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EPISODE.80
끼리릭, 철컥-.
소성(小聲)이 들려왔다.
오로지 러셀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 여섯 개에 달하는 써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그동안 쌓아 올린 심상이 하나의 마법으로 완성되고.
러셀 레이먼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폴링 썬(Falling Sun).
화아아아악───!!
작열하는 태양이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낙하했다. 강렬한 섬광이 열기를 동반한 채, 주변을 불살랐다.
일대의 공기가 빠른 속도로 연소되며 증발하기 시작한다.
백야(白夜). 새벽 무렵임에도 정오라도 된 것마냥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기사단과 함께 돌입하던 레인켈 백작마저도 일순 주춤하며 손등으로 눈을 가렸을 정도.
6써클 마도사.
평범한 사람은 일평생을 살아도 한 번 마주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이나 귀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대군마법의 존재에, 당황한 기사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무, 무슨……?”
그와 같은 감정이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고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키엑?
키에에에엑?
고개를 들어 올린 마물들 또한 강렬한 태양을 마주하며 경호성을 흘려댔다.
게, 지네, 거미, 악어의 형태에서부터 늪고블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의 마물들이 알 수 없는 괴성을 쏟아내는 것을 들으며, 러셀이 냉소했다.
‘이미 늦었어.’
마법은 완성된 이후였고, 낙하도 끝나가는 와중이었으니까.
폴링 썬은 순수한 불덩어리로 이루어진, 고온고압의 에너지 집합체라.
질량에서부터 비롯되는 물리력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
때문일까.
거대한 태양이 수면과 충돌했음에도 불구하고 굉음 같은 것은 울리지 않았다.
다만 압도적인 열이 사방으로 방사되었을 뿐.
푸쉬이이이이이───────!!
천 도(1000℃)까지 달궈진 쇠공을 웅덩이에 던지기라도 한 듯 새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
마법에 직격당한 마물들이 제대로 된 비명은커녕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다.
고온고압의 열기에 몸이 그대로 녹아 증발해 버린 것!
기백에 달하는 마물들이 깔끔하게 증발해 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수초 남짓.
분명 놀라운 일이었지만-.
‘고작 이 정도로 끝났다면 폴링 썬을 대군마법으로 분류하진 않았겠지.’
마법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륵-!
떨어져 내린 태양이 실타래처럼 풀어졌다. 방사되는 열기, 사방으로 뻗어 나온 불길이 촉수처럼 일대의 마물들을 휘감는다!
달궈진 늪지대의 일부가 지옥의 열탕(熱湯)처럼 끓어오르고!
키에에에엑-!
그르어어어어어어-!
피부가 일그러지고 녹아내리는 고통에 마물들이 죽어라 비명을 질러댔다.
한 발. 단 한 발이었다.
단 한 발의 대군마법으로써 기백에 달하는 마물들을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배에 달하는 마물들에게까지 중상을 입힌 것이다.
일인군단(一人軍團).
‘탑주급 마도사는 혼자서 군단을 상대 할 수 있다더니…….’
언제고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레인켈 백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와 같은 마법이 백작령의 한복판에 떨어졌다면?
‘으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상상, 백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한 명의 6써클 마도사가 더 있었음이니.
달아올랐던 대기가 식어가고, 끓어올랐던 열탕이 가라앉을 무렵.
자신보다 한 박자 늦게 마법을 완성시키는 앨런의 모습에 러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 격은 전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올라 있었지만, 마력의 배열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그때의 그 마법인가?’
자신이 일으켰던 지진에 뒤집어지고 쪼개지는 지면을 한순간에 얼려 고정시켰던 그 마법.
그 마법이 비로소 앨런의 내면에서 완성에 이르며 대군마법으로써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직후, 마법을 완성시킨 앨런이 늪지대 위로 자신의 마력을 덧칠했다.
아이스 에이지(Ice Age).
쩍, 쩌저적-!
마력이 내리찍어진 지점으로부터 늪지대가 얼어들어가기 시작한다.
