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1
11화
EPISODE.06
전혀 예상치 못한 보상의 등장에, 러셀이 녹색의 반투명한 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일까.
“뭘 망설이고 있는 건가요?”
설마하니 자신이 없는 것을 아닐 테고.
미묘한 조롱의 기색을 섞어 이사도라가 빈정거렸다.
“아닙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러셀이 이사도라에게 대답하며 강단 앞으로 나섰다.
나서며 칠판에 쓰인 룬(Rune)을 확인했다.
‘스리사즈인가.’
룬이란 마도학에서 중요하게 취급받는 고대의 문자였다.
그 중 ‘스리사즈’.
‘얼음과 냉기를 상징하는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비보. 혹은 좋지 않은 일 따위를 상징하는 룬이기도 하지.’
비록 칠판에 쓰여 있는 간이 룬이라곤 하지만, 분필에 마력까지 담아 작성한 것이었다.
설혹, 저것을 다루는데 실수라도 한다면 흘러나온 냉기로 인해 손가락에 동상을 입게 될 터.
뒤늦게 룬의 정체를 확인한 몇몇 학생들이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3학년이 될 때까지, 실기 부분에 있어선 딱히 특별한 점을 보인 적이 없는.
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열등생.
그 열등생이 과연 이번에도 무사히 교수들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망신을 당하게 되겠지.’
아니 망신을 당하는 것을 넘어 손가락 동상이라는 직접적인 부상 역시 입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가락을 사용하는 실기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고.’
고의성이 다분한, 의도가 훤하게 보이는 상황에 러셀이 가볍게 혀를 찼다.
‘이사도라 교수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당해주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이제 과거의 러셀이 아니었으니까.
‘시험해보길 원한다면, 통과해주지.’
마음을 다잡은 러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예전이었다면 스리사즈의 마력을 통제하기는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우우웅-.
벌떼가 날아오르는 소성과 함께 심장의 써클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두 개의 써클이 서로 반응하며 더욱 큰 공명을 만들어내고.
“……설마?”
가장 지근거리에서 그 공명을 느낀 이사도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열등생이, 설마하니 그사이에 2써클을 만들어냈을 리가!?’
방학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신히 1써클을 넘어설 정도의 마력양만을 가지고 있던 열등생이었다.
그런 열등생이 고작 두 달 정도에 불과한 겨울 방학 동안 2써클에 도달했을 리가 없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현실을 부정해봤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마법사로서 이사도라의 감각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열등생이, 그 시간 동안에 2써클에 도달했노라고.
물론 거리가 좀 있었기에 학생들은 느끼지 못한 듯했지만.
사각, 사각 탁.
그 사이 스리사즈 룬의 앞뒤로 새로운 룬문자 몇 개를 새겨 넣은 러셀이 분필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에 동상을 입지도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스리사드의 변칙성 역시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
“이, 이게 아닌…….”
그때까지도 이사도라는 눈앞에 일어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교수님.”
하지만, 이내 들려온 러셀의 목소리에 그녀는 앓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답이에요. 러셀 군.”
[미션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아공간이 개방됩니다.] [지금부터의 보상은 아공간 안쪽에 자동으로 수납됩니다.] [마석이 아공간에 수납…….]그녀의 대답과 함께 들려오는 알림을 뒤로하며 러셀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구요?”
“네. 하마터면 실수 했을지도 모르거든요. 만약 문제가 조금 더 어려웠다면 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이사도라는 왠지 정신이 퍼뜩 드는 것 같았다.
“그, 그래요. 어쩌면 문제가 너무 쉬웠을지도 모르겠군요. 제대로 된 시험도 되지 않았겠어요. 그렇다면…….”
연이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칠판에 새로운 룬어 수식을 적었다.
기다란 구조에, 일부가 지워져 있는 수식.
확실히 전보다는 조금 더 난이도가 올라가긴 했다.
“이번에는 이 수식을 한번 해결해 보겠어요?”
[미션]기다렸다는 듯 녹색의 창이 다시 한번 떠오르고, 러셀이 씩 웃었다.
‘혹시나 했는데, 이게 되네.’
이번 보상은 단순히 최하급 마석 1개. 하지만 중요한 점은, 미션이 연속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이었다.
‘될까 싶어 일부러 유도하긴 했지만.’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자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웃음을 터뜨리는 대신, 꾹 참으며 고민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수식을 채워나갔다.
[미션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그 후로도 비슷한 방식으로 러셀은 몇 번이나 이사도라를 자극했고, 연이어 미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이번에는 이걸!”
[미션] [미션을 완료…….]“이, 이번에는!”
이사도라가 포기한 것은, 그 후로도 두 번이나 더 문제를 낸 후였다.
처음 한 것까지 포함하면, 총 일곱이나 되는 미션을 해결한 상황.
“이, 이제 들어가도 좋아요.”
어쩐지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그녀가 말했고, 러셀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언뜻 보면 학생이 교수의 지도편달에 예의를 차리는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정작 러셀이 그녀에게 감사한 것은 따로 있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더니.’
전생에는 악연으로 엮였던 이사도라가,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러셀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쌓인 보상을 확인해봐야겠지.’
* * *
자리로 돌아온 러셀은 가장 먼저 아공간을 개방했다.
