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EPISODE.57
마법사라는 양반이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더한 근육을 가졌다는 것은 그렇다 치자.
원래 그런 양반이었으니까.
그런 양반이 평소와는 달리 로브의 팔 자락을 걷고, 두터운 팔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도 그렇다 치자.
거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태닝이라도 한 듯, 피부를 태워 먹은 것도 그렇다 치자.
그런데 도대체 저 번들거리는 피부는 뭐란 말인가.
‘사람이 광물도 아니고…….’
빛을 받아 구릿빛으로 번들거리는 근육을 보며 그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러셀을 발견한 듯, 버밀리온이 커다란 손을 위로 뻗어 흔들어댄다.
“왔는가. 사제?”
그때마다 그의 팔뚝을 타고 굵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땀도 아닌 것이, 좀 더 끈적끈적해 보이는…….
‘기름?’
그 정체를 파악하기 무섭게 러셀이 그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설마 온몸에 기름을 바른 겁니까. 사형?”
러셀의 물음에 버밀리온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어떤가? 이 기름이야말로 드워프들이 가진 근육의 비밀이라고 하더군.”
정확하게는 기름이 아니라 연고라고 불러야겠지만, 그렇게 말을 맺는 버밀리온을 향해 러셀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꾸준히 바르면 기존에 있던 근섬유들을 압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
그러건 말건 버밀리온이 기름- 아니, 연고가 뚝뚝 묻어나는 제 몸의 근육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인다.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는 효과가 낮아 조금 개량이 필요한데다 설혹 효과가 있다 한들 다시 여기까지 근육을 키우는 데에 더욱 공을 들여야겠지만.”
설명을 이었다.
“개량에 성공한다면 사제에게도 꼭 나눠주도록 하지.”
진심이다 못해 광적이기까지 한 버밀리온의 모습에 러셀이 떨떠름한 표정이나마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감사합니다. 사형.”
근섬유를 압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조금 흥미가 생기기는 했다.
‘애당초 내 전투 스타일을 생각하면 사형 같은 커다란 근육보다는 잘 압축된 근육이 더 좋기도 하고.’
그때.
“그보다 사제는 어떤가?”
버밀리온이 커다란 팔꿈치로 러셀을 툭 쳤다.
“개운치 않아 보이는 얼굴을 보니 예상보다 이번 외부연구의 소득이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군.”
“음…….”
짧게 침음한 후,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짧지만 용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정화가 깃든 뿔을 얻기까지 한 상황이니까.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런가? 고민이 몇 개는 늘어난 것 같은 눈인데.”
“연구 소득과는 별개로, 고민되는 일이 몇 가지 있어서 그렇습니다.”
“흠, 연구 소득과 별개로 고민되는 일이라…….”
버밀리온이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턱을 몇 차례 쓸어내리며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간 몇 번, 드워프들의 대화를 통해 얼마 전 들어온 작은 인간이 언더월드의 대도서관을 드나들고 있다는 소문은 그 역시 들은 적이 있었다.
‘막내 사제가 도서관을 찾은 이유는, 둘밖에 없겠지.’
마법사로서의 연구, 혹은 탐구욕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뛰어넘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
‘지금 막내 사제의 경우라면…….’
아무래도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컸다.
“6써클의 벽을 넘어서기 위한 고민인가?”
앞서 자신에게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점도 그렇고, 그 답변까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예리한 버밀리온의 식견에 고소(苦笑)하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음.”
100명의 마법사가 있으면 100개의 깨달음이 있다는 말대로.
사실 마법사들에게 있어 깨달음이란 굉장히 섬세한 문제였다.
여기서 자칫 말을 잘못 보탰다간, 도움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었던바. 하지만-.
‘생각의 방향을 고정시키는 쪽만 아니라면, 조언 몇 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물론 대부분이 원론적인 수준에서 그치겠지만, 그 역시 마법사였기에.
막내 사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
“사제의 성장 속도는 이 시대의 어떤 마법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평소 근육에만 진심이던 그답지 않게 진중하면서도 무거운 음성이라.