혹한의 마나가 늪지대의 수분과 초목을 얼리며 마물들의 발을 붙잡았다.
단숨에 전신이 얼어붙어 즉사한 마물도 있는가 하면, 동결된 수면에 몸이 끼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놈들도 다수라.
한껏 끓어올랐던 온도가 단숨에 수직 하강했다.
그 옛날, 선주종족(先主種族) 중 일부를 멸망에까지 몰고 갔다는 고대의 빙하기(氷河期).
그 빙하기가 일부나마 이 시대에 재현된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그 광경에 러셀은 왜 앨런이 이 마법을 선택한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아군이 발디딜 공간을 더 확보한 건가?’
늪의 일부를 얼려버림으로써, 아군이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배 이상 늘어나게 되었으니까.
단순히 대군마법으로써의 효용은 러셀보다 아래였지만, 전술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좋았다.
그때였다.
“허, 허허-.”
두 마도사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레인켈 백작이, 정신을 차리며 크게 소리친 것은.
“돌입! 돌입하라!”
깜짝 놀라 잠시 얼이 빠지긴 했지만, 이곳에 온 목적까지 잊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함께 온 기사단장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얼음을 발판으로 삼아 나아가라!”
“발이 묶인 놈들부터 목을 쳐!”
“제1부대! 1부대는 마법사들을 보호한다!”
“2부대, 나를 따라 돌입! 길을 열어라!”
마물과 인간.
양측의 진형이 순식간에 얽혀들었다.
* * *
아수라장(阿修羅場).
혹은 아비규환(阿鼻叫喚).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첫 공격으로 우세를 잡았다곤 하나 인간의 수에 비해 마물들의 수가 월등하게 많았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레인켈 백작령 인근에 위치한 이 늪지대의 규모는 상당히 거대했다.
늪뿐만 아니라 인근의 습지까지 모두 계산한다면 그 면적이 1500헥타르(15km2)를 넘어갈 정도.
그만한 면적에 모여 있는 마물들의 수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고작 두 발의 대군마법에 나가떨어질 숫자가 아니라는 말이라.
사실상 늪지대가 마물들의 본거지로 변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지금 인간 측 진영은 마물들의 홈그라운드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그렇다고 다시 한번 대군마법을 펼쳐낼 수도 없다.
가장 전투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전열은 아군과 마물이 뒤엉켜 있을뿐더러…….
‘히드라와의 전투를 대비해서 마력을 온존해둬야겠지.’
키에엑!
“죽어라!”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창검(槍劍)이 마물을 베어내는 절삭음은 물론, 곳곳에 마법포격이 떨어지기까지.
서걱, 퍼버버벙!
물론 마물들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하급 마물이라 하여도, 이만한 숫자가 모인다면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므로.
퍼억, 후두둑!
게 형태의 마물이 거대한 집게발을 둔기처럼 휘둘러 병사 하나를 곤죽 내 버리는가 하면, 악어 형(形)의 마물이 입을 크게 벌렸다.
기사의 발목을 짓씹기도 했다.
콰득, 뚜드득-!
단 1초라도 지체했다간, 발목을 보호하고 있는 철제 군화 그대로 발목이 우그러들고 끊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그 순간!
사납게 불어온 바람의 검이, 기사의 발목을 물어뜯던 마물의 몸을 난자했다.
서걱, 서거걱-!
윈드 커터(Wind Cutter).
후두둑-.
도륙된 마물의 몸이 다섯 등분으로 나누어지며 흩어지고, 가까스로 다리가 끊어지는 것을 모면한 기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허나, 기사를 구해준 러셀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지 오래라.
팟, 파바밧-.
얼어붙은 수면을 벗어난 러셀의 신형이 수면 위를 낮게 비행한다.
이어 빠른 속도로 일대를 훑었다.
‘어디 있는 거지?’
히드라(Hydra)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만한 소란이 일어났다면, 놈 역시 분명 눈치챘을 터.
바로 그 순간. 러셀의 눈에 잡히는 광경이 있었다.
