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EPISODE.58
우우웅, 띵-.
부유석이 원하는 층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 위에서 내린 러셀이 자신의 연구실 겸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손님이라…….’
프론트의 신참 마법사에게서 들었던, 방문 신청서의 주인에 대해 떠올리면서였다.
방문객의 수가 하나가 아니니, 정확하게는 손님 ‘들’이라고 해야겠지만.
물론 그 손님들의 정체를 러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도 했고.
‘외유 연구를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방문 신청을 했었지.’
꽤 부담스런 그녀의 신분을 떠올리며 고소하길 잠시간, 이내 집무실의 앞에 도착한 러셀이 손을 뻗었다.
딸깍-.
손잡이를 잡아 돌려 문을 열었다.
‘예정된 방문 시간까지 아직 몇 시간 정도 남았으니, 일단 밀린 일이나 하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선 러셀이 외투를 벗었다.
책상 위에 켜켜이 쌓여 있던 종이 뭉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곧이어, 고요한 가운데 펜촉 움직이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지고.
사락, 사락.
사가각-.
그로부터 수 시간.
찌르르르르르-.
책상 한켠에 놓아두었던 벨이 몸을 부르르 떨며 울려대는 것을 들으며 러셀이 서류 속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예정되어있던 손님이 탑의 1층에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곧이어,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러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셔도 괜찮습니다.”
안쪽에서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본래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객의 신분은 특별했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윤기 있는 보라색 머리칼과 그와 똑같은 색의 눈동자였다.
그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주변의 시선을 압도하고.
예정된 방문객들의 정체는 바로 엔디미온의 제1 왕위 계승자, 왕녀 헤카테 라트모스와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나선 두 명의 기사들이었다.
물론 러셀로서는 부담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는 방문객들이었지만.
“오랜만이로구나. 러셀 경. 그대가 염탑으로 복귀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노라.”
자신이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하는 왕녀, 헤카테의 음성에 러셀이 일단 예를 차렸다.
“왕국의 백작, 러셀 레이먼드가 왕녀 전하를 뵙습니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거니와, 내게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 모습이 조금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헤카테가 샐쭉해진 눈매로 중얼거렸다.
“이미 그대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어 집무실의 안쪽으로 들어서며 말을 이었다.
“……내 무례인 줄 알면서도 이리 급하게 방문한 이유는 바로 경의 모험담을 듣고 싶어서라네.”
그 말대로, 러셀이 외유 연구를 끝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방문 신청서를 넣었던 그녀였으니까.
핑계는 외유 연구 당시 있었던 일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고.
물론 헤카테의 입장에선 러셀을 호출하는 것이 더 편하고 쉬운 일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일 것이 분명했다.
헤카테가 안으로 들어서자, 뒤따르던 기사들 역시 그녀를 쫓아 집무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자, 뒤편에 서 있던 왕실 기사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히 눈에 보였다.
그녀의 호위를 위해 함께 나온 기사들.
이미 몇 번이나 본 익숙한 얼굴들이었던 만큼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있노라니, 헤카테가 익숙하게 자리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은근히 기대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러셀을 채근했다.
“어서,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보게. 이번에 외유 연구를 나섰던 곳이 언더월드였다지?”
언더월드.
그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소문만 무성한 곳인 만큼 그녀가 호기심을 갖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허나, 그녀가 자신의 외유 연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단순히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테지.
‘아마도, 나와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일 거고.’
실제로 자신과 대화거리를 만들기 위해, 검술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시간을 내어 기초 마법 이론서까지 공부한 그녀였으니.
“예. 전하.”
헤카테의 내심을 짐작하며 러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더월드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헤카테가 집중하는 얼굴로 러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흐음.”
“흠.”
“-과연, 듣던 대로 신비한 곳이로다.”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듯 한 마디씩을 흘렸다.
게다가.
언더월드와 드워프에 관한 이야기는 헤카테뿐만 아니라 뒤따라온 두기사들에게도 흥미의 대상이었다.
때문일까.
호위기사들 역시 티 나지 않게 러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러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헤카테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언더월드의 모습을 상상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땅속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멋진 밤하늘을 가지고 있는, 쇠와 불의 냄새가 끊이지 않는 드워프들의 지하도시라…….”
오래된 이야기 속, 모험담에서나 나올 법한 도시의 모습이 헤카테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고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로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쪽으로 정리하며 그녀가 러셀을 빤히 바라봤다.
“그때가 되면, 경이 나를 안내해주겠는가?”
직설적이다 못해 단도직입적이기까지 한 화법이었다.
‘윽-.’
그 화법에 러셀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면모가 나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솔직하시단 말이지.’
