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EPISODE.75
푸에르따(Puerta).
지역의 방언으로 ‘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곳은, 그 이름대로 나디아 사막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였다.
대륙 북부의 국가들 중 일부와 교역로로써 쓰이는 나디아 사막인 만큼, 그런 상인들의 왕래를 통해 탄생하고, 번창하게 된 도시.
러셀이 그런 푸에르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몇 분 전,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던 왕궁을 떠나 온 지 약 닷새 가량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까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긴 했지만, 거기서 푸에르따로 이동하는 데까지 며칠 정도가 더 소요되었던 것.
발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작열하는 태양.
고개를 돌리자 곳곳에서 굵고 길쭉한 선인장들이 자라나 있는 것이 보였다.
둥글게 뭉쳐진 건초 더미, 회전초 역시 볼썽사납게 도시 곳곳을 굴러다니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고운 모래 입자가 섞여 있는 것 또한 느껴진다.
‘나디아 사막의 입구라더니, 과연.’
슬슬 건조해지기 시작하는 아랫입술을 축이며, 러셀이 걸음을 옮겼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막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메마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도시다.
변두리의 오아시스를 끼고 위치한, 타클 사막의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그렇게 러셀이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도시 내부에 위치한 대형 숙박업소였다.
‘검은 소, 여기인 것 같은데?’
시설이 그리 좋다고 말할 수준은 못 되었지만, 꽤나 커다란 규모의 뒷마당과 축사를 지닌 여관이었다.
평범한 여행자들이 이용하기보다는, 짐마차와 그것을 끌 가축들이 있는 상단에서 전세를 낼 법한 여관.
아니나 다를까.
언뜻 드러난 뒷마당에는 족히 서른 대에 가까운 짐마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게다가 축사 안쪽에는 마차를 끌기 위한 말과 낙타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기도 했다.
빠우우우우-.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네 개의 상아를 가진 갈색 코끼리였다.
‘사막 코끼리.’
이름 그대로 사막에서 살아가는 코끼리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마차나 수레를 이용하기 쉽지 않은 사막의 특성상, 거대한 코끼리에 캐러밴의 형태로 짐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야.’
짐마차에 찍힌 문양을 확인하며 러셀이 여관의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딸랑-.
그러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쪽에서 고개를 숙이며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으며 어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읍, 무슨……일이시오? 방이라면 이미 다 차서 남는 곳이 없는데.”
“숙소가 아니라 사람을 찾기 위해 왔습니다.”
“사람?”
“마쉐린 상단의 대행수, 앤 마쉐린 씨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마쉐린이라는 성(姓)을 지닌 것으로 보아, 상단주의 혈족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앤’이라는 이름이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께 마법사, 리드먼 루이가 찾아왔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여관주가 느린 걸음으로 2층을 향해 걸어 올라가고.
곧이어 그와 함께 내려오는 대행수의 모습에서 러셀은 이 익숙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붉은 머리칼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근 6년이라는 시간은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소녀가 숙녀로 자라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니.
앤 마쉐린.
상단주, 커트버스 마쉐린의 딸인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눈인사를 해왔다.
‘은공.’
.
.
그로부터 몇 분 후, 앤과 러셀은 코끼리 캐러밴과 낙타가 수북한 여관의 뒷마당을 함께 거닐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앤이었다.
“어쩐지, 아버지께서 귀한 손님이시니 잘 대우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시더니. 그 손님이 바로 은공이셨군요.”
앤의 말에 러셀이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설마 저를 알아보실 줄이야.”
“우리 상단이 힘들 때, 선뜻 투자를 제안해 주신 분이잖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인데다, 눈과 머리칼의 색을 바꾸셨다지만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나요.”
그리 말한 앤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이어 상행 준비를 하고 있는 상단 소속 상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쪽, 짐을 조금 더 단단히 묶어두도록 해요.”
