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EPISODE.54
“자자, 사양 말고 이쪽으로 오시게. 일단 도시 안에는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약 50cm가량 아래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숙이자, 털이 듬성듬성 난 드워프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 털을 가진 드워프의 이름은 ‘피기’, 송충이처럼 눈썹이 두터운 드워프의 이름은 ‘미기’.
각자가 소개했던 이름을 떠올리며 러셀과 버밀리온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어. 예.”
적대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늘, 설마 이렇게까지 환대해줄 줄이야.
무엇인가의 함정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머릿속을 스치고, 그들의 뒤를 따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러셀이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뭐가 말인가. 작은 인간 친구?”
아무래도 두 명의 드워프들은 러셀을 ‘작은 인간’으로 버밀리온을 ‘큰 인간’으로 부르기로 결정한 모양.
‘작은 인간’이라, 통상적인 범주로 생각한다면 자신 또한 장신에 속하긴 했지만-.
‘사형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
자신이 봐도 덩치가 거대해 보일 진데, 드워프가 본다면 전설 속에 나오는 티탄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러셀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언더월드까지 찾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기에, 적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도리어 환대해주셔서 말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갈색 털을 가진 드워프, ‘피기’가 피식 웃었다. 설명을 한 것은 그 옆, 미기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경계를 해야겠지만, 이곳은 언더월드가 아닌가. 언더월드를 찾아온 인간이라면 예외지.”
어째서 언더월드를 찾아온 인간만이 예외라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지만 고민은 짧았다.
머릿속에 일순 하나의 생각이 스쳐 갔기 때문이었다.
“지도를 가지고 있거나,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령의 계약자거나.”
버밀리온이 중얼거렸고, 러셀이 말을 맺었다.
“뭐야? 잘 알고 있잖아?”
“지도나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일족에게서 받았을 테니, 일족의 친구요 후자라면 악인에게 정령이 깃들 리가 없지 않은가?”
미기가 눈짓으로 어느새 러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페퍼를 지목했다.
갸르륵-.
“더욱이 불의 정령이라니. 불은 좋은 것이지.”
“아무렴. 불은 좋은 것이고말고.”
쇠를 다루는 일족답게, 불을 좋아한다더니.
“아티팩트나 지도를 본래 가지고 있던 이에게서 강탈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소?”
버밀리온의 물음에 두 드워프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군. 큰 인간. 여기는 언더월드일세. 언더월드.”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그런 불손한 목적을 가지고 단둘이서 언더월드로 들어올 정신 나간 인간이 있을 것 같은가?”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었던지라, 러셀과 버밀리온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보다 큰 인간.”
“내 이름은 버밀리온이오. 버밀리온 울센. 그리고 이쪽은 내 사제인 러셀 레이먼드.”
지상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한 이름들이었지만, 이곳은 지하, 언더월드.
드워프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기억해 놓으려는 듯, 두 사람의 이름을 몇 차례 곱씹었다.
“여하간, 큰 인간. 버……밀리온?”
“……?”
“꽤 잘 만든 근육이군. 인간치고는 상당한 근육이야.”
“그러게 말일세. 인간 중 이런 근육을 이해하는 이는 잘 없는데 말이야.”
직후 이어진 것은 영양가라곤 이만큼도 없는 잡담이라.
근육으로 대화가 통하는 한 인간과 두 드워프의 뒷모습을 일견하며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언더월드 안으로 들어가면 근육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드워프들이 지천에 널려 있을 터.
‘어쩌면 이곳은 사형에겐 지상 낙원일지도.’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걷길 얼마간, 이윽고 벼랑처럼 가파른 비탈에 난 내리막길이 끝나고.
“오, 다 왔군.”
“저기가 바로 언더월드로 들어가는 입구일세.”
언더월드의 입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강철이었냐?’
언더월드의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묵빛의,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철이었다.
이 철만 모두 녹여도, 엔디미온의 정규군 중 절반 정도는 완전 무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문도 강철이군.”
쾅쾅-.
버밀리온이 앞을 가로막은 셔터 형식의 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 두 사람을 안내한 드워프, 피기와 미기가 외벽 위쪽의 드워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성문이 열리고.
구그그그그그긍-.
“자자. 들어가세나.”
“언더월드에 들어온 걸 환영하네. 인간 친구들!”
피기와 미기가 두 사람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언더월드의 안쪽으로 들어서며 버밀리온이 물었다.
“그보다, 사제는 지금부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예?”
“나야 근육 다루는 법을 배우러 갈 생각이네만, 사제는 다른 연구를 목적으로 오지 않았는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턴 따로 행동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일세.”
“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근육 이야기에 끌려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확실히 사형의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좋아. 그럼 다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돌아가는데 걸릴 날까지 계산한 그가 빠르게 첨언했다.
“앞으로 삼 주 후, 점심 식사 후에 이곳에서 다시 보는 것이 어떤가?”
삼 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안에 용의 흔적이나 용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구 기간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가 최선이었던 바.
“삼 주 후, 알겠습니다.”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날 다시 보는 걸로 하지.”
대답을 들은 버밀리온이 안내를 해준 드워프 중, 피기를 향해 다가갔다.
이윽고 뭔가를 물어본 후 그의 안내를 받으며 떠나갔고,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미기가 물었다.