“그래서 더욱 조바심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본디 그것들은 쉽게 넘을 수 없기에 벽이라 불리는 것이고 쉬이 찾아오지 않기에 깨달음이라 불리는 것들일세.”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목소리에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비교하자면 그것들은 내게 근육을 기르는 것과도 같았지.”
“근육이요?”
진지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러셀이 떨떠름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창 깨달음과 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는 근육 이야기라니.
“음, 이를테면 1500파운드(680kg)를 예로 들 수 있을까?”
순수 육체의 힘만으로 도합 1500파운드를 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참 고생을 많이 했었지.”
실패와 좌절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어느 날 갑자기 1500파운드의 무게가 들어지더군.”
“어느 날 갑자기…….”
“그렇네. 분명 어제까진 들어지지 않는 무게였는데, 오늘은 갑자기 들어지더란 말이지.”
쉽게 말하면 근육……의 벽(?)을 넘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무게를 들어 올리니, 한순간 내 힘이 강해졌다기보다는 그간 해온 꾸준한 노력들이 빛을 발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
버밀리온이 러셀을 돌아보며 첨언했다.
“나는 마법의 깨달음도 이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네. 하루하루, 꾸준히 노력하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 말일세.”
그리고-.
버밀리온의 말대로, 깨달음의 순간은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 * *
들어왔던 동굴을 출구 삼아 거슬러 올라가길 몇 시간.
마침내 러셀과 버밀리온이 언더월드를 빠져나왔을 때는 해가 지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다.
화악-.
붉은 노을이 하늘을 따라 번져 나간다. 이내 그 빛살이 지상에까지 드리우며 협곡의 바위들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천지가 불에 타오르는 듯한 광경.
전날 언더월드로 들어가기 전, 러셀이 보았던 풍경과 똑같은 풍광이었다.
두 번을 보아도, 아니.
몇 번을 보더라도 장관일 것이 분명한 풍경.
“볼 때마다 장관이로군. 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석양을 보았지만, 이런 석양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야.”
장엄한 광경에 잠시 멈춰선 버밀리온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어 그렇지 않느냐는 듯, 러셀을 돌아봤다.
“사제?”
허나, 그 물음에 러셀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없었다.
풍경을 목도한 순간, 뇌리 속으로 끼쳐온 감상이 전날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
화아악-.
노을을 통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허물어지듯,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무엇인가의 존재가 허물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는 와중에 머릿속을 쉬지 않고 떠돌던 앎과 깨우침의 편린들이 거대한 격류로 화했다.
그와 동시에 러셀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콰과과과과-!
거대한 파도에 집어 삼켜진 러셀의 의식이, 격랑에 표류하는 나뭇잎과 같이 그사이를 떠돌았다.
온갖 것들이 몰려와 러셀의 로브 자락을 적셔댔다.
그 속에서 나(我)를 잃지 않기 위해 러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쉬지 않고 써클링 작업을 반복해 나가는 것뿐.
우우우웅-.
써클이 회전함에 따라 흘러나온 마나가 뇌리에까지 미치고.
솟구친 마력이 러셀의 정신을 보듬었다. 거대한 격랑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탱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영원이 찰나처럼 느껴지기도 한 시간 속에서 러셀은 마지막으로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하늘과 땅.
천지를 태우듯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장엄하게 떨어져 가던 순간을.
화악-.
그 광경이 떠오름과 동시에 러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격류가 뒤로 성큼 물러난다.
그리고 그중 일부, 뻗어 나온 지류와 같은 물줄기들이 그의 심상을 휘감았다.
한 줄, 반 줄, 반 토막 등.
수없이 많은 이론과 수식이 갈마들며 러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광경을 마법적으로 분석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끝마쳤을 때.
비로소 러셀은 자신의 심상을 하나의 마법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러셀 레이먼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폴링 썬(Falling Sun).
블레이즈 랜스로부터 시작하여 게이볼그(Gae Bulg)까지 이어지는 대인마법이 아닌.
일격으로써 다수를 격살할 수 있는 대군마법(大軍魔法).
‘폴링 썬’이 그 진체를 드러냈다.
