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EPISODE.64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냐. 아앙?”
카랑카랑하면서도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러셀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 음성에 정신을 되찾은 러셀이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읊조렸다.
“엔디미온의 백작이자 염탑의 마도사, 러셀 레이먼드가 수인들의 왕을 뵙습니다. 수인들의 예의에 무지한 점, 부디 이해해 주시길.”
쿠릴 아일랜드를 국가로 인정해야 할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선 여러모로 말이 많기는 했다.
허나 수인들의 왕, 일단 예의를 차려두어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 러셀의 인사가 퍽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무야호가 흡족한 표정으로 등을 기댄다.
이어 씰룩거리는 입술을 숨기며 말했다.
“예의는 무슨,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말한 것과는 달리 씰룩거리는 꼬리를 숨기는 데는 실패한 모습.
“-!?”
제 꼬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그녀가 손을 뻗었다. 다급하게 꼬리를 움켜쥐며 화제를 전환했다.
“음, 흠. 음. 좋아. 러셀. 그래서……머나먼 대륙, 엔디미온의 인간이 이곳 쿠릴 아일랜드까지는 무슨 일이냐?”
그 물음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러셀이 말을 이었다.
“찾고자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찾고자 하는 장소?”
“예.”
고개를 끄덕이며 첨언했다.
“얼음의 강물 위로 불길의 강이 겹쳐 흐르는 곳, 그곳을 찾고 있습니다.
“……!!”
러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장내에 있던 대전사 몇몇의 호흡이 변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을 놓칠 러셀이 아니었다.
‘역시-.’
기다렸다는 듯 러셀이 남은 말을 뱉었다.
“제 추측대로라면, 수인족들이 신지라고 부르는 땅에 이곳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지(神地)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말과 다름없는 이야기.
러셀의 말에 자리를 지키던 수인족 몇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감히 외지인이 신성한 땅을 입에 담는가!”
“무도하고 무엄하다!”
귓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과 함께 투기가 날카롭게 일어섰다.
그 기세와 시선이 러셀의 온몸을 난도질하는 것보다 먼저.
척-!
무야호가 손을 들었다.
“조용히 해.”
들불처럼 번져 나가던 투기가 일거에 사라진다.
“이봐, 대장로 영감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알겠는데,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잖아. 아앙?”
어쩐지, 다른 수인족들에 비해 기세가 가다듬어져 있더라니.
‘대전사가 아닌 대장로들이었나.’
대전사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올라설 수 있다는, 실력과 경륜을 모두 갖춘 수인족의 기둥들.
러셀이 그들의 모습을 일견하는 사이 무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추측대로 확실히 신지 내에 그런 곳이 있긴 하지.”
이어 흥미롭다는 듯, 러셀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데 외부인, 그것도 인간이 신지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지?”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대륙의 요술쟁이들은 미지(未知)와 신비(神祕)에 대해 깊은 탐구욕을 지닌다더니, 그런 건가?”
그리 중얼거린 무야호가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었다.
“그런데 어쩌지?”
“……?”
“우리 영감들의 태도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껏 그곳에 외부인이 들어간 일은 전례가 없어서 말이야.”
난색을 표하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대장로들이 떠들어댔다.
“오래전 신께서 깃드셨다는 땅이 바로 신지입니다!”
“그런 신지에 전사도 아닌, 외부인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 쫑알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무야호가 주먹으로 제단의 바닥을 내리쳤다.
쾅!
“아씨! 영감들, 나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진짜 오늘 저녁은 자리에 누워 주는 죽이나 받아먹고 싶은 거야?”
카랑카랑한 외침이 퍼져나가자, 목소리를 높였던 대장로들이 다시 한번 몸을 움츠렸다.
이야기가 시작된 후, 벌써 두 번이나 반복된 행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장로라 불리는 이들이 저런 행동을 거듭한다는 건-.
‘이런 상황이 일상에 가깝다는 거겠지.
말을 거칠게 하는 것과는 달리, 무야호 역시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고.
“어찌한다?”
무야호의 중얼거림에 문득 떠올랐다는 듯, 러셀이 물었다.
“외부인이 들어간 전례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도록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입니까?”
전자라면, 적어도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했다. 물론 후자라고 해서 포기하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호-?”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에 무야호의 얼굴 가득 흥미로움이 번져 나갔다.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듯 그녀가 턱을 까딱였다.
“……조금 전, 어느 분께서 전사가 아닌 이는 신지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걸로 기억합니다만.”
물론 모든 전사가 신지에 들어갈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수인족 내에서 전사라 불리는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신지에 들어설 수 있을 터.
“반대로 말하면 전사의 자격을 획득한다면, 저 또한 신지에 들어갈 수 있겠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인족들 사이로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전사의 시련!”
“외부인이 전사의 시련에 도전한다는 말인가!”
그 모습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사의 시련?’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허나, 신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 ‘전사의 시련’이라는 것을 통과해야 하는 듯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무야호가 묻는다.
“이방인 러셀, 너는 진심으로 전사의 시련에 도전할 생각인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적법하게 신지에 들어갈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물론입니다.”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전사의 시련.
이는 수인족 전사들에게 있어 자신의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명예의 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규칙은 간단해.’
