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EPISODE.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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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나 되는 알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화악-.
연녹색의 반투명한 창들이 순식간에 러셀의 눈앞을 가득 채운다.
의념을 통해 창들을 꺼뜨리며 러셀이 아공간을 열었다.
찾고자 하는 물건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지룡의 발자취.’
직후 아공간 안에 집어넣은 손아귀에 무엇인가가 잡혀 들었다.
‘뭐지?’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을 보자면 한 손에 딱 들어오는 두께의 동그란 원통.
게다가 길이 역시 짧지는 않았다.
여태껏 용의 흔적을 알려주었던 물건들처럼 ‘지도’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촉감과 형태였다.
‘이건 지도라기보다는 오히려…….’
단봉에 가까운 형태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과 함께 손을 빼내자, 그 움직임을 따라 길쭉한 무엇인가가 쑥하고 딸려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단봉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길이는 세 뼘가량.
단봉이라고 표현하긴 했으나, 무기로 활용할 수 있을 수준의 강도는 아니다.
오히려 꽤 케케묵은 외견을 하고 있는 것이, 잘못 휘둘렀다가는 깨지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할 정도.
게다가 단봉의 겉표면에는 알 수 없는 돌기 형태의 문양들이 아로새겨져 있기까지.
‘음.’
그것들을 빛에 비춰보던 러셀이 가볍게 침음했다.
‘문자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나 지룡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정보인가 싶어 들여다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럼 뭐지?’
고개를 외로 꼬며 단봉을 내려놓자, 그것이 책상 위에서 몇 바퀴인가를 굴렀다.
탁, 데구르르르-.
‘―!!’
굴러가는 단봉을 보던 러셀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 하나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거 지도인가?’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몰랐다.
단봉의 형태를 하고 있는 지도가,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느냐고.
허나 그런 평범한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런 형태의 지도는 그리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했다.
비록 러셀이 고고학에 있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어느 정도의 소양은 갖추고 있었던바.
이런 형태의 지도를 언제고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양각도(陽刻圖).’
판화의 기법 중 하나인 양각법을 이용해 아로새겨진 지도.
이것이 평평한 형태가 아닌, 이런 막대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것이 지도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숨기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지도 이외의 또 다른 목적이 존재하는 경우.’
그렇게 생각한 러셀이 잉크통의 뚜껑을 열었다.
퐁-.
이것이 양각도라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 여기서 지도를 뽑아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단봉의 표면에 잉크를 꼼꼼하게 바르고-.’
깨끗한 종이 위에 그것을 굴린다.
드르륵-.
그러자 아로새겨진 문양을 따라 잉크의 검은 자국이 찍히며 하나의 지도가 완성되기 시작한다.
‘어?’
그런데 그 지도의 모습이 조금 생소했다.
지형의 형태나, 고저 따위가 나타나 있는 일반적인 지도와는 달리 종이 위에는 몇 개의 점만이 잔뜩 찍혀있었을 뿐.
‘이건-.’
어쩐지 점들이 찍혀 있는 모습이 꽤 눈에 익었다.
러셀의 눈에 비친 점 몇 개가 가느다란 실선을 통해 이어진다.
이내 지도의 정체를 알아차린 러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천문도(天文圖)인가.”
천문도란.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 지형을 기록한 일반적인 지도와는 달리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만든 지도였다.
그런 만큼 그곳에 새겨지는 것은, 지형이 아닌 천문(天文).
즉 별자리라.
지도가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미션창이 떠올랐다.
[미션]천문도에 표기된 위치를 찾아가 지룡(地龍)의 거처로 진입하세요.
근처까지 다가간다면, 빛이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보상]용신왕의 뿔(대지의 정화).
상급 마석(식용)x5, 하급 마석(식용)x7
지룡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지, 이번의 보상은 대지와 관련된 용신왕의 뿔이었다.
눈앞에 떠오른 미션의 내용을 확인하며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하필 양각천문도(陽刻天文圖)인거지?’
단순히 위치를 알려주는 것뿐이라면, 폼페이오 화산이나 쿠릴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지도의 모습이었다 해도 별문제가 없었을 것을.
‘굳이 원통과 천문도를 이용해서 나타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원통, 양각도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며 러셀은 한동안 그것과 천문도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혹시 추측할 거리가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것도 잠시, 이내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잡스러운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어차피 해답이야 지도상의 위치에 가 보면 알게 될 테니까.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아닌, 천문도 상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었던바.
‘아무래도-.’
날이 밝는 대로 밖에 나가 천문도를 하나 사와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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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천문도 상의 위치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세하게 곳곳의 지형들을 비교해야 하는 일반적인 지도와는 달리.
‘새떼자리를 기준으로 놓고…….’
중심이 되는 별자리 하나를 찾아 놓고 시작하는 천문도(天文圖)가 위치를 특정하기엔 더욱 편했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위치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지도에 비해, 천문도는 그 범위가 너무 넓고 두리뭉실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나디아 사막, 한복판인가.”
천문도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위치가 사막의 중심부라는 것뿐.
정확하게 사막의 어느 지점에 지룡의 거처가 있는가에 대해서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인가…….’
