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EPISODE.05
대체로 이론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던 1, 2, 3학년까지의 수업과는 달리.
졸업반이라 불리우는 4학년부터는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의 수업들이 꽤 추가되는 편이었다.
허클 핀이 담당하는 ‘마법진의 인식과 해체’ 역시 그렇게 추가된 과목 중 하나였다.
“자, 그럼 첫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법진을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고 계시는 분?”
허클 핀 교수의 물음에, 교단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머리칼을 뒤로 땋아 단정하게 묶은, 수수한 차림의 여학생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마법사 사회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마법진을 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답입니다. 학생.”
짝짝.
학생의 답변에 허클 핀 교수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 말대로, 마법사와 마법진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일부 마법의 경우는 마법진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선 즉각 발현이 아닌 진을 통해서 마법을 구현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허클 핀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이 마주하는 모든 상황이, 여러분에게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작게는 유적이나 던전들에서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적이 설치한 종류의 마법진들까지.
“그리고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내 수업 시간을 통해 그러한 마법진들을 인식, 이해하고 해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거예요. 일단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죠.”
허클 핀은 그렇게 말하며 미리 준비해온 두툼한 양피지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때, 학생들의 앞에 나눠주었다.
‘라이트(Light) 마법을 마법진화 시켰나?’
마법진의 형태와 구조를 파악한 러셀이 어렵지 않게 마법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알아본 학생들도 있겠지만, 지금 그 마법진 속에는 라이트 마법이 담겨 있어요. 마력을 불어 넣으면 작동하는 식…….”
“-왁!”
허클 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먹 크기의 발광체 하나가 마법진에서 빠져나왔다.
환한 빛을 뿌렸다.
학생 중 하나가 시험 삼아 마력을 불어 넣는 바람에 발동한 것이다.
물론 라이트는 살상력이 없다시피 한 마법, 특별한 피해가 나오지는 않았다.
실수로 발동한 학생도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을 뿐, 곧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이에 간단히 주의를 준 허클 핀이 말했다.
“오늘 수업의 목표는, 마법을 발동시킨 후. 역순으로 그 마법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배운 마법적 지식을 활용해보고, 그 후에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개별적으로 질문하도록 하세요.”
허클 핀 교수의 설명은 거기서 끝.
화악.
여기저기서 라이트 마법이 발현되기 시작하며, 곧이어 교실 전체가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흐음.’
그 가운데 러셀이 마법진을 뜯어보았다.
평범한 1써클 마법.
허나 단순히 마법을 펼치는 것이 아닌 마법진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작지만 난이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게다가.
‘평범한 라이트 마법진이 아니라, 군데군데 수식을 꼬아서 마법진의 형태에 변형을 가했어.’
단순히 라이트 마법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우스운 꼴을 당할지도 몰랐다.
“으, 으앗!”
아니나 다를까.
한 학생의 앞에 떠 있던 라이트의 규모가 두 배가량 커졌다.
빛의 색 역시 평범한 흰색에서, 불길함을 띤 보랏빛으로 바뀌었고.
학생들 사이를 걸어가며 확인하던 허클 핀이 제자리에 멈춰 선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해체를 시도했다간, 도리어 마법의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법이랍니다. 이번의 것은 라이트 마법이고 제가 안전장치를 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결코 가볍지 않은 음성으로 경고했다.
“……만약 살상용 마법이었다면, 당신은 방금 죽었을 겁니다.”
설혹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반병신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신랄하면서도 현실적인 허클 핀의 말에 실수한 학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마법진을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 역시 전보다 진지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 쉽지는 않을 거예요.’
첫 수업이라곤 하지만,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일부러 2중 3중으로 꼬아가며 마법진을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마법진을 해체하기 위해선, 마력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했다.
‘아마도 학생들 중 지금 당장 그걸 해낼 수 있는 이의 숫자는 다섯이 채 안 되겠죠.’
그마저도 15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슬슬 10분 정도 지났으니, 조금만 지나면 해체에 성공한 이가 나오겠군요.’
그리 생각한 허클 핀 교수가 몇몇 학생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써클이 높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시선의 중심이었다.
그때였다.
화악-.
순간적으로, 마력의 밀도가 낮아지며 허공에 떠 있던 라이트 마법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은.
아직 십오 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깜짝 놀란 허클 핀 교수가 고개를 돌렸다.
라이트 마법이 완전히 사라진 마법진 양피지가 놓여 있는 자리.
그곳은 바로, 러셀의 자리였다.
* * *
‘라이트 마법진을 가장 먼저 해체한 것이 바로 러셀 레이먼드라더라.’
허클 핀 교수의 수업 중 있었던 일.
그 일이 학년 전체로 퍼져나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년의 모두가 그 소문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러셀? 러셀이라면 그 녀석을 말하는 거잖아?”
“실기 부분에선 꼴등, 바닥을 깔아주는 고마운 녀석.”
“그 녀석이 십오 분도 되지 않아서, 그것도 학급 전체에서 가장 먼저 라이트 마법을 해체했다고?”
