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EPISODE.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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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발이 거칠게 나부꼈다.
몇 미터 앞은 고사하고, 고작해야 몇 발자국 앞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눈보라.
‘간신히 모래폭풍을 빠져나왔다 했더니, 이번에는 눈보라인가…….’
로브의 앞섶을 여미며 러셀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휘오오오오오오-.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괴수의 울음소리라도 된 듯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염탑에서 지급한 로브에 달린, 온도 조절 기능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눈보라였다.
‘그럴 테지.’
애당초 이건 평범한 눈보라가 아니었으므로.
마력이 깃든 싸라기눈은, 거친 바람과 한 몸이라도 된 듯 로브에 걸린 마법을 무시하며 품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렇게 파고든 눈은 계속해 몸의 열을 빼앗아가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몇 개나 되는 마법을 쉬지 않고 유지해야 하는 상황.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 그리고-.’
귀화(鬼火, Wisp)처럼 러셀의 주변을 휘도는 세 개의 화염구(火焰球)들 역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후-.’
단순히 불꽃을 소환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수준의 마법이었다면, 그리 까다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마나가 깃든 눈발은 이 순간에도 불꽃을 꺼뜨리기라도 할 듯, 시시각각 러셀의 마력을 뒤흔들고 있었다.
불꽃을 온존하기 위해 운용하는 마법의 숫자만 하더라도 다섯 이상.
거기에 체온 유지나 바람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잡다한 마법까지 더한다면-.
‘손가락 열 개 정도 채우는 거야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지.’
그러는 와중에도 러셀의 두 눈은 쉬지 않고 눈보라의 움직임을 읽어 들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눈보라가 아닌, 그 속에 깃든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었지만.
휘오오오오오-!
나침반의 지시에 따라 길을 주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변에 몰아치고 있는 마법, 눈보라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허나.
‘말도 안 되게 복잡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진 마법이야.’
그걸 이만한 규모로 펼쳐낼 수 있다니. 지금 자신의 수준에선 결코 해체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그렇다면…….’
전체를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일부만을 걷어내는 식으로 운신의 폭을 만들어내고 길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비슷한 방법으로 마법을 운용하며 사막지대의 모래폭풍을 헤쳐 나온 그였다.
손에 익을 정도는 아니라지만, 어느 정도는 요령이 있었다.
물론 마냥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보라를 구성하는 마력의 흐름이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순간순간 변화하는 마력의 흐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걸 역산해가며 길을 뚫어야 하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끈으로 엮어 목에 걸어 두었던, 두 개의 가면이 아니었다면 뇌리에 걸린 부하 역시 상상 이상이었을 테지.
아무리 6써클의 경지에 오른 마도사라 하여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상황.
그 말인즉, 비록 기물의 힘을 빌리긴 했으나 눈앞의 마력을 읽어 들이고 이해하며 분해하는 것은 오롯이 러셀의 역량이자 기량이라는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웃을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부분이나마 걷어내며 씁쓸하게 웃었다.
시계가 제대로 확보되지도 않을 만큼 몰아치는 눈보라.
이 눈보라가 어쩌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모래폭풍 다음은 눈보라, 그 후엔 뭐 불바다라도 펼쳐져 있는 걸까?”
반쯤은 농담처럼 여겼던 한 마디.
그리고 불과 몇 분 후.
자신의 앞에 펼쳐진 거대한 화마(火魔)에, 러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한마디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뿐이었다.
‘아, 시발.’
이런 걸 두고 입이 방정이라고 하는 것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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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다닥-.
넓게 펼쳐진 평원이 화마에 타들어 가고.
쿠그그그그그-.
화르륵!
일순, 대지가 심상치 않게 흔들렸다. 갈라진 지표 사이에서 열극 분출(Fissure Eruption)이 일어나며 불길이 치솟았다.
화아악!
불길이 높게 솟구칠 때마다, 뻗어 나온 화광(火光)이 러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그 광경을 응시하며, 러셀이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끙.’
눈보라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마침내 눈보라를 돌파하고 보니 진짜로 불바다가 펼쳐져 있을 줄이야.
‘이런 식의 예상이 꼭 들어맞을 필요는 없는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러셀이 발 딛고 있는 주변 수십 미터가량에는 아무런 재해(災害)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눈보라와 불지옥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중립지대인 셈.
자연계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아마도 이곳이 가상공간, 몽경(夢景) 속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이와 같은 지역은 모래폭풍과 눈보라 사이에서도 존재했던바.
익숙하게 아공간을 열어 수통을 꺼낸 러셀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꿀꺽꿀꺽-.
