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19
00922 922화
태수는 차분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세 군데를 절제해야 하는 건 맞지만, 범위가 저희 예상보다 많이 넓어졌습니다.”
“고작 며칠 사이인데…… 이건 너무하잖아.”
“…….”
태수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다그치던 성재경도 곧 입을 다물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태수가 며칠 동안 윤사라의 체력을 끌어올리며 지켜보자고 했던 건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만큼 체력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면 그나마 오늘 수술실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을 터였다.
다만 윤사라의 상태가 너무 급변한 게 문제다.
다들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탓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재경은 다시 마음을 다 잡은 듯 태수에게 물었다.
“그럼 수술 부위가 어떻게 되는 건데?”
“1차적으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입니다.”
태수가 손끝으로 가리키며 대략적으로 알려 줬다. 시선으로 따라간 성재경의 얼굴이 곧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정도면 상당한데. 출혈도 무시하지 못할 거 같고.”
“여러 번에 나눠서 절제해야 할 겁니다.”
“잠깐만……. 됐어.”
성재경도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야 태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젠 더 이상 살펴보거나 상의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성패는 하늘에 맡기고 진행할 뿐이다.
태수도 알고 있기에 메스를 들었다.
간에 메스를 대는 순간부터 이 수술이 진정 시작될 터였다.
그때였다.
“어어?”
어느새 다시 마취의 자리로 돌아온 여성현의 복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였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다급하게 변했다.
그 순간 태수의 귀가 꿈틀거리더니 여성현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혈압이 한차례 뚝 떨어졌어.”
“갑자기라니요?”
“나도 모르겠다니까. 출혈인 거 같은데 아직 간은 건드리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출혈이냐고.”
그 소리에 태수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옆에 서 있던 성재경도 예기치 못한 증상에 살짝 당황한 얼굴이다.
그때 박시은 중위의 목소리가 따갑게 들려왔다.
“피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윤사라의 코와 입을 덮은 인공호흡기 옆으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확인과 동시에 눈빛을 번뜩인 태수와 성재경이 차례로 외쳤다.
“정맥류 출혈!”
“그럼 식도나 위장?”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태수의 손이 재빨리 간에서 위장으로 옮겨졌다. 초기에 잡지 않으면 이 증상으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던 탓이다.
이 순간에는 간을 수술하는 일보다 정맥류 출혈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다.
태수가 아직 놀라고 있는 박시은 중위에게 빠르게 말했다.
“인공호흡기를 살펴봐 주세요.”
“잠시만요. 자, 잠시만요.”
박시은 중위는 더듬거리면서도 부산하게 손을 움직였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더욱 다급하게 변했다.
인공호흡기 사이로 흘러내리는 혈액의 양도 늘어났다. 이선정 간호사가 재빨리 인공호흡기를 살펴보고 있는 박시은 중위를 불렀다.
“박 중위, 어떻게 됐어요?”
“호흡은 문제없습니다. 식도 쪽에서 역류한 거 같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이선정 간호사는 태수를 바라봤다.
아무리 수술에 잔뼈가 굵은 간호사라도 의료 행위를 지시할 수 없던 탓이다. 태수도 알기에 빠르게 이선정 간호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말했다.
“호흡에 계속 신경 쓰고, 썩션으로 출혈을 빨아들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썩션이…….”
평소 약을 준비하기만 했던 박시은 중위였기에 어디로 손을 움직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최소현 중위가 얼른 들고 있던 썩션을 내밀었다.
“우선 이거 써.”
“감사합니다!”
“인사할 시간이 어디 있어?”
“죄송합니다.”
박시은 중위는 긴장했는지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최소현 중위에게 썩션을 건네받아 출혈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와 성재경은 위장을 확인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위정맥류 출혈은 거의 위장 내부에서 진행된다.
태수는 순간 고민해야 했다.
