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47
00950 950화
김성국 기자의 밝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어제 죽어라 마셨다더니 속은 괜찮습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소식통이 있지요. 그보다 아침부터 무슨 좋은 소식을 알려 주시려 전화하셨나?”
“기사 봤습니다.”
태수가 다른 대답을 했지만 김성국 기자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걸 이제 확인하다니. 내 기자 생활 중에 손가락 안에 꼽는 특필이었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기사를 보고 전화를 안 할 수 없게 써 놓으셨던데요. 말을 묘하게 비꼬아 놓으셔서요.”
“그걸 의도하고 쓴 기사지. 그래서 본 소감은 어떠십니까?”
“제 속이 다 시원하네요.”
태수의 감상평에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내가 좀 시원하게 썼지. 그런데 인터넷으로 사람들 반응은 봤어요?”
“아니요. 숙취 때문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하하. 그런 사람 목소리치고는 밝고 좋네. 간단하게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떠들던 놈들은 쏙 사라졌고 다들 칭찬하고 회복을 기원한다는 이야기들뿐입니다.”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자 태수도 호탕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좋은 기사 덕분에 다들 더 기대하시는 거 같은데요.”
“당연히 기대해야죠. 윤사라 양은 이미 건강해지고 있으니까.”
“역시 김 기자님 글발은 대단하십니다.”
태수가 칭찬하자 김성국 기자는 더욱 밝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서 칼보다 펜이 무섭다고 하는 거라니까요. 다른 기자들 속 타는 거 보니까 기분이 더 좋은 거 같고.”
“혹시 주변에서 눈치 주진 않습니까?”
“눈치? 내가 그런 거에 신경 쓸 만큼 간이 작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같은 기자인데요.”
태수가 슬쩍 물어도 김성국 기자는 딱 잘라 대답했다.
“말로만 기자라고 하고 뒤에서 호박씨 까는 기사나 내는 놈들이랑은 같은 취급 하지 맙시다.”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됐고. 좌우간 기사 잘 써 준 값은 받아야 되니까 조만간 넘어가겠습니다. 술 사는 거 잊지 말고.”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 두 분은 어떻게 인터뷰가 된 겁니까?”
태수가 궁금한 걸 못 참고 결국 물었다. 곧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던데. 내 기사 보고 최 선생한테 호의적인 거 같아서 연락했다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나도 쟁쟁한 의사들이 먼저 연락해 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기사에 필요한 내용이라 아이고 감사합니다, 라고 했지. 그 두 사람, 최 선생이 아는 사람들이지?”
김성국 기자가 날카롭게 물어보자 태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제가 그런 분들을 어떻게 압니까?”
“정말 몰라요? 모르는데 어떻게 자청해서 인터뷰를 해?”
“그러게요. 안면도 없는데 신경 써 주시니 제가 조만간 찾아뵈어야겠네요.”
태수가 능청을 부렸지만 김성국 기자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꾸 내 신경이 자극 되는 거 같은데 끝까지 발뺌이시네. 한번 진지하게 한번 파 봐?”
“나중에.”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알았어요. 이건 나중에 천천히 파 보는 걸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조만간 내려오십시오.”
태수는 부드럽게 인사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김성국 기자가 깊게 파고들면 괜히 석정현 이사장과 석재봉 부원장 사이가 들통 날 수도 있던 탓이다.
언젠가는 밝힌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입막음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다른 기자라면 몰라도 김성국 기자라면 말없이 뒷조사하지 않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오전 내내 속을 달랜 태수는 윤사라를 만난 후 박완용 센터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너무 늦은 방문이었지만 그동안 바빴기에 이제야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어제 일뿐만 아니라 항상 품고 있던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센터장님 계시죠?”
“어서 안으로.”
안면이 있는 비서를 통해 도착 소식을 알리자 곧 안으로 안내되었다.
빙긋.
주변을 둘러본 태수가 내심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박완용 센터장의 집무실엔 아직은 현역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건지 의학 서적이 가득한 책상이 가장 먼저 시야에 잡혔다.
