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EPISODE.60
써클 프로젝션.
의미 그대로 자신이 가진 마법적 성취-, 써클을 내어 보일 수 있는 마법이었다.
화르륵-.
여섯 개에 달하는 불의 고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톱니바퀴와 같이 회전하는 순간.
‘습.’
‘헙-!’
곳곳에서 경악과 함께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다리아의 마법에 막혀 그 소리가 차단되긴 했으나 놀라는 눈치만큼은 선명하게 드러났던바.
‘저만한 마력을 이토록 완벽히 감추고 있었다니.’
‘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신을 둘러싼 시선과 일대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확인하며 러셀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의도했던 분위기 그대로다.
허나 여기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늘은 축제의 날이었으니까.
‘축제는 화려할수록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손을 움직였다. 가볍게 손끝을 휘둘러 마법을 캐스팅했다.
척.
왼 손바닥 위에 오른편 주먹을 반듯하게 세웠다.
퍼버버벙-!
폭죽 소리가 울렸다.
러셀이 만들어낸 여섯 개의 불꽃 톱니바퀴, 그 중앙에서 나온 불길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화르륵, 펑!
치솟아 오른 여섯 개의 불길이 하늘 한가운데에서 뭉쳐 들며 거대한 형상을 이룬다.
‘플레어 로즈!’
‘염탑의 상징-!’
그 형상을 알아본 타국의 사절들과, 그 사이에 섞여 있던 몇몇 마법사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염탑(炎塔).
적색 계보를 이어받은 마탑 중에서도 대륙 제일이라 평가받는, 그렇기에 염(炎)의 글자를 하사받은 마탑.
그것이 바로 염탑이었다.
물론 제국의 마탑 중 몇 곳은 그에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세간의 평가인 것을.
화아악!
플레어 로즈가 하늘을 가득 채우며 붉은 화기를 줄기줄기 뿌렸다.
붉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그것을 향해 러셀이 두 번째 마법을 쏘아 올렸다.
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불꽃으로 조형된 기러기 한 마리가 그대로 플레어 로즈를 향해 상승했다.
기러기란 부부 관계에 있어 사랑과 신뢰의 상징.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른 불꽃의 새가 플레어 로즈를 향해 짓쳐들고.
퍼버벙-!
충돌과 함께 다시 한번 폭죽이 터져 나왔다.
불꽃놀이를 하듯 형형색색 아름다운 불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엔디미온 왕가의 문장이었다.
화르륵!
왕가의 문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빛을 뽐내며 타올랐다.
이내 러셀이 마력을 거두어들였다.
준비했던 쇼가 모두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마력을 거두어들인 러셀이 반대편 끝에 있는, 왕녀와 국왕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의 모습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타국의 사절 또한 마찬가지.
깊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러셀을 응시하던 그들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심각한 얼굴로 함께 온 마법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다리아에 의해 울려 퍼지는 소리 대부분이 차단되었다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음에 국한된 수준일 뿐.
가까이서 속삭이는 소리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사절의 물음에, 동행하고 있던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놀라운 일일세. 소문대로 저 나이에 6써클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그 거대한 마력을 티 나지 않게 감출 수 있다니…….”
경지에 오른 실력자가, 타인의 실력을 가늠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미미한 마력이나 오러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으로, 단편적으로나마 상대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혹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높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나 흔적은 느낄 수 있었고.
그 기척을 차단하기 위해선 마스터 급 중에서도 심유한 경지에 접어들던가, 혹은 최소 두 단계 이상의 차이를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지금 답하는 마법사의 실력은 5써클, 6써클인 러셀과는 고작 한 단계 차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의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러셀이 가진 마력의 특징을 알지 못하는 마법사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게다가 마법사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마나를 컨트롤 하는 능력일세.”
“마나를 컨트롤 하는 능력?”
“그렇네.”
6써클에 올라선 지 고작 몇 달, 새롭게 만들어진 써클이 안정화되었다고 여기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마법을 발산함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마력의 흔들림이나 새어 나옴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했다.
헌데 그런 기색도 없이 완벽한 마법 조형을 만들어내다니.
‘써클이 드래곤 하트와 같은 마나 배열로 되어 있지 않고서야…….’
그때 처음 질문을 던져왔던 귀족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만약 세간에서 들려오던 소문이 진짜라면 -.”
마스터 급 오러 유저가 홀로 전열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창이라면, 7써클 이상의 마법사는 전황을 뒤집고 전장을 지워 버릴 수 있는 전쟁 병기다.
영토의 넓이, 군사의 수.
양측 모두에서 대륙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제국이 엔디미온을 어쩌지 못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소드 마스터의 숫자에서는 앞서지만, 초인(超人)급 마법사의 숫자가 부족했으므로.
게다가, 제국에는 단 하나밖에 없는 8써클 대마법사가 엔디미온에는 무려 둘이나 있었다.
그런 와중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6써클에 들어선 초신성이 탄생한 것이다.
그와 같은 재능이라면, 오래지 않아 초인의 관문조차 열어젖힐 수 있을 테지.
