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EPISODE.74
‘설마 슈피겔만 장로님께서 6써클에 오르셨을 줄이야.’
명단에 적혀 있던 예상치 못한 이름을 떠올리며 러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슈피겔만 장로는 황탑 소속의 마도사로서, 러셀과는 전날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안면을 튼 이였다.
마도사라곤 하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5써클, 헌데 그 몇 년 사이에 6써클에 오르셨을 줄이야.
‘혹시나…….’
앨런 페이지 경도 슬슬 6써클에 오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간에.
슈피겔만은 오랜 기간 왕도황탑에 소속되어 활동해온, 경륜 있는 노마법사였다.
마도고고학은 물론 대지 마법과 관련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던바.
꼭 맞는 인물을 찾은 러셀은 다음날 해가 밝기 무섭게, 슈피겔만 장로에게 만남을 신청했다.
장로로부터 답변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다행히도 그는 러셀의 신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오오, 왔는가?”
점심시간 무렵 자신의 연구실을 찾아온 러셀을 반기며 다과를 내어주기까지.
쪼르륵-.
오래된 황동 찻잔 위로 뜨거운 커피가 담기기 시작하고, 자리에 앉은 슈피겔만 장로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 발굴지에서 만난 이후로 오랜만이군. 자네의 이야기라면 여기저기서 잘 전해 듣고 있다네.”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장로님.”
“죄송은 무슨, 젊은 친구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게 뭐 그리 죄송할 일이라고.”
그리 말하며 슈피겔만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으나 자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나는 아주 자극을 맏이 받으니 말일세.”
아는 얼굴이라서 그런 건가? – 그렇게 덧붙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서, 예까지는 웬일인가. 외유 연구의 과정에서 뭔가 흥미로운 유적을 발견했다거나…….”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로 유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누가 봐도 왕도황탑 소속의 장로.
마도고고학의 권위자다운 모습이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장로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일이 있어 이렇게 연락들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늙은이가 자네에게 도움을?”
같은 6써클.
허나 마법계에 있어 두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는 서로 판이했다.
화염(火) 속성과 대지(地) 속성.
워 메이지(War Mage)와 학술 마도사(學術 魔道士).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속성은 물론 마법사로서의 역할 또한 상이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뒤늦게 경지가 오른 자신과는 달리, 눈앞의 청년은 왕국 역사상 최연소의 6써클 마법사이지 않던가.
그마저도 슈피겔만이 조금 더 늦은 편에 속했고.
‘그런 청년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
유적과는 다른 의미로 흥미로운 대화거리라.
“예. 실은-.”
비로소 시작된 설명.
슈피겔만이 진중한 얼굴로 러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
.
다행히도 내막을 설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리 이야기를 준비해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대지 속성에 관한 이해도라느니, 미션이나 보상이니 하는 것들을 떠들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는 수 없이 어느 정도 각색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밖에.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그런 일이 있었군.”
슈피겔만 장로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데 설마하니 자네가 대지 마법에 그리 흥미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 설마 지하 6층에 들어가서도 화염 계통 마법이 아니라 대지 계통 마법서를 기억해 나올 줄이야.”
앞서 말한 바 있듯, 대지 속성 이해도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러셀로서는 ‘그저 흥미가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
물론 저러한 슈피겔만의 생각이 마냥 오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화염과 그 파생속성인 벼락을 제외하면 다음으로 자신 있는 것이 대지 속성 마법이었으므로.
“흐음.”
침음과 함께 골똘히 생각하던 슈피겔만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든지 도와주도록 하겠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흔쾌한 수락. 그의 수락에 러셀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어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다만, 제가 장로님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 것은 아닐지…….”
러셀의 물음에 슈피겔만 장로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럴 리가 있는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와 앨런 페이지, 두 사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네. 그때 받은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한다면, 일주일에 고작 몇 시간쯤이야.”
그때 받은 은혜란, 사교도들의 습격으로부터 러셀과 앨런이 그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전날 왕실에서 나온 보상을 양보하는 것으로 당시의 일을 매듭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계셨을 줄이야.’
슈피겔만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마냥 내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닐 테지.”
‘남는 것……?’
조금 의문스런 말이었으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가 지하 6층에서 가지고 나온, 오리지널리티 마법들의 정수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바로 맞췄네.”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시간 동안만큼은, 그 마법들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불감청이면 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
감히 청할 수는 없었으나 바라 마지않던 일이라.