그 외에는 책상과 응접 소파, 진열장 등이 전부였다.
예전에 응급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진료실을 크게 부풀려 놓은 느낌이다.
박완용 센터장은 전보다 조금 더 수척해진 얼굴로 태수에게 다가왔다.
피곤한 얼굴과 달리 편한 미소를 지은 박완용 센터장이 먼저 반색했다.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죄송합니다. 마음은 항상 오려고 했는데 시간이란 녀석이 이제야 풀어주네요.”
“원 사람도. 일단 손부터 잡아 보자고.”
박완용 센터장이 악수를 청하자 태수는 두 손을 공손히 맞잡았다.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착석한 두 사람 중 이번에는 태수가 먼저 말했다.
“어제 센터장님 덕분에 아주 포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다니 다행이야. 찾아갈까 하다가 다들 어려워할 거 같아서 안 갔지.”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어렵다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응급실을 누비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요.”
“이젠 오비야.”
박완용 센터장의 약간 씁쓸한 말에 태수가 펄쩍 뛰었다.
“오비라니요. 의학 서적으로 가득한 방인데 누가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구색 맞추기지.”
“아니죠. 마음은 아직 현역이라는 거죠.”
태수는 손까지 내저으며 박완용 센터장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태수의 말에 박완용 센터장은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응급실에 내려가 처치해본 지도 까마득한데 현역이라니. 남들이 들으면 욕해.”
“대신에 다들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뒤에서 서포터해 주고 계시잖습니까.”
“그게 내 일이니까. 그보다 고생했다는 뻔한 인사야 많이 들었을 테니까 그 말은 생략하지.”
“센터장님에게 들으면 더 격려가 될 거 같은데요.”
태수가 밉지 않게 유머를 부리자 박완용 센터장의 미소가 부드럽게 변해 갔다.
“여전하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답니다.”
“하긴, 기자들 뒤통수 친 이야기도 들어 보니까 예전 성격 그대로야.”
“그건 좀 잊어주시죠.”
태수가 엄살을 부리는 척하자 박완용 센터장은 크게 웃었다.
“하하. 그거 빼면 최태수가 아닌데 어떻게 빼나.”
“그보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지신 거 같습니다.”
“요즘 좀 무리하고 있어서 그런가 봐.”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태수의 표정이 걱정으로 바뀌는 걸 본 박완용 센터장이 고개를 저었다.
“나쁜 일은 아니고, 좋은 일이지. 나중에 알면 다들 좋아할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건강은 생각해 가면서 일을 하셔야죠. 그러다 왕년의 응급실 과장님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사람이, 내 건강 상태는 확인할 줄 알아.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진짜죠?”
태수가 곱게 인정하지 않고 꼬투리를 잡았다. 그만큼 박완용 센터장의 안색이 많이 좋지 않은 탓이다.
박완용 센터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다음에도 똑같은 모습이시면 제가 어떻게든 검사실에 모시고 갈 겁니다.”
“나보다는 이사장님부터 챙겨.”
박완용 센터장이 슬쩍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계속 관심을 받는 게 좋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태수도 그걸 눈치채고 대화의 주제를 얼른 바꿨다.
“안 그래도 어제 뵈었습니다. 과로 증세가 좀 보이던데, 그분도 쉬란다고 쉬시는 분은 아니라서 좀 걱정됩니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라 더 걱정된다니까.”
“말 나온 김에 언제 두 분이 나란히 누워서 포도당이라도 맞으시죠.”
“난 둘째치고 이사장님이 아마 펄쩍 뛰실 거야.”
“하하. 눈에 훤하게 그려지네요.”
태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박완용 센터장의 미소도 더욱 짙어졌다.
그 후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헤어져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대화의 주제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태수는 마침 하석준 팀장 일이 생각났다.
얼마 전 앞으로도 많이 도와 달라고 했던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태수는 박완용 센터장에게 슬쩍 돌려서 물었다.