“-길어도 십 년 안에, 대륙의 판도가 크게 바뀔지도 모르겠군.”
이야기를 꺼냈던 귀족은 그렇게 상념을 마무리했다.
주변을 보아하니 타국의 귀족들 역시 저마다의 생각을 정리한 모습.
물론 오늘 러셀이 보일 연출이 국제관계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테지만.
.
.
“서로 손을 맞잡고 걸어 나갈 두 사람의 앞길에 무한한 광명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이 나라의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의 일장 연설을 들으며 흘깃.
헤카테가 시선을 움직였다.
곁눈질로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는 사내, 러셀 레이먼드를 일견했다.
‘설마 그런 일을 벌일 줄이야.’
그녀 역시도 자신의 아버지인 알폰소 국왕이 이 자리를 어느 정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애당초 그녀 역시 동의한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러셀이 먼저 나서준 것이다.
‘이 우직한 사내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을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알려준 이가 있겠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카테의 시선에서는 숨길 수 없는 감사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저런 행동을 벌인 것이다.
이는 러셀이 자신과 라트모스 왕가를 이해하고 배려해 줬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때문이었다.
반지를 교환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작게 입술을 달싹인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을 벌여주었더구나. 그대여.’
입술의 움직임을 읽은 것인지 러셀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고 헤카테가 속으로 키득, 작게 웃었다.
이어 헤카테의 손에 러셀의 반지가 끼워지는 순간,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의 마지막 말이 공원 가득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로써 왕녀 헤카테 라트모스와, 러셀 레이먼드 백작의 약혼이 이루어졌음을, 라트모스 왕가의 이름으로 널리 선포하노라-!”
기다렸다는 듯, 궁정 마법사단이 허공을 향해 축포를 쏘아 올렸다.
퍼버버벙-!
불꽃과 얼음, 벼락과 바람이 허공에서 섞이며 만들어낸 극광(極光)과 같은 찬란함이 주변 일대를 뒤덮었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국왕이 러셀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러셀 레이먼드 백작.”
러셀과 헤카테 간의 약혼식이 무사히 끝마쳐지는 순간이었다.
.
.
안타깝지만, 약혼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원하던 휴식의 순간을 얻지 못했다.
식이 끝났다곤 하나, 그 후에 이어질 연회가 남았던 탓이다.
무려 사흘간이나 이어지는 연회, 당연하게도 그 주인공은 오늘 약혼식을 올린 러셀과 헤카테였다.
빠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연회에 참석한 후였다.
“축하드립니다. 레이먼드 백작님. 저는 남부 영지의…….”
“허허. 정말 축하하오. 레이먼드 백작. 그런데 듣자 하니 레이먼드 백작이 우리 영지 내의 워커힐 시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졸업을…….”
지방의 작은 귀족들은 물론, 워커힐 시를 영지에 포함한 영주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귀족들이 러셀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지방의 귀족들로서는, 오늘과 같이 왕도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단숨에 정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풍운아, 오늘 기회를 이용해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두지 않는다면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몰려든 것은 아국의 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반갑소. 레이먼드 백작. 나는 나제 연맹의…….”
“우선 축하한다는 말을 드려야겠구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백작의 약혼을 축하하며 건네는 친교의 선물…….”
러셀의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기 위해 몰려든 타국의 귀족들부터 시작해-
“이보시오. 러셀 백작. 식의 초반에 사용하였던 그 형상 변화 마법은…….”
“……마력의 흐름과 안정성의 상관관계가-.”
-그들과 함께 온 마법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순식간에 사람들의 바다에 둘러싸인 러셀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한 기색을 수습하며 시선을 돌리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국의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인 스승, 다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님.’
차이가 있다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자신과는 달리, 다리아의 기분은 한껏 들떠 있었다는 점일까.
“우리 막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분명 다리아의 입장에선 물 만난 물고기가 된 기분일 테지.
그 모습에 고소(苦笑)하길 얼마간, 러셀이 자신을 둘러싼 인파에 집중했다.
능숙하지는 못하더라도, 결례로 남지 않을 만한 수준의 응대를 해 나갔다.
‘앨런 경에게 속성으로 과외를 받아둬서 다행이야.’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작은 실수를 몇 번이나 저질렀을 테지.
‘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석 달 후에 예정된 쿠릴 아일랜드로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사실 약혼식만 끝나면 쿠릴 아일랜드도 떠나는 건 언제가 되어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6개월이라는 기간은 스스로 정한 것일 뿐, 굳이 지킬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석 달가량을 왕도에 더 머무른 이유는 간단했다.
6써클 자체의 기량을 높이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약혼식을 끝내고 곧장 떠나는 것도 좀 우습지.’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마침내.
석 달이 더 흘러. 지난번 붉은 협곡에 다녀온 지 꼭 반년 정도가 흘렀을 무렵.
러셀은 미리 작성해두었던 외유 연구 신청서를 다리아에게 제출했다.
당연하게도 목적지는 쿠릴 아일랜드였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