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EPISODE.52
“이거 또, 참. 기가 막힌 우연이로구나.”
오물오물.
마시멜로우를 찍어 먹는 다리아의 음성에 러셀이 멈칫했다.
이번에 러셀이 외유 연구 장소로 선택한 곳은, 대륙 남서부에 위치한 ‘붉은 산맥 협곡’이었다.
적갈색 암반이 산맥처럼 늘어져 협곡(Canyon)이라 이름 붙은 대지. 그런데 기가 막힌 우연이라니?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제 서랍을 열었다.
또 다른 외유 신청서 한 장을 꺼내 러셀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연찮게도, 네 사형 중 하나가 너와 똑같은 장소에 외유 연구를 신청했더구나.”
“사형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러셀을 향해 다리아가 외유 연구서 아래에 쓰여진 글귀를 손끝으로 지목했다.
[버밀리온 울센]“음…….”
마탑을 빠져나와.
인근에 있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러셀이 손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조금 전 스승과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했기 때문일까. 그 뒤로 이어졌던 대화가 연달아 떠올랐다.
‘혹시라도 협곡 안쪽에 위치한 언더 월드(Under Wrold)를 방문할 생각이라면 하양……, 백탑주. 그 아이를 찾아가 보거라. 내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터이니.’
‘언더월드는 드워프들이 거주하는 땅인 만큼, 쉽게 들어갈 수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 요정족 혼혈인 그 아이라면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드워프는 요정족,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인간보다 긴 수명을 가지고 있는 그들인 만큼, 용에 관한 소문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까지는 이번 외유 연구와 관련된 일반적인 대화. 문제는 이어진 대화였다.
‘그보다, 요즘 왕녀 전하와는 어떻느냐?’
‘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러셀을 향해 다리아가 낄낄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벌써 일 년이 넘게 지나지 않았더냐. 분명 뭔가 진전이 있어도 단단히 있었을 터인데…….’
‘그……럴 리가요. 아직 그렇지는 않습니다.’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얼버무리며 탑주실을 빠져나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물론 러셀과 헤카테 왕녀 사이에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종종, 왕녀는 러셀을 왕궁으로 초대하곤 했으니까.
이를테면 간단하게 체스를 둔다 던가…….
‘왕녀님께서 뜬금없이 마법을 공부해 보시겠다며 기초 마법 이론서를 꺼내 보였을 때는 솔직히……조금 놀랐었지.’
자신과의 대화에서 공감대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들었을 때는 가슴이 뛰기도 했었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왕녀와의 관계 진전은 딱 거기까지였다.
전보다 호감이 더 생겼단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 이상 나아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그때였다.
“……?”
카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퍼져나간 것은.
곧이어 사람들 사이로, 호랑이 같은 눈썹을 가진 사내 하나가 얼굴을 드러낸다.
평범한 성인 장정과 비교해 머리통 두어 개 정도는 더 커다란 덩치 탓에,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 사이에 머리통만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견.
버밀리온이었다.
‘웅성거림은 저 거구의 덩치 때문이겠지.’
“사형-!”
러셀이 인사하자, 버밀리온이 주물 팬처럼 커다란 손을 흔들었다.
“오, 사제!?”
이어 성큼성큼 다가와 러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오래 기다리고 있었나?”
끼에엑-.
그 사이에 근육의 무게가 더 불어나기라도 한 것일까. 자리에 앉는 즉시 그의 아래에 깔린 의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다리가 부러질 듯 휘어지는 것이 마치 죽여 달라고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만 같다.
“쯧.”
버밀리온 역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손을 움직였다. 강화 마법을 걸어 의자가 버텨내도록 만들었다.
고작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강화 마법을 사용해야 할 정도의 근육이라니.
“아닙……니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러셀이 떨떠름한 어조로 대꾸했다.
“다행이군. 평소보다 한 세트를 더 올렸더니 쇠질이 좀 늦게 끝나서 말일세. 아, 차가운 커피로 주시게. 사이즈는 가장 큰 걸로.”
러셀에게 대답하는 것과, 다가온 점원에게 주문을 한 번에 해결한 그가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보다 사제도 이번에 붉은 협곡으로 외유 연구를 신청했다지?”
붉은 협곡은, 붉은 산맥 협곡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다.
후자는 정식 명칭, 전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자주 불리는 이름인 것이다.
“예. 그런데 스승님께서 사형도 신청하셨다기에,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럼 자네도 백탑주님을 찾아가 보라는 말을 들었겠군.”
“예. 사형은 다녀오셨습니까?”
“나도 아직일세. 괜찮다면 잠시 후에 같이 가는 건 어떻겠나?”
러셀이 흔쾌히 수락하자, 그가 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런데 사제는 그곳에 외유 신청을 낸 이유가 있는가?”
“음…….”
잠시 침음을 흘린 러셀이 준비해두었던 답변을 내놓았다.
“그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조금 궁금할 뿐입니다.”
“벽을 부수는데 경험이 필요하단 거로군.”
“그럼 사형은요?”
“나? 나는…….”
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차가운 커피를 쭉 들이켰다.
벌컥, 벌컥-.
한 모금에 커피가 삼분지 일씩 사라지는 것이 물을 빨아들이는 배수구인가 싶을 정도다.
‘하물며 저게 가장 큰 사이즈…….’
달그락, 달그락.
어느새 덩그러니 남게 된 얼음이 컵 속에서 소리를 내고, 버밀리온이 말을 맺었다.
“드워프들의 기술을 배우러 간다네.”
“기술……이라면?”