“혹시 요즘 팀장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닙니까? 전과 똑같이 행동하시는데 가끔 어깨가 축 처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런가?”
“아시는 게 있으신 거 같은데요.”
태수의 말에 박완용 센터장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얼른 원래대로 표정을 바꾼 박완용 센터장이 고개를 저었다.
“1팀장이라는 위치가 가끔은 부담되기도 하겠지.”
“센터장님, 저 그렇게 눈치 없진 않습니다.”
“…….”
“무슨 일이 진짜 있는 겁니까?”
태수가 불안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대답을 피하며 버티던 박완용 센터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말해 줄 수 있어. 나중에는 더 크게 웃을 거야.”
“그럼 팀장님에게 생긴 그 어떤 문제를 저만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저도 모르는 겁니까?”
“최 선생도 모르는 거야.”
“그럼 그만 여쭙겠습니다. 만약 저만 모르는 거라고 하셨다면…….”
태수는 말끝을 흐렸지만 박완용 센터장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거 사람, 성질하고는.”
“팀장님이 저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최 선생한테 더더욱 말 못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럼 말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길진 않을 거야.”
박완용 센터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찻잔으로 스스로의 입을 막아 버렸다. 더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태수도 더 재촉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텁텁한 입속을 달콤한 차로 달랬다.
이후 다시 다른 이야기들이 오갔다.
마치 조금 전의 이야기는 서로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저 이런저런 대화들만 이어 갈 뿐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는 내내 태수는 하석준 팀장에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이야기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이 무거운 박완용 센터장이 내심 섭섭하기도 했다.
박완용 센터장을 만난 것 외에는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별일이라고 한다면 며칠이 지나는 사이 윤사라는 생각보다 빠르게 차도를 보였다.
문제가 되었던 심장 주변 혈관도 아주 잘 아물었고, 1차로 수술한 복부도 회복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태수와 의료진들이 적극적으로 윤사라의 치료에 참가한 점도 큰 도움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윤사라가 가진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었다.
우선 온몸이 피곤하고 아픔을 느낄 텐데도 항상 미소로 사람을 대하며 이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진찰 및 치료 과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식사를 시작한 이후로 최대한 많이 먹고 많이 쉬었다.
그 어떤 명약보다 좋은 게 꾸준하고 규칙적인 식사였다. 몸에 에너지가 생기면서 병과 싸울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탓이다.
루푸스라는 병이 자기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병이다. 그걸 이겨 낸다는 건 결국 스스로와 싸워서 승리하는 것과 같았다.
수술로 군데군데 절제한 간도 세포가 재생되는지 간경화 증세도 많이 완화되었다.
그런 윤사라의 적극성은 의료진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회복 중인 중환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신속대응센터 홍보부에서도 윤사라의 경과에 대해 다시 발표했다.
기자들은 홍보팀에서 보낸 보도 자료를 그대로 기사화시켰다.
일전에 공격성 기사를 썼던 기자들도 이번에는 좋은 쪽으로 기사를 써 줬다.
아니 비난성 기사를 쓰기 거북했다.
아차하다간 여론의 몰매를 맞을 처지로 돌변한 탓이다.
오보로 인해 기자들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현실을 직시한 탓이다. 다들 몸을 잔뜩 낮춰야 했다.
지금은 태수를 향한 비난 여론이 완전히 사그라졌다.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시선을 보이던 이름 높은 전문의들도 잠잠해졌다.
결과가 뚜렷하게 나온 이상 딴죽을 걸 순 없던 탓이다.
이 와중에 덕을 본 건 김성국 기자와 신문사뿐이었다.
정론직필.
그걸 실천한 김성국 기자에 대한 격려 여론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한편 하루가 다르게 차도를 보이는 윤사라를 두고 태수와 의료진들은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그러고 난 후 검사 결과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이 회의에 참여한 건 태수와 박성민, 그리고 김인호 전문의였다.
태수와 김인호는 직접 검사를 진행했고, 박성민은 검사 소식을 듣고 뒤늦게 합류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