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EPISODE.60
엔디미온 왕실의 단 하나밖에 없는 적자이자 제 1 왕위 계승자, 헤카테 라트모스의 약혼식은 중요할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이 시대의 귀족들은 약혼이라는 행사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하물며 왕녀의 약혼임에야, 국혼에 비할 바는 아니라지만 적어도 준(準)국혼 정도의 취급은 받아야 할 터.
때문일까.
약혼식이 보름 앞까지 다가온 지금, 왕도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훨씬 더 분주했다.
“술, 술을 더 가져와!”
“왕실에 보낼 술과 가게에서 판매할 술을 나누라고!”
“어이 이봐, 조심해. 그러다 술통 쏟아진다!”
고급 주점이든, 그렇지 않으면 급이 낮은 주점이든. 손님맞이를 비롯한 각자의 준비로써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돼지고기, 오늘까지 온다는 건 어디 갔어?”
“양고기를 실은 상단 수레는 내일 오는 거 맞아? 다시 한번 확인해봐!”
식당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 길거리를 나다니는 인원들 역시 평소보다 배는 많았다.
왕실의 초청장을 받고, 멀리서부터 참석한 귀족들부터 시작하여 왕실의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왕도 인근의 백성들까지.
왕도는 물론 주변 도시들의 괜찮은 숙소들은 이미 씨가 말라 버린 상황.
조금 늦게 도착한 이들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질 낮은 숙소를 이용해야 했다.
심지어는, 싸움이 나기까지.
개중에는 자신의 신분을 앞세워 소란을 일으켜 강제로 타인의 숙소를 빼앗으려는 자 또한 있었다.
“허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는 동쪽 나자르 령의 자작…….”
“내가 바로 서쪽 윈크 령의 적합한 후계자-.”
물론 그들 대부분이 왕도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기사들에게 제압당해 귀족의 수치라는 불명예만 떠안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들은 알았을까.
진짜 번잡함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
.
몰려드는 인파 때문이었는지.
왕도의 번잡함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를 더해갔다.
그리고, 그 번잡함이 정점에 달한 것은 동맹국의 사절들이 입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절(使節)이라 함은, 말 그대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이 아닌가.
그 위세를 내보이기라도 하듯, 사절들의 행렬은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교역으로 유명한 나제 연맹의 사절들은 선물이랍시고 무려 세 마리의 코끼리들을 이끌고 참석했다.
뿌우우우우-.
신호를 줄 때마다 코끼리들이 기다란 코를 들어 올리며 울어대고, 그 뒤를 이어 타국의 사절들 역시 속속들이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키옐의 사절 역시 있었다.
최근 동맹 관계를 맺은 데다가, 러셀에게는 은혜까지 입었으니.
키옐 측에서도 축하의 사절을 보내오는 것은 당연했다.
허나, 모두가 그와 같이 축하의 의미로써만 사절을 보내오지는 않았다.
‘러셀 레이먼드라, 과연 소문대로의 사내일지…….’
‘고작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로 6써클? 아무리 제국에 대항할 동맹을 늘리기 위해서라지만…….’
‘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하군.’
‘그 위명을 직접 확인하고, 본국에 보고하는 수밖에.’
처음부터 소문의 진위를 믿지 않았던 이들은 물론, 그 진실성을 파악하기 위한 이들까지.
갖은 생각을 품은 체, 각국의 사절들이 엔디미온의 왕도로 들어섰다.
물론 왕국의 오랜 숙적, 제국의 사절은 그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 *
왕도 바깥쪽에서 벌어지는 상황과는 별개로, 러셀 역시 굉장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사흘간 진행되는 일정에 맞춰 입을 연미복을 네 벌이나 준비해야 하다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렇게 준비한 연미복들은 연회에서 입을 것들, 식을 치를 때 입을 예복은 또 따로 맞추어야 했다.
그렇게 몸의 치수를 재고, 알맞은 색감을 재보며 완성된 옷을 입어 보는 것에만 한세월이라.
뿐만 아니라 일정에 맞춰 속성(速成)이나마 예법 교육 또한 받아야 했다.
물론 이 예법 교육의 선생으로 선정된 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피곤하시면 조금만 쉬었다 하시겠습니까. 러셀 경?”
잿빛의 머리칼과, 안경 너머로 비치는 실눈을 가진 사내가 들고 있던 예법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 물음에, 러셀이 조금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앨런 경.”
놀랍게도 러셀의 예법 담당이 되었던 것은 앨런 페이지였다.
물론 그만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마는.
‘나이도 비슷하거니와 태어나면서부터 대귀족의 자제.’
예법은 물론 정치적인 수완 역시 몸에 익을 대로 익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티가 나지 않는 것은, 앨런이 그를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일 테고.
실제로 몇 년 전 연회에서도 몰려들었던 여인들에 당황했던 자신과는 달리, 앨런은 능숙하게 대처하지 않았는가.
‘어려서부터 마법을 공부하면서, 그 모든 것들도 같이 익혔단 말이지.’
마법에서야 자신이 앞서게 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히 천재는 천재구나 싶었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향해 감탄하고 있기는 앨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6써클이라니. 러셀 경도 참, 괴물이로군.’
그에 비해 자신의 경지는 여전히 5써클 마스터.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와의 실력 차이에선 자신이 우위에 있었거늘.
다시 말해 러셀은 자신보다 낮은 경지에서부터 시작해 어느새 자신을 추월한 것이었다.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그에 합당한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터.
게다가-.
‘요즘도 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지?’
약혼식으로 인해 의미 그대로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마법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비록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한 사내야.’