“그럴 리가. 소문이 잘못되었겠지.”
이론이나 필기시험에서라면 모를까.
실기와 써클 부분에 있어 러셀의 성적은 학년 최하위를 다투는 수준이었다.
그런 러셀이 실기 수업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광경을 목도한 이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카데미 4학년생인 100명, 그중 한 학급인 사분의 일(1/4)가량이 그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렇게 소문이 진실로 확인되자, 러셀에 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녀석들이 조금씩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러셀이 정말로 마법진을 가장 먼저 해체했다고?”
“알고 보면 마법진 해체가 별로 어렵지 않았던 거 아니야?”
“어쩌면, 그 반 녀석들의 수준이 워낙 낮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중 몇몇은 자신이 러셀보다 뛰어난 성적을 내어 보이겠다며, 호언장담하는 이들도 있었다.
“흥. 그 녀석이 10분 조금 넘게 걸렸다면 나는 9분 만에 성공하겠어.”
“어림도 없지. 그렇다면 나는 8분이다.”
물론 그들 중 러셀의 그것을 뛰어넘는 기록을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뭐야, 러셀 녀석, 실전 관련 과목에서는 완전 꽝인 거 아니었어?”
“어쩌면 겨울 방학 중에 뭔가 특별한 걸 먹었을지도 몰라. 마력양을 늘려주는 비약이라던가…….”
“이미 다 망해버린 가문에 그런 게 어딨냐?”
“그래도 레이먼드 가잖냐. 혹시 모르지. 뭔가 숨겨둔 재물이 조금쯤은 있었을지도.”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먹었겠지.”
“그런가? 그럼 보충 수업 중에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어차피 한 번 배웠던 내용을 복습하는 건데, 거기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학생들 사이에 러셀과 관련된 이런저런 말이 오고 가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
모두 추측성에 불과한 다양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들 사이에 공통적인 의견 역시 존재했다.
그 의견은 바로…….
겨울 방학 도중 이루어진 보충 수업.
그 보충 수업을 기점으로, 러셀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었다.
* * *
첫 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함에 따라 러셀에 대한 평가 역시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개중에는 괄목할만한 변화에 단순히 놀라는 것을 넘어, 감탄을 토하는 교수들 역시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두가 그런 러셀의 변화를 좋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이 학생이건, 그렇지 않으면 교수건 간에.
‘흥. 그런 반편이에 몰락한 가문의 녀석이 갑자기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해골처럼 빼빼 마른 몸에 뾰족한 턱.
그리고 턱만큼이나 날이 선 안경에 말아 올려 묶은 보라색의 머리.
아카데미의 교수들 중에선 4써클이라는, 다소 낮은 수준의 마법 실력을 갖추고 있는 이.
학생들 사이에선 노처녀 무사벨이라고 불리는, 이사도라 무사벨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그녀에게 있어 마법이란, 권력과 가까워지기 위한 도구였다.
아카데미의 교수라는 직위는, 고위 귀족들과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종종,
아니 노골적으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고위 귀족가 자제들의 편의를 봐주는 편이었다.
단순히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하위 귀족이나 평민의 자제들, 그중에서 재능마저 없는 이들을 경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는 그들이 마치-.
‘권력도, 그렇다고 재능도.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버러지들…….’
-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이사도라의 눈에, 다 몰락해버리고 작위조차 남지 않은 레이먼드가의 자손이.
심지어 지금까지 특별히 뛰어난 면모를 보인 적 없는 러셀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분명 뭔가 술수를 쓴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교수들의 과제가 너무 쉬웠거나.’
그렇다면 내가 직접 나서 녀석에게 드리운 거품을 빼 줄 수밖에.
“러셀. 러셀 레이먼드.”
그리 생각한 이사도라가 러셀의 이름을 호명했다.
“예. 교수님.”
“근래 들어 러셀 군에 관한 좋은 이야기가 이리저리 들려오더군요. 아마도 지금까지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거겠죠. 축하해요.”
웬일로 저 여자가 나를 칭찬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칭찬에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러셀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교수님들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
“하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나는 내가 직접 본 것 이외에는 믿지 않는 편이에요.”
이사도라가 러셀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직접 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보려고 해요.”
그녀의 담당 과목은 ‘룬어와 각인’.
여러 종류의 룬어를 가르치고, 그것을 각인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과목이었다.
사각, 사가각-.
마나가 깃들어 있는 분필 하나가 칠판 위를 미끄러지며, 룬어 하나를 그려낸다.
“러셀 군. 이 룬어를 다루기 위한 기초 구조식을 한 번 완성해보겠어요?”
어디 한번 해 볼 테면 해 봐라 하는 눈빛.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미션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미션]이사도라의 시험.
당신에게 창피를 주기 위한 이사도라의 시험입니다. 그녀의 시험을 통과하세요.
[보상]최하급 마석x2
아공간 개방(40kg)
‘아……공간 개방?’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보상이, 녹색의 창 위로 쓰여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