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88
00891 891화
물론 겉으로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요. 친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뭐, 제가 좀 동안이긴 하죠. 아차차, 그보다 환자는요?”
이선정 간호사가 정신을 차렸는지 얼른 묻자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요?”
“마음 같아서는 후유증이 없다고 확신하고 싶지만 섣불리 그럴 수는 없지요.”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는 격하게 공감했다.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게 문제라서 이렇게 나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보다 음료수?”
“좋죠.”
“잠시만요.”
그래도 어린 태수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료수를 앞에 둔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던 중에 조현민이 양팔을 감싼 자세로 엉거주춤 들어왔다.
“다들 안녕하신 거 같지 않네요.”
“선배가 더 안녕하지 못하신 거 같은데요. 팔은 괜찮으십니까?”
“아직도 떨려서 아주 죽겠어. 그보다 음료수, 내 것도 있어?”
“그럼요. 일단 앉으세요.”
태수가 한 번 더 몸을 움직였다.
이내 세 사람이 나란히 자리했다. 평소에는 의과가 달라서 이렇게 자리한 적이 거의 없었다.
태수가 먼저 조현민에게 물었다.
“팔은 좀 어떠세요?”
“cramping pain(경련통)이 심해.”
“좀 볼까요?”
“그래. 좀 봐줘 봐.”
조현민이 순순히 팔을 내밀었다.
의사라고 자기 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흉부외과 전문의가 정형외과 관련 질환에 빠삭할 리도 없었다.
물론 태수는 그런 의과의 분류와 관계없는 의사였다.
태수가 팔을 가볍게 쥐자 조현민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끄윽. 아, 아파.”
“이 정도에 아프면 진짜 심각한 건데. 그런데 근육 많으신데요?”
“요즘에 운동 안 해서 그렇지, 계속했었어. 수술할 때 팔 근육이 많으면 피로가 덜해서.”
“그럼 muscular stiffness(근육경직)인 거네요.”
태수의 말에 조현민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렇겠지. muscle relaxant(근이완제)를 먹어야 하나?”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의사가 약을 신뢰 못하다니.”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가급적이면 안 먹는 게 좋으니까요. 자주 먹으면 속만 버립니다.”
태수의 말에 조현민이 삐쭉거렸다.
“나도 아는데 난 지금 피치 못할 사정이라고.”
“그 사정을 좀 도와 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어떻게?”
“카슈미르에서 배운 민간요법 중 하나가 있는데, 뭉친 근육 푸는 데는 끝내줍니다. 대신 고통이 좀…….”
태수가 말을 얼버무렸지만 조현민은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뭐든지 해 줘 봐.”
“이는 악물지 마세요. 잘못하면 치열 틀어집니다.”
“얼마나 아프다고 그렇게까지 돼.”
“전에 누가 그러다가 큰코다쳤는데.”
“내 코는 작으니까 얼른 좀 해 줘. 부탁한다고.”
조현민이 재촉하자 태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시작합니다.”
“하라니까.”
“그럼. 읍!”
태수가 팔꿈치와 손목 중간 어느 부위를 강하게 누르며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조현민은 머리털이 쭈뼛 서다 못해 자지러지는 아픔을 느꼈다.
“끄아아악!”
“한 번 더.”
“안 돼! 아아악!”
조현민의 비명 소리가 회의실이 무너질 정도로 울렸다.
초곡리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지 이선정 간호사는 이미 귀를 막고 시선까지 돌린 모습이었다.
잠시 후, 조현민은 양팔을 조금 더 수월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표정은 떫은 감을 씹은 것 같았다.
“이거 좋아해야 되나, 슬퍼해야 되나.”
“잘 움직이네요.”
“확실히 전보다 좋아졌는데, 이젠 눌린 부위가 더 아파.”
“진짜 아프다니까요.”
태수의 말에 조현민이 질렸단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지.”
“그보다 유찬이 보러 가셔야죠.”
