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EPISODE.70
‘큭.’
세찬 기파에 러셀이 낮게 침음을 흘렸다.
투기(鬪氣)의 형상마저도 수백 종에 달하는 무기의 형태를 띠게 할 수 있다니.
‘과연, 웨펀 마스터.’
저와 같은 경지에 올라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월과 경험, 그리고 고련이 필요할는지.
마법사인 러셀은 감히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강대할 지언정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순간 무릎이 휘청하긴 했지만 그뿐.
‘정면에서 대항하려 해선 안 된다.’
마스터와 기세를 정면으로 맞부딪칠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같은 마스터에 국한되었으므로.
맥라이 휴스와 벌였던 생사의 접전, 그리고 무야호와의 대련을 통해 그와 같은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한 러셀이었다.
허나, 맞부딪칠 수 없다는 말이 곧 견뎌 낼 수 없다는 말은 아니었던바.
‘흘려낸다.’
스르륵-.
심장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러셀의 주변을 휘돌며 기묘한 마력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내 흐름이 나선과도 같은 형상으로 화했다.
휘류류류류-.
러셀을 향해 날아들던 투기가 천천히 그 흐름에 섞여들었다.
주변을 떠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러셀의 뒤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물론 완전히 흘려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피부가 오싹하고, 근육이 옥죄는 감각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러셀이 그의 투기를 받아냈다는 점이었다.
‘허.’
그 모습에 길리언 펄슨이 혀를 내둘렀다.
비록 전력을 다한 기세는 아니라지만, 그것을 저리 수월하게 받아 내다니.
물론 이 정도 모습은 같은 6써클 마법사인 버밀리온 울센 역시 보일 수 있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고작해야 6써클에 오른 지 1년 남짓한 애송이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었던 바.
‘물론 눈앞의 애송이가 보통의 녀석들보다 훨씬 성장이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빠른 성장을 넘어선 무언가, 이런 경우 추측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눈앞의 애송이에게 이런 경험이 꽤 많다는 것. 그로 인해 기세를 받아 흘리는데 익숙해졌다는 것.
백탑주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을 받은 다리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도리질 친다.
‘그렇다면 정말로-.’
‘수왕(獸王)과의 대련을 통해서…….’
그때.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자, 시험은 이쯤 하면 충분한 것 같고 다시 의제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소?”
참으로 시기적절한 개입.
짝-.
박수 소리와 함께 길리언 펄슨이 침음을 흘리며 기운을 거둬들였다.
화아악-.
자신에게 겨눠졌던 수십, 수백에 달하는 무형창검(無形槍劍)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 또한 마력을 회수했다.
화아악.
자신이 답변해 주었기 때문일까.
그 후로의 회의는 생각했던 것보다 순탄하게 흘러갔다.
걱정했던 부분이 많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인지, 반응 역시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쿠릴 아일랜드에 사람을 보내 확인과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 남기는 했지만.
그쯤이야 뭐.
‘이런 식이면 오래지 않아 무야호님께도 긍정적인 답변을 전해드릴 수 있겠는데?’
물론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할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고작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내리기에는, 엔디미온이라는 나라가 너무도 거대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큰 틀이 세워지는 선에서 1차 회의가 끝나고.
회의에 참석한 대소신료들을 물리기에 앞서, 국왕이 엄숙한 목소리로 고했다.
“회의를 끝내기에 앞서, 먼저 이 자리에서 러셀 레이먼드 백작의 공을 치하(致賀)하도록 하겠다.”
치하란, 신상필벌(信賞必罰)에 있어 아랫사람이 세운 공에 대해 감사의 표시로써 윗사람이 상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바.
자리에 앉아 있던 러셀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근래에 자신이 공을 세웠던 적이 있는가-해서였다.
혹시나 해 스승인 다리아를 바라봤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띠고 있을 뿐.
그런 러셀의 의문에 답해주듯 국왕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직 1차 회의가 끝났을 뿐이라지만, 앞으로의 분위기 또한 오늘과 같이 흘러간다면 아국(我國)은 무려 이십만에 달하는 수인족들을 품을 수 있게 될 테지.”
특별한 변수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사실상 십중팔구 확정된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중 십만은 훈련된 정병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이들이었고, 그들의 통솔하는 수왕(獸王)은 초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기까지.
“레이먼드 백작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들을 품을 수 있었겠는가?”
국왕의 말에 러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와 수인족이 인연이 닿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 공을 세우고자 함은 아니었습니다.”
“경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만-.”
국왕이 빙긋 웃었다.
“그렇다 하여도 공은 공이지.”
이어 그가 어깨를 활짝 펼쳤다. 자리에서 일어나 대소신료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국의 백작, 러셀 레이먼드 경은 들으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자리에서 일어난 러셀이 고개를 숙였다. 한쪽 무릎을 공손히 꿇었다.
비록 의도치 않은 일이라곤 하나, 이미 국왕은 상을 주기로 결정을 내린 듯 보였으므로.
게다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받아 두어서 나쁠 것은 없을 테지.’
자세를 잡고 준비를 마친 러셀을 일견하며 엄숙한 목소리로 국왕이 말했다.