“작은 인간도 어딘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
오랜만에 찾아온 인간 손님이라서 그런 것인지, 안내를 해주고 싶은 모양.
“음…….”
그 기색을 읽으며 러셀이 질문했다.
“전승에 따르면 언더월드는 두 마리의 드래곤에게 축복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맞습니까?”
“오. 우리들의 오랜 역사지. 철과 바람을 관장하는 은룡(銀龍)과 강철의 축복을 불을 관장하는 화룡(火龍)께 불꽃의 축복을 받았다네. 이곳의 광맥에서 질 좋은 철이 나고, 그것을 녹일 뛰어난 불이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지.”
기록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그 두 용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습니까?”
“흔적? 글쎄…….”
미기가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갸웃했고, 잠시 후 덧붙였다.
“흔적이라면 모르겠지만, 제단이라면 있다네. 오래전 두 분께서 축복을 내려주셨을 때 지은 것이고 몇천 년 전에는 왕왕 그곳에서 머물기도 하셨다고 하더군.”
“……!”
제단이라는 말에 러셀의 두 눈이 빛을 발했다. 단순히 제를 올리기 위한 제단이 아니라, 실제로 드래곤이 머물기까지 했다면-.
‘뭔가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물론 몇천 년 전의 흔적인 만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긴 했지만.
그렇기에, 기다렸다는 듯 미기를 향해 물었다.
“그 제단이라는 곳, 외부인도 직접 볼 수 있는 곳입니까?”
그런 러셀의 기대에 응하기라도 하듯, 미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따라오시게.”
* * *
“우선은 화룡을 모시는 제단부터 가보세나.”
두 용의 제단이 한곳에 있었다면 편했겠지만 안타깝게도, 화룡과 은룡을 모시는 제단은 서로 다른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쪽과 서쪽, 언더월드의 극과 극이란 말이지.’
제단으로 향하기 위해선 언더월드를 필수적으로 가로질러야 했던바.
미기의 뒤를 좆아 걸음을 옮기고 있노라니 언더월드 내부의 광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시장인가?’
드워프 상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저마다의 상품을 내걸고 줄지어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
개중에는 드워프답게 여러 무구들 역시 있었지만, 그밖에 생필품이나 식료품 따위도 상당했다.
그 중 눈을 끄는 것은 당연 무구들이었다.
단순히 눈으로 훑은 것뿐인데도, 날이 잘 벼려진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검과 창들.
거기에 비견될 만큼 단단해 보이는 갑주와 방패 등등.
한동안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함께 걷던 미기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어떤가? 여기서 파는 창검이나 방어구는 모두 우리가 직접 만든 것이라네.”
“명불허전인 것 같습니다. 대단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나하나가, 수십 년 이상 고련한 야장의 작품과 비견될 정도. 그것들이 이렇게 널려 있을 정도라면…….
‘드워프들 사이에서 명품으로 취급되는 물건들은 정말 대단하겠지.’
그런 러셀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미기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렇지?”
팔꿈치로 러셀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자랑했다.
“그 유명한 쿠릴의 수왕(獸王) 무야호가 애용하는 무기도 바로 우리 선조들이 만든 것일세!”
수왕(獸王) 무야호.
쿠릴 아일랜드에 관한 정보를 모으던 당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수인(獸人)들의 왕.
어지간한 초인(超人)들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강자인 동시에, 쿠릴 아일랜드의 지배자라고 하던가.
‘그의 애병(愛兵)이 드워프제였다라.’
딱히 쓸모 있는 정보 같지는 않았지만, 기억해 둬서 나쁠 것은 없을 테지.
그리 생각한 러셀이 시선을 한차례 빙글하고 돌렸다.
“그런데, 드워프가 아닌 이들도 생각보다 많군요.”
드문 것은 인간일 뿐.
“대부분이 아마조나 수림에 살고 있는 요정족들이라네. 우리와 교역도 하거니와, 필요한 게 있으면 이렇게 직접 와서 사가기도 하지.”
작은 요정의 형상을 하고 있는 페어리에, 고목의 형상을 한 트리(Tree)나 아마조나 대수림에서만 볼 수 있다는 페더(Feather)족 역시 있었다.
‘저게 페더족이란 말이지.’
크기는 손목에서 팔꿈치 길이 정도에, 전신이 털로 휩싸인.
새의 머리에 인간의 그것처럼 생긴 몸을 가진 요정족이었다.
러셀이 이미지 마법으로 그들을 기록했다.
인간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들인 만큼, 이번 기회에 자료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캬륵-?
러셀의 머리를 둥지 삼아 쿨쿨 자고 있던 페퍼가, 돌연 머리를 들어 올린 것은.
갸륵, 갸르륵?
삐죽 세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페퍼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펄럭거리며 날아올랐다.
갸륵, 갸르륵.
푸드덕-!
시장에 있는 요정족들을 가로지르며 누군가를 향해 날아들었다.
갸르륵-.
“너는-!”
이윽고 페퍼를 알아본 어떤 이가 작게 소리치며 고개를 돌리고.
자신에게 날아온 페퍼를 품에 안기 무섭게, 누군가를 찾기라도 하듯 두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러셀을 발견하곤 두 눈을 치켜떴다.
금발을 지닌 여타의 엘프들과 달리 은발에 은빛의 눈동자를 지닌 엘프.
하얀 물푸레나무 부족 이오가, 러셀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은인-!?”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