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EPISODE.71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국왕의 말은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손끝이 파르르 떨려오고.
그런 와중에도 국왕의 음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굳이 환수될 이유가 없는 영지를, 국고로 환수하여 자네를 영지 밖으로 떠밀었다 해야 옳을 테지.”
생사의 대적을 만났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감각.
“워낙에 교묘하게 조작된 데다, 상세한 보고가 내 선까지는 올라오지 않았기에 파악하는 것이 늦었어. 정말로 미안하네.”
말을 맺으며 국왕이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고작 이런 사과 따위가, 자네가 헤쳐온 세월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네. 허나 이는 분명 짐의 실책. 자네와 레이먼드 가(家)에 사과를 해야 옳아.”
대륙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제국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국가가 바로 엔디미온이다.
열강(列强) 중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가라는 이야기. 그런 국가의 국왕이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그 고개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터.
심호흡을 하고, 소요를 가라앉히며 러셀이 되물었다.
“그 모든 일들이 대공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이십니까?”
“십중팔구, 그럴 테지.”
십이면 십이지, 십중팔구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인지. 의아해하는 러셀을 향해 답변해준 것은 다리아였다.
손에 들고 있던 쿠키를 내려놓으며, 옆에 앉아 있던 다리아가 러셀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그를 달래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꽤 많은 단서가 대공을 지목하고 있으나, 그중 명확하다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단다. 지금 와서 그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뿐더러 말소되고 지워진 기록이 너무 많아.”
안타까운 목소리.
단순히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될 왕실의 문서가 아니었기에.
그렇다는 말인즉.
‘누군가의 손을 탔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쩐지 뒷목이 뻐근했다.
망치로 얻어맞기라도 한 듯, 머릿속이 어질어질하다.
“당시의 담당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대부분이 병사를 하거나 사고로 사망을 한 후더군.”
그런 가운데 러셀의 머릿속에서 몇 조각의 퍼즐이 짝을 이루며 맞춰 들기 시작한다.
‘맥라이 휴스가 했던 말.’
아버지를 죽인 흉수가 왜 제국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였던가?
정확하게 일치하진 않겠지만, 대충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의 이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괜찮은가. 사위?”
그리 생각한 러셀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국왕과 다리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두 분께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러셀의 반문에 그의 상태를 걱정하던 국왕과 다리아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제 아버지……전대 레이먼드 백작의 죽음에도 대공이 연관되어있는 것입니까?”
“전대 레이먼드 백작의 죽음에?”
국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레이먼드 가와 관련된 기록들을 확인하며 러셀의 아버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서 역시 이미 확인한 후였다.
“전대 레이먼드 백작이라면 전장에서 화(禍)를 당한 걸로 알고 있다만, 그리 생각한 이유라도 있더냐?”
다리아의 물음에 러셀이 고개를 주억인 후 입을 열었다.
전날 맥라이 휴스와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했다.
“실은…….”
그리 길지 않은 설명이 끝나자, 국왕과 다리아가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미 죽어 버린 놈이긴 하지만, 어쨌건 간에 맥라이 휴스는 적이었다.
적이 남긴 말을 십 할 모두 신뢰할 정도로 두 사람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왕실의 문서가 한 차례 손대어진 정황이 있지 않던가.
당시의 전투 보고가 조작되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리아 경.”
“알겠습니다. 폐하.”
국왕이 달리 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아는 유창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당시의 기록을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물론, 염탑의 정보원들을 움직여 정보를 취합해보지요.”
“부탁하지.”
러셀 또한 첨언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만약 이 일이 잘 풀리게 된다면, 그토록 오랜 기간 찾아 헤맸던 아버지의 원수를 알게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다만 설마하니 그 흉수를 왕국 안에서 찾게 될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었지만.
그런 러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다리아가 팔을 움직였다.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간은 조금 걸릴지도 모르지만, 이 스승도 노력해보마. 막내야.”
“그리고…….”
말꼬리를 흐리며 국왕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러셀의 앞에 올려두었다.
“이것을 받아주게.”
왕실의 봉납이 선명하게 찍힌 종이. 왕실의 봉납이 찍혀 있다는 것부터,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기묘한 마력의 흐름까지 느껴지는 종이였다.
“이건?”
이 종이가 과연 무엇이기에. 의아해하는 러셀을 향해 다리아가 물었다.
“루브리엄 왕립 박물관에는 지하 6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지하 6층 말씀이십니까?”
러셀이 알기에 루브리엄 박물관은 지하 5층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하 6층을 언급한다는 것은…….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극히 소수의 인물들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층이지.”
손을 뻗은 다리아가 봉납이 찍힌 종이를 들어 올렸다.
“이 문서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허가증이란다.”
다리아의 설명에 따르면, 그곳에는 엔디미온 왕국 소속 역대 마탑주들이 남긴 마법서가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마탑주란 최소한 6써클의 실력을 갖춘 마법사들을 이르는 말이었던 바.
