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78
00881 881화
사인을 받은 태수는 나지막이 외쳤다.
“전환 시작.”
“cardioplegic solution(심정지 용액) 주입. 맥박, 혈압, 산소포화도 급감합니다.”
여성현의 보고가 수술실을 울리자 태수가 밸브를 비틀며 말했다.
“대동맥 전환 시작.”
“상하대정맥 전환 시작했어요.”
“폐동맥 전환 시작.”
“폐정맥 전환 시작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노우종 대위가 낮고 빠르게 말했다.
“인공심폐기로 피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여과기 오케이, 와파린 투여 상태 좋고, 문제없습니다.”
“심장 정지. 혈압 잡히지 않아.”
여성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태수부터 한 번 더 상황을 소리 내 알렸다.
“대동맥 전환 완료.”
“대정맥도 됐어요.”
“폐동맥은…… 오케이.”
“폐정맥 차단됐습니다.”
그 후 바로 수술이 이어지진 않았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다시 인공심폐기로 흘러가는 피를 돌려 심장으로 보내야 하는 탓이다.
가장 문제가 많이 생기는 순간이다 보니 입안이 살짝 마르는 느낌도 들었다.
그사이 여성현이 상황 파악을 마치고 의료진들에게 돌아섰다.
긴장된 얼굴들을 보며 여성현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인공심폐기로 돌리니까 혈중산소 농도가 더 올라가는 건데?”
“그 말씀은…….”
“여과된 피가 제 역할을 잘해 내고 있다는 거겠지. 연결 상태는 좋아.”
척.
여성현이 엄지를 내보였다.
그제야 다들 긴장된 표정이 풀려 갔다.
“일단 한 고비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비가 가장 쉬웠다는 게 문제죠.”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습니다. 메스.”
태수가 부탁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바로 건넸다.
그걸 받아 든 태수는 거침없이 심장 가운데를 가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조현민이 구연정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렸다.
“센리트렉터하고 인터네셔널 클램프 좀 줘요.”
“여기 있습니다.”
탁.
수술 도구를 받아 든 조현민은 태수의 손길에 갈라진 심장을 좌우로 벌리기 시작했다.
심장 내부를 본 의료진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확실히 예상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심장을 갈라보니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짧게 바라본 태수가 말문을 열었다.
“폐동맥은 삐딱하게 위로 밀려 올라간 상태입니다. 그 때문에 혈관 자체가 좁아지고 대동맥에 들러붙어 있습니다.”
“심장 단면을 보니까 우심실뿐 아니라 좌심실도 두꺼워졌어.”
“압력이 서로 다르니까 자연적으로 맞추려다 보니 발달한 거겠죠.”
태수가 대답하자 조현민이 추가로 말했다.
“그런데 좌우 심실 두께도 다르고 딱딱함도 달라. 우심실 쪽이 더 딱딱하고.”
“폐동맥 때문에 아마 우심실과 우심방이 계속 무리했을 겁니다.”
“이 상태라면 계속 맥박이 빠르고 혈압도 높았을 텐데.”
“거기다 숨까지 차니까 외부 활동을 거의 못했을 겁니다.”
태수의 말에 조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상태면 집 앞 편의점 가기도 힘들었을 거야.”
“그 외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 그중에서도 중격. 심실을 나눠 줘야 할 중격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이 상태로 어떻게 살았지?”
조현민은 이해가 안 간다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태수는 의외로 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심장에 큰 무리만 없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으니까요.”
“그걸 거의 20년 동안?”
“저희 눈앞에 그 오랜 시간을 버텨 온 환자가 누워 있잖습니까.”
“그러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화가 나. 유아기 때 한 번만 수술해도 이런 상태까진 오지도 않았을 텐데.”
조현민의 눈꼬리가 위로 바짝 올라갔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럼 청색증은?”
“어렸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발견하지 못했겠죠. 그리고 병에 대해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 버렸고요.”
태수의 말이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이었는지 조현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최소한 10살 이전에만 알았어도…….”
“아마 그래도 힘들었을 겁니다. 심장과 연결된 대동맥과 폐동맥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중격을 설치할 위치가 애매하니까요.”
“젠장. 최 선생은 가능하겠어?”
조현민이 묻자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 보이겠다고요.”
태수의 각오를 들은 수술실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한동안 조용해진 수술실에서 여성현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울렸다.
“중요한 얘기 하는 건 아는데…… 노 대위, 잠깐 최 선생 자리 비워도 되죠?”
여성현의 질문에 인공심폐기를 관리하던 노우종 대위가 대답했다.
“이쪽은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최 선생, 잠깐만.”
노트북 앞에 선 여성현이 태수를 향해 손짓했다.
수술 중에 이런 일이 거의 없기에 태수는 의아한 얼굴로 잠깐 수술대를 벗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응급실에서 CBC(피검사)하라고 했다며. 결과가 지금 막 업데이트됐어.”
“일단 좀 보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태수가 빠르게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트북에는 EMR(전자의무기록)이 떠올라 있었고, CBC(피검사) 결과가 확대된 상태였다.
태수는 각종 수치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곧 눈빛이 가느다랗게 떨려 왔다.
“영양실조가 너무 심하네요.”
“맞아. 이 정도 영양실조라면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 건데. 그 기간은 대략 몇 개월 정도 되는 거 같고.”
“아파서 잘 먹지 못한 거 같습니다.”
태수의 추측에 여성현도 인상을 찌푸린 채 공감했다.
