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EPISODE.65
꽈르릉-!
문자 그대로의 유성락(流星落).
별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은 위용이다. 지반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콰과과과과-.
뻗어나간 충격파에 협곡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크게 흔들리고.
여파만으로도 쪼개지고 갈라져 나온 괴석들이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후드득, 쿵쿵.
쿠과과과과-.
허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는 지표와, 머리 위를 위협하는 낙석(落石)들.
개중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나, 그 모든 것을 합산하더라도 눈앞의 위협만큼 흉험한 것은 없었으므로.
온몸의 감각이 경종을 치듯 비명을 내질렀다.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욱하게 솟은 모래 먼지.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진 대기, 그 너머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이 나 못 견디겠다는 듯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일갈했다.
“아무래도 지켜보고만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야! 캬하하하하!”
화아악-!
눈앞을 자욱하게 가렸던 모래 먼지가 단 한 번의 포효로 일거에 쓸려나간다.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수인의 형상을 한 재앙[人災]인 동시에 러셀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이었으니!
“캬하, 캬하하하!”
수왕 무야호가 한껏 달아오른 표정으로 러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그녀의 난입은 조금도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바. 러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어쩔 수 있나. 이런 재미있는 상대를 두고 지켜만 보는 것도 성질머리에 안 맞을뿐더러…….”
손에 들린 거창을 빙글빙글 돌리던 그녀가 돌연, 창두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적!
장창의 창대에 랜스의 창두를 박아 놓은 형태의 기형창(奇形槍)이 대지를 쪼개며 박혀 든다.
아마도 저것이 소문의 드워프제 무기일 테지.
“이 몸도 엄밀하게 말하면 수인족의 전사라는 말씀!”
“그런 억지가…….”
애당초 도전자 중에 수왕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누가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단 말인가.
러셀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무야호가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
“물론 이 몸도 염치와 양심이 있다. 그러니 나를 꼭 쓰러뜨리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그럼……?”
“다섯 합.”
이어 손바닥을 쫙 펼쳤다.
“내게서 다섯 합을 견디면, 마지막 날의 시험은 모두 통과한 것으로 해주마. 어때?”
‘다섯이라.’
오늘 치러야 할 마지막 시련의 도전자와 같은 숫자였다.
물론 어려움으로 따지자면 수왕을 상대하는 것보다, 다섯의 수인을 상대하는 것이 월등히 쉬웠다.
하지만.
‘대충 봐도 말을 들어 먹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닌데…….’
무야호의 주변을 둘러싼 투기는 그만큼 신이 난다는 듯, 마구잡이로 널뛰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정돈되지 않은, 야성미가 가득한 투기. 당장에라도 창을 움직이고 싶은 것일까.
대답을 기다리던 무야호가 근육을 꿈틀거리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어휴.’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이어 빠르게 생각했다.
‘어차피 내친걸음이라면…….’
가능한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딱 다섯 합만 받아내면 되는 겁니까?”
“이 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바로 모든 수인족들의 왕, 수왕 무야호다! 직접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을 정도로 이 몸의 이름값은 가볍지 않아!”
“그렇다면…….”
기다렸다는 듯 러셀의 기세가 일변했다.
“저 또한 최선을 다해 응전하겠습니다.”
K22
일대의 마력이 광포하게 꿈틀거렸다. 이어 용의 기세가 러셀의 전신을 따라 솟구쳤다.
.
.
“호오?!”
갑작스레 달라진 러셀의 분위기에 무야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달라진 것은 분위기만이 아니다.
대기 중에 흐르는 마력에 무야호의 팔등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기 시작한다.
평범한 인간은 가지지 못한, 야수의 피를 물려받았기에 가지고 있는 야성과 본능.
그 두 가지가 어우러져 만들어내고 있는 결과였다.
‘이거였구나!’
그 소름에 무야호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냉정하게 말해 그와 러셀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하늘과 땅, 보름달 앞의 반딧불…….
‘아니지, 뭐 그래도 화등잔 정도는 되겠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아흐레 동안 이어진 러셀의 전투는 그녀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그 정체가 바로 이거였어-!’
수백 번의 사선과, 수천 번의 난적들을 쓰러뜨리며 오른 수왕의 자리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수왕이 된 후에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투쟁본능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으니…….
일기당천(一騎當千).
만부부당(萬夫不當).
대적불가(對敵不可).
강자의 수가 적지 않게 존재하는 수인족이었으나, 그녀의 피를 들끓게 할 만한 적수는 없었던 것이 그 까닭이라.
오랜만에 등장한 강자의 존재에 그녀의 야수성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짧은 순간이나마 충분히 즐길 수 있겠어-!’
그리 생각한 무야호가 바닥에 틀어박힌 거창을 움켜쥐는 순간, 러셀의 외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화아악-! 두 눈이 호박색으로 물듦과 동시에, 날카로운 안광이 그녀의 뇌리를 헤집는다.
마치 파충류의 그것과 같이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었다.
그와 함께, 뼛소리가 울렸다.
우득, 우드득-.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아났고, 이어 뿔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에 둘, 오른쪽에 하나.
진홍(眞紅), 명청(明靑), 회백(灰白).
각기 다른 색을 지닌, 도합 세 개의 뿔이었다.
