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74
00877 877화
“그럼 그 환자는 어떤 아이죠?”
“환자 이름은 고유찬, 나이는 19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출석 일수는 좋지 않은 아이입니다.”
“주변 관계는요?”
“아무도 없습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이번에는 조현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19세의 고아?”
“올해 초에 시설에서 독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니, 나도 그 나이가 되면 독립해야 하는 건 알아. 그런데 이 아이의 경우는 좀 다르잖아. 이렇게 병이 있는 애를 어떻게…….”
“시설 측에서는 심장이 약하다고 판단했을 뿐, 이런 상황인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조현민이 예리한 눈빛으로 물었다.
“진짜 몰랐어?”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알고 일부러…….”
“억측은 삼가죠. 우리는 병과 환자만 보면 됩니다.”
태수가 다소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조현민이 입을 다물었고, 다른 의료진들도 침묵했다.
태수의 말대로 억측은 삼가는 게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을 수 있었다.
모두 조용히 하자 태수가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고유찬은 월요일에 입원하기로 얘기가 됐습니다.”
“그때까지는 별문제 없을까?”
“공 선배가 통화하는 목소리로 들어 봐서는 아직 괜찮은 거 같답니다. 대신 치아노제 현상이 심해지면 바로 연락하라고 했고요.”
태수의 말을 들은 의료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조용히 있던 노우종 대위가 정색하며 물었다.
“그럼 수술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직 결정은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우선 아이 상태부터 다시 확인하고 수술 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뭔가 결정이 날 건 아니라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노우종 대위는 따지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태수도 고민했던 대목이어서인지 곧바로 대답했다.
“말씀대로 지금 당장 어떻게 수술을 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단 이야기를 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럼 난치병이라고 하셨는데 수술에 대한 성공 확률은 어떻게 보십니까? 아, 제가 너무 예민한 질문을 드린 겁니까?”
“아니요.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예상하는 성공률은 대략 20퍼센트 남짓입니다.”
태수의 말에 일순간 소회의실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 갔다.
너무도 낮은 성공률에 다들 할 말을 잊은 얼굴이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한마디 더 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환자가 한창 성장 중이기에 갑자기 이상이 발생할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10퍼센트 미만이 되겠죠.”
“…….”
모두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10퍼센트.
열에 아홉은 죽는단 말이다.
모두가 아찔한 충격을 받은 걸 보면서도 태수는 좀 더 강하게 말했다.
“만약 응급인데 일반적인 팔로사징증이 아니라면 성공 확률은 더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음.”
“저도 그런 가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최악의 경우부터 생각하고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태수의 말을 들은 모두는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고 해도 10퍼센트, 아니 그보다 훨씬 낮은 확률의 수술이라면?
그걸 정말 해낼 수 있는지부터 의심해 봐야 할 일이다.
좌중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
난치병을 수술한다는 게 이젠 정말 실감이 나는 얼굴들이었다.
태수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동료들에게 말했다.
“전 고유찬 환자가 일반적인 팔로사징증이길 바랍니다. 그게 가장 수술 성공 확률이 높으니까요.”
“만약 아니라면?”
여성현이 나지막이 묻자 태수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정말 가능성이 없다면 수술하지 않을 겁니다.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아주 짧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줘야겠죠.”
“…….”
“문제는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럼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여성현의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태수가 말했다.
“오늘은 남은 시간 동안 계속 회의를 할 겁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모의 수술을 진행할까 합니다.”
“모의 수술?”
“이렇게 테이블에 앉아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는 거죠. 돌발 변수까지 가정할 순 없지만 정석대로 모의 수술을 계속하다 보면 실전에서 어떤 상황과 맞닥뜨리더라도 돌파할 순발력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태수가 조리 있게 말하자 조현민이 제일 먼저 수긍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우리끼리라도 호흡이 제대로 맞아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확률이 올라갈 수술이니까.”
“저도 그래서 생각한 겁니다.”
“그럼 최 선생 말대로 오늘은 일단 팔로사징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고들어 보자고.”
조현민의 말에 다들 태수가 나눠 준 자료를 펼쳤다.
그리고 숨소리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 팔로사징증이 확실히 어떤 병인지 숙지하기에 바빴다.
잠시 후.
숙지가 끝난 후에는 본격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기본적인 개념은 모두 알았을 테니까, 인공심폐기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일단 아이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중심정맥관도 심장이 멀쩡해야 효과가 있어. 이럴 때는…….”
“그 부분은 내과에 좀 더 도움을 받기로 하고요.”
정답이 없는 토론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허투루 의견을 내지 않았다.
장시간 토론을 마친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퇴근길에 올랐다.
평소라면 5층 회의실에 들렀다가 가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의무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첫 번째 아이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일과에서 모조리 열외였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난치병 수술에 참가하는 모든 의료진이 같은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모든 보건의들은 난치병 수술을 할 의료진들을 적극 배려했다. 물론 다른 보건의들은 일과가 늘어났지만 아무런 불만도 보이지 않았다.
힘든 수술인지 모두가 안다.
그 수술실에 들어갈 의료진들이 어떤 마음인지 익히 짐작이 가기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못하더라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바로 차에 올라 군병원 위병소를 나선 순간이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이선정 간호사가 나지막이 물었다.
“수술 확률은 어떻게 보세요?”