시련의 협곡이라 이름 붙여진, 아주 깊은 협곡 아래에서 열흘을 버틸 것.
그것이 가장 큰 규칙이었다.
물론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다섯 명씩, 수인족 전사들이 협곡 아래로 내려와 차례대로 도전해온다던가’
열흘간 도합 쉰 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량은 물론 식수 또한 제공되지 않고…….’
먹을 것과, 마시는 것을 구하는 것도 온전히 도전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말이었다.
‘가진 바 실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시험하겠다는 거겠지.’
무엇보다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협곡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기(邪氣)였다.
시련의 협곡이라 불리는 만큼, 협곡의 안쪽에는 각종 사기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정신력이 약하다면 사기를 버티지 못하고 사흘 안에 정신을 잃고 혼절하게 될 것인즉.
게다가 그 사기를 먹고 자란 뱀들도 조심해야 했다.
‘이 모든 시련을 통과하면, 수인족들은 그를 명예로운 전사로 대우한다.’
뿐만 아니라 신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기까지.
휘이잉-.
협곡의 안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러셀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흘러나온 사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끈끈하고 축축한,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사기였다.
‘바람결에 묻어 나온 것만 이 정도라면.’
분명 협곡 안쪽에는 이보다 몇 배 이상 농밀한 사기가 그물처럼 펼쳐져 있을 터였다.
그때, 무야호가 러셀의 등을 퍽 두드렸다.
“어떠냐. 외부인?”
“무엇을 말입니까?”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기분이 어떠냐는 말이지, 할만한 것 같아?”
그녀의 물음에,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할 만할 것 같습니다.”
대단한 사기지만, 6써클에 오른 러셀의 정신 방벽을 오염시킬 만큼 대단치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충 둘러본 수인족 전사들 중, 수왕 무야호를 제외하면 자신의 상대가 될 만한 이도 없어 보였고.
수인족이 약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녀가 터무니없이 강해.’
전력을 다한다면 몇 합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
그런 러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야호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자신감이 대단한걸?”
이어 웃음을 거두며,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러셀과 눈을 마주쳤다.
“이봐. 외부인.”
“예.”
“내가 왜 너를 시련에 도전하게 해주었는지 알고 있나?”
“……?”
“우리 수인족은 분명 강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쿠릴 아일랜드 안쪽에 국한된 강함이야. 분명 섬 밖에는 우리 수인족들 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들 또한 존재할 테지.”
당장에 헤밍웨이나, 다리아만 하더라도 수왕이라 불리는 그녀와 자웅을 겨뤄볼 만한 강자들이지 않던가.
“그런 와중에, 외부인. 네 녀석이 나타난 거다.”
물론 그녀 역시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꽤 잘 숨겨진 힘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어. 아마 나를 제외하면 우리 수인족들 중에서 너를 정면에서 꺾어 놓을 실력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무야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우리 수인족들에게 세상의 넓음을 알려주길 바란다. 하여 우리 수인족이 여기서 정체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흥미 본위나 여흥이 아닌, 수인족의 앞날까지 계산한 일처리라. 과연 왕은 왕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주먹을 말아 쥐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확 꺾여 버리는 이가 있어도, 저는 모릅니다.”
당돌한 러셀의 한마디에 눈을 동그랗게 뜨길 잠시, 무야호가 낄낄거렸다.
“그런 녀석이 있으면 귀랑 꼬리를 뜯어 버려야지. 안 그렇냐?”
바로 그때,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협곡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둥, 둥, 둥-.
.
.
척-.
협곡의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러셀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자욱한 사기가 몰려 들어서였다.
츠츠츳-.
스스스스슷-.
곳곳에선 이름을 알 수 없는 뱀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확실히, 정상적인 양(量)의 사기는 아니야.’
그 옛날, 신화의 시대.
초대 수왕이라 불린 펜릴이 물어 죽인 뱀, 요르문간드(Jormungand)의 시체를 버린 협곡이라더니.
독사가 많은 것 역시 바로 그 영향에서일 것이었다.
‘일단 이것도 기록해둘까.’
이 또한 좋은 연구 자료가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법을 이용해 협곡의 안쪽을 얼마 동안 촬영하고 있었을까,
오래지 않아 위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러셀에게 도전하기 위한, 수인족 전사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
.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가고, 협곡의 안에서 버티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았다.
불의 원을 이용해 뱀들의 접근을 밀어냈을 뿐만 아니라, 마력을 이용해 사기의 침범을 막아내기까지 했으니까.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대수롭게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의연한 모습에, 바깥쪽에서 지켜보던 수인족들이 혀를 내둘렀다.
“허. 저토록 정신력이 강한 인간이라니…….”
“정신력뿐만이 아니라 실력도 굉장해.”
“나이도 어려 보이는 인간이, 저 정도 실력과 정신력이라…….”
“허약한 종족이라고 생각했거늘,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겠어.”
그리고 마지막 날…….
별안간 수인(獸人)의 형상을 한 별(星) 하나가, 협곡의 안쪽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아무래도 지켜보고만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야! 캬하하!”
유성처럼 긴 꼬리를 늘어뜨렸다.
지축을 뒤흔들었다.
콰과과과과과-!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