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
12화
EPISODE.06
일순 뒷목에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한겨울 밤중의 바람과도 같은 음성.
안톤의 걸음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제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것만 같았다.
그런 가운데 안톤의 두 눈에 파르르 떨리고 있는 제 손끝이 비쳤다.
‘내가, 내가 겁을 먹었다고? 그것도 고작 저놈의 목소리에?’
동기들 사이에선 열등생 중의 열등생이라고까지 불리는 놈이었다.
최근에서는 평가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건.
딱히 특별한 대책이나 방도가 없다면 사실상 유급이 확정된 놈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자신은 학교 내에서 톱클래스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나름의 유망주.
그런 자신이 열등생의 음성에 겁을 먹다니.
‘인정할 수 없다.’
안톤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직후 두려움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몸을 확 돌렸다. 한바탕 욕설이라도 쏟아내기 위함이었다.
허나.
“헉-.”
그보다 빠르게 안톤의 뇌리를 꿰뚫는 것이 있었다.
호박색의 안광, 러셀의 두 눈동자를 타고 나온 강렬한 안광이 마치 거미줄이라도 된 듯 안톤의 전신을 휘감는다.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포식자의 눈빛.
‘무, 무슨 눈이?’
한순간 오금을 저리게 했던 서늘한 음성. 그 음성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오한.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진 것만 같은 안광이었다.
평소의 진홍빛 눈동자 역시 눈매와 어우러지며 제법 날카로워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뱀, 아니 그보다 거대한 무엇인가의 앞에 놓인 쥐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자신의 눈동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러셀이 천천히 안톤을 향해 다가간다.
스윽-.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한 자 한 자를 씹어 뱉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주위를 무겁게 휘감는다.
“우리 가문이, 내 아버지가 뭐가 어쩌셨다고?”
가문과 아버지.
러셀에게 있어 이 두 가지는, 동방의 설화 속에 나오는 거꾸로 난 용의 비늘(逆鱗)과도 같은 존재였다.
건드려선 안 될 존재라는 이야기.
그런데 안톤이 그것을 건드린 것이다.
때문일까. 어느새 두 눈을 뒤덮었던 안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러셀의 기세만큼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아, 안 놔? 이 새끼…….”
그 기세와 자신의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안톤이 러셀의 손을 뿌리치며 뭔가를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두 사람의 사이로 끼어드는 음성 하나가 있었다.
“거기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지?”
근처를 지나가던 교수의 음성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에 러셀은 일단 움켜쥐고 있던 녀석의 멱살을 내려놓았다.
직후 녀석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차갑게 뇌까렸다.
“운이 좋은 줄 알아.”
오늘이 아니더라도, 이 빌어먹을 놈을 손봐줄 기회는 충분히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러셀 레이먼드. 앞으로 나오도록.”
* * *
러셀과 안톤이 다시 마주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의 한 수업 시간에서였다.
본래라면 서로 반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수업에서 마주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것이 가능한 수업이 하나 있었다.
‘실전적 마법전투학.’
실전에 기반을 두고, 마법을 이용해 펼치는 여러 전투방식에 대해 다루는 수업.
다른 수업들에 비해 위험성이 크기에 4학년이 된 이후에야 신설되는 실기 과목 중 하나.
보통 한 학급 단위로 진행되는 여타의 수업들과 달리, 이 수업의 경우는 두 개의 학급을 하나의 반으로 묶어 진행하는 형태의 수업이었다.
‘상황과 전투의 다양성을 위해서였던가?’
그가 속한 베타(β)반의 경우는 알파(α)반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는데, 러셀과 안톤이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두 개의 학급이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데다-.
‘위험성이 높은 만큼 해당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의 수 역시 배로 늘어난 두 명.’
게다가 이 수업이 가지는 특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실기평가 점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시험이야.’
앞선 1, 2, 3학년과는 달리.
졸업반인 4학년이 된 후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았다.
대신 졸업시험과 실기평가만이 있을 뿐. 그리고 그 실기평가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수업에서의 성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이 과목을 죽을 만큼 싫어했었지.’
노력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필기와는 달리.
실전성이 높은 수업의 경우, 천형을 타고난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라.
게다가.
‘본인의 성적을 위해 하이에나처럼 나를 노리던 녀석들도 즐비했었고.’
당시 갓 1써클을 넘어선 정도에 불과했던 자신이, 다른 학생들에게는 아주 맛있는 먹잇감처럼 보였으리라.
그리 좋지 못한 과거의 기억에 러셀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일 뿐.
조용히 감았던 눈을 다시 뜬 러셀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심마조차 깃들어 있지 않았다.
족쇄처럼 발목을 붙잡았던 천형(天刑), 이제는 그 천형을 극복해 나가고 있었으므로.
그때.
짝!
“……주의사항이나 기본적인 숙지사항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학생들의 가운데서, 수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던 교수 하나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그렇게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킨 교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지금부터는 실전을 진행하도록 하겠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교수가 가볍게 손을 움직인다.