러셀 역시 익히 알고 있는 동방의 격언을 덧붙이며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보면 내 쪽에서 부탁을 해도 모자랄 일이란 말이지.”
말을 맺으며 넉살스럽게 웃는 슈피겔만의 모습에, 러셀 역시 희미하게 웃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긴 했지만, 결국 도움을 요청한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의 어려운 격언까지 예로 들어주며 심적인 부담을 덜어 주려 한 것은 슈피겔만의 배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 사실에 감사를 느끼며 러셀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로님.”
* * *
일주일에 3회.
매회 두 시간.
그 후 러셀은, 약속한 시간이 될 때마다 계속해서 슈피겔만 장로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물론 그때마다 홀로 연구하며 생긴 의문점들을 한 아름 품에 안고서였다.
그 양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충실히 도움을 주던 슈피겔만 장로가 불과 다섯 번째 수업 만에 질렸다는 표정을 해 보였을 정도.
“자네가 가져온 의문 마흔 개에 대한 답변을 준 것이 불과 이틀 전이었거늘…….”
“고작 그 이틀 사이에 다시 이만큼이나 되는 질문이 쌓이다니.”
전보다 족히 스무 문항이나 많아진 질문의 개수에 슈피겔만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질문의 수준이 평범하냐고 묻는다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질문의 내용 하나하나가 핵심을 꿰뚫고 있군. 설혹 돌아가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마법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들이야…….’
평범한 마법도 아니고 역대 탑주급 마법사들이 남긴 오리지널리티 마법이었다.
그런데 고작 이틀이라는 시간 만에 이렇게까지 본질에 근접한 질문을 던질 정도로 연구를 해올 줄이야.
천재인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대단한 노력파인 것인지.
‘둘 모두이기에 지금과 같은 성취를 쌓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런 러셀의 열성적인 모습이 슈피겔만 자신에게 있어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던바.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고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두 마법사의 절차탁마(切磋琢磨)가 이어지는 가운데…….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
.
어둠이 내린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시간까지 자신의 방에서 마법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러셀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주변을 밝히는 작은 호롱불 하나뿐.
물론 러셀이라면 등을 몇 개나 더 피워 방 전체를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발광력이 더욱 강한 촛불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이 작은 등불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편이 훨씬 집중이 잘 되니까.’
방 전체가 밝은 것보다는, 책상 위만 밝은 편이 훨씬 더 일에 몰두하기 편했던 것이다.
그런 러셀의 발치 아래에는 근 두 뼘 가량의 종이 뭉치들이 놓여 있었다.
전날 옮겨 적은 마법의 이론과 수식들이 빼곡하게 작성되어 있는 종이 뭉치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쌓여 있는 종이 뭉치들의 옆면이 손때가 타 반질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해당 종이 뭉치들은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이었으니까.
물론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해선 체득(體得)과 체련(體鍊)의 과정이 남아 있긴 했지만.
‘어쨌건 간에.’
두 뼘 반 높이에 달하던 종이 뭉치들 중, 이제 남은 것은 고작해야 한 뼘가량만이 남아 있을 뿐.
놀라운 점은, 대지 마법과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면서 화염 속성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함께 올랐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미 최상급에 달해 있는 화염 속성 이해도인 만큼, 그 증가 폭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허나, 아주 미세한 양이라도 상승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던바.
‘마그마나 지열에 관한 이론 때문일 테지.’
그 이유를 짐작하며 러셀이 페이지를 넘겼다.
사각-.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확인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슬슬 끝이 보이는군.’
지금 러셀이 보고 있는 마법은 바로 ‘지룡의 포효’라는 마법이었다.
7써클 마법인 만큼 이해와 분석을 마무리한다 하여도, 당장 사용할 수는 없을 테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외워 나온 마법들 중, 6써클 마법들은 이미 모두 연구가 끝난 후였으니까.
남은 마법은 이제 7써클 마법 둘 뿐. 그중 하나마저도 슬슬 끝을 보이고 있는 와중인 것이었다.
대충 헤아림을 해보니, ‘지룡의 포효’ 중 남은 페이지는 고작해야 다섯 장가량.
그쯤 되니 슬그머니 근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남은 모든 마법서들의 연구가 끝났을 때도 대지 속성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오르지 않으면 어떡하나.
그런 종류의 근심.
물론, 그 근심은 러셀이 ‘지룡의 포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끝이 나게 되었지만.
알람이 연달아 쏟아졌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상급 마석(식용)x2를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지룡(地龍)의 발자취’를 지급합니다.]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