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EPISODE.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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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6층에 들어서며.
러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서가를 가득 채운 서책의 제목을 살피는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서책의 내용을 전부 외우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지닌 이라 할지라도, 순간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48시간 안에 수백에 달하는 책들을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미지 프레임 마법을 사용해 촬영할 수도 없어.’
다리아와 국왕의 설명대로라면, 박물관의 지하 6층은 아공간 마법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을 제외한 모든 마법의 사용이 엄격하게 통제된 곳이었으므로.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 동방 대륙의 격언으로는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고 하던가.
‘이만한 마법서들이 자격 없는 이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할 테니까.’
좌우(左右), 각기 수십 미터에 달하는 서가를 꽉꽉 채우고 있는 서책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훑는 것 또한 마냥 쉽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지.’
그렇게 해야 읽은 적이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 테니까.
-세인트 엘모의 불(Saint Elmo’s fire).
-적염(赤焰)에서 백염(白焰)에 이르기까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요.
아니나 다를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책들 사이로, 눈에 익은 제목의 서책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책 바깥쪽으로 이리저리 표기가 남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저것들이 바로 주석본인 듯했다.
‘일단 이것들은 제외하는 게 좋겠지.’
단순히 내용을 달달 외울 만큼 읽고 이해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역대 탑주들이 남긴 주석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그들을 제외한 이유.
그것은 제한된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종류의 마법서들을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한번 읽은 것보다는, 그래도 읽지 않은 것들 위주로 공략하는 편이 나을 터.’
물론 개중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러셀의 관심을 잡아끄는 마법서들 역시 더러 있었다.
‘맛있는 감자를 기르는 101가지 방법? 이건 또 뭐야?’
왜 이런 책이 이곳에 있는 것인지, 의아한 수준의 제목.
‘미친.’
허나, 실소가 나오는 제목과는 달리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의외로 심오한 마법의 정수였다.
‘지력(地力)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후, 씨앗을 흩뿌려 단 1초만에 수백 알의 감자를 자라나게 하는 마법이라고?’
게다가 그 모든 감자를 화탄(火彈)으로 바꾸면서 지축을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선보이기까지.
제대로 펼칠 수만 있다면 식량난 해결은 물론, 일대 전체를 뒤집어 버릴 만한 위력을 보일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전투에서의 위력은 둘째로 치더라도, 감자를 길러내는데 7써클 마법사를 투입한다는 건 좀…….’
현실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라.
도대체 누가 이런 마법서를 오리지널리티로서 남겨둔 것인지.
-에드반 뤼드겐.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본 인물의 정체는 400년 전 왕도 황탑의 탑주였다.
‘아무래도 당시의 왕도황탑주님은 상당한 괴짜셨나 보군.’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마법을 개발할 리가 없잖은가.
혀를 내두르며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러셀이 일차로 선별한 마법서들을 뽑아 들었다.
이어 빠르게 책 속으로 고개를 묻었다.
촤르르르륵-.
그간 소소한 미션들을 통해 독해 속도를 많이 높여 놓은 덕분일까.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마법서를 확인하는 걸 목표로 해야겠지.’
결국 가져 나갈 수 있는 마법서가 단 하나에 국한된다면-.
‘전체가 아니라 정수만 기억해두더라도 꽤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마법의 정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신의 마법관 위에 쌓아 올리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면 단순한 주춧돌을 넘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기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마법관이 성장할 것인즉.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러셀이 계속해 페이지를 넘겼다.
사락, 사락-.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책 위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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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인간이 과연 잠을 자지 않고 그만한 시간을 버텨 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변은 당연하게도 ‘그렇다.’였다.
실제로 왕국의 정병들 중 수색 임무를 맡은 일부 부대는 72시간 이상 자지 않고 활동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고.
더욱이 러셀과 같이 경지에 오른 인물에게 48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랬겠지.’
허나 이번에는 그 경우가 조금 달랐다.
단순히 깨어 있는 것에서 그치는 수준이 아닌, 수준 높은 마법서를 읽는데 심력을 소비하며 48시간을 버티는 일은 러셀에게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24시간이 흐른 시점에서부터 이미 두 눈에 붉게 충혈되고, 입안의 침이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끙.”
우득, 우드득.
한권의 책을 독파한 시점에서 팔다리를 움직여 관절과 근육을 잠시 풀어준 것이 휴식의 전부였을 뿐.
짧디짧은 휴식을 마치며 러셀이 다음 서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 보자, 다음은…….’
[지룡(地龍)의 포효]꽤나 멋들어진 마법명이다 싶어 저자를 확인해보니, 그 이름이 눈에 익었다.
‘에드반 뤼드겐.’
누군가 했더니 ‘맛있는 감자를 기르는 101가지 방법’의 저자였다.
‘이번에도 전과 같이 우스꽝스런 마법일까?’
왠지 모를 기대감까지 느끼며 첫 장을 넘겼던 것과는 달리, 러셀이 책에 몰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락, 사락-.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핏발 가득한 러셀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어린다.
‘이건…….’
5써클 마법인 어스퀘이크를 변형하고 개량하여, 7써클의 수준까지 끌어 올린 마법이었다.
