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EPISODE.58
“폴링 썬(Falling Sun)-.”
너무도 찬란한 빛 앞에선, 주변의 빛이 그 힘을 잃어버린다고 하던가.
시동어와 함께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암전(暗轉)이라도 된 것만 같은 어둠이 찾아 들었다.
실제론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러셀이 만들어 낸 태양의 존재감은 강렬했으므로.
화락, 화락-!
화우어어어어어-!
당황하기라도 한 것일까.
화염으로 이루어진 난쟁이와 거인의 포효가 어쩐지 구슬프게 들리고, 직후.
일몰(日沒)이 내려앉았다.
―.
.
.
대파괴(大破壞)의 이적이나 귀를 먹먹케 하는 굉음 따위는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불길이 격류로 화해 장내를 뒤덮는 소리만이 울렸을 뿐.
화화화화화화-
그 불꽃의 격류에 휩쓸린 난쟁이들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 흩어져갔다.
폴링 썬이 지닌 화력은, 같은 불꽃조차 살라 먹을 만큼, 강렬했다.
화염의 거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화우어어어어-.
짧은 순간 반항하기는 했지만 그뿐, 염격류(炎激流)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던 거인이 그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 연무장을 8할가량 뒤덮었던 불꽃이 사그라들었을 때.
‘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버밀리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6써클에 들어선 지 채 며칠 되지 않은 마법사가 보인 마법이란 말이지…….’
위력은 물론 캐스팅 속도나 마법의 완성도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그것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만의 오리지널 마법이라면 더욱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테고.
‘괴물인 줄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막내 사제의 실력은 매번 내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군.’
물론 그 역시도 저와 같은 광경을 보일 수 있긴 했다.
아니, 해내라고 한다면 러셀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버밀리온 자신은 6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7써클을 내다보고 있는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자신이 막 6써클에 들어섰을 당시와 비교하면-.
‘엄두조차 내기 힘든 수준이로군.’
이거 사제에게 따라 잡히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겠군.
‘근육도, 마법도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의욕을 고취시키는 버밀리온과는 달리, 러셀의 마법을 마주한 다리아의 두 눈은 전보다 더욱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의 장난스러움조차 내비치지 않는 시선.
그럴 수밖에. 마스터라곤 하나 러셀과 같은 6써클인 버밀리온과는 달리, 그녀는 8써클의 대마법사였다.
러셀의 마법에서 버밀리온이 보지 못한 것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그렇군, 막내 녀석.’
어떻게 벽을 돌파했나 했더니, 설마하니 심상현현에 성공했을 줄이야.
심상현현(心象顯現).
그것은 써클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이, 잡아채기만 한다면 자신이 머릿속에 그려낸 광경을 마법을 이용해 재현해낼 수 있는 어떤 마법적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현상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고, 어떻게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설혹 8써클에 달하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심상현현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러셀과 같이 6써클의 마법사라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심상현현이 마법사에게 있어선 일생일대의 기회나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이룰 수만 있다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을 테지.’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보기에 러셀의 심상현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러셀 스스로의 실력이 향상되기만 한다면, 보완은 물론 개선의 여지마저도 남아 있는 마법.
만약 저 마법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는지.
상상만으로도 피부 위에 소름이 돋는다.
괜히 등줄기를 따라 오싹거림이 번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말년에 거둔 막내 제자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구나.’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이, 예의 ‘낄낄’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이빨 사이를 비집고 나올 것만 같다.
마음 같아서는 장하고 잘했다며 다시 한번 어깨를 도닥거려준 후, 마법을 이용해 위로 어화둥둥 ‘높이 높이 날아라-!’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아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이미 칭찬은 앞서 충분히 해주었으므로, 스스로의 감정을 꾹 누르며 말했다.
“분명 대단한 마법이긴 하지만, 아직 보완할 것들이 꽤 있어 보이더구나.”
칭찬은 하찮은 미물조차 춤추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하나, 마냥 좋은 말만 해주는 것이 스승의 역할은 아니었기에.
“뛰어난 성취를 이뤘다곤 하나, 결코 자만하거나 나태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만은 참지 못했지만.
그런 스승의 속내를 짐작하며 러셀이 희미하게 웃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막내는 말뜻을 잘 알아듣는 편이니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다부진 러셀의 대답에 다리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 둘째까지 불러 저녁 식사나 함께하자꾸나.”
본래 예정되어 있던 헤밍웨이와의 저녁 약속은, 대충 며칠 미루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변질한 지 오래.
“마침 내가 자주 가던 식당에서 딸기 디저트 뷔페를 한다지 뭐냐.”
‘딸기 디저트 뷔페’라는 말에 러셀과 버밀리온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어-.”
“음…….”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
굳이 소리 내 말 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디저트를 식사 대용으로 삼기엔 좀…….’
