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06
00909 909화
아직은 예상이다.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태수는 부정했다.
통상적인 루푸스 병세 진행속도를 볼 때 윤사라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도 한참 놓쳤다. 그건 치료나 수술이나 굉장히 힘들단 의미였다.
내과적인 치료로 가능한 환자가.
이 지경이다.
“빌어먹을.”
태수가 인상을 구겼으나 속단하진 않았다.
내일 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그때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반대로 정신은 또렷했다.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었다.
불안과 초조.
태수는 그 사이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밤사이 윤사라는 별문제 없었다.
잠을 잘 자서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진통제 덕분인지 식사의 양도 조금은 늘었다.
그런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한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와 교대했다.
같은 여자였기에 계속 같이 있으면서 병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왔기에 태수는 병실이 아닌 소회의실로 들어섰다.
소회의실 안에는 이미 공우혁과 조현민, 성재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재경이 태수를 보자마자 물었다.
“최 선생,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없었습니다만.”
“그런데 왜 얼굴이 한숨도 못 잔 것처럼 거무튀튀해?”
“조금 신경 써서 그런가 봅니다.”
태수가 수더분하게 대답했지만 성재경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환자는 잠도 잘 잤고, 아침에 컨디션도 좋아서 밥도 많이 먹었다며.”
“어떻게 하루 만에 그럴 수 있겠어. 최 선생이 뒤에서 계속 신경 쓰니까 환자도 기운이 나는 거 아니겠냐고.”
공우혁이 대신 대답하자 성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요. 그래도 너무 못 잔 얼굴인데요. 진짜 괜찮아?”
“문제없습니다. 그보다 검사 결과 나왔다면서요.”
“우리도 아직 확인 전이야. 담당 의사랑 같이 확인하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 아니겠냐고.”
성재경이 말하자 조현민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제 각종 검사 진행할 때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먼저 확인하면 진짜 실례지.”
“그런 게 어디 있습니다.”
“우리는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일단 앉아. 확인해야지.”
조현민이 자리를 권하자 태수도 바로 앉았다.
화면이 작은 노트북에 머리를 맞댈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현민이 소회의실 한쪽 벽에 미리 준비된 빔 프로젝터를 가동시켰다.
밝은 빛이 여러 가지 색을 조합해 벽 하나를 커다란 모니터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을 통해 검사 결과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처음 화면은 엑스레이였다.
보름 전에 촬영한 화면과 어제 촬영한 화면을 비교할 수 있게 나란히 비추게 했다.
두 화면을 비교하던 보건의들이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음.”
“아.”
“흐음.”
모두가 놀란 건 보름 사이에 상당히 병이 많이 진행된 탓이다.
엑스레이로 보이는 내부 장기는 거의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그 모든 부분이 염증이란 뜻이었다.
조현민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무리 처음 검사하고 시간이 좀 지났다지만 저럴 수도 있는 거야?”
“확실히 좀 이상하기는 한 거 같아.”
성재경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때 공우혁이 조현민에게 말했다.
“조 선생, 다음 화면.”
“바로 바꿉니다.”
팟.
이번에는 CT, MRI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 외에 내시경으로 촬영한 사진들이 아래쪽에 배치되었다.
역시 같았다.
복부 장기의 대부분에 염증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
“…….”
누구 하나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화면만 바라봤다.
태수는?
화면을 향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병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던 탓이다.
잠을 못 잔 후유증까지 겹쳤는지 눈앞이 뿌옇게 변해 갔다.
절레절레.
태수는 고개를 힘껏 털어 냈다. 그러자 혼란스러운 마음과 흔들린 눈빛이 조금은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사이 조현민이 나머지 이야기를 했다.
“혈전이 좀 많다고 하네. 그리고 요단백량이 상당히 많이 나왔는데, 조심스럽게 chronic pyelonephritis(만성 신우신염)을 의심해 본다고 적혀 있어.”
“…….”
“그리고 식욕 부진이나 구토, 설사 증상도 있는 걸로 나오고…….”
“혹시 간 비대증 진단은 나오지 않았습니까?”
태수의 물음이었다. 예상된 병이 맞는다면 간 비대증 증상이 무조건 추가되어야 할 터였다.
그것만이라도 피하고 싶었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노트북을 몇 번 더 조작한 조현민이 태수를 향해 대답했다.
“그러네. 화면으로 보면 알겠지만 간 비대증뿐만 아니라 간염, 간효소치도 상당히 상승한 걸로 나오는데.”
“음.”
태수가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 순간 벽에 비친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성재경이 태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수의 표정이 너무도 좋지 않자 성재경이 물었다.
“최 선생, 혹시 뭐 짐작 가는 병이라도 있어?”
“어젯밤에 사라가 저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얼굴에 나비 모양의 홍반, 피부에 광과민성 염증이 반복되고, 코에 점막이 발견되었고, 겨울에 특히 아픔을 많이 느낀답니다. 관절도 아프다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렇게 염증이 많은데 얼굴과 피부도 안 좋다니. 걔는 무슨 종합병원이야?”
성재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공우혁의 눈빛이 순간 돌변했다.
“복부 염증, 혈전, 간 비대증, 나비 모양의 홍반, 광과민성, 점막, 관절염……. 잠깐만.”
태수의 말을 곱씹던 공우혁이 노트북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조현민을 밀어내듯이 자리를 차지한 공우혁은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탈칵탈칵.
공우혁이 뭘 살피는지 화면을 비추고 있는 벽을 통해서 바로 확인이 됐다. 그러나 너무도 빨리 움직이는 통에 오히려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우혁은 개의치 않고 확인을 이어 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탁.