“이미 갔다 왔지. 최 선생이 여기 있다는 것도 공 선생한테 들었고.”
역시 조현민의 성격대로였다.
태수는 그럴 줄 알았단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중심정맥관 효과가 좋아서 살이 빨리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후유증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크게 발생할 거 같지는 않고.”
“그건 안심하기 이르죠.”
“그게 문제지.”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아무래도 밝던 분위기가 조금은 진중해졌다.
그렇다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닌지라 암울한 대화가 이어지진 않았다.
이후 여성현과 이기준도 도착했다.
다들 고유찬에게 다녀왔는지 그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나눈 후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후의 일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몇 번의 토의 후 곧 회의에 대한 결론이 났다.
먼저 여성현이 말했다.
“수술 경과는 3일이면 확실히 결론이 나니까 그때까지만 좀 더 고생하자고.”
“그러고 나서 각자 의과로 돌아가는 걸로 하고. 지금까지 경과만 봐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으니까.”
조현민이 이어서 말한 후 태수가 말을 받았다.
“그 후에 일반 병실로 올라가면 저와 이선정 간호사가 전담하겠습니다.”
“그게 좋겠지.”
그때였다.
“아아, 나도 한마디 해도 되나?”
다가오며 묻는 건 다름 아닌 공우혁이었다.
여성현이 공우혁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똑같이 보건의 3년 차였지만 한 살 더 많다는 이유로 항상 존대했다.
“중환자실에 계셔야 할 분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다들 모였으니까 작당을 할 거 같아서.”
“정확하시네요. 그보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여성현이 묻자 공우혁이 대답했다.
“유찬이 말이야,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주일 후에 일반 병실로 올려 보낼 거 같아.”
“그렇게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나요?”
“불안한 마음으로 일반 병실로 올리면 우리가 떠넘기는 꼴이잖아. 일주일 동안 여유롭게 지켜보면서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보내고 싶어.”
공우혁의 말에 태수가 나지막이 물었다.
“선배 생각은 그래도, 다른 애들도 계속 수술할 텐데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일정이 틀어지는 거 아닙니까?”
“아침에 다른 의과에도 이야기했지만 아이들 수술에 우선순위가 어디 있어. 더 아픈 녀석 먼저 치료해 주는 거잖아.”
“그건 그렇죠.”
“그 기준은 우리 내과 계열에서 판단할 거니까 괜히 얼굴 붉히지 말자고.”
공우혁이 찡긋거리며 말하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내과에서 확실하게 봐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그럼 전 시간이 많이 남는데요.”
“좀 쉬어.”
“네?”
“미국 다녀온 후로 지금까지 마음 졸이며 쉬지도 못했잖아. 슬슬 여기저기 참견도 좀 하면서 쉬든지, 아니면 아예 며칠 집에서 푹 쉬든지.”
공우혁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태수가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 다들 절 안 좋게 보시겠죠. 차라리 수술 한 건 하는 게 마음 편하겠습니다.”
“그건 최 선생 생각이고. 미국에 다녀와서 집에도 못 갔잖아. 최소한 부모님께 인사는 드리고 와야지.”
“차차 하면 되죠.”
태수가 수더분하게 대답하자 공우혁이 발끈했다.
“효도가 무슨 적립식 펀드야? 모아 뒀다가 이자 부풀린다고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 같냐고. 미리미리 찾아뵙는 거, 그게 효도야.”
“…….”
“안 그래도 최 선생 없는 사이에 몇 명씩 집에 며칠 다녀오라고 했어. 그래서 다들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러셨습니까?”
전혀 몰랐던 이야기에 태수가 눈을 끔뻑거렸다.
옆에 있던 이선정 간호사가 슬쩍 한마디 보탰다.
“전 일주일 휴가 받아서 집에도 다녀오고 신속대응센터도 갔다 왔어요.”
“말씀 안 하셨잖습니까.”
“시시콜콜 다 이야기할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태수가 이해하자 공우혁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고집부리지 말고 이틀 후에 출발하라고. 그 전까지는 나도 조금 불안해서 보내 주긴 그러니까.”
