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EPISODE.72
* * *
푹신한 매트리스와 목에 딱 알맞은 높이의 베개. 그리고 따스한 이불보까지.
“끙…….”
안락한 잠자리에서 눈을 뜨며 앓는 소리를 냈다.
누운 채 밖을 바라보자, 커튼의 아래 틈으로 아침햇살이 흐릿하게 흘러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잠에 들었을 때도 아침 무렵이었으니…….
‘거의 하루 내내 잤던 건가.’
근 며칠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심력을 소비했기 때문일까.
두통이 가시긴 했지만 어쩐지 침대 밖으로 나가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게으름을 떨쳐 내며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방 한 켠에 놓여 있던 다기에 물을 올렸고, 커피를 내렸다.
사형인 휴버트가 말하길, 대륙의 서쪽 끝 지방에서 생산되는 특별한 커피라던가.
쪼르륵-.
컵에 옮겨 담자, 다크 초콜릿과도 같은 진한 향기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산미와 함께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 향이 혓바닥을 스쳐 가는 것을 느끼며 몸을 틀었다.
한 손에는 커피잔을 든 채, 책상 위 일부를 두툼하게 차지하고 있던 종이 뭉치를 일견했다.
‘음…….’
그 높이가 두 뼘 반에 이를 만큼 두툼하게 쌓인 종이 뭉치들.
저 모든 종이 위에 마법의 정수인 이론과 수식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저것들을 분석하고 이해하여 체득하는 것뿐. 최소 수준이 6써클에 달하는, 심지어는 모두가 탑주 급 마법사들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이었다.
고작해야 한, 두 달 고생한다고 끝날 양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배는 시간을 들여야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테지.’
옮겨 적는데 걸린 시간만 해도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렸을 정도니…….
‘어?’
러셀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옮겨 적는 데만 하루 하고도 반나절.
‘그리고 하루를 더 잤다면.’
사흘.
오늘은 다리아와 왕궁의 비고로 들어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
.
외출 준비를 마친 후.
마탑으로 들어가려던 러셀은 1층의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다.
“사형.”
바로 휴버트였다.
러셀의 부름에, 초췌한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던 휴버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발견하며 눈을 비볐다.
“아, 출근했는가. 사제.”
제대로 씻지 못한 듯 보이는 외모에, 며칠째 갈아입지 않은 로브까지.
‘어쩐지, 며칠째 집에 돌아오시질 않으시더라니.’
아무래도 며칠 동안 마탑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한 모양.
러셀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샌드위치를 발견하곤 물었다.
“식사를 사 오시는 길입니까?”
“연구가 잘 풀리지 않아서 말일세. 일단은 이렇게 간단한 걸로 식사를 때울 수밖에.”
결국은 밥 먹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말이었지만. 여느 마법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에 러셀이 쓰게 웃었다.
“그럼 사제도 곧장 연구실로 향할 생각인가?”
“아뇨. 스승님을 찾아뵐 생각입니다. 오늘은 스승님과 선약이 있어서요.”
“그렇군…….”
언제까지고 입구에 선 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물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휴버트의 시간을 더 이상 뺏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두 사형제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단 걸음을 옮겼다.
시시콜콜하면서도 일상적인 대화들, 이어 부유석 위로 올라탄다.
휴버트는 다시 자신의 연구실로, 러셀은 탑은 최상층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우우웅, 띵-.
먼저 휴버트의 연구실이 있는 층에서 부유석이 먼저 멈춰서고.
“그럼, 집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사형.”
“알겠네. 연구가 조금 풀리면, 그땐 저녁이라도 같이 하도록 하지.”
뒤이어 홀로 남은 러셀을 태운 부유석이 탑의 최상층까지 치솟았다.
우우우웅, 띵-.
“스승님.”
“들어 오거라.”
인기척을 내자, 안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문이 열리며 다리아 스노우화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 때와 같이 단 것, 코코아와 쿠키를 즐기고 있는 모습.
와삭, 와삭.
러셀과 눈이 마주친 그녀가 날짜를 셈하며 말했다.
“정확하게 사흘 만이로구나.”
그만큼 무리를 했으면 하루 이틀 정도는 더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적어도 사흘 후라고 했으니, 굳이 오늘일 필요도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같이 딱 사흘 만에 찾아오다니.
“제대로 쉬기는 했더냐?”
걱정스레 묻는 스승을 향해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스승님.”
정확하게는 사흘 중 하루를 온종일 잠만 자며 쉬었을 뿐이지만, 피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흐음.”
러셀의 대답에 의미심장한 눈길로 쏘아보길 얼마간, 이내 다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막내 너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상관없을 테지.”
손에 들고 있던 과자 조각을 입안으로 던져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방에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지?”
외투형 로브를 걸치며 따라오라는 듯 러셀을 향해 낄낄거렸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지금 당장 가자꾸나.”
.
.
처음 말했던 것과는 달리, 탑을 나선 다리아가 향한 곳은 왕도의 외곽 쪽이었다.
‘분명 왕실의 비고로 간다고 하셨었거늘…….’
그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러셀이 물었다.
“비고로 향하려면 일단 왕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으응?”
러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한 다리아가, 이어 아차 했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아참. 이거. 미안하구나. 막내야. 내가 설명하는 것이 늦었어.”
자신의 실수가 퍽 재밌다는 듯, 낄낄 웃었으며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화아악-.