“날카로운 송곳은 가만히 두어도 주머니를 찢고 나오는 법이라던가. 나는 경만큼 그 격언에 어울리는 자를 보지 못했던바. 경이 지금까지 아국을 위해 세웠던 크고 작은 공들을 치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빌어 샛별이라는 의미를 담아 신성공(晨星公)이라는 칭호를 내리노라!”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쉬지 않고 이어 붙였다.
“또한 왕실 비고의 물건 중 하나에 대한 소유권 역시 함께 수여하는바. 부디 앞으로도 신성(晨星)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아국을 비춰주는 별이 되기를. 짐은 그리 바라보노라.”
왕실 비고의 물건 중 하나에 대한 소유권이라는 말에 러셀이 미처 놀람을 수습하기도 전에.
[회의가 끝나면, 잠시 따라오거라. 막내야]귓전으로, 다리아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폐하께서 너와 긴히 나누실 이야기가 있으신 듯하더구나.].
.
다리아의 안내를 받아 러셀이 당도한 곳은 왕궁 심처에 위치한 접견실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폐하께서 오실 게다.”
몇 개나 되는 접견실 중, 독대.
혹은 몇 안 되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몇 평 남짓의 접견실.
그녀가 러셀을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는 간단했다.
회의를 마친 국왕이 비교적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해서.
러셀의 안내를 마친 그녀는 곧장, 접견실에 준비된 과자를 집어 들었다.
가루 반죽으로 만든 칩(Chip)에 작은 초콜릿을 숭숭 박아 놓은 과자였다.
와삭, 와삭.
“음. 왕실의 과자는 언제 먹어도 각별하단 말이지.”
뒤쪽에서 들려오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러셀이 가볍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러자 응접실 곳곳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드러냄이 없으면서도 기품과 격을 잃지 않는, 고고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있는 응접실이었다.
그렇게 응접실의 곳곳을 둘러보며, 러셀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럽게 이 시점에서 나를?’
공적으로는 국왕과 백작.
사적으로는 장인어른과 사위의 사이였다. 사사로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불렀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 역시 있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홀로 고민하며 고개를 기울이길 몇 번인가, 이내 국왕이 응접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인자한 표정으로 러셀과 다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허. 내 경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는지 모르겠군.”
그의 중얼거림에 다리아가 천연덕스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요. 폐하 덕분에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한 손으론 초코칩이 숭숭 박힌 과자를 흔들어대면서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려-그렇게 중얼거리며 국왕은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 머뭇거리며 고민하길 잠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을 내린 그가 입을 뗐다.
“러셀 레이먼드 백작.”
“예. 폐하.”
“그대를 왕실의 일원으로 받아 들인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군.”
“……?”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이며 운을 띄우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러셀을 향해 국왕이 꺼내놓은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하여 말이네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이제 경을 백작이 아닌 사위로 부를까 하네만.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누구의 말이라고 거절할까. 러셀이 승낙하자 국왕이 슬쩍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로구만, 혹시나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거늘.”
헛헛하며 웃는 것이, 진심으로 그리 생각한 모양.
그를 보고 있노라니, 국왕과 신하로서 마주했을 때와는 꽤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 역시 들었다.
물론 어느 쪽 모두 어색함이 없으니, 양쪽 모두 본모습일 테지만.
직후 이어진 것은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는 대화들이었다.
질문의 대다수가 헤카테와의 관계에 편중되어 있는, 다분히 장인어른과 사위가 나눌 만한 대화들.
그렇게 얼마쯤, 이런저런 대화들이 이어졌을까.
세 사람의 앞에 놓여 있던 찻잔이 반쯤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하며 국왕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실 내 오늘 경들을 이리 부른 것은, 사위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서일세.”
한 가지도 아니고 두 가지.
“한쪽은 경고이고, 한쪽은……보상이네만. 보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은 경고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겠군.”
경고라는 말에 러셀이 고개를 외로 꼬았다. 혹시나 하는 눈길로 스승을 바라봤지만, 다리아는 그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을 뿐.
‘이미 알고 계신 건가?’
그러는 사이 국왕이 얼굴을 굳히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그러니까, 비스마르크 대공과 블레인 일파를 조심하도록 하게.”
“……?”
두 사람을 조심하라는 이유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 대공은 왕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였고, 블레인은 그런 비스마르크 대공의 파벌이었으므로.
게다가, 그는 자신의 스승인 다리아에게 염탑주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던가?
물론 그가 탑주가 되었다면 염탑(炎塔)이 아닌 그저 왕도적탑(王都赤塔)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테지만.
어쨌건 간에.
“그렇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국왕이 한숨과 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레이먼드’라는 이름을 들은 후, 나는 그 가문에 관한 기록들을 간단히 훑어보았다네.”
당장은 아니라지만, 불과 십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혹 레이먼드라는 이름이 들려오곤 했었으니까.
“!?”
가문에 관한 기록을 훑어보았다는 그의 말에 러셀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레이먼드 가의 영지가 국고로 환수된 경위에 관한 보고서까지 확인해봤지.”
『레이먼드 가(家)와 ‘러셀 레이먼드’에겐 더 이상 영지를 경영할 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은바.
해당 영지를 국고로 회수한다.』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러셀에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런 러셀을 향해 국왕이, 충격적인 말 한마디를 던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보고서는 조작되었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