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78
00981 981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귀여운지, 태수와 누나는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태수는 허리를 숙여 수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엉엉. 가지 마. 엉엉.”
수현이는 얼른 태수의 목을 부둥켜안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태수는 그런 수현이를 살살 달랬다.
“또 올 거야. 다음에 오면 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싫어. 싫어. 엉엉.”
수현이의 앙탈이 도를 넘어서는 것 같자 누나가 나섰다.
“수현아,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해야지.”
도리도리.
수현이는 계속 도리질하며 태수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전에는 가면 가는가 보다 하던 수현이였지만 헤어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정도로 자랐다.
태수는 대책 없이 울어 대는 수현이를 달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태수가 슬쩍 누나에게 사인을 줬다.
어떻게 좀 해 보라는 의미였다.
가만히 생각하던 누나는 태수에게 찡긋거리며 다른 사인을 보냈다. 태수가 의아해하는 순간 누나가 먼저 수현이에게 말했다.
“그럼 수현이는 삼촌 따라가야겠다.”
그 말에 바로 눈치를 챈 태수가 장난에 동참했다.
“그래. 수현아, 삼촌이랑 같이 가자.”
“흑흑. 그, 그럴까?”
수현이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관심을 보이자 누나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럼 수현이 안녕. 엄마도 아빠도 여기 있어야 하니까 삼촌이랑 행복하게 살아.”
“훌쩍. 응?”
“엄마하고 아빠는 못 가. 그러니까 수현이만 삼촌하고 가는 거야. 안녕.”
누나가 손까지 흔들어 보이자 수현이는 눈물도 그친 채 멍한 표정으로 태수를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한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갈까?”
“……싫어.”
“그러지 말고 가자.”
“엄마. 으아앙!”
수현이는 얼른 몸을 돌려 누나에게 손을 뻗으며 울었다. 방금 전보다 더욱 서럽고 애처롭게 우는 모습이 짠하게 보일 정도였다.
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내밀자 태수가 수현이를 건네줬다.
엄마 품에 안긴 수현이는 목을 꽉 잡고 절대 놓지 않았다. 그리고 거실이 떠나갈 듯한 울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엉엉.”
“계속 울면 삼촌이랑 가는 거야.”
“……뚝.”
수현이가 얼른 울음을 삼켰다.
그 모습에 태수와 누나는 어이없는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수현이의 일이 일단락되자 태수가 누나에게 말했다.
“갈게.”
“그래. 조심해서 내려가.”
“수현아, 삼촌 갈게.”
끄덕.
수현이는 엄마 품에 안긴 채 태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집을 나선 태수는 카센터에 들러 매형에게 인사한 후에야 대전으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린 태수는 천안 휴게소에 도착했다.
이제 유성 IC까지 대략 30분 정도 걸리고, 그 이후에 신속대응센터는 금방이었다.
휴게소에 잠시 내린 태수는 운전하느라 뻐근한 몸을 풀고 커피도 한 잔 마셨다.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태수가 다시 차로 향하던 중이었다.
띠리릭.
휴대폰이 울어 바라보자 석정현 이사장의 전화였다.
외국에서 돌아온 걸까?
반가운 마음에 태수는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이사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이거 최 선생이 이렇게 반갑게 받아 줄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전화할 걸 그랬나 봐.”
“하하. 그보다 어디십니까? 아직 외국이십니까?”
태수가 묻자 석정현 이사장은 약간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야. 한국에 어제 도착했어. 이젠 진짜 늙었나 봐. 비행기 한 번 타면 이틀은 아주 맥을 못 추겠어.”
“제가 아주 좋은 걸 준비했으니까 몸보신시켜 드리겠습니다.”
“나한테 올 산더덕이 남아 있나?”
이미 석재봉 부원장을 만난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말에 놀라지 않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남아 있다니요. 제일 먼저 준비해 놓은 건데요.”
“허허. 듣기만 해도 행복하네.”
“곧 대전에 도착하니까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잠깐. 최 선생, 지금 어디라고?”
석정현 이사장이 다급하게 물어보자 태수는 바로 대답했다.
“천안 휴게소입니다만.”
“그럼 차 돌려서 서울로 올라와.”
“네?”
태수가 깜짝 놀랐지만 석정현 이사장은 재차 같은 말을 내뱉었다.
“서울로 올라오라고.”
“아니, 대전이 코앞인데. 이사장님도 내려오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야. 아니니까 올라와.”
“이거 참…….”
태수는 솔직히 황당했다.
그때 석정현 이사장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문자로 주소 보내 주라고 할 테니까 곧장 올라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잠을 못 잤나?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 좌우간 도착하면 보자고.”
할 말이 끝났는지 더 이상 석정현 이사장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귀에서 내린 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다짜고짜 서울에 왜 올라오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 한 끼 먹자고 부르는 건 아닐 테고.
생각하던 태수가 뭔가 직감한 듯 눈빛이 살짝 빛났다.
아직 속단은 금물이다.
어차피 만나 보면 알 터였다.
띠링.
마침 비서실장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주소 보냅니다. 서울시…….
진짜 서울이었다.
태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차에 올랐다.
오라면 가야 했다.
어른이 부르는데 버티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1시간 전에만 전화를 주셨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린 태수는 어느새 차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맸다.
부릉.
다시 시동을 건 그는 곧 서울로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를 역으로 올라간 태수는 한참을 더 달려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주소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보다 30분은 더 걸렸다.
차가 너무 많고 신호에 번번이 걸린 탓이다.
대전이나 초곡리 등 너무도 한가한 곳에서 오랫동안 운전했던 태수에게는 서울의 번잡함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게 간신히 도착한 곳은 남산 위에 지어진 서울의 유명 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했기에 태수는 비서실장에게 전화했다.