“캐러밴 두 대는 따로 빼서 낙타와 코끼리들 먹이를 넉넉하게 챙기도록 하고-!”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을 해 본 듯 괄괄하면서도 거침없는 목소리.
“하하하, 알겠습니다. 아가씨. 걱정 마십쇼.”
“여기선 아가씨가 아니라 대행수라고 부르라니까요!”
상인은 물론 짐꾼들과도 허울 없이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을 보며 러셀이 물었다.
“상단 일이 제법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그 물음에 앤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 옷을 걷어, 자신의 팔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럼요. 단순히 아버지의 힘을 빌려서 대행수 자리에 앉은 건 아니거든요.”
여인치곤 제법 근육이 잘 잡힌 팔뚝이다.
특별히 단련을 했다기보다는, 상행을 꾸리며 무거운 짐을 나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근육.
슥.
옷소매를 다시 내린 앤이 러셀을 안내한 곳은, 짐마차들의 건너편에 위치한 축사의 앞이었다.
“이 녀석이, 은공께서 타고 다닐 낙타랍니다.”
“이건…….”
“삼봉낙타예요.”
그 이름대로, 세 개의 혹을 가진 낙타는 러셀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세 개나 되는 혹을 가진 만큼, 여타의 녀석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훨씬 강한 낙타.’
회귀 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와중에 몇 번 타본 적도 있었다.
“본래라면 마차를 내어드려야 하겠지만, 사막에선 마차를 사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
죄라도 지은 양 앤이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코끼리 캐러밴이라도 내어 드릴까요?”
코끼리 캐러밴에 타서 사막을 횡단하는 것 역시 꽤 각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허나 러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캐러밴 하나를 낭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탈것이라는 삼봉낙타의 모습을 일견하며 말했다.
“낙타로도 충분합니다.”
.
.
때를 잘 맞춰서 왔던 것인지.
상단이 푸에르따 시(市)를 벗어난 것은, 러셀이 합류하고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였다.
어쩐지 분주하게 짐을 싸고 있더라니.
‘내가 도착하는 즉시 출발할 생각이었나 보군.’
다른 이들이었다면 여독을 풀지 못했다고 투덜거렸을 테지만, 러셀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문제였다.
어지간한 여독이나 피로 정도야,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를 운용하는 것으로 간단히 털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도시를 벗어나고 사막 내부로 접어들자, 한층 더 강해진 태양광이 러셀의 머리를 뜨겁게 비췄다.
게다가 이글거리며 올라오는 지표의 열기에 주변의 사물들이 이지러져 보이기까지.
다그닥, 다그닥-.
러셀의 곁으로 낙타를 붙이며 앤이 물었다.
“지금이라도 토브(Thobe)를 드릴까요?”
토브란 ‘드레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의복으로서, 사막의 민족이 입는 발목까지 오는 긴 백의(白衣)를 말하는 것이었다.
긴 옷차림이 더워 보일 수도 있으나, 사막의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피부를 보호하는 데에는 필수적이기 까지 한 옷.
앤의 배려에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았다.
러셀에게 지급된 마탑의 외투에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므로.
물론 진짜 뜨거운 불길이나 한기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사막의 열기 정도야.’
그렇게 며칠간 별일 없이 무탈한 나날들이 흘러가고. 사건이 벌어진 것은 사막에 들어서고 닷새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었다.
‘-?’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을 따라 낮은 진동이 전해져왔다. 모래사막 위를 내달린다기보다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땅속을 헤엄치는 듯한 감각.
그 감각에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진동이 전해지는 방향을 직시했다.
휘이이이익-!
그 순간 짙은 모래바람이 불어와 그의 눈앞을 가리운다.
그렇게 눈앞이 흐릿하게 변한 가운데, 사막의 모래 언덕들이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아니, 모래 언덕이 아니야-!’
거대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모래바람에 가리어 마치 사막의 언덕처럼 보였던 것!