쿠그그그긍-!
그 손끝을 따라 대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원의 형태로 토벽(土壁)이 솟구쳤다.
높이는 성인 남자의 허리 정도.
그 광경을 지켜보며 처음 손뼉을 쳤던 교수가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실전은 2인 1조로 진행하겠네.”
처음 호명을 받은 사람이 토벽 안쪽으로 들어와, 상대가 될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구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 수업마다 같은 상대를 연속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간 형평성에 맞지 않을 테니까.’
이기는 쪽은 계속해서 이기기만 하고, 지는 쪽은 계속해서 지기만 하는 악순환의 반복.
“그럼 처음은…….”
알파와 베타.
“러셀.”
두 반의 학생들을 둘러보던 교수가 읊조렸다.
“러셀 레이먼드. 앞으로 나오도록.”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러셀을 향해 집중된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을 지목해주길 바라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생각이 너무도 뻔히 보였던지라, 러셀이 작게 고소했다.
익숙하다는 듯 로브를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제일 먼저 호명될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어.’
전생에서도 그랬으니까.
물론 이건 첫 수업이기에 가능한, 교수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실제론 다르겠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실력은 아직까진 1써클 정도니까.’
그렇기에 자신을 가장 먼저 호명하는 것으로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지명권을 준 것이다.
수준이 비슷한 상대를 지목하여 첫 대련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
물론 이런 배려는 첫 수업 한정이었다.
‘그 후에는 순수하게 약육강식.’
수업의 이름 앞에 붙은 실전적이라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리라.
펄럭-.
로브 자락을 펄럭이고, 토벽을 뛰어넘어 안쪽으로 들어가자 교수 중 하나가 그에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다치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상대를 지목하도록 하게.”
고개를 끄덕인 러셀이 학생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자신이 지목되길 애타게 바라는 시선들에는 미안하지만.
‘지목할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어.’
망설일 필요도 고민할 필요도 없을 터. 학생들 사이로 내려앉은 묘한 침묵을 깨뜨리며.
“안톤.”
-러셀이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다.
“나와. 안톤 프레드릭.”
* * *
러셀의 지목에 안톤의 두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감히 나를 지목해?’
열등생 따위에게 지목당했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함께 노기가 치밀어 오른 탓이라.
자신을 향한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마치 조롱이라도 된 듯 느껴지고, 안톤이 거칠어진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분노로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며 생각했다.
‘아니, 도리어 잘 되었지.’
조금 수치스럽긴 하지만,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랐다.
녀석에게 자신과의 격차를 뼈저리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
‘동시에 머저리 같은 동생 놈이 땅에 처박은 가문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겠지.’
물론 며칠 전 있었던 일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주 조금이었을 뿐.
‘착각일 거야.’
분명 착각일 것이다.
어쩌면 그날따라 뭔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면, 비록 한순간이라곤 하지만 자신이 저런 열등생에게 겁을 먹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후회하게 해주지. 러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안톤이 순식간에 토벽을 뛰어넘었다.
펄럭, 척.
천천히 써클의 마나를 회전시키며 전투를 준비했다.
우우우웅-.
두 개의 써클이 공명하며 마력의 파장이 토벽 내로 퍼져나간다.
학생치곤 제법 괜찮은 편에 속하는 마력운용.
교수 중 하나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러셀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는가?”
러셀을 가장 먼저 호명해 지명권을 준 교수였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상대를…….”
“괜찮습니다.”
러셀이 단호하게 답했다.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놈에게는 갚아줘야 할 빚이 있거든요.
그 말을 들었던 걸까.
어느새 러셀의 앞까지 다가온 안톤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빚이라고?”
빚이라면 오히려 이쪽에 있을 텐데?
“그래.”
안톤의 마력이 발산하는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 내며, 러셀이 담담한 음성으로 응수했다.
“내 앞에서 우리 가문과, 내 아버지를 모욕한 빚.”
가문의 재건, 그리고 아버지의 복수.
현실의 벽에 치여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러셀은 단 한 순간도 저 두 가지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도리어 저 두 가지를 실행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매일 밤마다 후회하고 저주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러셀의 앞에서 놈은 아버지와 가문. 이 둘을 동시에 모욕했던 것이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모욕이라면 다 무너져 가는 네깟 놈의 가문이 아니라 우리 프레드릭 남작가가…….”
“안 되겠다.”
안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력의 파동이 러셀의 전신을 따라 피어올랐다.
열등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마력.
우우웅!
일어난 마력이 안톤의 마력을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토벽 안쪽을 뒤덮는다.
그것으로 모자라 벽을 넘어 강의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화아악.
교수들은 물론이거니와, 학생들마저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마력.
“이, 이건 2써클이잖아?”
러셀이-.
“저 러셀이 2써클에 올랐다고?”
“도대체 언제?”
“그럼 개학한 후에 보여준 모습들이 우연이 아니었던 거야?”
-자신의 수준이 2써클에 들어섰음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넌 오늘 좀 맞아야겠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