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EPISODE.72
루더 레이먼드.
레이먼드 가(家)의 시조인 그에 대한 기록은 가문에조차 그리 많이 남아 있는 편이 아니었다.
왜 많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그의 말년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실정이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는 그의 기록들 중, 꽤나 굵직한 것들을 들추어 보자면-.
‘건국왕과 함께 엔디미온의 건국에 힘을 보탠 건국공(建國公).
‘당시 마법으로는 비할 자가 없는 실력을 지녔다는 8써클 마스터.’
‘레이먼드 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마법사.’
그리고.
‘신대(神代)의 종결 이후, 그 맥이 끊어졌다는 초월(超越)에 도전한 위대한 대마도사.’
이 ‘초월몽(超越夢)’은 바로 그 루더 레이먼드가 남긴 오리지널리티 마법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오리지널리티 마법이 아닌, 루더 레이먼드를 상징하는 마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승에 의하면 루더 레이먼드는 격랑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선 거대한 해일의 모습으로 화(化)했으며,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선 벼락 그 자체가 되었다고 했다.
그 모든 일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이 초월몽이라는 마법이었고.
루더 레이먼드라는.
위대한 마법사가 초월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부산물.
‘사람으로서의 태(態)를 벗고 마법 그 자체로 재생(再生)하는. 세상의 경계를 아득히 벗어난 외법(外法).’
가문에서도 이름으로만 남아 있던 마법을 설마 이곳에서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운이 좋았지.’
그야말로 기적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확률이었다.
본래는 이 마법서를 꺼내려던 것이 아니라, 다른 대지 속성 마법서를 책장에서 빼내는 과정에서 이것이 함께 딸려 나온 것이었으므로.
‘설마 그 책이 초월몽이었을 줄이야.’
그 일이 아니었다면, 제목의 세로 부분이 뜯겨나간 이 책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이를 발견한 이상 밖으로 가져나갈 단 한 권의 마법서에 대해선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물론 가지고 나간다고 해서 바로 익힐 수는 없을 거야.’
이러려니 저러려니 해도, 초월몽은 8써클의 마법서였으니까.
아직 6써클 마스터에도 이르지 못한 러셀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 높은 마도서였다.
하지만 가문의 시조가 남긴 마법서라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던바.
이제 남은 것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대지 속성 마법서를 외워 나가느냐 하는 것일 뿐.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다시 그러모으며 러셀이 책 속에 고개를 묻었다.
.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러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허가증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예정되었던 48시간이 거의 다 끝나 감을, 몇 분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가야겠군.’
몸을 일으킨 러셀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이내 ‘초월몽’의 마법서를 품에 안고서 걸음을 옮겼다.
처음 안으로 들어섰던 방향을 거슬러 빛의 문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탈진이라도 한 듯 마법서를 안고 있는 손가락 역시 파르르 떨렸다.
실제로 탈진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것 같은 감각.
단기간 내에 잠도 자지 않고 적지 않은 심력을 소비한 대가였다.
화아악-.
밖으로 나서자, 지친 머릿속으로 워프 게이트 특유의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윽.’
제 역할은 끝났다는 것인지, 다른 쪽 손에 쥐고 있던 허가증이 잿가루로 화해 흩어지고.
화르르륵.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러셀을 반기는 이가 하나 있었다.
“딱 좋게 나왔구나. 막내야.”
다리아였다.
그런 스승의 모습에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러셀이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그럴 리가.”
그 물음에 다리아가 낄낄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 스승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처럼 보이더냐? 나도 내 일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돌아왔을 뿐이란-.”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말을 맺다 말고, 휘청이는 러셀의 몸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졸지에 스승에게 부축을 받게 된 러셀이 중얼거리자, 다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저런.”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러셀의 상태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48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마법서를 읽는 데만 몰두한 모양이지?”
“……예.”
자신의 상태를 단번에 꿰뚫어 보는 스승의 말에 러셀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다.
“막내, 너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그런 무식한 짓을 벌일 줄이야. 쯧쯧.”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거늘.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도, 그녀의 막내 제자는 가끔 이런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우마(牛馬)와 같은 우직한 막내의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다리아가 혀를 찼다.
“가능하면 비고의 문제도 오늘 해결하려 하고 있었건만, 아무래도 그건 다음에 해야겠구나.”
비고의 문제란, 왕실 비고에서 물건을 한 가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번거로우시겠지만……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상태를 보아하니 며칠 정도는 편히 쉬고, 비고에 들어가는 것은 적어도 사흘 후가 좋겠구나.”
마법서들을 살피고 얻은 지식을 수습하는 기간 역시 필요할 테니까.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다리아가 돌연 이채를 흘렸다.
“그런데 그건……초월몽(超越夢)이로구나.”
“초월몽을 아십니까?”
“아국에 몸담고 있는 고위 마법사들 중, 초월몽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
루더 레이먼드라는 이름은 희미했을지언정, 초월몽이라는 마법만큼은 여전히 전설적인 마법으로 남아 있었다.