‘디저트, 당분, 탄수화물, 아…….’
* * *
“우욱-.”
당분을 과도하게 섭취한 탓일까.
마차에서 내리며 휴버트가 가볍게 헛구역질했다. 어쩐지 혀끝이 아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피인지 그렇지 않으면 당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 정도.
“괜찮으십니까. 사형?”
그보다 반 박자 늦게.
마차에서 내린 러셀의 물음에, 휴버트가 조금 질린 얼굴로 대꾸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지만, 스승님께선 잘도 그런 걸 질리지도 않고 드시는군.”
아무래도 나는 이만 들어가서 쉬어야겠네-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움직이길 몇 걸음.
돌연 휴버트가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사제, 이미 식사 중에 몇 번이나 말을 한 것 같네만…….”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러셀에게 말했다.
“벽을 넘어선 것,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하네.”
.
.
딸깍-.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러셀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익숙하게 옷걸이에 염탑의 로브를 걸어 놓았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보통 자신보다 어린 사제의 성취가 이 정도로 빠르면, 조금이라도 시기하는 마음이 들 법도 하건만.
그런 티를 내기는커녕 진심으로 축하를 해줌과 동시에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할 뿐이라니.
‘좋은 정도를 넘어 고맙기까지 한 사람들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창틀을 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의 방, 내부의 공기를 환기시켰다.
‘내일부터는 휴가네.’
휴가 기간은 약 보름.
외유 연구를 끝내고 돌아온 러셀이 휴가를 신청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걸……흡수하기 위해서.’
촤라락-.
아공간을 열기 무섭게 러셀의 의식에 따라 안에 들어 있던 갖은 종류의 마석들이 쏟아져 나온다.
달그락-.
이어 바람으로 이루어진 듯한, 반투명한 뿔이 마석 위로 모습을 보이며 대미를 장식했다.
‘용신왕의 뿔, 바람의 정화.’
앞서 늘어진 마석들이 애피타이저라면 이 뿔이야말로 진정한 메인 디시였던 바.
‘우선은 이것부터.’
러셀이 손을 뻗었다. 바람의 뿔 아래에 깔려있는 작은 마석들 중 일부를 팝콘처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와그적.
.
.
휘류류류-.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온다.
바깥에서 불어온, 열린 창을 통해 흘러든 바람이 아니었다.
모두가 러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바람이었다.
휘우우우우-.
흘러나온 바람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러셀의 주변을 따라 기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스읍, 후-.”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그 호흡에 반응이라도 하듯 바람의 기류가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러셀의 앞 머리칼이 바람에 휘말려 나풀거리기를 수 시간.
츠츠츠츳-.
그를 둘러싼 바람의 움직임이 일변했다.
마치 강물과도 같이 도도하게 굽이치던 바람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진다 싶더니, 이내 그 범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주변의 바람이 러셀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장내를 가득 메운 이 바람은 평범한 바람이 아닌, 마력을 머금은 바람이었으니까.
바람 속에 깃들어 있던 마력이 본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용신왕의 뿔(바람의 정화)을 한계치까지 흡수하셨습니다.] [흡수 가능한 한계를 넘어선 마력은 잠재력 속에 깃들게 됩니다.] [이 잠재력은 언제고 각성의 순간 깨어나 당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상급 바람 속성 이해도가 크게 상승합니다.]“후우.”
연달아 들려오는 알림음을 들으며 러셀이 천천히 눈을 떴다. 뿔을 흡수할 때마다 들려왔던 알림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속성 이해도의 등급이 상승하지는 않았네.’
그때와는 달리, 현재의 러셀은 거의 모든 속성에 대해 상급의 이해도를 갖추고 있었던 까닭이다.
물론 각 속성별 퍼센테이지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러셀이 빙긋 웃음을 흘렸다.
바람의 정화를 흡수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움직임이 조금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발동작, 손동작 하나에도 바람의 가호가 깃들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아니나 다를까, 팡!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로 몸을 강화한 후 주먹을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속도에 공기가 터져 나간다.
‘이 정도라면…….’
순수하게 육체적 능력만으로도 가을달성의 2급 기사들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그리 생각한 러셀이 창문을 통해 바깥을 확인하고는 손을 뻗었다.
전날 걸어두었던 염탑의 로브를 외투처럼 걸쳤다.
밖으로 나섰다.
염탑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제 슬슬 출근을 해야겠지.’
마침 휴가도 오늘로 딱 끝난 와중이었고.
그렇게 염탑으로 출근한 러셀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 마법사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6써클에 들어섰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래도 사람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숫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네.’
물론 그게 나쁜 의미로써 괴물을 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
“러셀 선배님-.”
1층의 프론트를 보고 있던 염탑의 신참내기가 러셀을 불렀다.
“-오늘 선배님께 방문 신청서 한 장이…….”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고,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방문 신청서?”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