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EPISODE.63
“우끼긱, 탁월한 결정이십니다요. 나리-!”
자신을 킨타라고 소개한 원숭이 수인이, 폴짝거리며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를 뛰어넘었다.
인간에 비해 월등히 긴 팔과 다리, 그리고 꼬리를 이용한 이동 기술은 그 자체로 묘기라 불러야 마땅한 수준이었다.
‘저건……흉내 내기 어렵겠군.’
혹시라도, 녀석의 움직임을 라만차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가볍게 혀를 찼다.
“해안에 사는 수인족 중 우리 원인족들 만큼 발이 넓은 이들은 또 없습죠. 그리고 발이 넓다는 말인즉 일대에 대해 잘 안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요?”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그 사이에도 킨타 녀석이 계속해서 혓바닥을 놀려댄다.
“그런 원인족들 중에서도 이 근방에서만큼은 저보다 지리를 잘 아는 놈은 드물 겁니다!”
제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소리치는 녀석의 모습에 러셀이 나직이 코웃음 쳤다.
‘우습지도 않아.’
응당 가이드를 자처했다면 목적지가 어디인지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물어오기는커녕, 쓸데없이 제 자랑을 늘어놓으며 계속해서 숲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을 뿐이라니.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쯧.’
물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울려준 것은, 자신 역시 녀석에게 원하는 바가 있어서였지만.
“일단은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했던 말을 반복하며. 마구잡이로 입을 놀려대는 녀석의 뒤를 따라 걷길 약 십여 분.
이내 어느 정도 숲 내부로 들어왔음을 확인한 러셀이 걸음을 멈춰 섰다.
우뚝-.
그 모습에 앞서가던 킨타 녀석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나으리-?”
“그래서, 본론에 대한 얘기는 언제쯤 시작할 생각이지?”
그 말에 킨타의 얼굴이 단숨에 딱딱하게 굳었다.
이어 녀석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위로 올라간다 싶더니, 원숭이를 닮은 얼굴 위로 주름이 잔뜩 번져나갔다.
지금껏 가장해왔던 선의는 어디 갔는지, 탐욕과 비열함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우끽?”
“처음부터.”
“우끽-?”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러셀이 눈을 흘겼다.
자신의 뒤쪽.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작게 출렁이는 소리를 캐치해 내며, 엄지를 이용해 그 방면을 지목했다.
“숲에 들어오기 전부터, 네 친구 놈들이 따라붙어 있었잖아? 저 정도로 대놓고 쫓아오면 눈치채지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지.”
“그럴 리가…….”
킨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와 친구들이 초짜도 아니고, 이미 몇 번이나 강도질에 성공해 온 이들이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의 미행을 눈치채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고.
그런데 이 젊은 인간이 원인족의 미행을 눈치챘다고?
그것도 도시가 아닌 숲에서?
‘노, 놈들이 뭔가 실수를 했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인간 따위가 자신들의 미행을 눈치챌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킨타가 엄지와 검지를 입가를 향해 가져갔다.
“쯧, 가능하다면 조금 더 안쪽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만, 우끽. 어쩔 수 없지. 우끼긱.”
빼애액-!
입으로 휘파람을 부는 것과 동시에 품속에서 한 뼘 길이의 단검을 꺼내 움켜쥐었다.
스슷-.
“우끽, 우끽.”
척척척-.
“우끽, 우끼긱-.”
동시에 다섯 마리의 원인족이 러셀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움켜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론 저마다 단검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
“눈치가 제법 빠르긴 하다만, 젊어 보이는 모습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우끽.”
“……?”
“입고 있는 것 다 벗어. 우끽. 가지고 있는 은화와 금화를 모두 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킨타의 말을 받은 것은 뒤편에 있던 다섯 원인족 중 한 마리였다.
“적어도 속옷 정도는 입고 돌아갈 수 있게 해주지. 우키킥.”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난 인체 능력을 믿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여섯이나 되는 숫자를 믿는 것인지.
자신들의 패배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러셀이 도리질 쳤다.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바다에서 만났던 해적 놈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어떻게 그런 머리로 노략질을 해 먹고 사는지 모르겠군.”
“우끽-?”
“너희들 머리 텅텅 비었다고. 이 멍청한 새끼들아.”
러셀 역시 회귀 전에는 프리랜서로 굴렀던 이였다.
그 과정에서 막말을 익히기도 했었다. 다만, 근래에는 굳이 드러낼 일이 없어 참고 있었을 뿐.
“우끽, 이 새끼가-!!”
직설적인 도발에 발끈한 킨타가 소리치며 튀어나오려는 순간, 러셀이 그의 말을 끊었다.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왔다는 게 무슨 의미인 줄 몰라?”
“우, 우끽-?”
그제야 말뜻을 파악한 것인지, 원인족들 사이로 소요가 퍼져나갔다.
“늦었어, 병신들아.”
그러건 말건 러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새파란 뇌격이 튀어 올랐다.
파지지짓-!
여섯 갈래로 뻗어나간 뇌전.
시퍼런 전격이 순식간에 숲의 어둠을 걷어내며 원인족들을 지졌다.
고요하던 숲속 가득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우끼이이이이익-!”
“우끽-!”
* * *
그로부터 정확하게 십오 분 후.
러셀의 발치 아래에는 총 여섯 명의 원인족들이 무릎은 꿇은 채 양손을 들고 서 있었다.
전격 마법에 호되게 당한 탓인지 온몸의 털이 삐쭉삐쭉 서 있고, 그을음도 남아 있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 상처에서 그쳤다는 것은 러셀이 마법의 위력을 조절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이면 안 되지.’