가장 확실하게 지혈할 수 있는 건 역시 위장을 가르고 내부를 조치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윤사라의 몸에 얼마나 많은 칼을 대야 할지 모른다. 그 부분만큼은 태수도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고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성재경이 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결정 내렸어?”
“내시경을 써야겠습니다.”
“그때까지…….”
“식도를 차단하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태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이선정 간호사의 손이 불쑥 태수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 손에는 지혈 클램프가 들려 있었다.
이 순간 꼭 필요한 수술 도구다.
바로 받아 든 태수는 곧장 위장과 연결된 식도를 잡아 버렸다.
꽈악.
지혈 클램프는 강하게 맞물려 식도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출혈이 줄어들었습니다!”
박시은 중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수술실을 울렸다.
그러나 성재경은 태수의 행동에 의문을 보였다.
“차단한다고 지혈될 상황이 아닐 거 아니야.”
“내시경을 준비할 시간은 벌 수 있잖습니까.”
“미치겠네. 간도 빨리 수술해야 하는데 위장까지 말썽이야.”
성재경은 다급한 마음에 손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런 몸짓이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태수가 몸을 움직이려는 사이 성재경이 먼저 빠르게 인터폰으로 달려갔다.
“여기 내시경, 빨리!”
성재경의 외침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수술실을 울렸다.
식도정맥류를 차단했지만 수술은 당장 진행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시경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태수의 시선이 전자시계로 향했다.
이제 수술 시작한 지 1시간 남짓 흘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간은 수술을 시작조차 못했다.
지금 간까지 수술하기 시작한다면 출혈은 걷잡을 수 없을 터였다. 이대로 잠시 손을 놓고 있는 게 상책일 정도다.
그런 상황에 태수는 조금씩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시경이 준비될 때까지 최소 20분은 소요될 터였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안달하게 했다.
조금만 빨리.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5분이나 지났을까?
그르릉.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시경 도착했습니다!”
“혈액하고 약도 왔어!”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
태수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내시경을 밀며 들어오는 유병태와 품 속 가득 수혈팩을 안은 공우혁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불과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태수는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유병태가 태수의 옆에 내시경 기계를 고정시키며 말했다.
“자식. 이 형님은 다 알지.”
“…….”
태수가 가만히 바라보자 유병태가 멈칫했다.
“아니, 사실은 뭐 도울 게 없을까 하고 준비하는데 네가 내시경 가져오라고 했다는 소리가 들려서 복도에 있는 거 그냥 무작정 끌고 들어왔어.”
“최고다.”
“그, 그렇지. 내가 좀 멋지지?”
유병태는 진심 어린 태수의 칭찬에 순간 얼떨떨했다.
태수는 그런 유병태에게 말했다.
“멋지니까 빨리 전원 올려.”
“기다려. 얼른 올릴 테니까.”
유병태는 전원 코드를 들고 쏜살같이 콘센트로 향했다.
우웅.
곧 내시경 기계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원이 들어왔다고 해도 제대로 써먹으려면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사이 태수와 성재경은 내시경을 사용할 준비를 시작했다. 지켜보던 성재경이 태수에게 슬쩍 말했다.
“유 선생의 적극적인 성격이 이럴 때는 최고네.”
“앞뒤 안 가려야 외과의사 하죠.”
“맞는 말이야. 이쪽은 준비 완료!”
“저도 됐습니다.”
태수가 말을 마친 순간이다.
마침 내시경 기계도 완전히 가동 상태에 들어갔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는 입과 코를 덮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기도에 삽관된 튜브에 엠브백을 연결했다.
식도로 내시경을 넣어야 하는데 인공호흡기가 설치되어 있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 탓이다.
쉬익. 쉬익.
엠브벡을 일정하게 쥐며 호흡을 유지하면서 이선정 간호사가 낮게 소리쳤다.
“이쪽도 준비됐어요!”
“난 잠깐만……. 좋아, 됐어!”
여성현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지금 그가 한 일은 호흡기 마취의 강도가 옅어지기 전에 전신마취제를 IV에 추가로 투여한 것이다.
