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EPISODE.51
콰적-!
폭음과 함께 러셀의 신형이 실 끊어진 추처럼 허공을 갈랐다.
쿵, 털썩.
벽면까지 날아가 처박히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러셀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꺽…….”
숨이 턱 막히는 것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막았는데도 이 정도 충격이라고?’
더욱 놀라운 것은 주먹을 막아내었을 뿐인데, 철로 만들어진 창대가 완전히 구부러져 있다는 점이었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신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강한 강도라.
‘섬세함이나 공권이라면 모르겠지만, 일격 일격의 파괴력에서만큼은 맥라이 휴스보다 위인가.’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듯했으나, 좀 전부터 욱신거리는 통증이 계속해서 치밀어 올랐다.
“흠.”
반면에 러셀을 몰아붙인 길리언 펄슨은 숨결 하나 흐트러지기는커녕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은 상황.
물론 러셀이 마법을 사용했다면 상황은 지금과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래봐야 아주 조금이겠지만…….’
갈비뼈를 감싸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며 러셀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러셀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이 자리는 그의 전투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창술에 대한 능력만을 시험하는 자리였으므로.
“흐으음.”
러셀의 물음에 고개를 까닥이며 턱을 쓸어내린 길리언이 입을 연다.
“빈말로도 무재(武才)가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군.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떨어진다는 말은 또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범재(凡材)보다 조금 나은 정도, 하지만.
‘장점이 많아.’
일단 집중력이 뛰어났다.
‘공격에 적중당하는 와중에도 눈을 감기는커녕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동작을 읽어내려 했지.’
경험이 풍부한 것인지 호흡과 호흡 사이를 파고드는 능력 역시 꽤 출중한 편이었다.
‘하긴, 맥라이 휴스. 그 좆같은 놈과의 전투에서도 살아남았으니.’
경험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어불성설이리라.
그리고 그가 판단한 러셀의 가장 뛰어난 장점, 그것은 바로 유연한 사고였다.
‘본직이 마법사이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본래 천성이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대련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꽤 의외의 각도나 방향에서 창격(槍擊)이 날아들었던 것이 그 증거라.
‘물론 아직 무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에 움직임이 완성되어 있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손봐준다면 이 유연함을 통해 폭발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을 터.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는걸?’
그리 생각한 길리언이 러셀을 향해 물었다.
“그보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만?”
“……말씀하시죠.”
곳곳에 욱신거리는 통증은 여전했던 지라, 러셀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별건 아니고, 지금 자네가 익힌 기초 창술 말일세. 지금껏 누군가에게 지도받은 적이 있는가?”
갑작스럽게 지도받은 이력은 왜 물어보는 것인지, 의문을 느끼면서도 일단 러셀이 답변했다.
“없습니다.”
“기초 창술서를 보며 독학으로 익혔단 말이지…….”
분명 그 과정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과 분석이 들어갔을 것이다. 어쩌면 유연한 사고방식은 거기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일단 기본적인 훈련 방식 자체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겠네. 자네가 직접 창술서를 분석하고 익히게.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싶으면 내가 나서 지적해주는 걸로 하고.”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사고 자체를 고정시킬 가능성 역시 있었으므로.
“익힐 창술서는 내 서고에서 자네가 직접 골라보게.”
기초 창술서를 분석하고 이리저리 뜯어가며 저기까지 익힌 녀석이었다.
그 비상한 머리가 진짜라면, 자신에게 꼭 맞는 창술을 찾아내는 것 역시 가능할 터.
그리 생각한 길리언이 건치가 드러나도록 씩 웃으며 덧붙였다.
“아, 물론 마냥 공짜는 아닐세.”
“……?”
“그, 주에 한 번. 내가 자네를 지도해 줄 테니 그 이후엔 자네가 우리 애들과 한판 붙어주게.”
“한판 붙어 달라는 말씀은……?”
“우리 애들도 마법사와의 전투를 한 번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자네가 진심으로 나서면 상대할 녀석이 몇이나 있겠느냐마는-.”
적당히 재량껏, 마법사와의 전투 경험이 쌓일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말이었다.
‘음.’
그 말에 러셀 역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가 있었기에,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대신, 저도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예.”
이윽고 러셀의 부탁을 들은 길리언이 묘한 얼굴을 해 보이길 얼마간.
“그것도-.”
이어 그가 새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웃었다.
“-꽤 재미있는 생각이로군.”
.
.
러셀의 안내를 마친 후, 연무장으로 돌아가 검을 가다듬던 빈센이 성주.
길리언 펄슨의 연락을 받은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시지?’
고개를 갸웃하며 집합 장소인 제1 연무장으로 향하자 자신 외에도 몇몇 기사들이 당도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 빈센과 같은 2급 기사가 다섯, 3급 기사가 여섯…….
‘나머지는 4급 기사인가?’
척척-!
그를 발견한 3급과 4급 기사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준 빈센이 자신과 같은 2급 기사 무리에 합류했다.
“왔는가?”
“조금 늦었네.”
“늦기는, 성주님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으니 늦은 것은 아니지.”
