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66
00969 969화
태수는 어쩔 수 없단 얼굴로 쓴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차는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집까지 걸어왔다며. 이 근처에 외부 사람들이 주차하는 곳이야 뻔하지.”
“이제 사립탐정도 하세요?”
태수의 농담에 매형이 그저 웃기만 했다.
“탐정은 무슨. 좌우간 금방 찾았지.”
“대단하십니다.”
“차 수리하는 놈은 차만 보이거든. 그냥 광택 내고 코팅만 했어.”
매형의 말에 태수가 깜짝 놀랐다.
“그거 시간 많이 걸린다던데요.”
“도 사장님한테 비법 전수받은 게 있지. 어디 나가는 길 같은데 키는 꽂혀 있으니까 타고 가면 돼.”
“감사합니다. 잘 타고 다닐게요.”
“그런 말을 왜 해, 당연한 거를. 그럼 난 할 게 좀 있어서. 잘 다녀와.”
매형은 방긋 미소를 짓고는 멀어져 갔다.
태수는 곧 차에 올라탔다. 겉만 청소한 게 아닌지 내부도 아주 깨끗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트렁크에 가득한 짐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좀 지저분하던 차가 깨끗해지자 일단 기분은 좋았다. 한편으로 매형에게 감사함이 더욱 진해졌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일단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어?”
태수는 깜짝 놀랐다. 엔진 소리가 너무 부드러워진 탓이다.
설마?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차를 천천히 움직여 봤다.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오자 태수가 눈을 더욱 휘둥그레 떴다.
처음 출발할 때 약간 뻑뻑했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외에 살짝 밀리던 브레이크도 꽉 맞물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에 대해 자세하게 모르는 태수였지만 확실히 여러 가지가 달라졌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닐 터였다. 새벽부터 태수의 차만 수리했을 게 분명했다.
태수는 차창을 열고 일에 열중인 매형을 쳐다봤다. 등을 보이며 일하는 매형의 몸에서 즐거움이 가득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말해 무엇하랴.
매형이 즐거움을 느꼈다면 좋은 일이다. 태수도 차 컨디션이 엄청나게 좋아져서 더불어 행복했다.
가족이라는 게 이런 것 같다.
아낌없이 베풀어 주면서도 모르는 척, 또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렇게 서로서로가 모르는 척하면서 챙겨 주는 게 가족이다.
가슴이, 가슴이 정말 뿌듯했다.
어제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진 차를 몰고 태수는 강남으로 향했다.
복잡한 강남 도로를 통과한 후 커다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 입구부터 철저하게 신원 확인을 하는 아파트였다.
여기가 석재봉 부원장이 거주하는 아파트다. 몇 번 만나러 오고 또 바래다주었기에 동, 호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석재봉 부원장과 인터폰으로 통화를 한 후에야 태수는 주차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밑에서 잠시 기다리자 석재봉 부원장이 양복이 아닌 편안한 옷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태수가 얼른 다가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이거 몸이 전보다 더 좋아졌네.”
“운동 좀 했습니다.”
“조금 한 정도가 아닌데.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미스터 신속대응센터 한번 뽑자고 해야겠어.”
석재봉 부원장이 크게 칭찬하자 태수가 손을 내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른 분들 근육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입니다.”
“무슨 소리야, 이 정도 근육 가진 의사가 어디 있어.”
“이거 오랜만에 뵙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게 입막음 될 거 같습니다.”
태수는 준비해 온 과일 바구니와 함께 자그마한 아이스박스를 건넸다.
석재봉 부원장은 의아한 얼굴로 그럴 바라봤다.
“그건 뭔가?”
“오랜만에 뵙는데 빈손으로 올 수가 있어야죠. 약소합니다만, 인사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뭘 이런 걸 사 와. 번거롭게.”
석재봉 부원장은 말과 달리 일단 받아 들었다. 태수가 잘 보이려고 준비한 선물이 아니란 걸 알기에 부담 없이 받는 눈치였다.
과일 바구니는 별 관심도 없는지 바로 아래에 내려놓고 아이스박스를 품에 슬쩍 안았다.
“열어 봐도 되나?”
“이제 부원장님 겁니다.”
