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EPISODE.66
“들어갔다 와라. 이 몸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풀썩.
한가로이 자리에 주저앉은 무야호를 뒤로 하며, 러셀은 신형을 움직였다.
재차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콰과과과과-.
동굴의 좁은 폭 때문이었을까. 발끝을 스칠 듯 지나가는 물의 유속이 상당히 빨랐다.
그 소리가 마치 폭풍우에 파도치는 해안가를 연상케 했을 정도다.
뿐만 아니다.
길게 늘어선 종유석들 역시 끊임없이 진로를 방해했다.
스슥-.
회피기동을 통해 종유석을 피하던 러셀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긴걸?’
벌써 동굴 안쪽으로 들어 선지 십 분이 넘게 흐른 상황.
첫 번째 동굴의 길이가 고작해야 2, 3분 안쪽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두 번째 동굴은 배가 훨씬 넘는 길이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일자로 뻗어 있던 첫 번째 동굴과는 달리 구불구불하기까지.
안으로 들어선 사람의 방향감각을 흩뜨려놓기에 딱 좋은 구조였다.
그렇게 얼마쯤 동굴의 안쪽을 비행했을까.
저 멀리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러셀이 신형을 가속했다.
쐐애애액-!
쏜 살과 같은 속도로 동굴의 남은 거리를 주파했다.
물이 굽이치는 소리와 커튼처럼 길게 늘어졌던 종유석,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동굴의 어둠이 끝나고!
화악-!
불어온 바람에 담긴 진한 풀 내음이 러셀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어 환한 햇살이 러셀의 머리 위를 비추었다.
‘여기가 신지(神地)…….’
수인족의 신이 깃들었다는, 신성한 땅.
쿠릴 아일랜드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수풀이 우거져 있는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녹림의 정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가진 강줄기.
저만한 강줄기가, 저 작은 동굴 안으로 밀려들었으니.
‘유속이 빠른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네.’
강물을 보고 있노라니, 무야호가 했던 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신지가 나오면, 그때부턴 저 물이 흘러나오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라고 했었지…….’
일견 이해가 잘되지 않는 말이었다.
러셀이 찾고 있는 것은 얼음의 강물 위로, 불길의 강이 겹쳐 흐르는 곳이었던 까닭이다.
허나 그에 비해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평범한 강일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강 위쪽에 그가 원하는 광경이 펼쳐져 있을는지…….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보면 될 일이겠지.’
잠시 멈춰 서 있던 러셀이 비행을 재개했다.
.
.
다시 비행을 시작하고 얼마쯤 흘렀을까.
러셀이 이상을 감지한 것은, 그로부터 약 수 킬로미터 이상의 비행이 지속되었을 때였다.
‘물색이 조금씩 탁해지고 있어?’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만큼 그 폭이 좁아지는 것은 이해했지만, 물색까지 탁해지다니.
갑작스러운 변화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허나 그것은 시작이었을 뿐.
그로부터 몇 킬로가량을 더 거슬러 올라간 러셀은, 이내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이건…….’
놀랍게도 강의 색이 둘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강!’
하나의 강줄기 위에 두 개의 강물이 흐르고 있는 광경이라니.
“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러셀이 절로 탄성을 흘렸다.
놀라운 것은 붉은색의 강물이었다.
굽이치며 가파르게 흘러드는 적색의 물길이 꼭, 불꽃의 강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옆을 차지하고 있는 건 푸른색의 강물.
이곳이 바로 얼음의 강물 위로 불길의 강이 겹쳐 흐르는 곳이던 것이다.
‘불꽃의 강이라고 해서 용암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실수인가.’
설마하니 그 말이 용암으로 이루어진 강이 아니라, 붉은색의 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일 줄이야.
게다가, 불꽃의 강이라는 말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니기도 했다.
흘러들고 있는 붉은색의 강물에서는 희미하나마 유황 냄새가 섞여 있었다.
‘흠.’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길 만큼 장엄한 광경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지닌 마법사로서의 냉철한 이성은 작금의 이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밀도, 그리고 온도와 유속인가.’
짧은 관찰의 끝에 러셀이 내린 결론이었다.
‘붉은 강물 쪽이 온도가 높은 것은 물론 유속까지 더 빨라.’
어림짐작에 불과했지만, 대충 보아도 붉은색 강의 온도는 30도 후반에서 40도에 육박할 것으로 보였다.
그에 비해 푸른색의 강물은 20도 이하.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은 아니었지만 불꽃과 얼음이라고 비유적으로 이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두 강물의 유속 역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붉은 쪽이 두 배 정도 더 빨라.’
저 별것 아닌 현상들이 두 개의 강물이 섞이지 않고 흘러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통해 러셀은 오래전 책에서 본 선원들의 기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 먼 대양(大洋)에서도 서로 다른 바닷물과 바닷물이 맞닥뜨려선 섞이지 않는 지역이 있다던가.
‘층류(層流).’
그렇게도 불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지역이었다. 지식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
‘책으로만 보았던 현상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한동안 그 사실에 감탄하던 러셀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법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신비(神祕)를 기록하는 것과 동시에 구절의 후반부를 떠올렸다.