“보아하니 원체 못 먹은 데다 몇 개월 사이에 병이 급속히 악화되었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차라리 죽고 싶었을 거야.”
“…….”
“그보다 문제는 최 선생도 알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장시간 인공심폐기에 의존할 수 없어.”
여성현이 태수를 부른 정확한 이유를 말했다.
어느새 노우종 대위도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그도 결과를 살펴보고는 여성현의 말에 동감하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태수 또한 그 주장을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난감한 상황에 그의 입에서 신음 비슷한 소리가 나왔다.
“음.”
“그렇다고 수술을 멈추자는 건 아니고, 그만하자는 말도 아니야. 저 녀석이 살려 달랬다며. 그럼 살려 줘야지. 그런데…….”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럼 노 대위, 인공심폐기에 얼마나 더 의존할 수 있다고 판단하십니까?”
태수는 의견을 물었다.
노우종 대위가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여성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십니까?”
“왜 나야?”
“이런 상황이라도 기계는 무조건 돌아가잖습니까.”
“젠장. 잠시만요.”
마취의학과는 마취와 전신관리에 특화된 의과였기에 이럴 때 가장 정확하게 판단해 줄 수 있다.
그런 여성현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는지 CBC(피검사) 결과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니, 바라보는 척하며 머릿속은 이미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여성현은 길게 시간 끌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2시간. 노 대위 생각은?”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태수가 깜짝 놀랐다.
“2시간이요?”
“그 시간이 넘어가면 절대 장담 못해.”
“그렇다고 2시간 안에…… 그 많은 처치들을 다 해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정말 어렵다는 거 잘 알아. 나도 모의 수술에 참가했고,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다고.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심장이 아예 정신줄 놓고 안 뛸 확률이 높다니까.”
여성현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태수를 향한 질책이 아니라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태수도 그걸 알고 있기에 별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태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수술실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같이 모의 수술을 진행해 온 의료진들이기에 2시간 안에 수술을 마치라는 말?
그야말로 어렵단 걸 잘 알고 있던 탓이다.
고유찬의 심장을 내려다보는 의료진들의 눈빛이 착잡했다.
반면, 태수는 빠르게 굴러가는 머리를 차분하게 안정시키는 중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자.
지금 여러 가지 복잡하게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여성현의 말이 맞다.
시간을 끌면 인공심폐기에 적응한 몸이 심장을 자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성현의 판단대로 2시간 안에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게 좋았다.
지금까지야 어쩔 수 없었지만, 이후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결정을 내리고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역시 2시간 안에 그 모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될까?
그 질문은 접어 뒀다.
안 된다면 테이블데스일 뿐이다.
그 결과만큼은 아무리 억지를 부린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수술을 진행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이리저리 뒤바꿔 보던 태수의 눈빛이 순간 번뜩거렸다.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머릿속에 있는 수술 방법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
달리 말해 성패가 불분명하단 뜻이다.
태수는 곧 고개를 털었다.
기존 수술법은 성공률이 높아서 진행하려 했나?
냉정하게 말해서 성공률은 말 그대로 확률적 수치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었다.
결정을 내린 태수가 모두에게 말했다.
“심장중격결손과 좌우심실비대는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폐동맥협착 및 그 이외 부분은 심장을 되돌린 후에 진행하도록 하죠.”
그 소리에 다들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조현민이 태수를 바라보며 혹시나 싶은 눈빛으로 재차 물었다.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폐동맥을 건드리겠다고?”
“대동맥도 좀 건드려야 할 겁니다.”
“가능…… 해?”
“아주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태수의 말은 사실이다. 폐와 관련된 수술을 할 때 종종 폐동맥과 폐정맥을 임시로 차단하기도 한다.
대동맥박리를 수술할 때도 마찬가지로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수술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지금 고유찬의 상태로 그걸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많은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들도 그 부분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게…… 가능해야죠. 가능할 거예요.”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웬만한 수술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이선정 간호사지만 이 상황에선 냉정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그럴 정도였으니 다른 간호장교들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뻔히 짐작될 정도였다.
모두 동요하는 사이 태수는 수술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반대편에 선 조현민을 바라봤다.
“…….”
침묵한 채 바라만 보는 그 눈빛이 너무도 강렬했다. 그사이 가늘게 떨려 오던 조현민의 눈동자가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이내 눈동자의 떨림이 멈췄다.
동시에 조현민의 표정 또한 결의로 가득 찼다.
끄덕.
조현민이 사인을 보내자 태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이선정 간호사와 구연정 대위, 여성현과 박시은 중위, 노우종 대위까지.
열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태수를 직시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손을 떼자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
태수가 강한 말투를 쏟아 냈다.
“후우. 박 중위, 타이머를 1시간 50분으로 맞춰 주세요.”
“알겠습니다……. 준비됐습니다.”
박시은 중위가 말하자 태수가 한 번 더 확인했다.
-01:50:00
리미트 시간이다.
여성현이 2시간을 이야기했지만 대화하며 지체된 시간을 계산해서 뺀 계산법이다.
아까운 시간이지만 수술방법을 바꾸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딱 한 번 한계 시간을 정해 놨었다.
신속대응센터에서 박성민과 정민수가 함께한 수술이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백성현 교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수술이기도 했다.
오늘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랐다.
봉합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정민수도 없었고, 실력 좋은 박성민도 없었다.
그저 이 인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의무적인 수술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수술이었다.
태수는 그 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품었다. 곧 준비가 됐는지 눈빛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