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EPISODE.79
“레이먼드 백작. 백작의 부탁대로 왕도의 마법사들을 모아왔소.”
음성과 함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딸각, 끼이익-.
문고리와 낡은 경첩의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이어 레인켈 백작을 필두로 한 일단의 무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약 열 명가량.
가지각색, 하나 같이 제가 속한 마탑의 계보를 상징하는 색 로브를 겉에 두른 모습이었다.
‘대다수가 3써클과 4써클, 그리고 5써클이 둘인가…….’
그 중 인상적인 것은 황색 로브를 걸친 사내와 백색 로브를 걸친 여인이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나이는 둘 모두 오십 대가량.
마법사들의 선두에 서 있을뿐더러, 다섯 개의 써클이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앨런과 함께 통솔의 역할로 온 5써클 마도사인 듯했다.
왕도에서 생활하며 오가다 몇 번 스쳐간 적이 있는 것인지.
이렇다 할 친분은 없었지만 두 남녀의 얼굴 모두 낯이 익었다.
“아……!”
러셀이 그들을 알아본 것처럼, 그들 또한 러셀을 알아보곤 고개를 숙였다.
“왕도 황탑의 리만 클리언입니다. 부족하나마 러셀 경께서 오실 때까지 마법사단의 통솔을 맡고 있었습니다.”
“왕도 백탑의 카산드라예요.”
선후배(先後輩).
마법계에 입문한 시기로 따지자면 그들이 월등히 위일 테지만, 어쨌건 간에 이번 토벌의 총 지휘권자는 러셀이었다.
그 외에도, 자신들보다 높은 경지를 이룩한 존경 받을 만한 마도사이기도 했고.
두 사람이 먼저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이런저런 임무에서 몇 번이나 경험해 보았던바.
그들의 인사를 받은 러셀이 익숙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러셀의 소개에 리만과 카산드라의 뒤편에 위치한 몇몇 젊은 마법사들이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럴 수밖에.
3써클과 4써클.
이제 막 탑에 입탑한 젊은 마법사들에게 있어 ‘러셀’이란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었으니까.
반짝이는 그들의 눈빛을 뒤로하고 러셀이 고개를 돌렸다.
회의실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던 레인켈 백작을 불렀다.
“백작님.”
“……?”
“저희 마법사들은 지금부터의 대책과 방안에 대해 논의할 생각입니다. 백작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인켈 백작령을 돕기 위해 파견된 토벌대라곤 하지만, 토벌대와 백작령의 일원들은 엄밀히 다른 편제에 속해있었으므로.
백작에게 따로 생각이 있다면 그 부분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허허. 이를 말씀이오. 레이먼드 백작.”
러셀의 물음에 레인켈 백작이 으스러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꽈악-.
“영지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데 있어 영주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만…….”
손톱이 손아귀를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소, 레이먼드 백작?”
“……?”
“회의를 한다고 하면 우리 영지 쪽에서도 참여를 해야 하는 인원들이 몇 있어서 말이오.”
“알겠습니다.”
러셀이 고개를 끄덕이자, 인원들을 데려오겠다는 말과 함께 백작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러셀은 리만과 카산드라로부터 마법사단의 피해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받았고…….
딸각, 끼이익-.
백작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십 수 분 후의 일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단신이 아니었다.
시종과 호위 기사 하나만 데리고 단촐하게 나섰던 것과는 달리, 주렁주렁 꼬리를 매단 모습.
“이쪽은 오래도록 본 성을 지켜온 기사들이라오. 조금 나이를 먹긴 했지만, 용장(勇將)들인데다 모두가 각기 기사단을 이끌고 있지. 분명 이번 토벌에서도 큰 힘이 되어줄 것이오.”
확실히.
마법사들의 전투에 있어 기사들은 절대 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몇 개의 마법으로 넓은 범위를 폭격할 수 있는 것이 마법사라곤 하나,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근접전에 취약했으니까.
그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은, 경험이 많거나 고써클에 오른 워 메이지들 뿐.
아직 3써클인 마법사들에게 기사단의 보호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곤 하나 기사단을 몇이나 이끌고 오다니.
이번 토벌전에서 반드시 히드라를 잡겠다는 레이켈의 진심이 드러나는 듯했다.
“왕국의 영웅을-.”
“신성공을 만나 뵙게 되어…….”
“맥라이 휴스를 쓰러뜨린 무명은 익히…….”
러셀과 눈을 마주친 노기사들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입을 모아 호들갑을 떨어댔다.
러셀의 존재는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기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기에.
‘아마도 맥라이 휴스와의 일전 이후겠지.’
웨펀 마스터, 길리언 펄슨마저도 그 소식에 흥미를 느끼고 러셀을 찾아왔을 정도니.
그 이유를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이길 잠시간, 회의가 시작되었다.
.
.
이런저런 방안이 논의되긴 했지만, 그 방안이 하나로 좁혀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론은 선제공격이로군요.”
지금 토벌대와, 백작령의 인원들이 취해야 할 스탠스는 명확했기에.
“지금 놈은 전날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늪지대에서 칩거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놈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우리 쪽에서 먼저 행동에 나서는 것이 훨씬 나은 판단일 겁니다.”
물론 단순히 이와 같은 이유만으로 선제공격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놈이 회복을 끝낸 후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는 백작령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가능성 또한 있었다.
‘그럴 바에는 우리 쪽에서 먼저 움직이는 게 나아.’
주도권을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전장을 백작령에서 늪지대로 바꿀 수도 있었기에.
