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33
00936 936화
태수가 가만히 바라보자 공우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수술 결과는 내가 이야기했어. 그제야 그 득달같이 달려들던 기자들이 물러가더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그게 내 일이니까 됐고, 그보다 괜찮아?”
공우혁이 묻자 태수가 몸을 흔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견딜 만합니다.”
“다들 걱정 많이 하고 있어.”
“저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태수의 사과에 공우혁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최 선생 혼자만의 일도 아니고 말이야.”
“처음 이야기한 대로 모든 책임은 제가 질 겁니다.”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 이런 순간에 서로서로 걱정하는 게 동료지.”
“다른 분들에겐 피해가 없어야죠. 절대로 그래야죠.”
“거참. 그보다 진짜 괜찮아?”
공우혁이 재차 물어보자 태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요.”
“이거 참.”
“지금은요, 제가 최선을 다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 보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정말 제가 가진 모든 걸 다 쏟았다면…… 그때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태수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소회의실을 울렸다.
공우혁은 그런 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정도 했으면 됐어. 됐으니까 쉬어. 더 이상 아무런 생각 하지 말고 일단 좀 쉬라고.”
공우혁은 안타까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도 장시간 수술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다크서클도 보였다.
그런 그가 태수를 걱정해 일부러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태수도 움직이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움직여 똑같이 미소를 보였다.
공우혁이 나간 후 태수는 홀로 소회의실에 자리해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다만 휴대폰을 매만지는 손길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모른다.
끼익.
조심스레 문이 열리더니 이선정 간호사가 들어왔다.
태수를 본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걸터앉은 간이침대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
“…….”
오가는 말은 없었다.
위로의 말도, 격려의 말도 소용없다는 걸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탓이다.
그렇게 침묵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이선정 간호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려 보낼 거 챙기던 중에 병상 캐비닛에서 이걸 발견했어요.”
이선정 간호사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태수에게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태수가 의미를 모르겠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속에 녹음 파일이 하나 있더라고요. 녹음 날짜가 어제 새벽 즈음이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전 특실로 다시 가 볼게요.”
이선정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태수가 말했다.
“같이 들으시죠.”
“…….”
이선정 간호사는 말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 태수는 무미건조한 손길로 휴대폰을 켰다.
잠금 화면은 특별한 비밀번호나 패턴이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잠금 화면을 푸니 녹음기 기능이 보였다. 이선정 간호사의 말대로 녹음 파일이 하나밖에 없었다.
재생 버튼으로 향하는 손길이 망설여졌다. 그러나 결국 태수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 아.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윤사라의 목소리에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멈칫했다.
특히 밝은 목소리에 놀랐다.
그러는 사이 녹음된 음성은 계속 들려왔다.
-선생님, 듣고 계시죠? 옆에 선정이 언니도 같이요. 이거 안 들으셨으면 좋겠는데……. 혹시라도 제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얼른 녹음기 꺼 주세요. 그리고 아니라면 들어 주세요.
윤사라의 목소리는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조금 전에 너무 아팠어요.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요. 이젠 괜찮아요. 그런데…… 흠흠.
윤사라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상당히 침착해져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할 거 같아서요. 먼저 감사합니다. 두 분과 함께한 시간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전 저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두 분 원망 안 해요. 분명히 선생님하고 언니는 모든 걸 다 해 주셨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부족해서 이겨 내지 못했을 거고요. 그러니까 절대 슬퍼하지 마세요. 전 두 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행복했으니까요…….
더 들을 수가 없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끝내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수는 그런 이선정 간호사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좀 더 들으세요.”
“흑흑. 선생…… 님은요?”
뻘게진 눈으로 묻는 이선정 간호사를 바라보며 태수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소회의실을 나서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어갔다.
잠시 후.
태수가 도착한 곳은 옥상이었다.
부스럭.
주머니에서 윤사라의 사진을 꺼내 들고는 가슴에 품었다.
“사라야, 바다에 가야지.”
태수가 크게 소리쳤다.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픈 말이다.
태수가 옥상에 서서 우두커니 밖을 바라볼 때 옆에 누군가 나란히 섰다.
태수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누가 옆에 왔는지 직감하고 물었다.
“다…… 들으셨습니까?”
“네.”
역시 다가온 건 이선정 간호사였다.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만으로도 격정이 지나가고 마음이 더욱 단단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태수는 그런 이선정 간호사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사라가 우리한테 뭘까요?”
“희망이요.”
이선정 간호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태수도 잠깐 사이 결심한 걸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한 가지는 약속드립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실수로 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
“그리고 실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든 한계를 뛰어넘을 겁니다.”
“믿어요.”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너무 울어서 그럴 뿐, 태수에 대한 신뢰가 말라 버린 건 아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띠리릭.
벨소리가 울리자 태수가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박성민의 전화였다.
바로 받아 든 태수가 물었다.
“도착하셨습니까?”
“그래. 조금 전에 도착해서 중환자실에 입원시켰어. 별문제 없었고 지금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문제는 없었습니까?”
“그러리라고 생각했어?”
“아뇨.”
“자식, 천안쯤에서 고비는 있었지만 내가 누구냐. 내가 천하의 박성민이야.”
“하아.”