공우혁이 기운 빠진 얼굴로 마우스를 놓았다. 그러던 그가 문득 태수를 바라보며 빠르게 물었다.
“최 선생, 아니지?”
“…….”
“아니잖아. 진짜 이건 아니잖아. 그렇지?”
공우혁이 재차 물었지만 태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제, 그리고 방금 전에도 태수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이 병만은 아닐 거다.
환자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증상들마저도 부정했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까지 나온 이상 태수는 더 이상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태수와 공우혁의 모습이 갑갑했는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성재경이 나섰다.
“그래서 병명을 알아냈다는 거야, 뭐야?”
“…….”
태수와 공우혁은 나란히 침묵했다.
이럴 때 침묵은 그 어떤 대답보다 확실한 긍정의 표시였다.
그걸 직감한 성재경이 더욱 갑갑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병인데 두 사람이 이러는 겁니까?”
“…….”
“이 사람들아, 같이 알아야 대책을 세울 거 아니냐고!”
성재경이 버럭 화를 냈다.
평소 인상도 좋고 두루두루 아우르는 포용력도 보였다.
그러나 외과 질환이 빤히 눈에 보이는 환자인데 아무것도 짐작 가는 게 없으니 스스로 갑갑한 모양이었다.
조현민도 궁금했는지 태수와 공우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감정도 떠올랐다.
이번에는 흉부외과가 수술에 참여하지 않게 된 걸 안도했다. 그만큼 고유찬의 수술이 힘겨웠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 주는 안도감이기도 했다.
조현민이 궁금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내보이던 중이다. 공우혁은 차마 병명을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러게……. 그러게 진작 내 말대로 좀 하라니까.”
공우혁은 탄식했다.
그때 태수의 고집을 확실히 꺾어 버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자신이 이 순간 짜증이 났다.
그사이 태수는 요동치는 마음부터 가라앉혔다.
이미 병은 발병했고, 그 사실을 이렇게 눈으로 확인했다.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빨리 알리고, 그에 합당한 치료를 시작해야 할 터였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태수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들어 보셨을 겁니다. 루푸스, 정확하게는 systemic lupus erythematosus
(전신홍반성루푸스)라고 하죠.”
“루푸…… 스?”
“…….”
태수가 침묵하자 성재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알기로 루푸스로 이렇게까지 염증이 심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
이어지는 태수의 침묵이 성재경을 외려 당황하게 했다.
“지, 진짜라고?”
“산정특례 진단 기준의 11가지 증상 중 대부분이 적용된 케이스입니다.”
“아무리 장기에 염증이……. 아니지. 내가 아는 루푸스는 80퍼센트 이상 생존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씀하셨듯이 대부분의 경우, 아니 이 병을 앓고 있는 대다수의 환자들이 큰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푸스는 아니지. 병원에 한 번이라도 갔으면……. 설마?”
흥분하던 성재경이 스스로 하는 말에 오류를 발견했는지 멈칫했다.
태수는 그 예상이 맞는다는 듯 순순히 동의했다.
“그게 문제였겠죠.”
“병원에…… 그러니까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아서 단 2년 사이에 이렇게 악화되었다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는데. 말이 안 되잖아.”
“잠재되어 있던 루푸스가 여성호르몬이 활발해진 청소년기를 기준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거 같습니다.”
태수가 이치적으로 설명했지만 성재경은 여전히 부정했다.
“환자 나이가 16살이라며. 요즘 청소년기가 14살부터……. 2년이라면……. 아!”
“맞습니다. 2년 전인 14세부터 본격적인 2차 성징이 시작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최 선생 목소리가 왜 이렇게 태연해?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성재경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공우혁과 조현민의 시선도 태수에게로 향했다.
모두가 바라보았지만 태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젯밤에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왜 연락 안 했어? 검사 결과야 나중에 확인해도 되는 거고, 일단 모여서 우리끼리 회의라도 해야 순서 아닌가?”
“저도 아니길 바랐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요.”
“…….”
성재경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우혁과 조현민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길 바랐다.
더 이상 들을 말도 없었다.
이 순간 이 병에 대해 가장 압박을 느낄 사람은 역시나 태수 본인이었다. 루푸스가 아니길 희망하는 태수의 마음과 자신들을 비교할 순 없을 터였다.
소회의실이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루푸스.
만성 염증성 자기면역질환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면역 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병이다.
면역 체계가 닿는 모든 곳.
즉, 몸 어느 곳 하나 안전하지 않았다.
윤사라의 경우는 심장과 폐에서 아직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복부에 모든 염증이 쏠리듯이 몰려 있었다.
발병 부위가 워낙 불특정한 루푸스였기에 이런 경우가 특별하진 않았다.
다만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를 받았다면 이곳에 올 일이 없었다.
그 시기를 놓치고, 병조차 파악하지 못해 이런 상황까지 온 터였다.
주로 내과에서 다루는 병이었다.
그러나 지금 윤사라의 상태는 내과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벅찼다.
그걸 생각했는지 공우혁이 대뜸 버럭 소리쳤다.
“우리한테 서류 보내는 새끼들은 어떻게 루푸스도 몰라!”
“몰랐을 겁니다.”
“뭐?”
“간단한 검사로는 나오지 않는 병입니다. 서류만으로 본다면 원인은 불명인데 수술이 시급한 환자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태수는 서류를 분류해 준 기관에 화풀이하지 않았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난치병을 알아보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고유찬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다.
팔로사징증은 엑스레이 한 장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병이다.
반면, 루푸스는 내과에서 주로 다루고, 외과 수술은 극히 소수였기에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제임스의 임상 경험에도 간략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태수도 그걸 확인하지 않았다면 불같이 화를 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낸다고 변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태수가 너무나 침착한 건 그런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