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26
00929 929화
소회의실은 조용했다. 그 안에서 누군가 자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피곤했다. 피곤해서 코조차 골지 못할 정도로 태수와 유병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2시간 남짓 흘렀을 무렵이었다.
벌컥!
“최 선생!”
난데없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그 소리에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던 태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느새 형광등도 켜져 있었다.
태수가 옆을 바라보자 조현민의 다급한 표정이 보였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 머리가 멍했다. 그러나 몸은 반사적으로 튕겨져 간이침대에서 벗어났다.
비틀.
일어나기는 했는데 아직 균형 감각은 덜 깨어났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그런 태수를 향해 조현민이 빠르게 다가와 팔부터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 수술실에 사라가…….”
그 이름에 멍한 정신을 고개를 흔들며 일깨우던 태수가 멈칫했다.
“누, 누구요?”
“사라 말이야. 중환자실에서 갑자기 cardiac crisis(심장 발작)을 일으켜서 이 선생이 수술실로 밀고 들어갔다고.”
조현민의 말이 마치 확인 사살 같았다.
그러나 태수는 지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 사라가 맞습니까? 분명히 수술이…….”
“최 선생!”
“…….”
태수는 귀를 막아 버리고 싶었다.
분명히 수술은 잘 끝났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 발작이라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눈앞도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젠장.’
혹시나 했던 심장이었다.
제발 무사해 달라고 바랐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다.
태수는 정신부터 바짝 차렸다.
지금 이렇게 우왕좌왕할 때가 아니다!
눈빛이 차갑게 돌아온 태수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움직이던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간이침대에 걸려 소회의실 바닥에 나자빠졌다.
우당탕!
무엇에 걸렸는지, 왜 걸렸는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조현민의 걱정 가득한 외침이 들렸다.
“최 선생, 괜찮아?”
“…….”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태수는 조현민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다시 번개같이 소회의실을 뛰어나갔다.
“어어? 같이 가!”
조현민도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태수와 조현민이 나간 직후였다.
태수가 걸려 넘어졌던 간이침대가 풀썩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든 건 그 간이침대에 잠들어 있던 유병태였다.
두 눈이 잔뜩 풀려 멍한 표정이었다.
“뭐였지? 분명히 최 선생하고 조 선배가 사라 상태가 안 좋다고 이야기하는 꿈을 꾼 거 같은데, 개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병태는 태수가 누워 있던 간이침대를 바라봤다.
그런데 태수가 없었다.
그 순간 유병태의 풀린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꿈이 아니라면?
“빌어먹을!”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난 유병태는 번개같이 소회의실을 나갔다.
태수와 조현민은 부리나케 수술장으로 달려갔다.
그런 두 사람의 뒤에서 조금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태수 옆으로 누군가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선정 간호사였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
“…….”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두 눈에 초조함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조현민은 느닷없이 등장한 이선정 간호사의 모습에 살짝 놀란 눈치였다.
“헉헉. 집에 가신 줄 알았는데요.”
“지금 그게 헉헉, 중…… 요한가요?”
그 싸늘한 목소리에 조현민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
“응급상황이라 뛰…… 어나왔어요. 그보다 유 선생님은요?”
그때 조현민의 옆으로 유병태가 불쑥 나타났다.
“헉헉. 저 찾으셨…… 습니까?”
“어?”
조현민은 예기치 못한 유병태의 등장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유병태의 착 가라앉은 표정만 봐도 지금 상황을 명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 더 이상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태수, 이선정 간호사, 유병태, 조현민까지.
심각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수술장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수술장에 들어선 네 사람이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수술 대기실로 향하는 사이였다. 꽉 닫힌 수술실 중 한 수술실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맥박이 왜 이 모양이야!”
이 목소리는?
분명히 여성현의 목소리다!
수술실 문이 닫히지도 않았다면 방금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맥박?
그 소리에 네 사람의 귀가 동시에 쫑긋거렸다.
지금 수술복으로 갈아입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태수를 포함한 네 사람은 그대로 방향을 바꿔 수술실로 뛰어 들어갔다.
수술실 상황부터 살폈다.
이기준이 수술대에 올라탄 채로 윤사라의 심장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다급한 최소현 중위가 함께였다.
수술대 위쪽 각종 의료기계 앞에는 방금 도착한 듯 숨을 헐떡이는 여성현이 서 있었고, 그 옆에 박시은 중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우혁이 IV 쪽에 자리한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윤사라의 수술을 함께했던 의료진들이 거의 다시 모인 상태였다.
성재경 대신 이기준이 자리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건 누구 하나 수술복을 입고 있는 의료진이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분초를 다툰다는 의미였다.
사실 수술 부위를 모두 봉합한 윤사라였기에 감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수술복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단 걸 보여 주고 있는 현재 상황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모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수는 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수술대로 달려갔다.
나머지 세 사람은?
각자 위치를 찾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수술대 앞에 도착한 태수의 시선은 윤사라에게로 향했다.
인공호흡기가 연결되어 있는 입.
꽉 감은 눈.
피부색은 황달이 사라진 반면 약간 창백했다.
마지막으로 태수는 윤사라의 손으로 향했다.
사진은?
아직 꽉 쥐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윤사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 가는 중이다.
도와줘야 했다.
그게 태수의 일이었다.
할 일이 너무도 분명한 순간이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내 태수는 싸늘할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이기준에게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훅훅. 10분 전에 혈압과 맥박이 갑자기 요동친다는 소리를 듣고……. 열넷, 열다섯……. 지금 수술실로 옮겨 왔어……. 열여덟, 열아홉.”