그를 경쟁상대로 여기는 마음만큼은 여전했지만, 요즘은 이길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고개를 드는 것 역시 사실.
‘어쩌면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 또한 이러했을지도 모르겠군.’
자신이 그를 괴물처럼 생각하듯, 다른 이들 역시 자신을 괴물 취급하곤 했으므로.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 단어에 취해있었을지도.’
남들이 괴물이니 천재니 하며 치켜세워주니, 진짜 그렇게 된 양 착각을 했던 것이다.
진짜 천재이자 괴물이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얼마간, 스스로의 과거에 반성하던 앨런이 입을 뗐다.
“러셀 경도 들으셨겠지만, 이번 식에는 동맹이 아닌 주변국의 사절들 역시 다수 참석한다고 하더군요.”
“예. 그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헤……왕녀 전하께 들었습니다.”
무심코 헤카테라고 중얼거릴 뻔한 입술을 깨물며 러셀이 말을 이어 붙였다.
“예. 아마도 폐하께선 이번 약혼식을 단순히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끝내려고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경의 말씀인즉, 폐하께선 약혼식의 형태를 빌려 어떤 정치적인 무엇인가를 꾀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군요.”
하나밖에 없는 딸의 약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까지 그래야 하나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왕족이고, 정치인 것을.
고작해야 며칠, 속성으로 과외를 받았을 뿐이지만 러셀이 파악한 귀족과 왕족들의 정치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예. 단순히 왕실의 힘을 공고히 하는 정도를 넘어 주변국들에게 엔디미온의 세를 보이기 위한 자리로 활용하실지도 모릅니다.”
엔디미온의 세를 보이기 위한 자리, 잠깐의 고민 끝에 러셀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제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사람인 이상 개개인에 따라 관심이 없는 분야가 존재할 뿐, 러셀은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내 역시, 천재라고 불리는 앨런 페이지였고.
한 번 물꼬가 트인 이상, 긴 대화가 없어도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국의 사절 중 일부는 분명 러셀 경에 대한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려 할 겁니다. 물론 자리가 자리인 만큼 드러내놓고 하지는 못할 테고, 폐하께서도 그에 대비를 해두셨겠지만…….”
“국왕 폐하의 의중까지 고려하면 제가 먼저 스스로를 내보이는 편이 좋겠군요.”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였지만, 결국은 해야 할 일이었기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차라리 확실히 하는 편이 더 낫겠지.’
해야 할 일과 그로써 자아내야 할 광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러셀이 입을 열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앨런 경.”
“별말씀을.”
식까지 불과 며칠 가량을 남겨 두었을 때의 일이었다.
* * *
식이 거행된 장소는 왕도 내에서 가장 큰 공원을 가로지르는 대로에서였다.
무슨 왕족의 약혼식을 대로에서 하겠느냐고 하겠지만, 러셀을 더욱 많은 이들에게 내보인다는 정치적인 명분이 깔린 장소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방비 역시 철통처럼 이루어졌고.
미친 것이 아니고서야 도합 4명의 대마법사와, 한 명의 마스터 급 기사가 지키는 곳에서 무엇을 강행하진 않을 테지만.
그런 와중에 대륙 각 곳에서 모여든 사절들은 저마다 날카로운 눈매로 대로의 끝을 훑었다.
국왕과 주인공인 왕녀는 반대편 대로 끝에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한 사람은 바로 저곳을 통해 입장할 것인즉.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와 함께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가 멈춰서고, 이어 다리아가 손끝을 튕겼다.
따악-.
그 순간 소란스럽던 장내 위로 거짓말처럼 정적이 내려앉는다.
주연들과 식에 필요한 일부의 소리만을 남겨 둔 채, 사방의 소리들을 일제히 차단한 것이다.
들려오는 것은 배경처럼 은은하게 깔리는 악단의 연주뿐.
그런 가운데 뿌우우우우-.
나팔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식의 두 번째 주인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흑발에 적안, 과연 소문대로의 외모로군.’
‘생긴 건 소문대로 영준하다만 실력 역시 소문만큼일지.’
‘과연…….’
‘듣던 것보다 더 어려 보이는 외모 아닌가?’
저마다 의도를 품은 시선들이 러셀을 발가벗기듯 훑었다.
개중 일부, 이미 러셀에 대한 판단을 내린 이들 역시 있었다.
어느 정도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었다.
‘고작 저런 청년이 탑주 급의 실력이라고?’
‘아무리 훑어봐도 그리 대단한 마력은 아니거늘.’
‘엔디미온 왕실도 과장이 과하군, 금방 들통날 거짓말로 이득을 보려 하다니. 얕은 수로다.’
‘엔디미온의 국왕이 이토록 무모하고 거짓된 자일 줄이야. 그런 자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왕녀 역시 다르지 않을 터.’
‘당분간 엔디미온과 수교를 맺을 일 따위는 없겠구나.’
후자에 속하는, 다분히 삐뚤어진 시선을 의식하며 러셀이 마력을 개방했다.
화아악-!
심유하면서도 웅혼한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는다.
‘!!!’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에 왕실 기사들이 당황하며 방패를 움켜쥐었다.
“러셀 레이먼드 백작, 이게 무슨-!”
“지금 당장 마력을 거두시오!”
헤카테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사슴처럼 놀라며 물어오는 그녀를 향해 러셀이 입술을 달싹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헤카테.]써클 프로젝션(Circle Projection).
순간 불꽃의 형상을 한 여섯 개의 톱니바퀴가 망토처럼 러셀의 등을 휘감았다.
화르르륵!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