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18
00921 921화
수술실.
생과 사가 갈리는 공간이다.
그 안으로 윤사라가 들어갔고 자신도 왔다.
이제 삶이란 거대한 희망의 끈을 잡게 도와줘야 한다.
확률?
개나 주라 그래.
태수가 눈빛을 번뜩였다.
태수가 메스로 피부를 가르자 얇은 복막이 외부의 침입을 떡하니 가로막았다.
스윽.
태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복막을 찢었다.
주르륵.
순식간에 먼저 조치해 놓은 카테터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복수가 흘러내렸다.
수술 도구를 든 성재경과 최소현 중위의 손이 동시에 다가왔다.
콰륵콰륵.
그리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최 선생, 잠깐만 그대로 있어. 최 중위.”
“당깁니다.”
성재경이 썩션으로 복수를 흡입하자 최소현 중위는 리트렉터로 복막과 환부를 더욱 넓게 벌렸다.
그 작업은 정말 찰나지간에 이뤄졌다.
확실히 두 사람의 호흡은 좋아졌다. 그동안 수도 없이 토의한 과정이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란 생생한 증거였다.
그렇게 잠깐의 기다림이 끝난 후였다.
‘이건.’
태수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배 속이 온통 하얀 염증으로 가득했다. 몇 번이나 검사했던 영상 속 상황보다 훨씬 심각했다.
도대체 수술이 가능한 걸까.
게다가 간경화까지.
아찔했다.
그때 성재경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 선생, 덮자.”
“…….”
“이건 덮어야 해. 덮어야 한다고.”
차분하다 못해 숙연한 성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여성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려워.”
“…….”
“최 선생, 내 말 들려? 수술은 시작할 수 있어도 끝을 장담할 수 없다고.”
여성현 또한 성재경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도 태수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태수도 두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선 한가지 생각뿐이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로지 그 마음 하나로 윤사라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태수의 침묵이 길어지자 성재경이 다시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 알잖아. 일단 덮자고. 이 상황을 알리면 누구도 수술 중단에 대해 말하지 못할 거야.”
“…….”
“최 선생, 내 말 안 들려?”
성재경의 목소리가 갑갑함으로 물들어 갔다. 여성현을 포함한 다른 수술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수술을 중단하면?
그나마 변명거리가 있다.
그러나 일단 수술에 들어가서 실패한다면?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자리에서 환자인 윤사라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더욱 수술팀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결단을 빠르게 내려 줘야 할 태수가 가만히 있는 모습이 더욱 초조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두가 걱정하는 사이, 태수는 고개를 들어 성재경에게 물었다.
“덮으면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까요?”
“이 정도라면 기껏해야…… 이삼 일 정도.”
“마취에서 깨어날 확률은요?”
“…….”
성재경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성재경의 침묵이 길게 이어지자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이대로 깨어난다면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렇…… 겠지.”
성재경의 머릿속에 끔찍한 영상이 스쳤는지 가까스로 대답했다.
태수의 시선은 어느새 여성현에게로 향해 있었다.
여성현은?
이미 그 시선을 피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태수는 다시 시선을 돌려 마취로 잠든 윤사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순간 바다를 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오버랩됐다.
-꼭 여기 다시 와 보고 싶어요.
절망에서 발악하다 간신히 삶을 희망하게 된 아이다.
그 아이를 수술하는 일이다.
태수도 솔직한 심정은 덮고 싶었다.
그냥 덮고 모르핀으로 버티게 하며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남아 있는 희미한 가능성마저도 날려 버리게 된다.
-제가 너무 안 좋아진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꼭 선생님이 수술해 주세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몰래 태수에게만 들려준 이야기다.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단 걸 알고 고심고심해서 내준 결론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상 망설일 순 없었다.
한 번만 더 그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자 복잡한 머릿속이 오히려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태수가 손을 옆으로 내밀며 나지막이 말했다.
“메젠바움, 모스키토 클램프.”
수술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이선정 간호사는?
준비하고 있었단 듯이 바로 태수에게 수술 도구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태수가 양손에 쥐고 환부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잠깐.”
“…….”
수술 도구가 환부에 닿기 직전, 성재경의 부름에 태수는 그대로 멈췄다.
태수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성재경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했다는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어.”
“…….”
“만약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단순한 구설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성재경이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는지 태수를 진심으로 설득했다.
어떤 의사라도 윤사라의 상태라면 수술이 달갑지 않을 터였다.
그건 태수 또한 마찬가지다.
확률?
그동안 계산한 게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더 위험하면 훨씬 더 위험했지, 결코 좋은 결과만 기대하며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아예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걸 믿었다.
마음을 정리한 태수는 억지로나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 명예가 환자의 생명보다 소중하진 않습니다.”
“…….”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태수는 양손의 수술 도구를 환부에 댔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태수의 차가운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성재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자식.’
왠지 모르게 통쾌하다.
왜?
이유는 몰라도 가슴이 시원했다.
집도의가 이미 수술을 시작한 상황이다.
돕지 않을 거면 나가야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수술을 시작한 태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수술에 들어갔다.
아직 복수를 완전히 걷어 내지 못했지만 성재경이 태수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계속 걷어 낼 테니까 진행해.”
“알겠습니다. 이 간호사님.”
태수가 부르자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수술 도구를 들었다.
“준비됐어요.”
