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EPISODE.68
콰아아아-!
사나운 기세가 일거에 주변을 잠식했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이 주변을 무겁게 찍어 누른다.
원의 형태로 파문을 그리며 뻗어 나온 기세,
그 기세에 무야호 발밑 땅이 패이며 일대의 풀들이 절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우득, 우드득-.
몇몇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나올 것처럼 위태롭게 휘청거리기까지.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은 감각.
한순간 뿜어져 나온 기세만으로 이 정도라니.
‘그때, 전력을 다했던 게 아니었어.’
불과 며칠 전, 무야호의 다섯 합을 받아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러셀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만 하더라도 무지막지한 실력이라고 생각했거늘, 그게 전력이 아니었다니.
확실히.
초인 중의 초인.
괴물 위의 괴물이라 불리는 실력자들과 비견될 만한 강자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가지. 첫 번째는 무야호의 기세에 살기(殺氣)가 섞여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러셀이라고 할지라도 지근거리에서 무야호의 기세를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는 경험이었다.
‘무야호님의 기세도 강하기는 하지만…….’
꿈속에서 보았던 이들의 기세가 더욱 강력하였으므로.
포효만으로 군기(軍氣)를 출렁이게 하던 거인들의 기세와 그러한 거인들을 도륙하던 흑발의 사내는 물론,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던 용신왕의 모습까지.
꿈이나마 그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지 못했다면, 지금 무야호의 기세가 훨씬 더 강력하게 느껴졌을 테지.
화아악-.
마력을 전신으로 퍼뜨리고,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를 동시에 사용한 러셀이 신형을 고쳐 잡았다.
어깨를 바로 세우며 허리를 꼿꼿하게 들었다.
그와 함께 전신에 전해지던 부담감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 모습에 무야호가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어쭈?’
순간, ‘그것’을 보고 너무 깜짝 놀라서 부지불식간에 기세를 방출하긴 했다.
헌데 설마 이 거리에서 자신의 기세를 견뎌낼 줄이야.
‘아주 재미있는 수컷이야.’
평소였다면 시험이라도 해볼 듯 기세를 조금 더 드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마무리 짓는 게 좋을 듯했다.
눈앞의 수컷에 대한 호기심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보다 우선순위는 바로 저 그믐달 형태의 조형물이었으므로.
그때 러셀이 무야호에게 물었다.
“설명에 앞서, 이게 무엇인지부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러셀의 물음에 무야호가 히죽 웃었다.
“좋아. 설명해주지.”
재밌다는 듯 눈꼬리를 휘며 일대를 잠식했던 기세를 거둬들였다.
스으읏-.
“수컷, 너는 우리 수인들이 왜 이 쿠릴 아일랜드에 갇혀 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쿠릴 아일랜드는 결코 좁은 섬이 아니었다.
땅덩어리의 넓이만 하더라도 중소규모 왕국에 비견될 정도였으니, 수인족들이 살기에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라.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사방(四方)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수가 적은 수인족들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흥. 가당치도 않은 소리.”
언제고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떠들어대자, 무야호가 우습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자신만만한 얼굴에 서늘한 눈초리로 뇌까렸다.
“이봐. 수컷.”
“……?”
“우리 수인족이 인간에 비해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력이 어디 가서 밀릴 정도로 보였어? 아앙?”
그 말대로.
수인족들의 평균적인 능력치는 건장한 성인 남성의 수준을 한참이나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심지어는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마저도 성인 장정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좀 더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일 정도였고.
“우리보다 수가 적은 귀쟁이 녀석들과, 땅굴쟁이 놈들도 멀쩡하게 대륙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고작 그따위 이유로 우리가 쿠릴 아일랜드에 못 박혀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여기서 귀쟁이는 엘프들을, 땅굴쟁이는 드워프들을 이르는 말이 분명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물론.”
무야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우리는 초대 수왕이신 펜릴께서 가지고 계셨던 어떤 물건을 위해, 이 쿠릴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수컷.”
펜릴이 가지고 있었다는 물건.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불 보듯 뻔했다.
‘이 그믐달 모양의 조형물이겠지.’
그제야 러셀은 펜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수인족의 보물이자 족쇄.] [부디 용의 주인께서 그 아이들에게 내려진 족쇄를 거두어 주시길.]‘족쇄, 그게 이런 의미였나.’
수인족들이 대륙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발을 붙잡고 있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족쇄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 물건이 무엇이기에 수인족들이 이 쿠릴에서 머무르고 있냐는 것인데.
그에 대한 의문에 답해주듯 무야호가 말을 잇는다.
“수화(獸化)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갑작스런 수화(獸化)의 언급에 러셀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수화(獸化).
핏속에 각인 된 야수성을 끌어내어, 일시적으로 수인족의 전투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준다는.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
굳이 비슷한 현상을 하나 꼽자면 자신의 ‘용인화(龍人化)’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물건과 수화 사이에 뭔가 연관이라도 있는 겁니까?”
“물론.”
무야호가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봐, 수컷.”
이어 러셀에게 조형물을 건네달라는 듯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수화와는 달리 그 윗단계의 수화가 하나 더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일반적인 수화만 하더라도 차고 넘치는 힘이었다.
그런데 그 윗 단계의 수화라니.
“월식수화(月食獸化).”
달을 삼키고 짐승으로 화한다는.
달의 힘이 만개한 만월(滿月)에만 보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수화였다.
어딘가 몽환적인 이름을 가진 수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절대 몽환적이지 않았다.
“월식수화 시(時) 우리들의 힘은 통상적인 수화보다 3할 이상 상승한다.”
무야호가 어느새 자신의 손에 쥐어진 조형물을 조몰락거렸다.