태수의 말에 무심코 열어 본 석재봉 부원장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 속에는 이끼가 곱게 깔려 있고 주먹만 한 더덕이 놓여 있던 탓이다.
척 봐도 시중에서 파는 더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물이었다.
석재봉 부원장이 얼른 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렇게 큰 더덕이 어디서…….”
“심마니 하시는 분이 직접 산에서 캐 온 겁니다.”
초곡리의 이름난 산꾼인 이원종을 말하는 거였다.
원래 왕래가 잦았지만 산에서 조난당한 조홍찬을 구조한 이후로는 더욱 자주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산에서 캔 걸 꺼내며 좋은 거라고 안겨 주기도 했었다.
산더덕이 몸에 좋다는 건 의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이 정도 크기의 산더덕은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의사가 몸에 좋은 걸 더 좋아하는 법이다.
어느새 함박웃음을 지은 석재봉 부원장이 태수를 향해 슬쩍 물었다.
“이거 귀한 선물인 거 같은데, 내가 받아도 되나?”
“산꾼 아저씨가 소중한 분에게 선물 드리라고 주신 겁니다.”
“그래도 최 선생이 안 먹고 날 줘도 되나?”
“저는 가끔 먹었는데요.”
태수의 말에 석재봉 부원장의 눈이 또 한 번 휘둥그레졌다.
“가끔 먹었다고?”
“1년에 두어 번 정도. 저 주신다고 가져오신 거라 그 앞에서 먹는 게 또 예의라서요. 하하.”
“최 선생 몸이 그렇게 좋아진 이유가 다 있었네.”
“산더덕 도움을 많이 받은 거 같습니다.”
태수가 계면쩍게 웃으며 대답하는 사이 석재봉 부원장이 다시 더덕을 내려다봤다.
“이런 걸 1년에 몇 번이나 구할 수 있다니. 초곡리가 숨겨진 명당이었네.”
“그 동네가 좀 좋죠.”
“그런데 아버지를 먼저 챙겨야 하는데.”
“이사장님 건 제가 더 좋은 걸로 준비해 놨습니다.”
태수의 말을 듣고야 석재봉 부원장의 얼굴에 살짝 드리운 그늘이 완전히 지워졌다.
“그럼 성의를 생각해서 잘 먹지. 아주 잘 먹고 건강 잘 챙겨서 우리 최 선생 많이 도와줘야지. 하하하!”
석재봉 부원장은 주차장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석재봉 부원장이 잠깐 집에 올라가 태수의 선물을 옮겨 놓은 후에야 두 사람은 아파트 단지를 나설 수 있었다.
석재봉 부원장은 조수석에 앉아 태수를 안내했다.
“어기서 오른쪽으로…… 좀 더 직진. 거의 다 왔어.”
친절하면서도 자세한 석재봉 부원장의 안내에 태수는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목적지를 확인한 태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여기는…….”
“밥 한 끼 먹자는데 뭘 놀라고 있어. 들어가자고.”
석재봉 부원장이 먼저 들어갔지만 태수는 쉽게 뒤따르지 못했다.
서울에서도 유명한 한정식 집이었다. 맛도 최고, 인테리어도 최고, 더불어 가격도 최고 수준이었다.
국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생각은 그랬지만 이미 가게 안으로 들어간 석재봉 부원장을 다시 데리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태수도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진 널찍한 방에 두 사람이 안내되었다. 이미 주문까지 마쳤는지 따로 종업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태수의 표정이 살짝 어색하자 석재봉 부원장이 물었다.
“맛있는 거 먹자고 데려왔더니 얼굴이 왜 그래?”
“촌놈 눈이 호강하는 거죠.”
“무슨 소리를 이제……. 아니야.”
석재봉 부원장이 뭔가 말하려다 말자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곧 알게 될 테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귀한 선물 받은 값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즐기라고.”
“그렇다면 허리띠부터 풀어야지요.”
태수가 긴장을 풀자 석재봉 부원장이 호탕하게 나왔다.
“익숙해져야지.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자리에 익숙해지라는 게 아니야. 많은 사람들의 삶에 용기와 희망을 줬으니까 이런 밥 한 끼는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다는 거지.”
“그럼 오늘은 체면 차리지 않고 먹겠습니다.”