문제는 히드라를 상대하는 방법이다.
강력한 마력과 육중한 질량을 지닌 히드라는 그 자체로도 위협이었다.
그 외에도 녀석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놈이 부리는 마물의 군세 또한 돌파해야 했고.
“기사단을 둘로 나누는 건 어떻습니까?”
“기사단을 둘로 나눈다?”
“예. 하나의 기사단은 3, 4써클 마법사들을 보호하며 후방에서의 지원과 마물이 빠져나가는 일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기사단은 마물들 사이로 난입해 길을 뚫자는 말씀이시구려.”
마법 폭격에 아군이 희생당할 가능성 또한 있었지만, 그건 폭격의 범위에 제한을 두면 해결할 수 있었던바.
“예.”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난전이 유도되고, 길이 뚫리게 된다면 그때 저희들이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러셀이 말하는 ‘저희’란 자신을 비롯한 두 명의 5써클 마도사들을 의미했던바.
‘백작령 쪽에 달인(達人, Expert)급 오러 유저가 있었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달인급 오러 유저는 5, 6써클의 마도사 만큼이나 귀한 이들이다.
그런 만큼 변경의 백작가에서 그들을 가신으로 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레인켈 백작의 성격을 보아하니, 그만한 전력이 있었다면 진즉 내보였을 테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회의가 진행되고, 선제공격을 가정해 두고 여러 가지 세세한 의견들이 오가는 몇 차례.
“그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문서를 확인하며 러셀이 말을 맺었다.
“……결행은 나흘 후, 모든 준비가 완료된 직후의 새벽으로 하겠습니다.”
분명 그리 되었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 결행의 새벽까지 고작 하루하고 몇 시간만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 * *
결행을 하루하고 몇 시간 앞둔 이틀째의 밤.
러셀은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힌 채, 작전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사락, 사락-.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몇 번이나 거듭 작전을 점검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에야, 러셀은 손에 들린 작전서를 내려놓았다.
툭.
“후.”
긴 한숨과 함께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이 잘 풀렸으면 좋으련만.’
앞서 설명한 적 있듯, 히드라는 용의 인자를 물려받은 용종(龍種)이었다.
그 말인즉, 자신이 지닌 용제(龍帝)로써의 힘이 히드라에게도 통용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별다른 피해 없이 토벌을 끝마칠 수 있을 테지.’
다만 문제는, 이 힘이 히드라에게 통용되지 않을 경우였다.
‘히드라는, 코모도 리자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위에 속하는 용종이니까.’
유비무환(有備無患).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만큼, 전투 역시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독기(毒氣)를 내뿜는 히드라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러한 상황을 상정하며, 러셀이 메모라이즈(Memorize) 해두었던 마법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지형이 늪지대인 점과 범용성을 고려하면 블레이즈 런(Blaze Run)보다는…….’
회귀 전, 떠돌이 프리랜서 생활을 통해.
무능하고 생각 없는 마법사의 마법이, 아군에게 어떤 위해를 끼치는지에 대해선 몇 번이고 뼈저리게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러셀에게 있어, 메모라이즈한 마법을 몇 번이고 고치고 점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였다.
단 한 번.
단 한 발의 마법이 몇이나 되는 아군의 목숨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전장이었으므로.
그렇게 몇 시간, 마법을 수정하고 있었을까.
──!
일순, 여섯 번째 써클이 덜컥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건……?’
자리에서 일어난 러셀이 그길로 창가를 향했다. 덜컹-.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 가운데 러셀의 시선이 단 한 곳을 향해 집중되었다.
‘저곳은?!’
앨런 페이지가 히드라의 독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 분명한 병실.
그곳에서부터 강렬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
.
파밧-.
러셀이 재빨리 병실의 입구에 당도하고, 그로부터 반 박자 늦게.
리만과 카트린느가 병실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5써클 마법사인 만큼, 마력의 흐름에 민감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러셀 경, 이건……?”
당황한 듯 보이는 리만을 뒤로 하며, 러셀이 병실의 문을 열었다.
화아악!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강렬한 마력의 폭풍이 병실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일어난 마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주변의 약초나 의료기기 따위가 마구잡이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쨍그랑, 쨍!
약병이 박살 나며 그 안에 있던 약물이 쏟아졌다.
파라라라락!
의술서 몇 개가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그것을 이루고 있던 종이가 마구잡이로 주변에 휘날렸다.
“히, 히익-.”
그 마력의 폭풍 사이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앨런을 치료하기 위해 늦게까지 고생하고 있던 의술사들, 러셀이 손을 흔들었다.
화아악-.
자신의 마력으로 마력 폭풍을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길을 만들어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의술사들이 마력이 안정화된 통로를 통해 병실을 빠져나왔다.
개중 몇이 나가다 말고 러셀을 향해 앨런의 상태를 이야기하려 했다.
“앨런 경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더니 가, 갑자기 폭풍이-.”
“해독제를 투, 투여하던 와중이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실력 있는 의술사라 한들,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은 분명 처음이었을 터.
당황하여 음성이 횡설수설 흘러나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으니 나가보셔도 됩니다.”
그들을 안심시키며 밖으로 내보낸 러셀이 시선을 움직였다.
앨런 페이지의 주변을 휘도는 마력의 폭풍, 그것을 응시하던 러셀의 눈동자가 대번에 깊어졌다.
형태는 달랐지만 이러한 폭풍은 러셀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으니.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앨런 페이지.
다섯 개의 원을 완성한 마도사가, 새로운 원을. 여섯 개째의 써클을 그려내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