물론 이런 점 또한 그녀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터.
실제로 러셀이 느끼기에도 처음과 같이 마냥 부담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말을 하던 헤카테가 돌연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은근한 눈빛으로 물어온 것은.
“이번 여행 도중 나를 떠올린 적은 없었는가?”
이미 몇 번가량 외유 연구를 다녀올 때마다 장난을 치듯 이런 질문을 던져온 헤카테였다.
전과 마찬가지로 단도직입적인 화법이긴 하나, 러셀에겐 꽤 익숙한 물음이라는 이야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그 물음을 쉬이 받아넘길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물었다.
‘윽-.’
실제로 이번 외유 도중, 불현듯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 적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혼혈 엘프를 방에 들였을 때라던가, 이오를 방에 들였을 때라던가, 아무튼 그런 때라던가.
“러셀 경. 경의 얼굴이 붉은 것을 보니, 열이 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분명 부끄러워하는 것일 터인데-.”
그런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놀리는 재미를 제외하면 목석같은 사내가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거늘, 그래도 다행이로다.”
키득, 웃은 헤카테의 음성에 장난기가 어렸다.
“지금껏 내가 하고 있던 노력이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니었으니 말이야.”
찌르르르-.
그때였다.
그녀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회중시계가 몸을 떨어댔다.
딸깍-.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그녀가 혀를 찼다.
“아쉽게도 여기서부터의 이야기는 다음의 즐거움으로 미뤄두어야 할 터.”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 만남을 고대하고 있겠네.”
집무실을 나서는 헤카테의 귓불이 어쩐지 잘 익은 감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
읽고 있던 연구서를 내려놓으며, 러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최선을 다 해봤지만, 어쩐지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머릿속에는 폭풍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온갖 생각이 난립하고 있었으니.
물론 그래 봐야 단 하나의 상념에서 출발한 생각들이었지만.
‘쯧,’
결국 러셀은 혀를 차며 연구서를 덮었다. 창을 열어 환기하며 밖을 바라봤다.
불어온 바람에 러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흑발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그런 가운데 러셀이 눈을 감았다.
‘음.’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언제까지 회피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몇 년째 대답을 미루고 회피만 하는 것이,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 역시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
[미션]왕녀의 마음에 대한 답변.
왕녀, 헤카테 라트모스는 오랜 기간 당신의 대답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그녀에게 답변을 해줄 차례입니다.
[보상]중급 마석x2
에로스와 프쉬케의 반지(한 쌍).
“미친.”
이런 것도 미션으로 나온다고?
난데없이 튀어나온 미션에, 러셀이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마치 미션의 내용이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
허나, 적어도 그 내용만큼은 틀린 말이 없었다.
러셀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
그의 연구실이 염탑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까닭일까.
눈을 뜨고,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자.
휘영청, 밝게 뜬 달 아래로 왕도의 전경이 한눈에 비쳤다.
문자 그대로 왕도(王都)라는 것을 내보이듯, 밤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에 밝혀진 빛이 꺼지지 않은 광경.
엔디미온 어디를 가더라도, 아니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이 정도로 밤이 밝은 도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테지.
이름난 관광 명소와, 이에 비견된다는 제국의 황도를 포함하면 고작해야 열 내외.
그런 왕도 내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이 밝혀진 곳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왕궁이었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빛을 쏟아내는 왕궁의 건물을 보며 러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같은 밤하늘을 보고 있으시려나?”
돌연,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를 의식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윽-.’
이어 손바닥을 이용해 얼굴을 뒤덮었다.
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뜨거운 물이라도 끼얹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슨…….’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없거니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내뱉다니.
스스로에게 자책하길 짧은 시간, 이내 당황스럽게 움직이던 러셀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일순 머릿속을 스쳐 간 상념 하나에 의식이 고정되었기 때문.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고?’
그렇다면, 그 말이야말로 자신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확실히-.’
왕녀라는 신분을 따로 떼놓고 생각하더라도 헤카테는 매력적인 여성임이 분명했다.
솔직하고 당찬 태도와 아름다운 외모는 뭇 남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므로.
뿐만 아니라, 단순히 호감 정도로 그쳤던 처음과는 달리.
왕녀를 향한 러셀의 생각에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던 바.
“음.”
밤이 깊어지는 만큼 상념 역시 깊어지고.
그렇게 깊어지기 시작한 러셀의 고민은, 왕도를 밝히던 불빛들이 대부분 꺼져갈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러셀은 직접 왕실에 접견 신청서 한 장을 넣었다.
접견 대상은 당연하게도 왕녀, 헤카테 라트모스였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