태수는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소리만 듣고도 이선정 간호사의 얼굴도 한결 안정된 표정으로 변했다.
그때 박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 넌 좀 쉬어.”
“…….”
“사라는 우리가 어떻게든 체력을 올려놓는다. 네가 할 일은 그때까지 여기 내려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려야 해.”
“내려가서 저도 준비를…….”
태수의 말은 바로 끼어드는 박성민의 목소리에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내려와서 죽치고 앉아서 사라 얼굴만 보고 있을 거야?”
“…….”
“진짜 사라가 걱정된다면, 꼭 네가 다시 집도하겠다면 내 말대로 해. 그때까지는 우리도 비상 걸어 놓고 지켜볼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태수의 말이 한 번 더 박성민의 목소리에 가로막혔다.
“고맙다는 소리 하려면 입 다물어라. 사라는 나에게도 인연이 깊은 아이야.”
“…….”
“네가 지금까지 집도한 아이라서 내가 양보하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체력이 회복되면 너에게 알리지 않고 내가 직접 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렇게 물러서서 좋게 이야기할 때 이번에는 내 말대로 해.”
“선배 말대로 하겠습니다.”
태수는 박성민의 말에 수긍했다.
지금 당장 내려갈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내려간다고 해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리고 박성민은 윤사라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태수에 대한 배려도 숨어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선정 간호사가 조심스레 권했다.
“주무셔야지요.”
“……”
대답 없는 태수에게 이선정 간호사가 다시 말했다.
“체력이 있어야 사라도 보살필 건데요.”
“맞는 말입니다. 가시죠.”
그제야 태수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태수가 잠든 사이.
각종 언론 매체에서 본격적인 공격성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기삿거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군병원 현관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최 선생은 어딜 간 거야?”
“다른 보건의들도 입을 싹 닫고 있으니까 기사 쓸 것도 없고.”
“그냥 몇 마디 더 붙여서 기사 하나 더 내고 버텨 봐야지.”
기자들은 투덜거리며 현관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군병원장이 출입 제한을 걸어 놓은 상태라 무작정 들어갈 수 없던 탓이다.
무대포로 들어갈 순 있지만 위병소 밖까지 밀려나지 않으려면 여기서 누군가 나오길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때 그 기자들 앞에 김성국 기자가 나타났다.
선후배 기자들은 김성국 기자를 보자 도끼눈으로 변했다.
“최태수 어디로 빼돌렸어?”
“선배, 같은 직종에서 일하면서 이러시는 건 아닙니다.”
기자들의 원성이 들려왔다.
김성국 기자는 외려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쓰레기 새끼들.”
그 말에 기자들이 발끈했다.
“뭐?”
“저 새끼가! 너 주둥이 조심해라.”
선후배 관계없이 따가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김성국 기자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니, 외려 따지고 들었다.
“너, 뭐? 수술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
“그리고 선배, 권위자들이 이번 수술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다고요? 어떤 새끼들이 지들은 나서지도 않으면서 그따위로 지껄였습니까?”
“…….”
자기가 쓴 추측성 기사를 들추자 기자들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김성국 기자가 그런 기자들을 노려보며 재차 물었다.
“다들 사실 확인은 하고 기사 쓰는 겁니까? 윤사라의 직접적인 사인이 뭔지, 아니면 수술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는 하고 쓰는 거냐고요.”
“뭐, 그거야…….”
“아, 그냥 휘갈기면 다 기사야? 그런 거야?”
사정없이 비꼬는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에 다른 기자들이 반박했다.
“그렇다고 뭐 틀린 말 있습니까?”
“그럼 뭐가 맞는 말인데? 앞뒤 정황, 상황 설명, 환자 상태,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맞는 말이냐고!”
“…….”
기자들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진 못했다.
침묵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김성국 기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무슨 기사를 대가리로 써. 대가리에서 짜내면 다 기사야? 발로 뛰고 스스로 느끼고, 그렇게 마음으로 쓰는 게 기사 아니냐고.”
“…….”
“지랄. 내가 이런 쓰레기들이랑 같은 취급을 받는다니. 더러워서. 퉤!”
김성국 기자는 거칠게 곧바로 쌩하니 돌아서 버렸다.
한편 태수는 자는 것도 아닌 거의 반가사상태로 눈만 감고 있었다.
그러길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옆 의자에는 이선정 간호사가 정말 불편한 자세로 깊이 잠이 든 채였다.
몇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린 후 김석준 국장에게 곧바로 연락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이지만 한밤중은 아닌 탓이다.
“최 선생님.”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일이 너무 급해서.”
“말씀하십시오.”
침착한 김석준 국장 목소리에 약간 안도한 태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요점만 추려 설명한 태수 말을 듣고 김석준 국장이 한동안 침묵 후 입을 열었다.
“윤사라 양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장담하기 힘듭니다.”
“마음고생이 심하시겠습니다.”
단 한마디에 태수는 무너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잡았다.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싶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일단 주무시죠.”
“감사합니다.”
김석준 국장의 위로에 태수가 얼른 대답했다.
그 뒤로 몇 마디 더한 후 휴대폰을 내려놓은 태수가 천장을 바라봤다.
힘들다.
지금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공우혁이 안으로 들어왔다. 공우혁은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기운 빠진 얼굴.
그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그래도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