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EPISODE.61
엔디미온에서 쿠릴 아일랜드로 가는 방법에는 몇 가지 루트가 존재했다.
허나 그 모든 루트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배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작은 배가 아닌, 크고 거친 바다를 오랜 시간 항해할 수 있는 거대한 범선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그렇기에 러셀이 고른 루트는 대륙 남부에 위치한 나제 연맹의 항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나제(Naje).
도합 네 개의, 소국(小國)이라고도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도시국가들이 연합해 만들어진 이 연맹은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 교역 국가 중 한 곳이었다.
러셀이 이곳의 항구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말디브 시의 항구에도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배편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수가 극소수인데다가, 시간 역시 보름가량 더 소요되었다.
배를 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족히 한 달가량은 더 소비된다고 봐야 했다.
그에 비해 나제 연맹은 교역으로 유명한 곳.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쿠릴 아일랜드를 향해 배를 띄우는 그곳이라면, 배를 구하는 것도 더욱 수월할 테지.
심지어 나제 연맹은 중립을 표방하는 교역 국가인 동시에 상인과 여행자들의 방문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국가였다.
덕분에 러셀은 수월하게 연맹의 영토로 진입할 수 있었다.
쏴아아, 철썩.
쏴아아-, 철썩-.
밀려든 파도가 항구와 해안에 닿아 바스러지는 소리, 물비늘 위로 반사되는 태양광.
바람결에 실려 오는 해안가 특유의 소금 내음 등,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며 러셀이 향한 곳은 항구 도시 내의 가장 큰 프리랜서 사무소였다.
실질적으로 용병 사무소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그보다 조금 더 급이 높고 폭넓은 의뢰를 제공하는 곳.
러셀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배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쿠릴로 가는 관광선이 있으면 또 몰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으니 상선을 이용하는 수밖에.
가장 확실하게 상선을 이용하는 방법이 용병으로 고용되는 것이었으므로.
딸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카운터에서 잡무를 보던 담당관이 고개를 들어 러셀을 맞이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일거리 소개, 그렇지 않으면 뭔가 의뢰를 맡기실 일이라도…….”
그녀의 앞까지 다가가는 와중에 곳곳에서 시선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사실상 대부분이 용병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들.
그런 와중에 외지인으로 보이는 이가 사무실을 찾았으니, 흥미가 생길 수밖에.
“쿠릴 아일랜드로 가는 상선에 올라타고 싶습니다.”
“쿠릴 아일랜드요?”
러셀의 말에 담당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이어 주변의 분위기 역시 일변했다.
‘그럴 만도 한가.’
쿠릴 아일랜드는 수인들의 땅이다.
비록 바깥 지역이 안전하다곤 하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란 이야기.
또한 항해 중에, 상선을 노리는 해적들의 출몰이 빈번하기까지.
때문이었는지,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상선 호위 의뢰에는 다른 의뢰들에 비해 깐깐한 기준이 적용되는 편이었다.
여기서 깐깐한 기준이란 바로 실력을 말하는 것이었고.
“혹시 용병패가 있으신가요? 그게 아니라면 뭔가 실력을 증명하실 거라도……?”
그 물음에 러셀이 신분패를 제시하며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스르륵.
그렇게 드러난 러셀의 외견은 평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특수한 도구와 염색약을 이용해 만들어낸 녹안(綠眼)과 잿빛의 눈동자가 어우러지며 본래보다 약 십 년가량을 더 늙어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련한 위장 신분이라.
“리드먼 루이 씨. 38세……상당히 동안이시군요.”
신분패를 확인하던 안내원이 중얼거리자, 익숙하다는 듯 러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칭찬을 자주 듣습니다.”
그 능청스런 대처에 딱히 의심스런 구석을 찾지 못한 안내원이 다음 내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직후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진 것은.
“무소속 프리랜서, 세상에! 4써클 마법사시군요!”
4써클, 러셀이나 앨런의 경지가 너무 높아 조금 묻히는 감이 있었을 뿐.
그 경지는 결코 낮지 않았다.
실제로 천재라 불리는 일부만이 5써클의 벽을 돌파하여 마도사(魔道師)라 불리게 될 뿐.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지가 4써클이었으므로.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수행할 수 있는 실력자, 그것이 바로 4써클의 마법사였다.
하물며 30대의 나이에 4써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어, 그러니까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의뢰가…….”
안내원이 서류 몇 장을 꺼내기도 전에, 곳곳에서 영입 제의가 쏟아졌다.
“내가 고용하겠소. 대금은…….”
“아니, 우리 쪽에서 고용하지!”
“무슨 말씀을, 당장 고급 인력이 필요한 건 우리가……!!”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프리랜서 소개소에 대기하고 있던, 각 상단의 관계자들이었다.
해적들이 주로 출몰하는 지역을 표기한 해도(海圖)를 만들어, 그 구간을 피해 항해하는 것이 요즘 항해의 트렌드다.
허나 어디서든 예외적인 상황은 있는 법.
그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바로 4써클 마법사였다.
고써클 마법사의 장거리 포격은 배 한두 채 정도는 충분히 가라앉힐 위력이 있었기에.
해적들이 배에 올라탈 겨를도 없이 모조리 끝장을 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자가 타고 있다 하더라도, 하늘을 나는 재주가 없는 이상 망망대해에 수장시켜 버리면 그만이지.’
그렇게 치열한 쟁탈전이 치러진 가운데, 결국 러셀을 낙찰(?)받은 것은 라파스라는 이름을 가진 상단이었다.
‘라파스(Rapace) 상단.’
