씀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사나이 대 사나이의 약속이었다.
태수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택시 기사가 환하게 웃었다.
택시에서 내린 태수는 손에 쥐어진 지폐 뭉치를 바라봤다.
모두 합쳐 10여 만 원이나 될까?
하지만 태수에게는 수천만 원, 아니 그 이상의 가치로 느껴졌다.
그제야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옳은지 확신이 섰다.
꽈악.
지폐가 으스러질 듯이 움켜쥔 태수는 바로 위병소로 향했다.
위병소를 통과해 군병원으로 걸어가는 사이였다.
위병소 근무자의 보고를 통해 군병원의 모든 의료진들이 태수의 도착 소식을 접했다.
태수가 군병원 현관에 도착할 즈음이다.
현관문이 먼저 열리면서 호들갑스럽게 뛰어나오는 남자가 보였다.
가운을 입고 있는 그는 유병태였다.
“태수야! 아니지, 최 선생.”
“그렇게 뛰다가 다친다, 다쳐.”
“다치기는.”
삐쭉거린 유병태가 얼른 다가와 태수 앞에 섰다.
“다시 보니 진짜 반갑다.”
“도착하자마자 시커먼 남자가 반겨 주니까 난 별로.”
“자식.”
“잘 지냈어?”
태수가 손을 내밀자 유병태가 바로 맞잡았다.
“딱 봐도 잘 지낸 거 같지?”
“아니, 죽어 가는 거 같아.”
태수의 말대로 유병태의 안색이 꺼멨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짐작될 정도였다.
어느새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유병태가 물었다.
“그렇게 안 좋아 보여?”
“쉬어야 할 정도로.”
“쉬는 거야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거고. 일단 들어가자. 아마 지금쯤이면 모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유병태가 태수를 현관으로 이끄는 사이였다.
벌컥.
또 한 번 현관문이 급격히 열리더니 이선정 간호사가 빠르게 달려왔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태수가 기세 좋게 말했다.
그런데 이선정 간호사가 달려오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품에 뛰어들 기세였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태수는 슬쩍 양팔을 벌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선정 간호사가 그의 품으로 쏙 들어왔다.
그와 동시였다.
퍽.
이선정 간호사의 주먹이 태수의 배로 직행했다.
불시에 일격을 맞은 태수가 얼른 뒤로 물러서며 울컥했다.
“왜 때리십니까?”
“때릴 만하니까 때리죠. 어떻게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나타날 수가 있어요?”
“상황이 그랬잖습니까.”
태수가 배를 슬쩍 문지르며 대답했다.
조금 둔중한 충격만 있을 뿐이지, 그리 아프진 않았다.
일부러 강약을 조절해서 때린 이선정 간호사였지만 태수의 말에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출발하기 전에 연락이라도 한 번 주셨어야죠.”
“그 소식 듣고 바로 출발해서 그럴 정신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신 건데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중에 말씀드리고요. 일단 올라가시죠. 그 후의 일도 좀 들어야 하니까요.”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를 어르며 돌려세웠다.
힐끔 태수를 올려다본 이선정 간호사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신 거예요?”
“이상합니까?”
“그건 아닌데, 뭔가 느낌이 아리송해요.”
“그것도 올라가서 말씀하시죠.”
태수는 그렇게 이선정 간호사를 앞세우고 유병태와 함께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장소를 지나는 사이 안면이 있는 간호장교들이나 군의관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태수는 익숙한 회의실 문 앞에 도착했다.
유병태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최 선생 왔습니다!”
회의실 안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보건의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 직전이라 이미 모여 있었던 것 같다.
태수는 보건의들을 크게 둘러본 후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짝짝짝.
가볍게 박수 소리가 먼저 들리고 이후에 축하의 말이 이어졌다.
“수고했어. 대단하던데?”
“최 선생이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어떻게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자격증을 두 개나 취득하냐고. 좌우간 그것도 능력이라니까.”
보건의들의 목소리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격한 축하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태수가 부랴부랴 귀국한 이유를 모두가 알고 있던 탓이다.
태수는 자세를 낮춰 눈을 마주친 보건의들과 한 번 더 가볍게 인사하며 비어 있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이선정 간호사와 유병태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태수는 성재경, 임진호, 박민철과는 가볍게 악수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눈치였지만 지금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태수도 같은 마음이기에 악수하는 손을 강하게 쥐며 반가움만 표시했다.
이내 모두 자리에 앉자 단상에 서 있던 공우혁이 태수에게 말했다.
“환영해야 할 자리가 좀 무거워.”
“저도 일단 그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태수가 묻자 공우혁이 말했다.
“우선 문지철은 무연고 사체로 분류돼서 오늘 아침에 화장했어.”
“부모나 친척을 끝까지 못 찾은 겁니까?”
“그렇게 됐지.”
“혼자…….”
착잡한 마음에 태수가 말꼬리를 흐리자 공우혁이 말했다.
“나하고 성 선생이 동행했었어. 아마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을 거야.”
“그렇군요.”
“괜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번 일에 최 선생 책임은 없어.”
“음.”
태수가 낮은 침음성을 흘리자 공우혁이 이어서 말했다.
“지극히 냉정하게 말하자면 최우선적으로 수술이 내정된 아이였지만 그뿐이야.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는 상황이었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오기 전에 마음을 많이 정리했습니다. 그보다 유골은 어디에 뿌렸습니까?”
“그건 왜?”
“그래도 한 번은 찾아가 봐야죠.”
태수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공우혁은 그런 태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내가 이따가 알려 줄게.”
“그럼 그 문제는 좀 뒤로 미루고요. 죄송하지만 제가 오자마자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어떤 제안?”
질문에 태수가 주머니에서 택시기사에게 받은 돈을 꺼냈다.
“실은……”
태수가 찬찬히 설명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보건의들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작은 일이지만 뭔가 가슴을 친다.
회의실이 잔잔하게 내려앉을 무렵, 설명을 마친 태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귀국전부터 결정한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다들 의아해할 때였다.
탁!
가볍게 단상을 쳐 주위를 집중시킨 공우혁이 크게 말했다.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
다들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태수에게 옮겼다.
태수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나지막이 말했다.
“사실 문지철의 병에 대해 제임스 박사님, 그리고 스미스 박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제임스 박사님?”
“스미스 박사님까지?”
“도대체…….”
다들 경악했다.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료계의 거목들이다. 그런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궁금증이 팍팍 솟구칠 정도였다.
그러나 태수는 할 말이 남았기에 반짝이는 눈빛들을 뒤로하고 이어서 말했다.
“그분들조차도 문지철과 같은 경우는 수술과 그 이후의 회복 과정까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음.”
다들 묵직한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문지철의 병들이 예사롭지 않았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