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28
00931 931화
두 사람의 모습에 다들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였다.
“지랄!”
악에 받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병태였다.
이 상황에서도 태수는 노력하고 있다.
휘청거리면서도…….
그런 태수를 본 유병태는 콧잔등이 시큰하고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그런데 자신은 뭘 하고 있는 걸까.
놀 시간이 없다.
유병태도 얼른 아무 데나 손을 뻗어 주무르며 소리쳤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겁니까!”
이게 맞는지는 모른다.
그저 최소한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유병태의 모습을 보고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앞에 있는 팔다리를 힘차게 주물렀다.
심정지 후 3분 가까이 지났다.
골든타임은 5분.
아니, 심정지 전부터 계속 흉부 압박과 호흡을 유지시켰기에 조금 더 한계 시간이 늘어났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크게 차이가 나진 않을 터였다. 무심한 전자시계의 초침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수술실은 긴장감에 짓눌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손을 쉬고 있진 않았다.
흐르는 시간을 확인할 겨를도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마음으로 빌었다.
한 번만이라도.
제발.
제세동기의 강한 전류가 심장을 직격했다.
텅!
윤사라의 몸이 또 한 번 크게 들썩였다.
그때였다.
길게 울리던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일순간 변화했다.
띠릭.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그래프가 출렁거렸다.
“뛰, 뛴다! 다시 뛴다!”
여성현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모두가 환호했다.
“됐다!”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누구도 꿈쩍하지 않고 긴장을 놓지 않았다.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며 변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그런데.
여성현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어어? 이, 이거 왜 이래?”
“무슨 일…….”
유병태가 반사적으로 물으려 할 때였다.
삐이.
다시 ECG(심전도 모니터)에서 길고 긴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 순간 수술실에 자리한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시선을 돌린 그들은 ECG를 바라봤다.
심장이 다시 뛰었던 게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심전도 그래프는 일직선만 그리고 있었다.
아니다.
분명히 뛰었다.
허탈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급작스러운 변화에 누구 하나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눈빛이 격하게 흔들리던 유병태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뛰었잖아. 그렇잖아. 모, 모두 봤잖아.”
“…….”
“아, 이런 개 같은! 뛰었잖아. 심장이 뛰었다고!”
아무리 악을 써도 이미 멈춘 심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다른 의료진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이렇게 변칙적인 심정지는 현대 의학으론 손을 쓸 수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도 어려운데 윤사라의 경우는 많이 특별했다.
의료진 모두가 정말 억울했다.
출혈도 없고, 혈액도 충분했다.
약 또한 더 추가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투여된 상태였다.
그런데 말 그대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허탈하기만 할 뿐이었다.
태수라고 수술실을 가득 울린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태수는 봤다.
윤사라의 손에는 아직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그 의지가 있는 이상 태수는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점점 시간이 흐르는 걸 알고 있다.
생각 같아선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조차 들었다.
태수의 머릿속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이대로는 가망이 없는 걸까?
정말 없는 걸까?
태수는 이 순간에도 윤사라의 심장을 되돌릴 방법을 떠올렸다. 맹렬히 회전하는 태수의 머릿속은 온갖 기억들이 휘몰아쳤다.
그러던 중이었다. 태수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태수의 기억은 아니었다.
카프레네의 기억이다.
카프레네가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수술한 환자에 대한 일이었다. 어떤 수술 과정을 거쳤는지는 관심 없었다.
태수가 떠올린 건 단 하나.
불규칙적인 심정지에 대응한 카프레네의 응급처치였다. 카프레네도 절박한 순간에 가까스로 성공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오랜 임상경험이 준 마지막 발악같은 시도.
그리고 단 한 번의 케이스와 성공.
카프레네의 이 수술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않은 건 충분한 데이터가 준비되지 않았단 이야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성공률 100퍼센트.
태수도 지금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희망을 잃은 지금 그 한 번이 태수에게는 전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은 짧고 결정은 빨랐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휙!
번개같이 고개를 돌린 태수가 유병태를 바라봤다.
“유 선생!”
그 순간 수술실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유병태가 놀라 태수를 바라봤다.
“마, 말해.”
“defibrillator(제세동기) 준비해 줘.”
“…….”
“빨리.”
태수의 목소리가 일순간 싸늘해졌다.
그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짙고 강렬한 눈빛이었다.
복잡한 유병태의 눈빛이 급속도로 진지하게 변한 채 이기준을 불렀다.
“기다려. 이 선생!”
“그거 말고 저기 있는 거.”
태수는 흉부 압박을 이어 가며 턱짓했다. 유병태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또 다른 제세동기가 보였다.
제세동기 사용 중 혹시 모를 고장을 대비해 준비되어 있는 예비 의료기기였다.
유병태가 순간 주춤거렸다.
“여기 있는데 굳이…….”
“빨리!”
“……기다려.”
태수가 소리치자 유병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몸을 움직였다. 아직도 두 눈에는 의아한 빛이 가득했지만 무조건 따랐다. 뭔가 방법을 찾았단 태수의 눈빛에 봤기에 지체할 순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제세동기가 준비되는 사이 다른 의료진들은 태수를 힐끔거리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다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눈빛들이었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조현민과 이기준도 마찬가지였다. 제세동기를 2개나 준비시키는 경우를 본 적도 없었고, 들어 보지도 못한 탓이었다.