이기준은 흉부 압박을 이어 가면서 대답했다.
태수의 시선이 바로 여성현에게로 향했다.
“여 선배.”
“기다려 봐. 나도 지금 도착해서 상황 파악하는 중이니까. 젠장. 이건 왜 이렇게 꼬여 있어! 어떤 자식이 이따위로 관리하는 거야!”
손에 쥔 얇은 카테터가 꼬여 있었다. 그걸 푸는 손길이 얼마나 다급한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태수의 시선이 바로 그 뒤에 있는 ECG(심전도 모니터)로 향했다.
심박수가 너무 높았다.
V-FIB(심실세동). 다시 말해 심장의 각 부분이 불규칙적으로 수축하고 있는 상태였다.
태수는 지체하지 않고 이기준에게 소리쳤다.
“교대!”
멈칫한 이기준이 태수를 내려다봤다.
강렬하다 못해 잡아먹을 듯한 태수의 눈빛이다.
그걸 본 순간 이기준은 두말없이 수술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와 동시였다.
휙!
태수의 몸이 바람같이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허리를 굽힌 채 양손을 윤사라의 심장에 대고 빠르게 압박했다.
“훅, 훅.”
한 번, 두 번, 세 번…….
규칙적이지만 빠른 압박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이선정 간호사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재빨리 움직였다.
그르릉!
수술실 한쪽에 세워져 있던 의료기계를 끌고 와 바로 작동시켰다.
“제세동기 가동합니다!”
우웅!
수술실에 낮고 진한 진동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개흉한 상태가 아니라 제세동기의 충격기도 넓은 걸로 준비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 태수가 압박을 이어 가며 말했다.
“바로 300줄.”
“300줄로 충전합니다.”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너무도 딱딱했다. 그런 반면, 윤사라를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도 구슬펐다.
같이 웃고 떠들던 시간.
여행 중 자신의 품에서 잠들었던 순간.
돌아온 후에는 남몰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눴다.
-수술 마친 후에 꼭 다시 바다 보러 가자.
그 대화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했다.
윤사라에게 지금 생명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걸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과정이다.
분명 더 빨리 회복하기 위한 과정일 터였다.
그렇기에 되돌릴 수 있다.
아직 심장은 뛰고 있다.
그 희망으로 이선정 간호사는 충격기를 든 채 태수 옆에 서 있었다.
삐빅!
충전된 소리.
동시에 태수도 허리를 폈다.
“서른!”
“충격…….”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충격기를 윤사라의 가슴에 대려는 순간이다.
탁.
이기준이 그 손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비켜요!”
“이리 내요. 최 선생, 샷?”
이기준이 충격기를 뺏고 묻자 태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샷.”
“샷!”
털썩!
윤사라는 강한 충격에 일시적으로 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그러나 한 번에 심장이 원상태로 돌아오진 않았다.
실망할 틈도 없었다.
태수는 다시 허리를 굽혀 심장 압박을 이어 가며 소리쳤다.
“여 선배, 아직 멀었습니까?”
“다 됐어!”
“cardiotonic(강심제), hypertensor(승압제)!”
“지금 투여해!”
여성현과 박시은 중위가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투약했다.
하지만 반응이 거의 없었다.
아니, 주사하자마자 반응이 오진 않을 터였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태수는 아직 희망을 놓지않고 흉부 압박을 계속했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가 이기준에게 바짝 다가왔다.
충혈된 두 눈으로 강하게 노려봤지만 이기준은 냉정하게 말했다.
“충전 부탁합니다.”
“이미 하고 있어요.”
“이건 제가 할 일입니다.”
“…….”
“의사와 간호사를 나누자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간호사님 감정으로는 상황만 더 악화됩니다. 냉정해야 환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이기준의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해도 흉부외과 전문의만큼 심장에 대해 잘 알고 있진 않았다.
응급조치도 흉부외과 전문의인 이기준이 더 잘할 터였다.
까득.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절로 이가 갈렸다.
좀 더 이기준을 노려보던 이선정 간호사는 뒤돌았다. 순간 이기준이 충격기를 내려다보며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이선정 간호사가 다시 이기준에게 몸을 돌렸다. 손에는 충격기가 전기를 골고루 전달할 수 있게 만들어진 특수 젤이 들려 있었다.
찌익.
젤을 충격기에 더하며 이선정 간호사가 말했다.
“하려면 제대로…… 하세요.”
“할 수 있는 한 합니다.”
“…….”
휙.
이선정 간호사는 찬바람을 날리며 몸을 돌렸다.
그때 조현민이 이기준에게 다가와 물었다.
“현재까지 상황은?”
“처음 응급 호출을 받고…….”
이기준은 중환자실에서 응급처치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수술실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 제세동기의 충전을 담당하고 있는 이선정 간호사의 눈빛에 작은 놀라움이 스쳤다.
분명 중환자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정신없이 일이 진행되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왜 이기준이 나서는 걸 태수가 만류하지 않았는지 이젠 알 것 같았다.
이기준에게 이야기를 들은 조현민이 유병태에게 말했다.
“체온이 떨어지고 있어. 일단 난 수술실 온도부터 올릴 테니까…….”
“전열 기구 준비하겠습니다.”
유병태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움직였다. 조현민도 뒤를 따라 빠르게 수술실 한쪽으로 이동했다.
넓지 않은 수술실에 거의 10명의 인원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특히 조현민과 유병태는 어쩌면 필요 이상의 인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조차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일을 찾아 스스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