드워프들의 뛰어난 야금술은 예로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이 만든 것은 반지 하나부터, 크게는 갑주에 이르기까지 명품이 아닌 것이 없다는 소문이 붙었을까.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언더월드를 방문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이어진 그의 말이 러셀의 추측을 박살 냈다.
“드워프들은 같은 근육이라도 인간보다 더한 무게를 드는 특별한 이들이지. 나는 그들이 무게를 드는 법을 배우러 간다네.”
“……?”
이걸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해 보이자 그가 껄껄 웃었다.
“내 그 방법을 배우게 된다면, 자네에게도 꼭 알려주겠네. 그럼-.”
말을 마친 그가 남은 얼음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와그적, 와그적.
“슬슬 백탑주님을 뵈러 가볼까.”
* * *
에밀리아 머윈.
백탑주인 그녀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이 백탑의 1층에 도착하는 즉시, 안내원이 그들을 탑주실로 안내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사이에 스승님께서 말을 전해두신 모양이군요.”
“뭐, 스승님과 백탑주님은 서로 친분이 있으시니까.”
그럴 만도 하다는 듯, 버밀리온이 어깨를 으쓱이고.
우우웅, 띵!
염탑에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부유석이 꼭대기에 도달하자, 탑주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방금 전까지 단잠이라도 자고 있었던 것인지, 나른한 음성.
끼이익.
문을 열자, 커다란 토끼 인형을 껴안은 소녀가 제 몸보다 거대한 소파에 몸을 묻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은, 갖은 종류에 인형들이라.
‘인형 박물관이라도 되는 건가?’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인형들로부터 마력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법의 종류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흐름.
‘아마도 백탑주님의 마법과 관련 있겠지.’
그때 그녀가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반쯤 감기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안녕. 버밀리온. 그리고……안녕. 러셀 레이먼드였지?”
한 손으론 눈을 비비며 다른 한 손으로 인사를 건네 왔다. 그 모습에 조금 놀랐다는 듯 버밀리온이 눈을 치켜떴다.
“설마 백탑주님께서 사제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을 줄이야. 제 이름을 기억하는데도 몇 년은 걸리셨는데.”
이름을 기억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었지만, 상대가 아멜리아 머윈이라면 그럴 만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름으로 기억된 마법사들의 수는 채 백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그 앨런 페이지조차도 이름이 아닌, 영감의 제자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으음.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특이한 마력을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니까.”
설마 요정족 혼혈인 나보다 더욱 정순한 마력이라니.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가볍게 손끝을 흔들었다.
화아악-.
그러자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몸이 위로 둥실 떠 오르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말해, 백탑주는 그 위에 타고 있었을 뿐. 떠오른 것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토끼 인형이었다.
“그보다 언니한테 들었는데, 언더월드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여전히 잠이 가시지 않은 것인지, 말을 하며 입을 크게 벌려 하품했다.
“……언더월드로 가는 법은 간단해. 그곳으로 이어지는 지하 포탈을 찾으면 되거든.”
“지하 포탈이요?”
“응”
슥, 손끝을 움직이자 흘러나온 마력이 거대한 협곡의 모습을 구성했다.
곳곳에 동굴이 숭숭 뚫려 있는 협곡.
“붉은 협곡에는 동굴이 많아, 그리고 이 대부분의 동굴들은 드워프들이 직접 파둔 것들이고.”
“이 동굴들이 지하 포탈과 연관이 있습니까?”
“당연하잖아? 이 동굴 중 몇 개는 언더 월드로 통하는 포탈과 연결되어 있다구.”
“그 말은 연결되지 않은 동굴도 있다는 거군요.”
“응. 어떤 동굴이 포탈과 연결된 건지는 알 수 없어. 주기적으로 바뀌거든. 그러니까 제대로 된 포탈을 찾으려면 그 주기가 적힌 지도를 들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포탈을 찾아주는 아티펙트를……어?”
듣는 사람까지도 졸음에 빠트리는 음성이 이어지길 얼마간, 돌연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으음.”
타고 있던 토끼 인형을 움직여 러셀의 곁까지 다가온 그녀가 코를 킁킁거렸다.
“백탑주님……?”
갑작스런 행동에 러셀이 당황했고, 이는 버밀리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킁킁, 킁킁킁.
그러건 말건 한동안 코를 킁킁거리던 에밀리아 머윈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너 정령이랑 계약을 하고 있구나?”
요정족 혼혈이라더니.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러셀은 순순히 인정하며 되물었다.
이미 버밀리온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정령의 계약자라는 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응. 엘프나 순혈 요정들만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거리가 이 정도 가까운 데다, 네가 계약한 정령이 중급 이상이면 알아챌 수 있지. 보여줄래?”
당돌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그녀의 모습에 러셀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갑자기 정령을 보여 달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언더월드를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러셀의 몸을 따라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더니, 머리 위쪽으로 순식간에 불꽃의 고리가 생겨났다.
화르르륵-!
캬아?
그 고리를 움켜쥐고 페퍼가 기다란 목을 쑥 내미는 순간.
“꺄아!”
백탑주가 단숨에 달려들었다.
“귀여워! 세상에, 중급 정령! 그것도 돌연변이 개체잖아!”
페퍼의 목을 움켜쥐고 그 자리에서 매달렸다.
방금 전까지 졸음을 쏟아내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
캬륵, 캬르륵-?
페퍼의 당황스런 감정이 러셀을 향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멋쩍은 표정으로 그가 머리를 긁었다.
어쩐지 탑주실 곳곳에 인형들이 종류별로 깔려 있더라니.
근육, 스위츠에 이어서-.
‘이번엔 귀여움인가.’
백탑주를 목에 매단 페퍼가, 불편하다는 듯 앞발과 날개를 버둥거렸다.
캬르르르륵-?!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