도리어 위치가 사막으로 특정되자, 왜 천문도를 이용해 위치를 남겼는지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 언덕의 위치와 높이가 달라지는 곳에서, 정확한 위치를 지도로 남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지.’
그렇기에 모험가들이나 상인들 역시 드넓은 사막을 횡단할 때에는 천문을 이정표로 삼는 것이 아니던가.
‘나디아 사막.’
러셀이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왕국의 서편.
제국과 왕국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타클 사막과는 달리, 나디아는 왕국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막이다.
‘면적은……, 타클 사막과 비슷한 편이었지.’
고대에는 꽤 번성한 국가가 그곳에 존재했다지만, 현재는 그 전체가 모래로 뒤덮인 것이 현실.
지금 그 사막을 딛고 있는 것은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과, 북쪽의 국가들과 교역 하는 상인들이 전부였다.
‘마쉐린 상단에서도 1년 전부터 그쪽과 교역 루트를 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1할이 넘는 지분을 가진 주주로서 받은 보고서.
그 보고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러셀이 손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툭툭-.
‘중심을 관통하는 루트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겠어.’
보고서에 있던 이동 경로를 떠올리며 일정을 짜길 잠시, 이내 러셀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펜을 들었다.
지난 외출에서 돌아온 지 몇 달. 오랜만에 외유 연구 신청서를 작성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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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서를 작성한다고 하여, 누구나 바로 외유 연구를 출발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단 스승이자 염탑주인 다리아에게 연구 신청서를 검토받아야 했고, 승인이 떨어져야 했다.
이 승인이라는 것이 빠르면 하루 만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상황에 따라선 십 일이 넘게 걸리기도 했던바.
게다가-.
러셀이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이는, 비단 다리아만이 아니었다.
기네비어 궁(Guinevere palace).
현재는 헤카테의 처소로 잘 알려진 이곳은 왕실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물론 왕실의 심처이자, 제1 왕위 계승자의 처소인 만큼 그 정원이 아무에게나 공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기네비어 궁의 정원로를 따라 두 남녀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보랏빛 머리칼에 그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지닌 여인과, 흑발에 적안을 지닌 사내.
바로 헤카테와 러셀이었다.
뚜벅, 뚜벅-.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몇몇 시녀들과 왕실 기사들이 그런 두 사람을 뒤따르고.
“흐음.”
발을 맞춰 걷던 헤카테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러셀의 위아래를 쓸어보더니 물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근 몇 달 사이 그대의 키가 더 자란 것 같구나.”
“키가 말인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러셀의 주변을 헤카테가 몇 차례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면서 그의 전신을 위아래로 쓸어보길 몇 차례, 이어 확신하는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식을 올릴 때만 하더라도 내 시선이 그대의 목젖에까지는 닿았던 것 같거늘, 이제는 어깨에까지 밖에 닿지 않는구나.”
그 사실이 퍽 기분 좋았던 것인지, 손대중을 해 보이던 헤카테가 환하게 웃었다.
정원로를 따라 핀 꽃들을 무색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소. 그 웃음에 러셀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 키가 더 자랐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신가요?”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그대여. 제 반려의 풍채가 당당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여인도 있다던가? 게다가-.”
“……?”
“아, 아무것도 아니니라.”
자신을 내려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러셀의 모습에 헤카테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내쉬었다.
‘비로소 내가 원하던 연인 간의 체격 차이가 되었노라고, 부끄러워서 어찌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여인 중에선 상당히 장신의 체구를 지니고 있는 헤카테다.
‘그렇기에 이런 키 차이는 평생 마음속에서나 바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늘-.’
그녀로서는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일이 이루어진 셈이라.
그렇게.
연인답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길 얼마간. 러셀과 발을 맞춰 걷던 그녀가 돌연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런데…….”
말꼬리를 흐리며 운을 뗐다.
“다리아 경에게 듣자 하니, 그대가 또 외유 연구를 신청했다고 하던데. 이게 사실인가?”
올 것이 왔다는 생각 때문일까.
쿵, 돌덩이 하나가 떨어지기라도 한 듯 가슴 한켠이 무겁게 느껴지고.
“예.”
러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외유 연구에서 돌아온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런데 또 외유 연구를 떠나겠다니.
어쩐지 약혼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던 바.
그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던 걸까.
헤카테가 손을 뻗었다.
“그대여.”
“…….”
“전에도 말한 바 있듯, 나는 사내의 바깥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속 좁은 여인이 아니다.”
손가락으로 러셀의 얼굴을 가볍게 훑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리 옹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대를 향한 걱정 때문이니라.”
그리 말하며 헤카테가 당부했다.
“그러니, 이런 나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주기적으로 소식을 전해주길 바라겠노라.”
“그렇게 할게요. 헤카테.”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쿠릴 아일랜드와는 달리, 이번 외유 연구 목적지는 나디아 사막이다.
사막 안에 들어선 후라면 모를까, 적어도 그전까지는 충분히 연락을 보낼 수 있었다.
‘사막 안에 들어간 후에도 상단을 통하면 어느 정도 연락을 보낼 수 있을 테고.’
며칠 정도의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연락이 완전히 단절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다면-.”
직후,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보지 못할 그대의 얼굴이 아니더냐. 그러니…….”
조금 붉어진 얼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헤카테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돌아가도록 하라.”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