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31
00934 934화
그때 태수가 박성민에게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왜 빠집니까? 제가 집도의입니다.”
“이게 어디서 선배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인마, 넌 보건의야. 위수지역 벗어날 수 있는 상부 허가 나면 니가 다시 책임지고 치료해야 되는데 지금부터 진을 빼면 어쩌자고.”
“…….”
“그때까진 자빠져 자면서 아무것도 하지 마. 조만간 아마 죽어날 테니까 그 걱정부터 해. 자자, 우리는 시작합시다!”
툭.
박성민이 태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크게 목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그 뒤로 정민수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건 우리한테 맡겨. 선배 말대로 네가 이송해야 하잖아. 체력 아껴야지.”
“그래. 고생하자.”
“고생은. 그보다 밖에 기자들 엄청 와 있던데. 그건 어떻게 뚫고 가냐.”
정민수가 걱정을 보였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관심 없어. 막으면…….”
“카슈미르 때처럼 또 설치려고?”
“…….”
“아서라. 그러다가 기자들 여럿 대가리 깨트릴라. 참을 인 세 번 쓰면 살인도 면한다더라. 참아라.”
툭툭.
정민수는 가볍고 빠르게 태수의 어깨를 두드린 후 수술실을 나갔다.
이동 중에 각자 할 일을 정하고 왔는지 상황 판단이 빠르고 움직임도 신속했다.
태수가 쓴 미소를 짓는 사이였다. 박성민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내가 두 번째 만남이라서 반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균형 안 맞춰? 환자 처음 다뤄 봐?”
“아, 죄송합니다.”
지목당한 조현민이 움찔하며 사과했지만 박성민의 날카로운 잔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죄송하지 말고 죄송할 짓을 하지 말라고. 너, 흉부외과지? 어디 출신이야? 누구에게 배웠냐고!”
“똑바로 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균형 못 잡아 봐. 그때는 네놈 심장 균형이 엇나갈 줄 알아. 내 마드무아젤에게 티끌만 한 이상이라도 생기면 진짜 그땐 다 죽는다.”
박성민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도전적이었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보건의들은 반항이란 단어를 꿈도 꾸지 못했다.
선배에 신속대응센터 출신?
아니다.
그들도 서울의 각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과 연이 닿은 의사들이다. 또래중에선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의사들이다.
그럼에도 꿈쩍하지 못하는 건 박성민의 잡아먹을 듯한 기세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군병원 위병 초소는 역시나 한가했다.
위병 사수가 슬쩍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데 이 야밤에 헬기가 떠?”
“잘 모르겠습니다.”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위병 부사수의 목소리에 위병 사수가 한마디 했다.
“니가 뭘 알겠냐.”
“죄송합니다.”
“됐고. 헬기 뜰 정도면 의사들 잠은 다 잤겠네. 거참, 배울 만큼 배우신 분들이 야밤에 설치는 거 보면 차라리 일반 사병이 좋을 때도 있다니까.”
“그래도 멋지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특히 최태수 선생님이셨지? 난치병 수술한다면서 고생하는 거 보면 자양강장제라도 하나 사 드려야 하나 싶다니까. 그때 말이야…….”
위병 사수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사실 위병소에서 근무를 서면서 대화하면 안 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키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새벽에는 몇 마디는 몰래 나눠야 근무 서는 맛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조용조용 몇 마디 더 나눌 때였다.
번쩍!
저 멀리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보이자 시선을 돌린 위병 사수가 깜짝 놀랐다.
“어어, 저게 뭐야?”
“모르겠습니다. 전부 몇 대입니까?”
“아, 뭐야. 하나, 둘…… 여섯 대? 이 밤에 어떤 미친놈들이 병원 습격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상황실에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위병 부사수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따르릉.
초소 전화기가 울리자 위병 사수가 얼른 받아 들었다.
“충성!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위병 사수가 위병소 밖으로 뛰어나오며 위병 부사수에게 소리쳤다.
“문 열어!”
“문…… 말씀이십니까?”
“빨리 열라고, 이 새끼야!”
위병 사수의 다급한 외침에 위병 부사수도 얼른 뛰어나와 바리케이드를 시작으로 갖가지 구조물을 치우기 시작했다.
모든 구조물을 치운 순간이었다.
빠르게 다가오던 차량들은 그 속도 그대로 위병소를 통과했다.
기다란 구급차를 시작으로 몇 대나 줄줄이 이어졌다.
그 순간 위병 사수가 받들어총 자세로 바꾸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부우웅.
고급스러워 보인 구급차를 포함한 차들이 곧 위병소를 통과했다.
그제야 위병 부사수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누굽니까?”
“높은 사람.”
“잘못 들었습니다.”
“위에서 열라잖아. 그럼 높은 사람이지.”
위병 사수도 정확하게 들은 바가 없어 그냥 얼버무렸다.
같은 시각.
수술실에서는 이송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다만 아직 윤사라에게 몇 가지 더 응급처치할 일이 남아 있어서 아직 신경이 곤두섰다.
무엇보다 윤사라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당연한 처치기도 했다.
그때 박성민이 시계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도착 예정 시간이 20초나 지났는데 아직도 도착을 안 해?”
불과 20초.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초가 심리적으로 너무너무 길었다.
그걸 이야기하는 박성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싸늘한지 다들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나마 신속대응센터 의사들은 그런 박성민의 모습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표정들이었다. 반면, 처음 겪는 보건의들은 박성민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봤다.
그런 보건의들에게 브레드 김이 말했다.
“환자는 안정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 네.”
“긴장한 것도 좀 가라앉히고.”