라파스는 어느 지방의 방언으로 맹금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었다.
“반갑습니다. 리드먼 마법사님. 저는 라파스 상단의 대행수, 콜린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답게, 건네받은 소개장 위에 찍힌 것은 날아오르는 매의 인장.
“리드먼 루이라고 합니다.”
꽉.
러셀이 손을 맞잡자 그가 사람 좋은 얼굴로 씩 웃었다.
“일단은 가시죠. 자세한 이야기는 상단의 숙소로 향하며 알려드리겠습니다.”
직후 안내를 시작했다.
“사실 마법사님께서 힘을 쓰실 일은 별로 없으실 겁니다. 저희 쪽에선 이미 4써클 마법사 한 분과, 3써클 마법사 한 분을 고용해 둔 상태이니까요.”
3써클과 4써클.
자신을 포함해 도합 세 명의 마법사.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일반적인 교역선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어찌 보면 과하다 볼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거금을 써가며 자신을 더 고용했다는 건-.
“선박의 규모가 꽤 큰 모양이군요.”
그 말에 콜린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긁었다.
“예. 이번 기회에 대규모 교역을 통해서 흑자를 좀 많이 내 볼 계획을 하고 있거든요.”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배에 실어 가는 것은 진주나 질 좋은 가죽, 혹은 고급 담배 따위의 물건들이었다.
하나 같이 값이 싼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쿠릴 아일랜드에서 나는 향신료들을 잔뜩 챙겨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바.
‘배의 크기가 크다면, 그만큼 불안하겠지.’
혹여 습격을 받아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굳이 마법사를 세 명이나 고용한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이곳입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도시 내에 위치한 꽤 규모 있는 여관이었다.
“출항은 이틀 후, 그동안은 이곳에서 묵으시면 됩니다. 주인에게 제 이름을 대면 묵으실 방을 내어줄 거고, 술이나 음식 또한 저희 상단의 이름으로 달아두시고 마음껏 드셔도 괜찮습니다.”
규모가 있는 선박을 준비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탓인지.
‘여관을 통째로 빌렸나 보군.’
러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대행수 콜린이 여관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그러자 1층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와 함께 맥주를 걸치고 있는 인원들이 다수 보였다.
문이 열리자 그들의 시선이 두 사람, 정확하게는 콜린을 향해 집중되고.
“대행수님 오셨습니까?!”
“사람을 좀 더 구하러 간다더니, 옆에 계신 그분이……?”
그들의 물음에 콜린이 뿌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네. 방금 막 계약을 한 마법사, 리드먼 루이 님이시지.”
“오오, 마법사님!”
“이번 항해에는 해적 걱정을 조금도 할 필요가 없겠군요!”
“하하, 해적 놈들. 어디 한 번 올 테면 와 보라고!”
콜린의 말에 그들이 기분 좋게 웃으며 술잔을 치켜들었다.
게다가, 러셀에게 관심을 보인 이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오, 저 친구도 마법사라고?”
“…….”
식당의 정중앙에 앉아 포커를 치던 이들 중 두 사람이 러셀에게 시선을 보낸 것이다.
한 사람은 3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꽤 수척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인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술고래로군.’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몇 병이나 되는 술병이 그의 옆에 가득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콜린이 귀엣말로 러셀에게 속삭인다.
“아까 말씀드렸던 다른 두 분의 마법사들이십니다.”
그쯤이야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지만 러셀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50대 마법사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 이리 오시게. 같은 마법사끼리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지!”
이어 러셀의 손을 끌어다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 앉히며 물었다.
“그래, 자네는 포커 좀 칠 줄 아는가?”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은 건지, 그렇지 않으면 술에 불콰하게 취해서 그런 것인지.
그런 노마법사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마법사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30대 후반의, 수척해 보이는 얼굴의 마법사였다.
“칼 씨,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막 끌고 오시는 건…….”
이어 미안한 얼굴로 러셀을 향해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에이단, 에이단 아울이라고 합니다.”
“-?!”
에이단이라는 말에 러셀이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 기척에 깜짝 놀란 에이단이 움찔하며 몸을 움츠리고-.
“왜, 왜 그러십니까?”
한껏 주눅 든 태도로 되물어오는 그를 향해 러셀이 소요를 가라앉히며 대꾸했다.
“아닙니다. 그냥, 알고 있는 사람과 이름이 좀 비슷해서.”
남몰래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정말로 에이단 아울이라면-.’
그때, 술주정을 부리던 마법사가 눈치 없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하, 그럴 수 있지. 나는 칼 네이먼이라고 하네. 4써클 마법사지.”
자랑하듯 자신의 써클을 밝히며 물었다.
“그런데 음, 리드먼 루이라고 했던가?”
편하게 리드먼이라고 부르겠네-라고 중얼거리며 첨언했다.
“리드먼, 자네는 몇 써클인가? 물론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세. 그래도 합을 맞춰야 하는 만큼 서로의 실력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답이 흘러나온 것은 러셀이 아닌 대행수 콜린에게서였다.
“리드먼 마법사님은 4써클이십니다!”
“4써클!”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수준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칼이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을 떨어뜨렸다.
댕그랑-!
바닥을 뒹구는 술잔 소리 너머에서, 에이단이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저보다 어려 보이시는데 4써클이라니, 대단하시군요.”
“아닙니다. 제가 조금 동안이라서 그렇지 저도 서른여덟 살입니다.”
“그래도 저와 동갑…….”
천성이 그런 것인지 여전히 자신 없는 말투, 하지만 그는 알까.
지금 이곳에서 그가 러셀을 만난 것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에이단 아울, 설마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