사람의 몸을 마법으로 화(化)하게 한다니,
신선한 발상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초월몽은 고평가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구조를 지닌 마법이었지만.
다리아가 첨언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가 본 것이 몇 년 전이긴 하다만, 나 역시 몇 번이고 지하 6층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고 말이다.”
지하 6층에 초월몽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몇 년 전이라면, 다리아가 이미 8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을 시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루드 레이먼드의 마법.
초월몽(超越夢)은 앞서 걸어간 이가 남긴 발자취, 혹은 이정표라고도 할 수 있었을 테지.
“그런데 왜…….”
“초월몽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느냐고?”
러셀의 물음에 낄낄거리며 웃은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를 부축하지 않은 손으로 가볍게 허공을 그어 내렸다.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쑤셔 넣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고 꼴사나운 일이 또 있을 것 같더냐.”
화아악-.
그녀의 손길을 따라 흘러나온 마력이 허공에 하나의 굵은 선을 아로새긴다.
곧이어 무수한 가지의 형태로 프랙탈(Fractal)을 이루며 분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마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란다.”
이내 마력으로 이루어진 나무의 형상이 다리아의 손길을 따라 완성되었다.
“백 명의 마법사가 있다면, 초월에 이르는 길 역시 백 개가 있는 법이지. 그런 점에서……루더 레이먼드 공이 추구했던 초월은 내가 원하는 초월과는 방향성이 달랐었지.”
한동안 마력의 나무를 들여다보던 그녀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손바닥 위로 자라난 나무의 형상을 지워 버리며 말을 이었다.
“막내야. 네가, 선조의 마법인 초월몽을 익힐 생각이라면 말리지 않겠으나. 조심하거라.”
“……?”
“이름 그대로, 초월에 이르는 도중 꾼 꿈이기 때문일까. 초월몽은 극히 까다로운 마법이란다. 그 마법은 8써클이면서도 그 궤를 어느 정도 벗어나 있어.”
8써클이면서도 그 경계를 한 걸음 벗어난, 그런 종류의 마법을 러셀은 한 가지 더 알고 있었다.
‘브라흐마스트라.’
신기이자 9써클 마법인 브라흐마스트라가 바로 그런 종류의 마법이었다.
‘초월몽은, 초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마법.’
그렇다면 브라흐마스트라는 무엇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기에, 그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걸까.
심신(心身)이 정상적일 때에도 감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수준의 물음이었다.
하물며 정신적인 영역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지금임에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한껏 약해진 심신에 감당할 수 없는 의문[心魔]이 깃들려는 찰나.
짝!
다리아가 박수를 쳤다.
“일단은 돌아가자꾸나.”
러셀의 정신을 일깨우며 말했다.
“막내 너도 많이 지친 듯 보이니, 돌아가 쉬는 편이 좋을 게야.”
.
.
다그닥, 다그닥.
다리아의 배려를 받아, 그녀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방으로 돌아온 러셀이 무겁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
방 한 켠에 놓여 있는 침대가 그를 유혹이라도 하듯, 계속 눈가에 아른거렸다.
눈꺼풀을 뒤덮으며 몰려드는 수마(睡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침대로 향하지 않았다.
‘지금 잠들 수는 없어.’
침대로 향하는 대신, 초인적인 인내로써 걸음을 옮겼다.
침대가 아닌 의자로 가 앉음과 동시에 작은 램프에 불을 붙였다.
파앗-.
작은 램프에서 시작된 빛과 온기가 방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것을 확인하며, 러셀은 펜과 종이 뭉치를 꺼내 놓았다.
쿵-.
두툼한 종이 뭉치가 놓여지며, 그 무게에 책상이 가볍게 떨린다.
이어 펜촉에 잉크를 찍은 러셀이 머릿속에 남은 내용을 종이 위로 옮겨 적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외웠던 것들을 기록해둬야겠지.’
러셀이 기억하고 나온 대지 속성 마법서는 여섯 권. 그중 한 권은 당연하게도 ‘지룡의 포효’였다.
‘전체의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할 필요는 없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 역시 제외한다.
오롯이 남겨야 할 것은 해당 마법의 정수인 핵심적인 이론과 수식들 뿐.
‘마법과 마법의 연계성도 놓쳐선 안 되고.’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대로.
상위 마법의 수식들은 대부분 하위 마법에서 가져온 것들을 일부 변형하고 개량해 연결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물처럼 촘촘하게 이어 붙였으며, 동시에 유기적으로 작용케 하는.
그런 상위 마법에 있어 마법과 마법, 수식과 수식의 연계는 상당히 중요했다.
‘A의 수식 변환을 통해 A′와 A″를 끌어내는 구조인가.’
핵심적인 내용에 국한되어 있다곤 하나, 무려 최고 수준의 마법서 여섯 권에 달하는 양이다.
수준 높은 마법서의 두께가, 평범한 서적의 두 배 이상을 상회하는 것을 생각하면 외우는 것은 물론 옮겨 적는 것 또한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하룻밤하고 반나절 정도는 더 깨어있을 각오를 해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 속에서도 러셀의 두 눈은 형형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