러셀의 심상 위로, 거대한 태양이 떨어져 내렸다.
* * *
치르, 치르르르-.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귓가에 들려온 것은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우는 소리였다.
온통 바위만이 가득한 협곡에 풀벌레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잡초들의 억척같은 생명력은 단단한 바위조차 뚫고 올라오는 법이었으니까.
화아악-.
뒤이어 시원한 바람이 전신을 쓸어내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찬찬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러셀의 눈에 비친 것은 별들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이었다.
언더월드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발광석이 아닌, 별들이 빛나는 진짜 밤하늘.
타닥, 다다닥-.
뒤이어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움직이자, 동굴 입구에서 야영 준비를 모두 마친 뒤 모닥불에 장작을 넣고 있는 거한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버밀리온이었다.
“-깨어났는가?”
러셀의 시선을 느낀 듯,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모닥불 속에 던져 넣은 그가 고개를 돌렸다.
“깨달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난데없이 찾아올 줄이야.”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것, 진심으로 축하하네. 사제.”
축하와 놀람이 반반 뒤섞인 음성. 그럴 수밖에. 대륙의 역사를 이 잡듯 찾아보아도 고작 스물의 나이에 6써클에 올라선 이는 채 다섯이 넘지 않을 테니까.
그마저도 러셀을 제외하면 나머지 전부는 신화시대의 인물일 것이고.
“……감사합니다.”
축하의 말에 새삼 자신의 경지가 올라섰음을 되새기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기분이 어떤가?”
“음.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5써클에 올라섰을 때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달라졌음을 단박에 실감 할 수 있었거늘.
그와 달리 지금은 오히려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뭐, 그럴 수 있네.”
이해한다는 듯 버밀리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막 새로운 경지의 문을 열고 들어선 참이니, 얼떨떨하게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
같은 마도사(魔導師)라고 분류되긴 하지만, 5써클과 6써클은 그 깊이부터가 달랐다.
감상에 차이가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며 러셀이 물었다.
“그런데 시간은 얼마나 흘렀습니까?”
5써클에서 6써클로 넘어서는 순간에 걸리는 시간은, 마법사에 따라 개인차가 있는 편이다.
짧은 이는 고작 며칠 만에 각성이 끝나는가 하면, 긴 이는 몇 달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기도 했으니까.
‘머리칼이 많이 자라지 않은 걸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은데…….’
짧으면 며칠, 길어야 열흘 정도?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고.
“어, 음-.”
말꼬리를 흐리며 버밀리온이 손가락 세 개를 치켜들었다.
“사흘입니까?”
그리 긴 편은 아니었지만, 예정된 복귀 시간을 넘겨 염탑에선 소란이 일어났을 가능성 또한 있었던바.
미미하게 걱정이 번지는 러셀의 얼굴을 들여 보며 버밀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사흘은 무슨.”
“……?”
“세 시간.”
“예?”
“고작 세 시간 지났을 뿐일세.”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짧은 시간에, 러셀이 두 눈을 끔뻑였다.
.
.
“우선 오늘은 텐트 안으로 들어가 푹 쉬도록 하게. 사제 몫의 텐트까지 내가 쳐 두었으니 말이야.”
버밀리온의 말을 뒤로하며 텐트 안으로 들어온 러셀이 침낭 깊숙이 몸을 묻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이 6써클에 올라서기까지 걸린 시간을 되뇌었다.
‘사흘도 아니고 세 시간이라…….’
짧아도 너무 짧다.
역사상 유래를 찾아봐도, 자신 만큼 짧은 시간이 걸렸던 마법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용신왕의 힘과 각성 시간이 관련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간, 이내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짧은 시간 집중해서 고민해봤지만, 딱히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 보다-.
‘당장 할 수 있는 걸 확인하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한 러셀의 시선이 한쪽으로 슬쩍 움직였다.
[6써클을 달성하셨습니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최상급 마석(식용)x1, 상급 마석(식용)x5, 중급 마석(식용x)5, 하급 마석(식용)x20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을 지급합니다.]자신의 눈동자 위로 투영되는 녹색의 창 무더기를 확인한 러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쌓인 보상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