“어, 어어……?”
협곡 위쪽에서 변화를 지켜보던 몇몇 수인들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저, 저건 수화(獸化)가 아닌가?”
그 모습이 꼭, 수인족들 중에서도 일부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수화(獸化)와 상당히 흡사했다.
허나 러셀의 변화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갸르륵-.
정령계의 문이 열리며 페퍼가 날 선 울음소리를 흘려댄다.
주인의 전투의지에 반응하며 세찬 불길이 러셀의 전신을 휘감았다.
화르르륵-.
로브처럼 온몸을 따라 번져 나갔고, 쏟아져 나온 홍염의 일부가 불꽃의 날개로 화(化)했다.
정령의(精靈衣).
이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이라.
고점을 뚫고 치솟은 마력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전신의 마나로드를 거세게 질주했다.
‘좋아-.’
전신을 충만하게 채운 힘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러셀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수왕 무야호와 자신 사이의 격차는, 용인화로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으니까.
자신이 용인화를 사용한다고 해서, 스승인 다리아나 헤밍웨이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용인화를 사용했다.
‘전력을 다해볼 기회니까.’
6써클에 오른 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비록 다섯 합에 불과하지만…….’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러셀의 변화가 기꺼웠던 것인지, 지금껏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야호가 호쾌하게 웃었다.
“캬하하! 좋구나! 아주 신이 나!”
흥분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날카롭게 빛을 발하는 송곳니.
당장에라도 도약할 듯 부풀어 오른 대퇴부가 발끝에 힘을 전달한다!
콰적-!
대지가 무너져 내렸다.
반 박자 늦게 공기가 터져 나갔다.
──────────!!!
그야말로 초음속(超音速). 소리의 영역을 초월한 무야호의 신형이 포탄과 같이 러셀의 전권을 향해 짓쳐 들었다!
수백 미터를 뛰어넘는데 필요했던 것은 고작해야 찰나를 수백으로 쪼갠, 그 이하의 시간뿐!
소리가 채 들리기도 전에 이미 무야호가 내지른 창이 러셀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꽈르르릉!
그야말로 별이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다.
“─!!”
가까스로 무야호의 공격을 막아낸 러셀의 신형이 실 끊어진 추처럼 허공을 날았다.
“끄으-.”
마력 방패를 육각구조(六角構造)로 덧칠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바람을 이용해 대기의 흐름을 비틀어 흘려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위력이라니!
‘직격당하는 순간 끝이야.’
막아내는 것이 벅찼는지 박살 나고 부풀어 오른 손가락뼈가 그 증거였다.
‘그나마 소지와 약지라서 다행인가…….’
인을 맺는 데는 그리 자주 사용하지 않는 손가락이었으므로.
정면에서 싸움을 시도하는 것은 지금 자신의 수준에선 어불성설일 뿐, 흘려내는 것에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속도는 물론 공격력마저도 맥라이 휴스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초인 중의 초인…….’
마법사에 비유하자면, 7써클의 벽마저 뛰어넘은 8써클 급의 실력인 것이다.
개안(開眼). 공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넓어지며 격변하고 있었다.
훗날,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깨달음이 될 터.
허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집중하자, 집중.’
이제 고작 일 합을 받아내었을 뿐, 아직 받아내야 하는 공격은 무려 네 번이나 더 있었기에.
이렇게 판단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아득하게 쪼개진 시간과 시간 사이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무야호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그렇다면-!’
결정을 내리는 순간, 손끝을 따라 뻗어 나온 마력이 하나의 법칙으로써 물질계에 현현한다.
불러내고자 하는 곳은 극음지지(極陰之地)의 찬바람이라, 코퀴토스(Κωκυτός)의 한기가 일대에 현현했다.
화아악-!
흘러나온 냉기가 협곡의 절반가량을 뒤덮으며 앞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한다.
블리자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강력한 냉풍.
마력이 섞인 한기는 단순히 추위를 불러일으키는 수준을 뛰어넘어, 체내에 침투해 관절과 근육을 동결시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재밌구나. 아주 재밌어!”
자신을 덮쳐오는 한기에 무야호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찔러 넣었다.
콰드드드득!
그 가벼운 행동만으로 초음속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것과 동시에, 창을 놓았다.
양팔을 이용해 협곡의 양옆, 벼랑 중 일부를 움켜쥐었다.
콱, 콱!
“비켜, 비켜, 비켜!”
말을 그렇게 했던 것과 달리, 협곡의 안쪽을 관전하던 수인족들이 아무도 서 있지 않은 벼랑의 한쪽.
콰드드득-!
그 한쪽이 통째로 뜯겨져 나왔다. 이어 무야호의 손에 제멋대로 휘둘러지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지표가 박살 나는 충격.
원형의 충격파가 한기를 몰아냈다.
‘미친!’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러셀은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완력만으로 절벽의 일부를 뜯어냈다고?’
세상의 법칙에서 한 걸음, 그 이상을 벗어나 물리법칙을 어느 정도 무시하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
“좋아! 방금 건 재미있었으니 이 합째로 쳐주마!”
그런 러셀의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야호가 호쾌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말대로, 아직 받아내야 할 공격은 세 번이나 남아 있었다.
물론 그 당사자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돌아 버리겠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