브레드 김은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의사들보다 특별히 더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NGO 의사의 오랜 경험이 준 성격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일한 라이벌격인 박성민이 즉각 딴죽을 걸었다.
“닥터 김, 지금 걱정이 안 됩니까?”
“걱정만 한다고 달라져요?”
“젠장. 좌우간 저 빵 아저씨랑만 이야기하면 내가 이상해지는 거 같다니까. 도대체 다들 어디쯤 온 거야?”
투덜거린 박성민이 휴대폰을 들며 뒤로 돌아섰다.
신속대응센터에서 온 의료진 모두가 빵 아저씨란 브레드 김의 별명에도 입술 하나 들썩이지 않았다. 브레드 김이 그 별명을 자지러지게 싫어하는 걸 잘 아는 탓이다.
그사이 박성민은 누군가와 통화가 연결된 모양이다.
“어, 도대체 어디야……. 곧 도착한다고? 야, 이 자식아, 너 국어 공부…….”
박성민의 잔소리가 이어질 무렵이었다. 열려 있는 수술실을 향해 누군가 한 사람이 모습을 보였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홍진만의 득의만면한 모습이었다.
“여기 계셨네요.”
그 모습을 봤는지 박성민의 말이 꼬였다.
“……국어 공부 제대로 했네.”
“그러게 곧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홍진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턱.
“억!”
홍진만이 누군가의 손길에 옆으로 떠밀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송현미 간호사와 신창용이 빠르게 들어왔다.
태수는 그들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석준 팀장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팀원들이 온 것이다.
신창용이 태수에게 다가왔다. 안 그래도 자그마한 눈이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더욱 보이지 않았다.
“좀 늦었어.”
“아닙니다. 그보다 선생님이 여긴 어떻게…….”
“이송 책임자가 당연히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신창용이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짓자 태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꼭 돌려받을 거니까 그렇게 하고. 그보다 박 선생, 이송 준비는 거의 끝난 거지?”
신창용이 바라보며 묻자 박성민이 바로 대답했다.
“아까, 그것도 진짜 아까 끝났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밖에 귀찮은 것들이 가로막고 있었어.”
“민수가 해결한다던데요. 하여간 이 자식은 똑바로 하는 게 없어.”
“정 선생이 막고 있어서 그나마 빨리 들어온 거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마무리하자고.”
신창용이 말하는 사이였다. 뒤에 서 있던 홍진만이 ECG(심전도 모니터)를 끌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모양이 좀 특이했다. 군병원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작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걸 본 태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신속대응센터에서 사용하는 ECG였다. 신형이라 크기가 작고 가벼운 데 비해 심장 변화에는 더욱 세밀한 의료기이기도 했다.
신창용도 어깨에 둘러멘 가방을 풀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 쪽 기계들로 바꾸고 나가자고.”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박성민이 바로 목소리를 높이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신속대응센터의 다른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보건의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자신들은 대체 군복무를 하는 중이었다. 이 수술실에 자진해서 들어왔지만, 아니라고 해도 피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들은 달랐다.
자신들보다 더욱 적극적이었다. 마치 윤사라를 처음부터 돌본 것처럼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에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니라 자진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태수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속대응센터의 모든 의료진들이 태수와 같았다. 생각해 보면 전에 신속대응센터에서 처음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누군가의 강요나 직위를 위한 행동들이 아니었다.
그게 지금 수술실에 자리한 보건의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보건의들이 놀라는 사이였다. 태수는 수술대에서 한 걸음 밀려난 상태였다.
-이젠 저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호언장담하는 홍진만이 밀어낸 탓이다. 그 모습이 박성민과 비슷하게 변해 가는 것 같지만 지금은 믿음직스러웠다.
그때 태수의 옆으로 송현미 간호사가 다가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저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강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거만으로도 모든 대화를 충분히 나눈 느낌이다.
이내 이송 준비는 완전히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창용이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했다.
“홍 선생, 안전하게 고정시켰지?”
“네!”
“서 선생, 닥터 김, ECG, 투약 모두 문제없죠?”
“물론입니다.”
“박 선생, 심장은?”
“당연히 팔팔하진…… 않지만 문제 될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게 확인을 마친 신창용이 작은 두 눈을 빛냈다.
“그럼 지금부터 이송 시작합니다. 마지막 한 순간까지 마음 놓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가시죠.”
신창용이 말하자 신속대응센터 의료진들이 윤사라가 누운 스트레쳐카를 사방에서 잡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앞길은?
보건의들이 수술실 문을 다시 열고 고정시키는 등 여러 준비를 이어갔다. 간호장교들도 같이 한 손을 더했다.
윤사라의 이송을 위해 거의 20명에 가까운 의료진들이 움직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1천 명이 노력해도 좋다.
그게 신속대응센터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마음이었고, 군병원에 소집된 보건의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이송은 쉽지 않았다.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야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수술실 복도를 움직이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좀 더 천천히.”
“ECG 반응은 아직 괜찮습니다.”
짧은 시간에도 의료진들은 계속 윤사라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들의 모든 행동이 윤사라에게 맞춰진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점점 수술장 문에 다가섰다. 밖에는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더 지체할 수도 없는 상황.
태수와 신속대응센터 의료들이 시선을 마주쳤다.
‘이대로 밀고 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으로 인해 이송이 늦어진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이럴 땐 태수가 막아 줌이 당연했다.
“기자들은 제가 따돌리겠습니다.”
“자식. 기자들이 바보냐? 신속대응센터에서 온 거 다 아는데 속겠어?”
박성민의 말도 일리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