시계(視界)의 왼편.
측면을 따라 물그림자가 일렁인다 싶더니 수면이 크게 출렁이기 시작한 것.
족히 십 수 미터에 달하는 몸길이를 가진 괴물이, 그 아래에서 그림자를 드리우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수면 아래를 빠른 속도로 유영하며 기사단의 측면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콰과과과과!
가속과 동시에 세차게 물보라가 일어난다.
어마무시한 몸집과 무게를 가진 녀석이었다.
질량은 그 자체로도 효율적인 파괴 병기였던 바, 이대로 충돌하게 두었다간 아군 측에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것인즉.
“미친놈이……!”
그 광경에 러셀이 욕지거리를 토했다.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나 했더니, 측면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과연, 수준 이상의 지성을 가진 괴물다운 면모라.
입술을 짓씹으며 러셀이 마력을 그러모았다. 놈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멀어……!’
수면 아래로 비치는 놈의 그림자가, 점처럼 작게 일렁였다.
놈이 있는 위치는 자신의 시야 끝, 거리로 따지자면 1킬로미터 이상.
‘닿을까?’
과연 제 시간 내에 그곳까지 닿을 수 있을지, 망설임과 함께 그러모은 마력으로 일대의 중력을 휘어잡는 순간!
그보다 먼저 놈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앨런 페이지였다.
놈과 더욱 가까이에 있었기에, 아주 조금 먼저 기척을 알아채고 반응할 수 있었던 것!
콰과과과과과!
그가 만들어낸 거대한 얼음벽이 아군과 놈의 사이를 틀어막는다.
꽈르릉-!
낙뢰(落雷)를 연상케 하는 굉음!
물보라가 높게 치솟았다.
금이 가기 시작한 얼음벽 너머에서 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면을 가르며 다섯 개의 머리가 불쑥 솟아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한 놈이 짜증 난다는 듯 울부짖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
노기(怒氣)가 잔뜩 섞인 포효를 통해 히드라라는 용종이 가진 마력이 여과 없이 투사되었다.
“큭-.”
“컥……?!”
마법사들 중 몇이 써클이 진탕되는 충격에 저도 모르게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일반 병사들 또한, 미미하게나마 섞여 있는 드래곤 피어를 느끼며 파랗게 질린 표정을 해 보인다.
이것이 용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았다고 알려진 괴물 중 하나, 히드라의 힘이라!
다만, 러셀이 느낀 것은 마력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사념파였으니.
‘어머니를 죽인 인간 놈들, 용서하지 않겠다고?’
놈이 왜 인간을 공격했는지에 대한 내막을 읽어낸 러셀이 다급히 소리쳤다.
“백작님!”
“……왜 그러시오. 레이먼드 백작?”
“혹시 이 늪지대에서 이전에도 히드라가 토벌된 적이 있습니까?”
“이전에도 말이오?”
러셀의 물음에 오래된 영지의 기록을 떠올리며 백작이 대꾸했다.
“삼백 년 전, 머리 넷 달린 히드라가 늪지대에서 패악을 부린 탓에 토벌했다는 기록이 있소, 그런데 그게 왜-?!”
삼백 년.
놈은 무려 삼백 년이라는 세월을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숨죽여 왔던 것이리라.
머리가 다섯 개에 달하게 되고,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될 때까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백 년 전의 히드라 역시 패악을 부렸으니 토벌된 것이었고, 그것은 지금의 놈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기에 러셀은 망설임 없이 마력과 함께 용종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렸다.
화아악!
.
.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런 러셀과 히드라를 지켜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호박색 눈동자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 온통 흑의일색(黑衣一色)인 옷차림에, 길게 길러진 머리칼 또한 대륙에서 희귀하다는 흑발인 사내.
히드라와 러셀을 지켜보던 그의 동공이 일순, 움찔하며 꿈틀거린다.
이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건 설마…….
갈라지며 찢어지는 듯,
탁하고 메마른 음성이 사내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