그때 흉부 압박을 이어 가던 태수가 이어서 오더를 내렸다.
“기존 제세동기도…… 훅훅, 충전해 주세요.”
“충전 중이에요.”
제세동기 쪽에서 이선정 간호사의 복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수가 무얼 하려는지 그녀도 감을 잡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태수가 오더한 일이라면 일단 따르고 볼 만큼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런 이선정 간호사에게서 시선을 돌린 태수는 기존 제세동기의 충격기를 들고 있는 이기준을 바라봤다.
이기준의 눈빛은?
이미 윤사라의 죽음을 받아들인 처연한 눈빛이었다.
태수가 이기준에게 물었다.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해?”
“…….”
“그냥은 안 보내. 아니 못 보내.”
“…….”
이 상황에 침묵은 포기였다.
태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카프레네의 경험으로 보면 정말 위험한 방법이다. 시도는 단 한 번뿐, 절대 두 번은 없었다.
신뢰가 없다면 태수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시도는 해 봐야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모험을 걸 가치는 충분했다.
물론 윤사라에게 심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아차하면 봉합한 수술부위가 충격으로 터질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나중 문제였기에 태수는 현실적으로 나갔다.
이기준은 이미 희망을 잃었다.
그렇다면?
태수가 재빨리 말했다.
“제세동기 이 간호사님에게 넘겨.”
“…….”
이기준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양손에 쥔 제세동기를 내려다보며 고민할 뿐이었다.
어느새 다가선 이선정 간호사가 우악스런 손길로 빼앗으며 말했다.
“따르지 않을 거면 빠져요.”
“…….”
이기준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복잡한 표정은 여전했다.
이선정 간호사는 이기준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지금은 태수가 원하는 대로 진행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최선이었다.
그사이 태수의 시선이 여성현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시선을 마주한 여성현은 이기준과 달랐다. 침착하고 진중한 눈빛으로 먼저 태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난 뭘 해야 하는데.”
“epinephrine(에피네프린).”
“10초만 줘.”
끄덕.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현과 박시은 중위가 바쁘게 움직였다.
시선을 돌린 태수가 공우혁을 바라본 순간이다.
공우혁의 표정은?
의견을 물을 것도 없었기에 태수는 바로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analeptic(각성제).”
“음, 알았어. 바로 준비할게.”
공우혁은 일체의 반문 없이 곧바로 돌아섰다. 태수가 뭘 하려는지 아직 정확하게는 몰랐다.
다만 각성제가 교감신경계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처 온몸이 일시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효과를 노리는 걸까.
확신할 순 없지만 약을 준비하는 손길이 부산했다.
참 이상했다.
수술실은 분명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부산하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차분해서 고요함마저 들었다.
잠깐 시간이 지나는 사이 태수가 부탁한 것들이 하나씩 준비되었다.
여성현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울렸다.
“에피네프린 준비됐어.”
이어서 공우혁.
“각성제도 준비했어.”
유병태도.
“제세동기도 작동 완료.”
마지막으로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도요.”
다들 태수의 오더만 떨어지면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그들 중 빈손으로 선 조현민을 바라봤다.
뭐라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해 봐.
이런 느낌이었다.
태수는 그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마지막 시도를 하는 이때에 태수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건 지금과 같은 흉부 압박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젠 지쳐서 제대로 압박도 되지 않았다.
반면, 조현민은 아직 체력이 남아 있었다.
태수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조 선배, 도와주실 겁니까?”
“왜 이제 불러. 내가 왜 여기서 뚫어지게 째려보고 있는데.”
“교대.”
“기다려!”
조현민이 태수를 만류하더니 수술대를 먼저 치고 올라왔다.
다리 쪽에서 수술대에 올라탄 그가 복부까지 이동한 후에야 태수에게 말했다.
“지금!”
태수도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수술대에서 뛰어내렸다.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아 거의 떨어지다시피 내려왔다.
우당탕!
그렇게 공간이 생기자 조현민은 바로 흉부에 자리를 잡고 허리를 굽혀 흉부 압박을 이어 갔다.
“훅훅!”
그동안 움직임이 적어서 그런지 윤사라의 가슴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힘이 좋았다.
그사이 일어난 태수가 조현민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신호하면 무슨 일이…… 후우, 있어도 무조건 내려오셔야 합니다.”
“오케이. 훅훅!”
짧게 대답한 조현민은 더욱 강하게 흉부 압박을 했다.
이내 태수는 제세동기 충격기를 들고 있는 이선정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
“……제발.”
끄덕.
제세동기를 건네며 울먹이는 이선정 간호사의 간절한 목소리에 태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기준은?
아직 멍한 상태였다.
그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태수는 여성현, 공우혁, 유병태와 차례로 시선을 마주쳤다.
이제 운명의 시간.
모두 그걸 직감했는지 태수를 향한 눈빛이 불꽃을 피웠다.
끄덕.
태수가 고갯짓을 한 순간이다.
“후우.”
준비하라는 의미를 직감했는지 다들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태수는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아주 천천히 진행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불과 1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수술실 분위기는 그만큼 긴박해 제대로 된 시간의 흐름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더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실행에 옮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