‘땅속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는 마력을 오로지 지표면에만 집중시키는 형태의 마력.’
그렇게 집중시킨 마력을 충격파와 함께 부채꼴의 형태로 쏟아내는 것이다.
‘어긋나고 갈라진 지면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음속에 준하는 속도로 적을 향해 달려든다…….’
일격(一擊)인 충격파로 신체의 자유를 빼앗고, 이격(二擊)째로 치명적인 충격을 가하는.
그야말로 지룡이 포효하는 듯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마법이었다.
사락, 사락-.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지룡의 포효’가 품고 있던 마법의 정수가 조금씩 러셀에게 와 닿았다.
화려한 연출과 강맹한 위력만큼이나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이론이다.
때문이었을까.
요체만 빠르게 파악하고 넘기려던 처음과 달리, 어느새 러셀은 마법서의 내용을 한 줄 한 줄 집중해 읽고 있었다.
무려 7써클 마스터가 오리지널리티로 삼았던 것인 만큼, 일차로 독파를 끝내는데 걸린 시간만 하더라도 수 시간.
그렇게 시간이 흘러, 러셀이 마침내 마법서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대지(地) 속성 마법에 대한 이해가 소폭 상승합니다.]-알림이 들려왔다.
[상급 대지(地) 속성 이해도가 마침내 한계(+99.9%)에 도달합니다.]돌연 미션창이 떠올랐다.
[미션]대지(地) 속성 이해도 상승시키기.
한계에 다다른 상급 대지(地) 속성 이해도를 최상급으로 상승시키세요.
[보상]상급 마석(식용)x2, 지룡(地龍)의 발자취.
‘지룡의 발자취?’
보상을 확인하던 러셀의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 해졌다.
은룡(銀龍)과 화룡(火龍) 이후.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해야 할지,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깊어지던 차였다.
그간 찾아 두었던 용과 관련된 기록 중, 가능성이 꽤 높은 것들은 이미 대부분 찾아 다녀온 지 오래.
남은 것들은 사실상 뜬소문에 불과하거나, 용이 아닌 용종(龍種)의 목격담이 부풀려진 것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룡의 발자취라니.
미션의 보상으로 나온 만큼 신뢰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터.
‘문제는 어떻게 대지 속성 이해도를 한계 이상으로 상승시키느냐-겠지.’
지금 러셀이 지니고 있는 속성에 대한 이해도 중, 상급을 넘어선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최상급 화염(火) 속성 이해도.’
한계에 도달했던 상급 화염 속성 이해도가 브라흐마스트라의 정수를 받아들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했던 것.
‘하지만 이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애당초 브라흐마스트라와 같이 수준 높은 마법은 그리 쉬이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는 지하 6층의 서고라고 할지라도.
‘브라흐마스트라는 최소한 9서클 마스터,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화(神話)급의 마법이야.’
그에 비해, 신화시대가 끝난 후 이 땅에는 단 한 번도 9써클 마스터가 탄생한 적이 없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브라흐마스트라에는 미치지 못한다지만.’
이곳은 역대 마탑주들의 오리지널리티가 지천에 널린 보물창고가 아니던가.
하나가 안 된다면 열을. 그래도 부족하다면-.
‘백을 때려 박으면 그만이지.’
결정을 내린 러셀이 옆에 쌓여 있는 책들의 제목을 빠르게 훑었다.
사대 원소는 물론 그 파생 원소나 빛과 어둠, 그림자 등.
아직 읽지 않은 각양각색의 마법서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저렇게 다양한 마법이 아닌, 대지 속성에 대한 이해도였다.
‘아무래도 읽을 책을 다시 골라야겠어.’
이제 남은 시간은 열다섯 시간 남짓. 충혈된 눈을 비비며 러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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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앓는 소리와 함께 러셀이 미간을 찌푸렸다.
쉬지 않고 심력을 소모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관자놀이 부근이 지끈거렸다.
이마에서 흘러나온 땀은 어느새 러셀의 어깻죽지를 축축하게 적셨을 정도.
한계에 다다를 만큼 뇌를 혹사하는 일은, 육체를 움직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주르륵, 뚝. 뚝.
‘코피?’
옷 끝을 찢어 흘러내리는 코피를 틀어막은 러셀이 다시 책 속에 고개를 묻었다.
고작 코피 따위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가능하면 완벽히 이해하는 게 좋겠지만.’
그리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모두 외울 수밖에.’
마법의 요체와 수식, 정수를 모두 기억한 후, 밖에 나가서 옮겨 쓰는 것이다.
‘이게 최선이야.’
무식하기 그지없는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다.
‘대지 속성 6써클 마법서야 밖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을 테지만…….’
전대 탑주들의 오리지널리티만큼 가치 있지는 않았으므로. 게다가 이번에 얻은 소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설마 이곳에서 이걸 발견할 줄이야.’
잔뜩 쌓여 있는 대지 속성 마법사들의 옆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며 놓여 있는 마법서.
[초월몽(超越夢)]그 이름과 저자를 확인하며 러셀이 희미하게 웃었다.
-루더 레이먼드.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