목을 축이며 정신력을 회복했고, 그로부터 약 한 시간가량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 러셀이 한숨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들판을 향해 그저 묵묵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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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타오르는 들판 속의 상황은 몰아치던 눈보라 속과는 완전히 달랐다.
온도가 성큼 치솟았음은 물론, 연소반응이 일어나며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기까지.
계속해서 바람을 불러와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면, 언제 질식사 하더라도 이상한 것은 없을 테지.
게다가, 갈라진 땅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열극 분출 역시도 마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화아악-!
범람하는 강물과도 같이 정보가 쏟아졌다.
그 속에 던져진 어린 마법사의 정신이 마치 격랑 속의 나뭇잎과도 같이 어지럽게 표류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그 자리에서 의식이 끊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러셀의 두 눈은 빛을 잃지 않았다.
도리어 형형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회귀하기 전부터 그가 지니고 있었던. 본인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던 재능.
마나로드와 관련된 천형(天刑)탓에 빛을 보지 못했던 그 재능이, 지금 이 순간 알껍데기를 깨며 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러셀을 보조하기라도 하듯, 목에 걸어 둔 두 개의 가면이 쉬지 않고 안광을 쏟아낸다.
화아아악!
탈각[脫殼].
쩍, 쩌저적-.
무엇인가 금이 가는 듯한 소성이 울렸다.
그와 함께 러셀의 심상에 깔려있는 저변(底邊)이 확장되기 시작한다.
쩍, 쩌저적-.
쉬지 않고 울리는 소성.
정신적인 영역에 있어 마법사들이 최고로 꼽는 재능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마법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으니…….
‘인지(認知).’
‘직관(直觀).’
그리고 ‘이해(理解).’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인지하고, 직관적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능 중 한 가지였다.
그리고…….
러셀이 지닌 위의 능력들은 신대의 유적과 쿠릴 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껏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전가의 보도.
칼날처럼 날 선 재능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던 무엇인가를 조금씩 찢어발겼다.
새로운 경지를 향해 그를 이끌어갔다.
쩍, 쩌저적-.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금이 가는 듯한 소성이 조금씩 커져만 가고.
그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빛을 움켜쥐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한 행동.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
하나 된 사념 속에서, 나(我)마저도 잊은 러셀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오로지 새로운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고양감과 그로 인해 동반되는 황홀경(怳惚境) 뿐.
이대로 계속해 나아간다면, 분명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알을 깨고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일 수도 있을 터!
────────────!!!
분명 그렇게 생각했건만!
‘꺽-.’
앞을 향해 내딛던 러셀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덩달아 압도적인 고양감을 느끼고 있던 의식 역시 무서운 속도로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언제고 들었던 신화 속, 태양에 날개가 녹아 버린 영웅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그에 대한 아쉬움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쾅!
반 박자 늦게, 아연할 정도의 현실감이 찾아들었다.
“윽…….”
단단한 것에 직격당하기라도 한 듯, 안면이 얼얼했다.
정신을 차리자, 자신의 무릎과 얼굴이 지면에 맞닿아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얼굴이 얼얼한 것은, 꼬꾸라지면서 지면에 얼굴이라도 찧은 탓일 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부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불과 몇 걸음의 거리를 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꼬꾸라진 것이다.
러셀로서는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지닌 마법사로서의 이성은 작금의 이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부족했던 거구나.’
한순간, 의식은 벽에 가깝게 고양되었건만, 정작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힘인 ‘마나’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러셀이 지닌 마나는 이제 막 6써클의 중반 가량에 들어섰을 뿐.
여섯 번째 써클을 완성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로 했으니까.
‘어휴…….’
그 사실을 확인하며 러셀이 입맛을 다셨다.
아쉽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허나, 결국에는 스스로가 부족해 일어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잖은가.
물론 다음에도 이번과 같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금 전의 경험이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러셀의 머릿속에 아릿하게 각인되어 있었던바.
그 감각을 떠올리며 러셀이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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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의 경험에 대한 소고(小考)는 거기까지.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러셀이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인근을 확인했다.
타닥, 타다닥-.
등 뒤쪽에서 마른 풀 타들어 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방금 전까지 자신이 헤쳐 나오던 불지옥이 바로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무의식중에 타오르는 평원을 벗어나 중립지대에 도달한 것이다.
그 중립지대의 한복판에, 문이 우뚝 솟아 있었다.
처음 들어왔던 것과 똑같은 외견을 가진 문.
‘시험은 끝이란 건가?’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끝이 문에 닿기 무섭게-.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상급 마석(식용)x5과…….]-알람이 들려왔다.
[용신왕의 뿔(대지의 정화)를 지급하기 위해, 지룡(지룡)의 거처로 진입합니다.]처음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문에서 시작된 환한 빛.
마력의 소용돌이가 러셀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파아앗!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