“최 선생님, 도착하셨습니까?”
“네,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내려가겠습니다.”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태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려온다는 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단 뜻이다.
또 운전을 해야 하나?
솔직히 오늘은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태수의 표정이 어두워져 가고 있을 때였다.
똑똑.
차창에 노크 소리가 들려 바라보자 호텔 직원이 빙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차창을 내린 태수가 의아하게 물었다.
“여기 잠깐 서 있는 것도 안 됩니까?”
“아닙니다. 최태수 선생님 되시죠?”
“그렇습니다만.”
“발렛파킹 도와 드리려고 왔습니다. 일행분들께서 곧 내려오신다고 주차를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만.”
호텔 직원의 친절한 이야기에 태수의 귀가 쫑긋거렸다. 동시에 암울했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시다면 제가 얼른 내려야죠.”
태수는 선물 보따리들만 챙겨서 서둘러 내렸다. 그러자 호텔 직원이 차에 올라 주차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적어도 운전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태수는 그 자리에 서서 계속 미소 짓고 있었다.
잠시후, 호텔 현관에 석정현 이사장과 비서실장, 하석준 팀장이 나란히 걸어 나왔다. 하석준 팀장이 정말 반가운 기색이었으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앞으로 나서진 않았다.
태수도 가벼운 눈인사로 반가움을 전했다.
태수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석정현 이사장 앞으로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저 왔습니다.”
“대전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불려 와서 불만이 있는 얼굴이야.”
“저 지금 웃고 있습니다만.”
“눈꼬리가 굳어 있잖아.”
석정현 이사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지적하자 태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불만이라기보다는 이사장님이 장시간 비행하셨단 이야기에 걱정이 돼서 그런 겁니다.”
“핑계도 좋다. 그보다 어떤가, 홀가분해진 소감이 궁금한데.”
“자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누가 들으면 참 힘들게 군생활한 거 같네. 나 때는 말이야…….”
석정현 이사장이 예전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물론 태수가 반가워서 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렇게 흥에 겨워서 꺼낸 이야기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였다.
태수와 하석준 팀장은 만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에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때 유일하게 만류할 수 있는 비서실장이 나섰다.
“이사장님, 곧 해 집니다.”
“그렇지. 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자고.”
“그러시죠. 아, 저기 저희 차가 오네요.”
비서실장의 말에 태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정말 이 순간만은 비서실장이 고마웠다.
가까이 가보니 윤사라와 여행할 때 타고 다녔던 그 고급 세단이었다. 박성민이 전전긍긍하던 차가 전문 운전기사의 손길에 아주 부드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비서실장이 조수석에, 태수와 하석준 팀장, 석정현 이사장은 편안하게 뒷좌석에 앉았다.
부웅.
차가 아주 부드럽게 다시 출발해서 남산을 벗어났다.
이동하는 사이 태수는 선물들을 건넸다.
석재봉 부원장에게 이미 들어서 하석준 팀장의 것도 챙긴 상태였다.
크기가 다르지만 똑같은 산더덕이었다.
다들 좋아하는 건 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고급 차량은 북으로 또 북으로 이동했다.
한창 달리던 중 태수가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교통 표지판을 힘겹게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아리?”
서울 강북에서도 많이 올라온 지역이다. 강남에 비하면 그리 화려하지 않은 지역이기도 했다.
석정현 이사장이 왜 여기로 온 건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수가 의아해하는 사이, 몇 번 더 회전한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어디론가 들어가서 멈춰 섰다. 운전한 감각으로 보면 대로 바로 옆으로 들어왔다고 추측되었다.
태수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석정현 이사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태수에게 말했다.
“최 선생이 선물을 줬으니 나도 선물을 하나 주려고.”
“네?”
“일단 내리지.”
석정현 이사장은 그사이 열린 뒷문으로 나갔다.
태수와 하석준 팀장도 그 뒤를 이어 내렸다.
내리자마자 태수의 눈에 들어온 건 아주 커다란 병원 건물이었다. 외관이 선명할 정도로 하얀 걸 보니 신축 건물이 분명했다. 내부 공사 중인지 유리 안으로 여러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태수는 놀란 얼굴로 좀 더 주변을 둘러봤다.
부지가 상당히 넓었다. 금싸라기 같은 서울 땅값을 생각하면 진짜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한 건 분명했다.
그 넓은 부지에 병원 건물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뭔가 계획을 하고 있는지 여기저기 줄로 선을 그어 놓은 게 보였다.
태수는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하석준 팀장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그는 빙긋 미소만 짓고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린 태수가 석정현 이사장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병원이지.”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이긴 합니다만.”
태수가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석정현 이사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울 신속대응센터에 온 걸 환영해.”
“서울…… 신속대응센터……?”
“그렇지.”
“헉! 엄청나네요.”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그런 반응에 석정현 이사장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바로 그 표정이야.”
“아니, 이사장님, 귀띔도 전혀 들은 게 없습니다만.”
“당연히 없겠지. 우리 세 사람과 센터장 외에는 최 선생이 처음 보는 거니까.”
“그럼…….”
“아무도 몰라.”
석정현 이사장은 깜짝 공개에 대단히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하석준 팀장이 차분하게 덧붙여 설명했다.
“대전의 신속대응센터와 비교하면 조금 구조가 특이할 거야.”
“네. 일반 병원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1, 2층이 많이 넓긴 하네요.”
“거기가 응급실이니까. 그 위는 병동.”
“그럼……?”
“그렇지. 대전의 신속대응센터는 공주에 동성종합병원이란 배경이 있지만, 여긴 그게 없잖아. 그래서 한 건물에 모아 놓은 거지. 진료도 보고, 응급에 대처도 하고.”
하석준 팀장이 그동안 구상한 큰 그림을 말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