아공간을 개방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개방’ 혹은 ‘아공간을 개방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화악. 왼손 검지 끝에서부터 공간이 갈라진 것이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공간의 안쪽으로 통하는 입구.
‘용량은……40kg 정도라고 했었지?’
러셀이 머릿속으로 비슷한 용량을 지닌 아공간 주머니의 가치를 헤아림 했다.
‘주머니의 형상이 아니긴 하지만.’
마땅히 비교할 만한 것이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10kg 정도 용량을 가진 주머니의 가격이 얼마였더라.’
마법이 걸렸다곤 하나, 아공간 주머니는 꽤 대중적인 편에 속하는 물품이었다.
그렇기에 아공간 주머니의 가격 역시 천문학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낮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꽤 고가의 사치품에 속하는 편이지.’
대중적이라는 의미는, 돈만 있다면 구할 수 있다는 말이었고.
‘그래. 돈만 충.분.히 있다면 말이지.’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에, 러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횡재했네.’
설마하니 마석이나 각 속성에 대한 이해도뿐만이 아니라, 아공간 자체가 보상으로 나올 줄이야.
어쩌면 앞으로도 이렇게 간간이 예상치 못한 보상이 나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에 얻은 보상은 또 있었다. 아공간 안쪽에 손을 넣고 가볍게 뒤적이자, 여러 개의 마석들이 줄지어 딸려 나온다.
도합 일곱 개의 마석.
평소 보상으로 받아온 마석들과 비교하면, 크기는 중간치고 조금 작은 것들이 둘.
그리고 아주 작은 것들이 다섯이었다.
‘그나마 큰 것 두 개가 가장 처음의 보상이고, 나머지 다섯 개가 이어서 나온 보상인가?’
크기가 작은 이유는 비슷한 느낌의 미션을 단숨에 몰아서 해결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편법을 이용했기 때문이던가.’
어느 쪽이건 간에, 아쉽기는 마찬가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작 십분 남짓한 시간 만에 이만큼이나 되는 마석을 얻은 거니까.’
여기서 더 욕심을 낸다면 그건 과욕일 터.
댕, 댕, 댕-.
곧이어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러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 밖으로 나서며, 아침 일찍.
기숙사를 빠져나오기 전에 확인했던 오늘의 시간표를 떠올렸다.
‘이사도라 교수의 수업이 끝났으니, 다음은 일단 점심시간이고.’
그다음은…….
그렇게 복도에서 걸음을 옮기길 몇 걸음, 척.
“러셀 레이먼드.”
반대편에서 다가온 어떤 그림자 하나가 러셀의 걸음을 막아섰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러셀이 인상을 찌푸릴 새도 없이 제 할 말을 내뱉었다.
“찾아다녔다.”
주근깨 가득한 피부에 물 빠진 연갈색 머리칼. 짜증 가득한 시선에 누군가를 꼭 닮은 얼굴까지.
녀석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멍청이인 제 동생과는 달리 나름대로 아카데미 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는, 또한 상단을 물려받기로 예정된 프레드릭 남작가의 차남.
코마 프레드릭의 쌍둥이 형.
“안톤 프레드릭.”
설마 동생의 복수라도 하겠다고 찾아온 건가?
그렇게 묻자 안톤 프레드릭이 우습지도 않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내가 그 버러지의 복수를 하러 왔냐고?”
한쪽 입꼬리만을 삐죽이 말아 올린 채로 말했다.
“그딴 녀석이 어떻게 되든 알게 뭐람. 나는 단지 우리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러 왔을 뿐이다.”
“그걸 왜 나한테 와서 찾는지 모르겠는데.”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응수하자, 녀석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러셀을 쏘아봤다.
“네 녀석 때문에 우리 프레드릭 남작가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으니까.”
앞서 한 말에서 드러나듯, 안톤은 제 쌍둥이 동생인 코마 프레드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돈까지 들여가며 기여 입학을 시켜 두었더니, 열심히 공부 하기는커녕 매번 놀 궁리만 하며 학비를 축내는 머저리 같은 동생이었으니까.
좋아하기는커녕 경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 그 머저리 같은 동생의 소식이 학교 내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어느 놈에게 제대로 얻어맞고는 눈치를 보고 다닌다는 소식이었지.’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의 상대는 러셀 레이먼드였다.
‘열등생 중의 열등생.’
아무리 머저리 같은 놈이라지만, 설마 그런 열등생에게까지 맞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문은 사실이었지.’
헛소문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방학 당시 달라진 러셀과 코마의 관계를 목격한 이들의 수가 제법 되었다.
‘멍청한 놈.’
별로 좋아하는 동생은 아니었지만, 프레드릭의 성을 달고 열등생에의 눈치를 보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던 바.
안톤이 직접 나선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장소에서 함부로 손을 쓸 수는 없지.’
마법을 사용하건 그렇지 않건, 교수들에게 걸렸다가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으니까.
“오늘은 그 전에 경고를 하러 온 거다. 제대로 혼쭐이 나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말이야.”
몰락해 버린 가문의 자손이면, 그 주제에 맞게 굴어야지. 아비도 없는 놈 주제에.
딴에는 충분한 경고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며 안톤이 몸을 빙글 돌리는 순간.
“개소리를 장황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편인가 봐?”
한줄기 서늘한 음성이 그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