전이라면 태수가 일일이 이야기해 줬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고유찬에 이어 윤사라까지.
그동안 수술 준비를 위해 같이 지새운 날이 손가락을 다 써도 모자랐다.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는 사이 이젠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태수는 감탄할 시간조차 없었다.
내시경을 쥔 태수가 성재경에게 말했다.
“내시경 삽관 시작합니다.”
“이쪽도 준비됐어.”
“갑니다.”
태수는 모니터를 보며 내시경을 식도 안으로 계속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쑥쑥 들어가던 내시경이 일순간 주춤했다.
걸리는 부분?
짐작이 간다.
조금 전에 지혈 클램프로 차단해 놓은 곳이다.
태수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성재경이 지혈 클램프를 풀었다. 동시에 모니터에 피가 몰려오는 모습이 비쳤다.
“썩션 준비!”
“준비됐습니다!”
박시은 중위가 얼른 옆으로 다가와 썩션을 입안에 준비시켰다. 그 순간 식도를 타고 올라온 피가 입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콰륵콰륵.
쉼 없이 올라오는 출혈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태수의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은 고여 있던 피가 빠져나가는 중이라 모니터에는 빨간색만이 가득했다.
피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면 내부 상황이 보일 터였다. 그때를 기다리며 태수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곧 그때가 왔다.
모니터를 가득 채운 빨간 혈액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시경 끝에 달린 플래시로 인해 내부 상황이 점점 드러났다.
내시경 플래시 옆에는 가느다란 보비가 달려 있었다.
‘그래.’
이제 보인다.
태수는 그 보비를 이용해 출혈점을 모두 지지기 시작했다. 모니터 내부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태수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계속 출혈점을 찾고 지지고를 반복했다.
강제로 지혈시킨 범위가 늘어가자 출혈이 점점 줄어들었다.
얼마나 지졌을까. 더 이상 출혈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썩션으로 빨려 들어오는 출혈의 양은 이미 현저하게 줄어든 상태였다.
갑작스런 병변으로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윤사라의 체력상 1분이라도 수술 시간을 단축해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있다.
그걸 떠올린 태수가 입술을 살짝 물었다.
어차피 이 정도 난관은 각오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올지 모르지만 결코 먼저 포기할 생각은 없다. 환자가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한 절대 불변인 신념이다.
이젠 간 수술로 넘어가야 했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좀 더 빠르게 진행해야 할 건 분명했다.
여기 뒷정리는?
태수는 어느새 수술 준비를 마친 유병태를 불렀다.
“유 선생, 정리 좀.”
“오케이. 그렇게 부려 먹어 달라고!”
유병태는 전혀 불만이 없단 얼굴과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냉큼 다가왔다.
유병태에게 내시경을 인계한 태수는 다시 복부로 돌아왔다.
한숨 돌릴 틈?
지금은 스스로 어떻게 숨을 쉬는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반대편을 바라보자 묵묵히 서 있는 성재경의 눈빛에 힘이 가득했다. 간 수술이 빨리 진행되길 기다렸단 눈빛이다.
태수는 성재경과 눈빛을 마주쳤다.
끄덕.
끄덕.
서로 가볍게 고갯짓이 오갔다.
그와 동시였다. 태수가 먼저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메스.”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이선정 간호사가 반사적으로 메스를 내밀었다.
“썩션, 보비.”
성재경도 질세라 수술 도구를 빠르게 불렀다.
탁, 탁.
각각 수술 도구를 쥔 후였다.
태수는 거침없이 메스를 움직여 경화가 많이 진행된 부위를 가볍게 그었다.
날카로운 메스에 상처를 입은 간은 좌우로 살짝 벌어졌다.
그 틈으로 검붉은 피가 몽글몽글 솟아났다.
“이놈의 피.”
성재경이 얼른 썩션을 이용해 피를 흡입했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든 보비로 일차적인 지혈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