주변의 바람이 잦아든다. 정확하게 말해선 바람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력을 이용한 소리의 차단.’
이렇게 하면 대화를 나누더라도, 거리를 오가고 있는 왕도의 사람들이 이 말을 엿들을 리는 없을 테지.
그렇게 준비가 끝나자 다리아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막내, 네가 갔던 곳이 제3보물고라면 이번에 가는 곳은 제1보물고란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제3보물고라는 설명을 당시 들었던 것도 같았다.
‘이번엔 제1보물고.’
“두 보물고 사이에 뭔가 차이점이라도 있는 겁니까?”
위치나 보관하고 있는 보물의 종류 외에, 앞에 1이 붙은 만큼 더 대단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거나-.
혹여나 하는 기대를 품고 물었지만, 다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보관되어 있는 종류만 다를 뿐, 물건의 수준은 대체로 대동소이 하단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제1보물고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목걸이나 반지, 귀걸이 따위 장신구(Accessory)류(類)라고 했다.
“그에 비해 2보물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은 검이나 창 따위의 무기나, 갑옷이나 로브 같은 걸칠 거리들이 보관되어 있지.”
지난번에 갔던 제3보물고에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잡다한 것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설명까지.
‘장신구라…….’
다리아의 설명에 러셀이 자신의 가슴팍과 손가락을 흘깃했다.
자신 역시도, 꽤 나쁘지 않은 수준의 장신구를 몇 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헤카테에게 받은 브로치와, 클라우디 링까지.’
구름을 불러오는 것으로 전격 마법의 전개 속도와 위력을 드높여 주는 클라우디 링은, 러셀이 여러모로 애용하고 있는 아티펙트 중 하나였다.
게다가 헤카테에게 받은 브로치는 전날 무야호와 치뤘던 수인족의 시험에서 사용하기도 했었고.
‘아공간 안에 넣어두긴 했지만, 두 개의 황금 가면 역시 장신구류라고 여겨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총 네 개의 장신구를 가지고 있는 셈.
‘여기서 장신구를 추가한다면…….’
가장 최선은 용과 관련된 물품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허나, 그렇지 못할 경우 역시 가정해야 하는바.
러셀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장신구의 목록을 머릿속으로 나열했다.
‘손가락이 아홉 개나 남았으니 반지도 더 낄 수 있을 테고-.’
목걸이나 귀걸이처럼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종류의 장신구 또한 추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을 내리는 건, 일단 안으로 들어간 후가 되어야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의 걸음은 어느새 왕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도착했구나.”
그로부터 약 삼십여 분.
마침내 다리아의 걸음이 멈춘 곳은, 왕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편의 호수였다.
어지간한 마을 하나와도 비견된 넓이를 가진 호수.
때문일까. 왕도 서쪽의 사람들은 이 물을 왕왕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여기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것은 호수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는 것은 넓은 들판이었을 뿐.
“물론이지.”
그런 러셀의 반응에 다리아가 낄낄 웃었다. 이어 발끝으로 대지를 향해 짙은 마력을 투사했다.
화아아악!
마력이 뻗어나가며 호수 전체를 둘러싸고 원을 그리기 시작하고, 파앗!
동시에 호수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규모의 마법진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수십, 수백에 달하는 마법진을 하나로 엮어서 만들어낸……일종의 암호 마법진인가?’
암호를 해제하는 순서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대로 수백 발의 벼락이 쏟아지는 트랩이 걸려있기까지.
다리아는 익숙하다는 듯, 그 암호들을 차례대로 해제해 나갔다.
슥, 스윽-.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마력이 회오리친다. 이어 작은 마법진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와 함께 거대한 마법진 역시 조금씩 그 규모가 줄어갔다.
“오랜만에 하는 것이라 그런지, 시간이 조금 더 걸렸구나.”
그 말을 끝으로 모든 마법이 해제되는 순간.
─!
──!
호수의 중앙에서 시작된 파문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
마침내, 세 번째의 파문이 호수 외각에 닿은 직후. 그 일이 벌어졌다.
콰과과과과-!
잔잔하던 호수가 크게 격랑하기 시작했다.
이어 물의 일부가 뒤쪽으로 밀려나더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계단과 맞닿은 바닥의 진흙이 뒤로 좌우로 갈라지며 입구를 만들기까지.
‘몇 개나 되는 복합 마법진을 암호문으로 삼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되는 방비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그 분위기 역시 제3보물고와는 사뭇 달랐다.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야 할 만큼 어둡기만 했던 3보물고와는 달리, 1보물고의 천장에는 언더월드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발광석이 잔뜩 박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화 따위가 잔뜩 쌓여 있지도 않았다.
체스판처럼 늘어져 있는 진열대들.
그 위에 놓여 있는 갖은 종류의 장신구가 전부였을 뿐.
“막내,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번 경고해두마.”
장신구류를 전체적으로 한 번 훑어보는 러셀을 향해 다리아가 경고했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스승의 역할이 아닌 관리감독의 역할인바.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물건은 박물관의 지하 6층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뿐이란다.”
신중하게 고르라는 충고는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 정도도 알지 못할 만큼, 어리고 미숙한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예. 스승님.”
스승에게 대답한 후, 진열대 사이로 몇 발자국을 들여놓는 찰나!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개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클라우디 링이 파직 거리며 전류를 흘려대고 있었다.
파직-.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