애당초 수인족에게 전해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기에,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만월이 아닌 날에도 월식수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더 있는데…….”
무야호가 군침이 돈다는 듯, 기분 좋게 으르렁거렸다.
“그게 바로 이 월력석(月力石)이다. 수컷.”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야호의 손을 따라 강대한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화아아악-!
휘몰아치던 마력이 단숨에 조형물 속으로 빨려들고, 월력석이 빛을 발했다.
파앗-!
그믐달 형태의 월력석 위로 조금씩 빛이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환한 보름달의 형상으로 화하며 빛을 흩뿌린다.
밤하늘에서 도도하게 떨어져 내리는, 마치 달빛과도 같은 느낌의 은빛 휘광(輝銀光)이었다.
“이 빛만 있다면 우리 수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월식수화를 할 수 있을 게다.”
월력석을 응시하는 무야호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가라앉았다.
그와 함께 잿빛의 머리칼이 조금씩 길게 자라나며 바람에 펄럭이기 시작하고.
무야호의 전체적인 몸 선이 평소보다 훨씬 매끄럽게 굴곡졌다.
딱히 수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빛에 영향을 받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물론 길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뿜어져 나오던 휘은광이 툭하고 꺼져버린 것.
“젠장.”
무야호가 걸걸한 평소 성격에 맞게 나쁜 말을 뱉었다.
머리를 마구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담아 두었던 달빛이 다 바닥난 모양이야.”
이어 아쉽다는 듯 쩝, 입맛을 다셨고 러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수컷, 이 월력석을 도대체 어디서 찾은 거지?”
이젠 러셀이 물음에 답해줄 차례였다.
* * *
신지(神地) 안쪽에서의 일을 적당히 각색해 들려주자, 무야호의 반응이 참 재미있었다.
“붉은 물의 수원이 궁금해서 유황천 안쪽에다가 몸을 던졌다고?”
“이봐 수컷. 너 미친 거냐?”
“요술쟁이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수컷. 너는 그 정도가 과하구나!”
“그러다가 펜릴님의 유해를 발견했어?”
그 반응이 절정에 달한 것은 러셀이 펜릴의 유해를 발견한 시점부터였다.
“이 월력석이라는 것도 그곳에서 발견한 겁니다.”
“펜릴께서 월력석을 가지고 계셨단 말야?”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곳에 남아 있던 펜릴의 의지가 이 물건을 수인족들에게 전해주라고…….”
러셀은 제대로 말을 맺지 못했다. 말을 끝내는 것보다 먼저, 무야호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고목나무에 들러붙은 매미마냥 그대로 러셀의 몸을 콱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잘했다. 수컷! 아주 훌륭한 일을 했구나! 칭찬하마!”
제 딴에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행동이라지만 정작 당하는 입장에선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던 바.
“무야호 님. 일단 조금 진정을…….”
달라붙은 무야호를 떼어내기 위해 힘을 써봤지만, 애당초 힘으로 그녀를 밀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캬하하하하!”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러셀을 끌어안은 무야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신이 난다는 듯 목소리 높여 외쳤다.
“연회다! 오늘은 연회를 벌이자!”
* * *
갑작스럽게 벌어진 연회였지만, 도시 ‘펜릴’의 주민들은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연회라고 외치며 뛰어 들어오는 펜릴의 모습에, 이런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고기를 꺼내고 술을 준비했을 뿐.
왜 연회를 벌이자는지 조차도 묻지 않았다.
물론 연회의 이유가 밝혀졌을 때는, 모두가 ‘건배’를 외치며 흥겹게 술잔을 들어 올렸지만.
그렇게 시작된 연회는 왕국의 연회와는 다른 의미로 즐거웠다.
값비싼 궁중요리와 궁정악단의 음악은 없었지만, 대신에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연회 곳곳에서 묻어났던 것이다.
게다가 도시 전체를 연회장으로 삼은 것만 같은 스케일이라니.
반딧불이를 잡아 빛을 밝힌 연등은 밤이 내린 도시를 마치 낮처럼 밝히우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수인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망루처럼 설치된 가장 높은 상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전경을 더 잘 살필 수 있었던 것.
어느새 곁에 다가온 무야호가 팔꿈치로 러셀의 허리를 쿡쿡 찔러댔다.
“어때, 즐겁지 않느냐. 수컷?”
벌써 몇 잔이나 마신 것인지 이미 불콰하게 취해버린 얼굴이었다.
“예. 즐겁습니다.”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을 으깨어 만든 술을 입가로 가져갔다. 적당히 목을 축인 뒤, 무야호를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수인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앙?”
“월력석을 찾았으니 더 이상 쿠릴 아일랜드에 묶여 있을 필요는 없을 것 아닙니까.”
“그렇긴……하겠지.”
무야호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조롱박에 담긴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이 섬을 떠나지는 않을 거다. 월력석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수백 년이나 살아온 만큼 이곳은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거든.”
“그럼……?”
“나가긴 나가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겠지. 아마 몇 년 정도? 어디에 정착하는지도 문제고.”
확실히,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복잡했다.
이만한 수의 수인족들이 몰려와서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면 그 어떤 나라도 반기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더 이상의 설명은 없다는 듯, 무야호가 화제를 전환했다.
이어 은근한 시선으로 러셀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물었다.
“너는 내게 바라는 점이 없나. 수컷?”
“……?”
“아니, 그게 아니라…….”
말꼬리를 흐리며 제 볼과 콧잔등을 긁었다.
“월력석을 찾아 주었으니 말이다. 원한다면 그 보상으로 지금 당장 네 씨를 받아 줄 수도 있다.”
불콰하게 오른 취기 때문이었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무야호가 중얼거렸다.
“……여차하면 나는 두 번째도 상관없다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