‘불길의 강, 그 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라.’
이 강물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강물이 시작된 지점, 수원(水源)이 존재할 터.
그곳을 찾아, 붉은 강을 거슬러 올라갈 차례였다.
* * *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개의 강은 섞이지 않고 무려 십 수 킬로가량이나 이어졌다.
얼마나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왔는지, 넓던 강물의 폭 역시 반절 이하로 줄어 있는 상황.
‘슬슬 끝이 보일 때가 되었는데.’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특징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이 두 개의 물은 수원(修院)에서부터 비슷한 특징을 유지하며 내려왔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 푸른 물을 흘려보내는 수원과 붉은 물을 흘려보내는 수원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
러셀이 찾는 것은 그중 붉은 물이 흘러나오는 수원이었다.
‘강물의 끝이라면, 수원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두 개의 강물이 갈라지는 지점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일자로 쭉 이어지는 푸른색의 강물과는 달리, 붉은색의 강물이 흘러드는 곳이 가지를 치듯 옆으로 뻗어 있었던 것.
‘찾았다.’
그를 발견한 러셀이 단숨에 방향을 틀었다. 이어 다시 한번 물길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화산인가…….’
멀지 않은 곳에 화산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색 강은 바로 그 화산에서부터 흘러들고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수면 위로 피어오르던 유황 냄새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한다.
‘온도도 더 높아졌어.’
화산, 혹은 유황천과 연관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일 터.
러셀의 예상대로.
붉은 물길의 수원이 위치한 곳은 화산지대의 한 켠이었다.
푸쉬쉬쉬쉬-.
곳곳에서 유황 냄새 진하게 섞인 간헐천이 번갈아 가며 치솟아 오른다.
물색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치솟아 오르는 간헐천 또한 붉은색이었다.
그런 간헐천의 한복판에, 바로 수원이 있었다.
작은 호수와도 같은 형태의 수원, 거기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 간헐천들과 섞여들며 계곡을 이뤄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구절에 나온 대로라면 여기가 맞는데-?”
혹시나 싶어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달리 특별한 곳은 없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구절에 나와 있는 곳이 여기가 아니라거나, 그게 아니라면…….
‘강의 끝이 여기가 아니란 말인가?’
바로 그때, 어떤 광경 하나가 러셀의 눈에 포착되었다.
붉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수원, 그곳의 수면 위로 물이 솟구치듯 뽀글뽀글 기포가 솟구치고 있는 광경이었다.
‘설마……?’
그 광경을 보며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길 잠시, 이내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내 팔자야.’
고개를 흔들며 마력을 끌어올렸고, 뜨거운 유황 호수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풍덩!
.
.
부그르르-.
몸이 가라앉기 무겁게 더운 열기가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족히 수십 도에 다다를 듯 덥혀진, 유황이 잔뜩 섞인 물이다.
‘물고기가 살 수 있을 리가 있나.’
그 생각대로, 물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이 일부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것이 눈에 보일 리가 만무했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물에 뛰어드는 즉시 화상을 입었을 만한 열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황 물의 열기는 러셀의 피부를 손상시키지 못했다.
단단한 마력방벽으로 피부를 뒤덮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어느새 상급의 끝에 다다른 화염 속성 이해도가 몸을 보하고 있었기 때문.
덕분에 러셀은 별 무리 없이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눈을 뜰 수 있었다.
‘어디 보자-.’
러셀이 찾고자 하는 것은 이 유황 호수를 만들어낸 진짜 수원이었다.
공기 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어딘가에 이 호수와 연결된 다른 공간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물론 그 공간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지는 조금 별개의 문제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나마 도전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그르르르-.
한동안 물속을 헤집고 다니던 러셀의 눈에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새어 나오고 있는 틈 하나가 발견되었다.
‘저기인가?’
틈을 발견한 러셀이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였다.
공기 방울이 새어 나오고 있는 틈을 향해 다가갔다.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발견한 틈의 입구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겉에서 보이는 입구보다 안쪽은 더욱 넓은 듯했고.
‘들어가 보자.’
그리 생각한 러셀이 즉시 틈을 파고들었다.
부그르르-.
그 움직임에 따라 새어 나오던 공기 방울들이 거칠게 요동친다.
근처에 있는 마그마로 인해 물이 덥혀진 것인지, 온도가 높은 것은 물론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틈 속이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는지 또한 장담할 수 없다.
만약 범인(凡人)이었다면 유황 호수 안에 몸을 던지는 것은 물론, 틈 사이로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터.
허나, 러셀은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꾸준한 훈련 덕분에 늘어난 폐활량은, 남들보다 몇 배는 긴 시간 동안 숨을 참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땅을 뚫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범인은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수중 동굴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파아앗-!
헤엄치던 러셀의 관자놀이를 따라 붉은색의 빛이 치솟았다.
수중 동굴 한복판을 밝히며 앞으로 쭉 뻗어져 나갔다.
마치 이 빛을 따라 계속 나아가라는 것처럼, 빛의 길이 만들어졌다.
화아악!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