“그 전엔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좌우간 그건 그렇게 알고, 난 할 말 마쳤으니까 가 볼게.”
공우혁이 돌아선 후였다. 어느새 일어난 여성현이 그 옆에 바짝 붙었다.
“같이 가요. 유찬이도 한 번 더 보고, 수술한 애들 상태도 좀 확인하게.”
“아이고, 나도 흉부외과 애들 한번 둘러보고 와야겠네. 근육은 풀렸는데 어떻게 눌린 데가 더 아파.”
조현민도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태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이기준에게 향했다.
“이 선생은 볼일 없어?”
“옥상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지?”
“그놈의 옥상 참 좋아해.”
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에 가자는 건 분명 할 말이 있단 뜻인 탓이다.
태수와 이기준은 따끈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옥상에 섰다.
태수가 바로 이기준에게 물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사고 쳤으니까 알아서 수습하라고.”
“사고라니?”
“인터뷰.”
이기준의 말에 태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네 입에서 사고라는 말이 나와?”
“그건 오늘 저녁 뉴스로 확인해 보고.”
“뉴스에 방영된다는 거야?”
“직접 확인해 보라고.”
이기준은 얄미운 표정으로 태수를 자극했다.
진짜 저럴 때는 한 대 콱 때려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다스린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인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건 그렇게 하고, 질문이 하나 있는데.”
“또 뭔데?”
태수가 툴툴거렸지만 이기준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어제 수술에서 중격하고 우심실을 봉합할 때, 그 정교한 손놀림이 낯선데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누구 거야?”
이기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놀랄 텐데.”
“이젠 네가 세계적 명의와 친하다는 데 더 이상 놀랄 생각은 없어. 그래서 그렇게 정밀한 봉합을 할 수 있는 의학 거장이 누구냐고.”
“정민수.”
“아, 정민…….”
말끝을 흐린 이기준의 눈살이 순간 와락 찌푸려졌다.
믿을 수 없단 눈초리였다.
그러나 태수는 흔들림없이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 그 정민수.”
“음.”
“제임스가 극찬했다면 좀 더 놀랄까?”
태수가 묻자 이기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놀랍지 않아.”
“그 이유는 내가 더 궁금한데.”
“네가 발전했다면 정 선생도 뭔가를 얻어 왔겠지. 그래, 그렇겠지.”
이기준은 말을 곱씹으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전펜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한참이나 내려다봤다.
홀짝홀짝 커피를 마실 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태수는 끝내 이기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
그 또한 묻지 않았다.
시시콜콜하게 모든 걸 물을 생각이 없던 탓이다.
결국 이기준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태수는 그런 이기준을 두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5층 복도를 걷던 태수는 간호사실로 방향을 정했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순간 박연주 중위가 먼저 그를 반겼다.
“소식 들었어요. 진짜 수고하셨어요.”
그 소리에 태수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수고하셨다고요.”
“아니, 지금 말투가……. 군대에서 그런 말투 쓰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질문하던 태수가 눈을 끔뻑였다. 자신의 말투가 외려 군인같이 느껴진 탓이다.
그때 박연주 중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
“웃을 일이 아니고요. 군대에서 그런 말투 쓰면 문책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병원장님의 특별 지시 사항이라서 괜찮아요.”
박연주 중위의 말에 태수가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신임 병원장님의 특별 지시라니요?”
“가뜩이나 긴장한 아이들이 이랬습니까, 저랬습니까 하는 소리를 들으면 더 긴장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요?”
“병원 내에서는 편안하게 말하라고 하셨어요. 대신에 병원 외의 장소에서는 군기 확립을 위해서 원래 말투를 써야 하지만요.”
박연주 중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태수가 나지막이 물었다.
“신임 병원장님이 혹시 여자분이십니까?”
“아니요. 남자분이신데요.”
“출신은요?”
태수가 계속 묻자 박연주 중위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