‘그들이 남긴 마법이라면…….’
러셀의 추측이 옳다는 듯 다리아가 턱 끝을 까닥였다.
“기존의 마법서에 각 탑주들만의 견해와 주석이 달린 것은 물론, 그들이 남긴 오리지널리티 마법 역시 다량 포함되어 있지.”
세상의 신비와 마법에 대한 지식이라면 그 어떤 지혜열(知慧熱)조차 기꺼이 감수할 만한 이들이 바로 마법사란 족속이었다.
그런 마법사들에게 있어 루브리엄 왕립 박물관 지하 6층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라고밖에 할 수 없었던바.
“이걸로 사위가 겪은 간난고초의 시간을 보상할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왕실이 범한 죄이며, 나는 국왕으로서 이 죄를 사죄하고 보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네.”
말을 하며.
“그러니 부디, 받아주시게.”
국왕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 * *
대공과 블레인.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고민들이 휘돌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언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니.’
고소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왕도 서쪽으로 노을이 짙게 깔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입궁을 한 것이 오전이었는데, 회의에 참석하고 국왕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된 것.
‘후.’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러셀이 고개를 작게 도리질 쳤다.
‘일단은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지 말자.’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아직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완전치 않은 정보로 결론을 내리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다.
게다가, 왠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 찝찝한 감각까지.
그때였다.
“막내야.”
러셀의 옆에서 발을 맞춰 걷던 다리아가 질문을 던져온 것은.
“왕실의 비고와 박물관의 지하 6층 중, 어느 쪽을 먼저 방문하겠느냐?”
어느 쪽을 먼저 방문하든 상관없는 문제였지만, 그에 대한 관리 감독 역할을 맡은 것이 그녀였기에 물어 오는 질문.
“음.”
잠시 침음하던 러셀이 이내 결정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후자로 하겠습니다.”
박물관의 지하 6층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비고에 있는 물건이나 아티펙트들도 충분히 탐이 나긴 하지만…….’
당장에 더 끌리는 것은 지하 6층의 마법서들이었으므로.
물론 왕녀.
헤카테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러셀은 주저치 않고 전자를 택했을 터였다.
허나, 아쉽게도 그 목걸이는 왕실의 보물이 아닌 헤카테 개인의 보물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걸 얻는 것은 무리겠지.’
러셀의 선택에 저녁놀을 응시하며 다리아가 말했다.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내일 정오에 루브리엄 박물관의 앞에서 보자꾸나.”
.
.
다음날 정오.
약속대로 루브리엄 박물관의 정문에서 만난 다리아는, 지하 5층을 향해 내려가며 지하 6층의 입장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명심하거라, 막내야. 네가 비록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허가증으로 들어갈 수 있는 횟수는 단 한 번으로 제한된다는 것을.”
중간에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안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 48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단다.”
다시 말해, 48시간 동안 식사를 포함해 모든 생리적인 현상 또한 안쪽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러셀에게는 아무런 문제조차 되지 않았지만.
“더불어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책 또한 단 한 권으로 국한되어 있으니, 부디 신중히 선택하려무나.”
그렇게 다리아의 충고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걸음은 박물관의 가장 마지막 층으로 알려진 지하 5층에 당도했다.
뚜벅-.
지하 5층에 들어선 직후, 다리아가 주변을 둘러봤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허가증을 가진 네 눈에는 아래층으로 향하는 통로가 보일 테지.”
그 말대로.
박물관 벽면의 일부를 따라 희미하게 빛의 선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 선들이 어우러지며 어떠한 문의 형상을 그려낸다.
러셀이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직후, 쏟아져 나온 환한 빛이 러셀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화아아악-!
.
.
‘윽.’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지 않은 감각.
오감이 통째로 뒤흔들리고, 속에서 메스꺼움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공간이동 마법.’
이름은 지하 6층이라고 명명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문은 사실상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는 일종의 워프 게이트였던 모양.
우우웅-.
마나를 휘돌리는 것으로 멀미를 날려 버린 러셀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쿠그그긍, 쿠긍, 쿠그그그긍-.
그러자 수십, 수백에 달하는 서가들이 기묘한 각도로 움직이며 재배치되어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구잡이로 배치되어 있던 모습에서 잘 정련된 서고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긍, 쿠그그긍-.
오래도록 사람이 들어오지 않은 탓일까.
서가가 움직일 때마다 목을 따끔케 하는 먼지가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쿵.
마침내 서가의 정렬이 끝났다.
자신을 반기기라도 하듯, 좌우 양쪽으로 정렬되며 끝없이 늘어진 서가들.
‘이 많은 마법서들이 모두 역대 탑주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들이란 말이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러셀은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확실히 마법사긴 한가 봐.’
수백, 수천에 달하는 두꺼운 서적들을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이 답답하기는커녕 도리어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다니.
오래된 책 내음에 심장이 기분 좋게 맥동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걸음을 옮겼다.
손끝으로 서가에 꽂힌 마법서들을 가볍게 훑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