“갑시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두 사람의 호흡?
척하면 척이었다.
초곡리에서 간단한 수술을 함께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큰 개복수술은 할 수 없었던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어느 수술에서나 소중하게 응용되었다.
곧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갈비뼈 속에 숨은 간을 확보했다.
그사이 성재경이 말했다.
“복수는 거의 걷어 낸 거 같아.”
“간 확보도 끝났습니다.”
“그럼 어디 상태 좀 보자고.”
성재경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태수도 그와 같이 간경화가 진행 중인 간을 확인했다.
보통 사람의 간은 간 막에 둘러싸여 있고 광택이 있는 적갈색을 띠고 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윤사라의 간은 짙은 갈색 빛을 띠고 있고, 표면의 대부분이 울퉁불퉁했다.
성재경의 눈빛이 여러 느낌을 전했다.
“이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부분 간경화는 간 전체가 말썽이잖아. 그런데 사라 같은 경우는 일부 간에만 병변이 발생한 거니까.”
“상대적으로 좋을 뿐입니다.”
태수의 말에 성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데 이거 도대체 얼마나 떼어 내야 하는 거야?”
“그거부터 다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초음파가…… 없는데. 가져올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거 같고.”
성재경은 애써 차분하게 말했지만 빨리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 환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초음파로 한 번 더 확인한다. 그러나 급하게 들어온 수술이라 그런 검사 장비까지 구비되어 있진 않았다.
성재경의 말대로 이제 와서 초음파 기계를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윤사라의 상태를 보아하니 그 시간도 줄여야 할 상황인 탓이다.
태수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촉진하며 다양한 감각을 익혔다.
그 감각이 지금 이 순간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했다.
태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술 장갑을 낀 손이었지만 손끝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첫 느낌은?
보통 건강한 사람의 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화된 상태였다.
그건 간의 어느 부위라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급성으로 경화가 진행된 윤사라의 간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었다.
태수는 지독하리만큼 냉정을 유지했다.
최소한이다.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살아가는 데 치명적인 지장은 절대 안 될 말이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인 현실은 절제가 불가피하단 점이다.
잘라 내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태수는 널찍한 간을 꼼꼼하게 손끝 감각으로 살피며 그 부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여성현의 목소리가 신중하게 울렸다.
“알부민부터 준비해 주시고, 아직 혈압 변화는 크지 않으니까 수혈량은 유지.”
“알겠습니다.”
“수혈팩은 얼마나 있습니까?”
“현재까지 15팩 정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박시은 중위가 보고하자 여성현의 얼굴에 고뇌가 가득 들어찼다.
이 정도 수혈팩이면 될까?
여러 가지 상념으로 머릿속에 가득했다.
집도의와 어시스던트가 수술하는 데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바로 마취의가 할 일이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지 않게 미리미리 필요한 걸 준비해야 했다.
여성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머리를 굴렸다.
간을 수술하는 중이다.
그것도 간경화.
수술 중 출혈은 무조건 일어난다. 현재로선 얼마나 많은 출혈이 일어날지 비슷하게나마 예측해야 했다.
현재 준비된 수혈팩도 상당히 많은 양이다. 그런데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태수가 간에 메스를 대지 않은 상태였다. 추가로 준비할 여유 시간은 지금뿐이다.
여성현이 자리를 벗어나 수술실 벽에 걸린 인터폰으로 향했다.
“저 여성현입니다. 수혈팩 좀 부탁합시다. 얼마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요. 그리고…….”
여성현은 모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겠다는 듯이 여러 약들을 추가로 요청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단 의지가 돋보였다.
한편, 참관실에는 어느새 많은 보건의들이 들어와서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침 컨퍼런스가 끝나고 당장 급한 일이 없는 보건의들이 모두 들어온 모습이다. 꽤나 넓다고 생각되는 참관실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집도의인 태수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그들이 초조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급하다더니 뭐 하는 거지?”
“간 상태를 손으로 확인하는 거 같은데.”
“하긴 초음파를 준비할 시간도 없겠지. 그런데 손끝으로 확인이 되나?”
“어느 정도는. 그런데 정확하긴 힘들 거야.”
보건의들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자그맣게 대화를 나눴다.
그때 참관실 문이 열리더니 조현민이 불쑥 들어왔다.
맨 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공우혁에게 다가온 조현민이 나지막이 말했다.
“기자들이 수술 소식을 접한 모양입니다.”
“벌써?”
“그 사람들 정보에 워낙 빠르잖습니까.”
“최대한 막아. 아니, 잠깐 나갔다가 올게.”
공우혁이 직접 나섰다.
이런 일은 남에게 미루는 것보다 스스로 움직이는 게 마음이 놓이는 탓이다.
그때였다. 공우혁의 뒤를 따라 유병태도 조용히 참관실을 나갔다.
반면, 수술실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입을 다문 채 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는 아직 간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태연히 간을 살펴보는 듯했다.
다급하게 수술실에 들어온 것과 너무도 비교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은 모르지 않았다.
다들 말없이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침묵이 이어지던 시간이 지나자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간을 확인한 태수가 손을 뗐다. 오래 기다렸단 듯이 성재경이 반사적으로 빠르게 물었다.
“검사 결과랑 얼마나 달라?”
“좀 많이 다릅니다.”
“뭐?”
성재경의 눈이 흔들렸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