“응당 그래야지. 그리고 산더덕 값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런 대물은 진짜 구하기 힘든 거거든.”
역시 석재봉 부원장은 선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태수 입장에서는 부담감이 한결 사라진 얼굴이다.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였다.
드르륵.
종업원들이 우르르 들어와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놓고 다시 방을 나갔다.
“예쁘네요.”
“맛도 좋으니까 먹으면서 계속 이야기하자고.”
석재봉 부원장이 먼저 식사를 시작하자 태수도 젓가락을 들었다.
손을 대는 것마다 입맛에 꼭 맞았다.
먹으면서 누군가 떠오르면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태수는 부모님과 누나의 식구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꼭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석재봉 부원장이 고급스런 사기 주전자를 들며 말했다.
“가볍게 반주로 한잔하는 건 어떤가?”
“진짜 술맛 당기는 음식들인데, 제가 운전 때문에요.”
“대리 불러.”
“대신에 제가 한 잔 따라 드려도 될까요?”
태수가 양손을 포개어 내밀자 석재봉 부원장은 사기 주전자를 건넸다.
“한 잔 받아 볼까?”
“그럼요. 건강하십시오.”
맑은 술을 따르며 인사하는 태수를 보고 석재봉 부원장이 작게 웃었다.
“하하. 술 마시면서 건강하라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참 앞뒤가 안 맞는 말이야.”
“적당한 반주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던데요.”
“그 말이 문제지. 누가 한 잔만 먹고 그만두냔 말이야. 한 잔이 두 잔 되는 게 얼마나 쉬운 건데.”
석재봉 부원장은 애주가다운 이야기를 하며 깔끔하게 쭉 들이켰다.
태수가 빈 잔을 다시 채우는 사이 석재봉 부원장이 먼저 운을 띄웠다.
“보건의 끝나니까 어떤가? 속이 시원해?”
“시원섭섭합니다.”
“정말 정이 많이 든 모양이야.”
“중간에 공백이 있었지만 2년 넘게 한 식구처럼 지냈던 분들이니까요.”
태수의 말에 석재봉 부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심정 나도 좀 알지. 나도 예전에 보건의 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아직도 가끔 연락하니까.”
“저도 이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거 없어. 휴가 때 한 번씩 가서 얼굴만 비쳐도 좋아할 거야.”
“그보다는 조금 더 자주 가려고요. 거기 가면 마음이 편해서 골치 아픈 일도 잊기 좋거든요.”
태수가 대답하는 사이 석재봉 부원장은 또 한 잔을 마시고 말했다.
“그래. 그렇게 몸이 쉬고 머리가 쉴 곳이 있으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
“맞는 말씀입니다.”
“그보다 생각해 보니까 최 선생은 아직 신속대응센터랑 계약하기 전이지?”
석재봉 부원장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으나 태수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순간 석재봉 부원장의 눈초리가 살짝 날카로워졌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제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요.”
“그렇지. 내가 그 말이 듣고 싶었어.”
“그보다 부원장님은 언제 넘어오시는 겁니까?”
이번에는 태수가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석재봉 부원장은 잔이 찰 때까지 기다린 후에 대답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대전에서 신속대응센터라면 이미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이사장님도 부원장님께서 돌아오시길 바라실 텐데요.”
“반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야. 난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아버지가 만류하고 있는 실정이야.”
석재봉 부원장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왜 만류하신답니까?”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하시더라고.”
“과연 언제일까요?”
“그 때라는 게 언젠지 나보다 더 잘 아실 분이니까 따라야지.”
석재봉 부원장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달 전에 대전에서 뵀는데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요.”
“준비하시는 일이 끝나면 좀 편해지시겠지.”
그렇게 대답한 석재봉 부원장은 술잔을 꺾었다.
순간 태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전에 석정현 이사장과 나눴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아무래도 서울 신속대응센터를 말하는 듯 싶었다.
“제가 알면 안 됩니까?”
“금방 알 일이야.”
석재봉 부원장이 즉답을 피했다.
더 이상 꼬치꼬치 묻기가 애매했다.
또한 묻는다고 답을 들을성 싶지도 않았다.
탁.
술잔을 내려놓은 석재봉 부원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