“아까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요.”
“그건 통계적인 수치고요. 선생님이 판단하시는 수치를 듣고 싶어요.”
“진심으로요?”
태수가 묻자 이선정 간호사가 바로 대답했다.
“네, 진심으로요.”
“100퍼센트.”
“역시 선생님이시네요. 그럼 의사 최태수로서 냉정하게 병을 대한다면요?”
“50퍼센트.”
태수의 대답을 들은 이선정 간호사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그렇게 높게 보세요?”
“의료진들의 열의만 봐도 수술은 이미 반은 성공이라서 드린 말씀입니다.”
“…….”
“그리고 일반적인 팔로사징증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수가 자신감 서린 목소리로 대답하자 이선정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아까 회의할 때 말씀하신 대로 예기치 못한 변수가 터진다면요?”
“……20퍼센트 남짓.”
“역시 그 정도인가요?”
“다른 부위도 아니고 심장입니다. 한 번 실수로 인해 파생될 부작용이 너무도 크죠.”
태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선정 간호사도 그 점을 간과하진 않았다.
“그러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갑자기 뭐가 다행입니까?”
“미국 흉부외과 자격증을 취득했으니까 이젠 언제든지 흉부 수술을 할 수 있어서요.”
“신속대응센터에서 가끔 했는데요.”
태수의 대답에 이선정 간호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야 그쪽 룰이고요. 이쪽 룰은 전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그 룰에 맞춰 주려고 멀리 미국까지 다녀온 거 아닙니까.”
“그래서 더더욱 다행이죠. 한 번에 붙지 못했으면 이런 수술 자체도 이야기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
태수는 자그마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선정 간호사도 더 할 말이 없었는지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대화하는 사이에도 열심히 달린 차는 숙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태수가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오늘은 푹 쉬세요. 주말에도 계속 출근하셔야 하니까요.”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가 한가득이라서 잠이 올지 모르겠네요.”
“오후에 출근하잖습니까. 오전에 일어나서 한 번 보시면 어느 정도 파악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똑똑하진 않은데요.”
“저보다 훨씬 총명하십니다.”
태수의 밉지 않은 아부에 이선정 간호사가 어이없단 듯 웃었다.
“상당히 듣긴 좋은 말이네요. 그래요. 일단 피로부터 풀고 숙제를 하는 게 제 정신 건강에 좋겠어요.”
“꼭 그렇게 하십시오.”
“선생님도 쉬시는 거죠?”
“그럼요.”
“알았어요. 그럼 애들한테 말 좀 잘 전해 주시고, 내일 뵈어요.”
이선정 간호사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멀어져 갔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태수의 손에는 어느새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부모님에게 전화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계획은 주말에 집에 내려갔다가 신속대응센터까지 들러 인사하고 오려 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찾아가 보지 못한 미안함이 불쑥 들었다.
잠깐 사이 전화가 연결되더니 아버지의 물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 어디쯤이냐?”
대뜸 물어 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아버지 또한 태수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 마음에 보답하지 못하니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당장은 못 가게 됐습니다.”
“이런 싸가지 없는…….”
“그러게요. 아버지가 저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왜 못 오는데?”
아버지가 묻자 태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태수가 간략하게 상황을 이야기한 후였다.
조금 누그러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치병 아이 수술에 대해 상의할 게 많아서 못 온다고?”
“그렇습니다.”
“음, 그건 내가 백번 양보해야지.”
“감사합니다.”
태수가 인사를 마친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보다 미국에 다녀온 성과가 있는 거야?”
“네. 자격증 취득하고 와서 이번 수술을 집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 수술은 힘든 수술이냐?”
“힘들겠죠.”
태수의 목소리가 살짝 작아졌다.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호기로운 목소리를 들려 드리고 싶지만 장담할 순 없는 문제였다.
난치병 수술 결과는 분명 언론을 통해 알려질 터였다. 그래서 더 섣부르게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크도 아직 마르지 않은 그 자격증이 무거워?”
수술에 대한 부담감을 묻는 것이다. 그 질문의 의도를 바로 눈치챈 태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좀 무겁네요.”
“그럼 그거 찢어 버리고 내려와서 같이 농사나 짓자.”
“갑자기 무슨…….”
“네가 아무리 절실하게 노력해서 취득한 자격증이라도 들고 있기 무거우면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야. 내 말이 틀리냐?”
“…….”
아버지의 물음에 태수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그렇다고 가볍게 생각하라는 것도 아니야. 사내새끼 마음이 가벼우면 귀가 팔랑거리고, 그게 망하는 지름길이지.”
“…….”
“제일 중요한 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거다. 그리고 그 자격증을 무겁게 하는 것도, 가볍게 하는 것도 네 마음이야.”
“음…….”
태수의 입에서 작은 침음성이 흐른 후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이어졌다.
“난 내 아들 믿는다. 어떤 결과가 들려와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힘껏 부딪쳐. 그리고 와서 막걸리 한 잔 따라 주면 된다.”
“아버지.”
“시끄럽고, 나 약속 있어서 나가 봐야 되니까 끊는다. 아차, 이번에 못 오니까 용돈 더 넣고.”
뚝.
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를 태수는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풋.”
그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여전했다.
그 모습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터였다.
뿌리 깊은 아름드리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