인사를 나누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기사 중 하나가 그에게 묻는다.
“그보다, 성주님께서는 무슨 일로 우리를 호출했는지 아는 게 있는가?”
“글쎄…….”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갸웃한 그가 자신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러셀 경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러셀 경이라면…….”
“맥라이 휴스, 그 작자의 팔을 날려 버렸다는 마법사를 말하는 겐가?”
“그렇네. 오늘 점심 무렵, 러셀 경을 성주님의 집무실까지 안내해 간 사람이 바로 나일세.”
“오, 그렇다면 그 이야기나 좀 풀어놔 보게. 소문처럼 정말 그렇게 어린 나이던가?”
“입에서는 불을 뿜는다는 소문도 있다던데, 그게 진짜던가?”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질문에 빈센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에서 불을 뿜는다니.
아니, 그런 마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간에. 그렇게 소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
저벅, 저벅, 뚜벅, 뚜벅.
누군가가 연무장을 향해 들어왔다.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길리언 펄슨과 러셀이었다.
“다들 모여 있었군.”
“성주님을 뵙습니다!”
척척-!
언제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냐는 듯, 가을달성의 기사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검을 수직으로 세워 눈앞에 가져다 대는, 조금의 어긋남조차 없는 군례였다.
대충 군례를 받은 길리언이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자네들을 부른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네만, 일단 사람부터 소개하도록 하지.”
주물 냄비처럼 커다란 손바닥으로 러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화제의 신성, 러셀 레이먼드 백작이라네.”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러셀을 향했다.
‘저 청년이 소문의-.’
‘소문대로 붉은 눈과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입에서 불을 뿜을 것처럼 생기진 않았군.’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에 경외감(敬畏感)이 깃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마도 강자(强者)를 숭상하는 기사 특유의 문화 때문일 테지.
우스운 점은 그 눈빛이 바뀌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겠지만.
“오늘부터 매주 한 차례 자네들은 번갈아 가며 이 친구와 대련을 치를 거라네. 대련의 횟수는 한 사람당 2회, 물론 그중 한 번은 마법이나 오러 소드를 사용하지 않고 겨루겠지만.”
“-!”
길리언의 말에 단숨에 눈빛이 변한 그들이 놀라면서 웅성거렸다.
그럴 수밖에, 마법사와의 전투 경험을 위해 대련을 한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법사와 기사가 겨루면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러셀이 길리언에게 부탁한 것이 바로 이 대련이었다.
이런 부탁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오러 수련자와의 대련은 좋은 경험이지만-.’
마법만 사용해서는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창술 쪽에서의 기량이 늘지 않을 것이므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러셀이 슬쩍 고개를 숙이자, 기사들이 불이 붙은 눈을 해 보였다.
누가 봐도 불리한 것은 샌님인 마법사 쪽일진대, 자신들이 놀란 눈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분위기를 읽으며 희미하게 웃은 길리언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가을달성의 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자, 그럼 누가 먼저 나서 실력을 보여주겠는가?”
성주의 외침에 시선을 교환하던 4급 기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가을달성의 4급 기사, 베스킨입니다. 소문의 영웅께 검을 선보일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가 나서기 무섭게 러셀의 눈앞으로 녹색의 창이 떠올랐다.
[미션]가을달성 기사들과의 대련.
대련을 통해 가을달성 기사들을 꺾고 연승을 거두세요.
연승이 이어진 횟수만큼 보상이 추가됩니다.
연승의 횟수는 매주 대련이 시작될 때마다 초기화됩니다.
[보상]하급 마석(식용) x 연승 횟수.
하급 마석,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리 대단한 수준의 보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 미션의 장점은 매주 반복해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던 바.
‘개수가 많아지면 그래도 마냥 적은 양은 아니겠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 역시 있었기에.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러셀이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척.
연무장에 오기 전, 길리언에게 미리 빌려두었던 장창을 꺼내 들었다.
그에 대응이라도 하듯 베스킨이라는 사내가 검을 뽑아 들었다.
필요에 따라 한 손과 양손을 넘나들 수 있는 잡종(Bastard)검, 바스타드 소드였다.
스르릉-.
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는 소리가 제법 날카롭게 울렸다.
단순한 출수 동작일 뿐이지만, 어쩐지 절도가 느껴졌다.
검술 교본에서나 나올 법한 자로 잰 것만 같이 반듯한 동작. 그런데 왜일까.
생각보다 해볼 만하다는 것을 넘어, 충분히 이길 만하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화악-.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의 기운이 전신을 따라 휘돌기 시작하고, 뜨거운 기운이 손끝 발끝으로 퍼져나가는 동시에.
“차합!”
베스킨이 러셀을 향해 호기롭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캉, 카칵, 카가가가각!
채 세 합도 지나지 않아, 쾅!
폭음과 함께 튕겨져 나간 베스킨의 몸이 연무장을 나뒹굴었다.
뒤이어, 척.
쓰러진 그의 목에 날카로운 날붙이가 겨누어졌다.
“……헙!!”
연무장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