강도짓을 한 것이 괘씸하긴 했지만, 자신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게다가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 이유 역시 있었다.
‘무야호에 의해 통치되는 쿠릴 아일랜드의 근간은 강자존(强者存)이라고 했었지.’
이성(理性)의 기저에 야성(野性)을, 짐승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이들 다운 생활 습관이었다.
이렇게 실력을 보여 두면, 아마도 대놓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을 속이려 들지는 못할 터.
전격 마법에 몸이 지져진 주제에,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도 동경의 시선이 섞여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러셀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킨타, 라고 했던가?”
“예. 예에. 우끽. 킨타입니다요. 나으리.”
실력 차를 호되게 경험했기 때문인지, 말끝에 다시 나으리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일단 너희들 원인족이 이 근방에서 가장 발이 넓은 부족이 맞나?”
러셀의 물음에 여섯 원인족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나으리. 우끼긱!”
“섬 내부라면 모르겠지만, 섬 외부에서 우리 원인족들 만큼 발이 넓은 이들은 없을 겁니다.”
원하던 대답.
“음.”
짧게 침음한 러셀이 품속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녀석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쿠릴 아일랜드의 지도였다.
“이 지도에서, 너희들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곳은 어느 정도지?”
러셀의 물음에 서로 시선을 교환한 녀석들이 슬그머니 손을 내린다. 이어 손가락으로 각자가 아는 영역을 조금씩 표시했다.
“우, 우끽. 저는 여기서 여기까지를 잘 압니다요.”
“저는 여기서부터 여기를, 우끼긱-.”
그렇게 여섯 명의 원인족들이 각기 알고 있는 지역에 대해 주절거리고, 이내 그것들을 통합한 러셀이 턱을 쓸어내렸다.
‘흠, 대충 외곽의 육분에 일 정도인가.’
쿠릴 아일랜드의 규모가 작은 나라 하나에 육박하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영역은 아니었던바.
“그럼 이 중에서 얼음의 강물 위로 불길의 강이 겹쳐 흐르는 곳이 있나?”
여섯 원인족들이 일제히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잠시, 서로 시선을 교환한 녀석들이 도리질 친다.
이내 그들의 대표로, 킨타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그, 그런 곳은 들어 본 적 없습니다요. 나으리. 우끼긱.”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그렇게 되물어 보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얻은 소득이라 하면-.
‘섬의 외곽에는 용암이 흐르고 있는 곳이 없다.’
앞서 설명한 적 있듯, 쿠릴 아일랜드는 화산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섬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길의 강이라고 지칭할 만한 것은 흐르는 용암 외에 달리 존재하지 않았던바.
“어쩔 수 없이 섬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 봐야 하는 건가?”
중얼거림을 들은 킨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나으리?”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러셀이 고개를 외로 꼬자, 녀석이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안쪽에는 전사의 부족들이 살고 있어서…….”
전사의 부족이라 함은, 맹수의 피를 물려받은 수인족들을 말하는 것이다.
섬의 외곽에 사는 온화한 부족들이 아닌. 늑대의 피를 물려받은 낭인족(狼人族)이나 호랑이의 피를 물려받은 호인족(虎人族).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나으리께서 보통이 아니란 것은 잘 알겠지만 우끼긱, 그래도 그 녀석들은 좀 위험해서……우끽.”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돈을 내놓으라고 강도질까지 벌인 주제에, 이제 와 도리어 걱정이라니.
물론 러셀은 굳이 그 부분을 꼬집지 않았다.
대신 의아한 점을 물었다.
“위험하다고 해도, 그들이 인육을 즐기는 것은 아닐 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워낙 호전적인 녀석들이라, 우끼끽.”
강자를 숭상하는 데다 호전성까지 갖추고 있는 만큼, 언제 어디서 싸움을 걸어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용의 흔적을 찾기 위해선 일단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을 텐데.
거기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찾아온 것도 아니잖아?’
굳이 6써클을 달성한 후에야 쿠릴 아일랜드를 방문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지 않던가.
“…….”
적당히 어깨를 으쓱한 러셀은 그 길로 계속해 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은 숲의 더 깊은 곳, 섬의 안쪽이었다.
* * *
그들이 찾아온 것은, 러셀이 쿠릴 아일랜드에 들어선 지 사흘가량이 지난 무렵이었다.
야영 준비를 마치고, 텐트 안에 몸을 누였던 러셀이 조용히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감각을 확장 시켰다.
타닥, 타닥-.
텐트 밖에 피워 두었던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 불어온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는 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와 야조(夜鳥)들이 울어대는 소리 등등.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소리들 사이로,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일단의 기척들이 있었다.
‘왔군…….’
그 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난 러셀이 텐트 밖으로 나섰다.
구부렁하게 휘어진 월광이 러셀의 머리 위로 도도하게 떨어져 내린다.
달빛을 받으며 러셀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그만 나오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일대로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쿵, 쿵, 쿵-.
잠행이 들통나서였는지, 기척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땅 울림.
육중한 무게감이 대지를 통해 전달되었다. 몸이 날랜 수인족들은 절대로 보일 수 없는 존재감이라.
‘덩치가 큰 수인족이라고 하면, 사자나 호랑이 혹은…….’
쿵-.
곧이어 떨어지는 월광에 그들의 모습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흡사 첫째 사형, 버밀리온 울센이 여럿으로 늘어난 듯한 거대한 덩치에 머리 양옆으로 자라난 것은 둥글게 구부러진 뿔.
정체를 파악한 러셀이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밤에, 물소 수인분들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