“옵니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먼저, 그것을 발견한 러셀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예?”
그 경고를 이해하지 못한 앤이 고개를 갸웃하고 수초 후.
빠우우우우우-!
낙타와 코끼리들이 겁에 질려 흥분하는 것과 동시에 상단에 고용된 용병 중 하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호, 호르호이(Xорхой)다!”
다른 용병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경험을 갖춘 노(老)용병의 외침이었다.
“히, 히익!”
“호르호이라구요?”
그 외침에 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그럴 수밖에.
호르호이(Xорхой), 달리 창자벌레라고 부르는 이 괴물은 나디아 사막의 사람들이 샌드 웜(Sand Worm)을 달리 부르는 말이었다.
나디아 사막의 샌드 웜이 호르호이라는 이름으로 달리 구분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통상적인 샌드 웜보다 훨씬 강력한데다, 더 단단한 외피를 갖추고 있으니까.’
바위처럼 단단한 외골격은 화살은 물론 어지간한 날붙이조차 베어 내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다.
크기는 또 얼마나 거대한지, 성체가 된 호르호이의 길이는 족히 백 미터에 육박할 정도!
낙타는 물론 코끼리마저도 한입에 삼켜 버리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게다가 거체를 움직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충격파는 얼마나 강력한지!
마주친 상단의 행렬 중 십중팔구는 몰살.
괜히 나디아를 횡단하는 상인들에게 호르호이가 사막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개체 수가 적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디아 사막이 교역로로 이용되는 경우는 결코 없을 터!
콰과과과과과-!!
호르호이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지축이 뒤흔들리며 모래 먼지가 거칠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 눈을 가렸던 모래바람 역시 호르호이가 몸을 움직이는 여파였던 바.
“다, 다 죽을 거야!”
“으아아아아아!”
경험이 부족한 용병들 사이에서 공포 어린 절규가 튀어나왔다.
“당황하지 말게! 일단은 흩어져!”
“넓게 범위를 벌리고, 사방에서 포위해 공격한다!”
“절반은 코끼리들을 이동시켜!”
그나마 몇몇, 노련한 용병들이 이를 악물고 대처를 해 보려 했다.
하지만 얼굴에 드러난 짙은 패색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탁-.
찰나, 러셀이 낙타에서 내렸다. 그 모습에 희게 질려 있던 앤의 얼굴 위로 안도감이 번져나간다.
그럴 수밖에.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번 상행에 있어 그녀는 러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므로.
엔디미온 역사상, 아니 어쩌면 대륙 역사상 최연소일지도 모르는 6써클 마도사.
호르호이가 아무리 괴물이라 하여도 그런 마도사의 적수가 될 리는 없었다.
러셀이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새로 익힌 마법을 시험해 보기에 딱 좋네.’
모래로 가득한 사막의 모습을 확인하며 슬그머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콰과과과-.
호르호이와 상단 사이의 거리는 수백 미터.
먼 거리였지만, 백 미터가 넘는, 성체 중에서도 꽤나 상당한 길이를 가진 녀석이었다.
그 정도 거리야 눈 깜짝할 새에 주파해올 것이 분명했다.
콰과과과과과과-!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날카롭게 일어난 모래바람이 마구잡이로 바닥을 할퀴어댄다.
그런 가운데, 러셀이 마력을 그러모았다. 손아귀 가득 그러쥔 마력이 회전하며 뒤틀어졌다.
고속고압(高速高壓).
원하던 수준까지 마력의 흐름이 이지러지는 순간, 러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바닥을 모랫바닥 위로 내리찍었다.
구현해내고자 하는 이미지는 선인장의 가시와 모래의 창.
그리고 꽃(花).
앵갤 글로만.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사막화(沙漠花, Desert Flower).
200년 전.
엔디미온의 지방 황탑 중 일각을 이끌었다는, 앵갤 글로만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이.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세상에 현현(顯現)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