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EPISODE.08
“후우.”
높게 솟은 산자락과, 그 아래로 펼쳐진 자연경관을 바라보던 러셀이 로브 자락으로 가볍게 땀을 훔쳤다.
마차를 타고 워커힐에서 말디바까지 사흘하고 조금 더.
‘그리고 다시 여기까지 이틀 정도가 더 걸렸으니…….’
이리저리 소모된 시간들까지 더 하면 아카데미를 떠나온 지 이제 일주일이 조금 넘은 셈이라.
‘초행길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잘 도착했네.’
바람결에 희미하게 섞여 있는 유황 냄새.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온천들까지.
이곳은 폼페이오 화산의 초입에 펼쳐진 화산지대였다.
폼페이오 화산.
현재는 이렇다 할 폭발을 일으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화산의 이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화마가 일대를 완전히 뒤덮었을 만큼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킨 전적이 있는 화산이기도 했다.
당시 멀리서 폼페이오 화산의 폭발을 목격한 어느 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천지가 불타오르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고 쓰여 있었지.’
폼페이오 화산이라는 이름은 당시 멸망한 고대 도시의 이름을 따 붙여진 것이라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지금은 완전 관광지로 변해버렸다라…….’
화산지대를 둘러싼 자연경관과, 그 경관 안쪽 곳곳에 마련된 고급 온천들의 위치를 기록한 지도를 바라보며 러셀이 피식하고 웃었다.
‘뭐, 덕분에 일은 편하게 되었나.’
관광지가 되면서 도로를 만들고 닦은 덕에, 목적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산 중턱까지는 편하게 갈 수 있을 테니까.
‘인기척도 많으니 중간까지는 어지간한 몬스터들도 덤벼들지 않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걸음을 옮겼다.
화악-.
아공간을 열어, 예의 x자 표기가 된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음.”
지도에 표기된 위치 근처까지 다가가면 빛이 길을 알려준다는 녹색 창의 말과는 달리.
‘아직까지 양피지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어.’
아마도 더 가까이 가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산길을 올라가길 얼마쯤.
“자 이쪽을 보시면-.”
“저기 보이는 저것은 유황천으로 무려 온도가…….
곳곳에서 이런저런 말소리들이 들려온다.
러셀이 아닌, 다른 관광객들이 고용한 가이드들이 떠들어대는 목소리였다.
관광지로 유명한 화산인 만큼, 가이드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 역시 꽤 있었던 것.
“폼페이오 화산이, 처음에는 화산이 아니라 평범한 산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 중 어느 목소리 하나가 러셀의 귀를 잡아끌었다.
“전설에 따르면 본래 평범한 산이었던 폼페이오가 화산으로 변한 것은, 아주 오래전 어떤 존재가 이 산에 자리를 잡은 후라고 합니다.”
자리를 잡는 것만으로 자연환경과 지대를 바꿔버릴 법한 존재는 세상천지를 뒤져봐도 단 하나밖에 없다.
“예. 몇몇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전설 속, 폼페이오 화산에 자리를 잡은 존재는 바로 화룡(火龍.) 레드 드래곤이었습니다.”
드래곤(Dragon).
마법의 조종이자 신대(神代)에 이 대륙을 거닐었던 초월종.
오로지 그들만이 그것이 가능하리라.
“그래서인지 폼페이오 화산에는 드래곤과 관련된 전설이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 가이드는 화룡과 관련된 전설들을 떠들어댔다.
용이 누웠던 자리가 있다느니, 크게 포효를 한 기록이 있다느니-.
물론 크게 영양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중 러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화룡이 살았다는 정보였을 뿐.
‘용종의 심장, 용의 눈을 닮은 반지…….’
그 두 개를 통해 과거로 돌아왔고, 녹색의 창과 미션이라는 특별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미션을 쫓아 왔더니 나타난 곳이 화룡이 살았던 전설을 간직한 산이라.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것과 녹색창을 얻게 된 데에는 용, 혹은 아주 고위 용종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던바.
용과 용종.
두 가지 키워드를 기억하며 러셀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 후로도 가이드와 관광객들을 지나쳐 산길을 오르길 얼마간.
꽤 높은 곳까지 올라선 후에야 러셀이 우뚝,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앞으로 쭉 나 있는 산길과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숲속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턴, 산길을 타긴 글렀군.’
여기까지야 길이 맞았다곤 하지만, 지금부터는 산길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도상으로 남아 있는 거리 역시 적지 않았다.
축적이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와 대충 비교해서 계산해 본다면-.
“대충 40km 정도…….”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부지런히 이동한다 하더라도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친 산길을 타고 이동하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넉넉하게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하는 거리.
평범한 마도 아카데미 생이었다면, 체력적으로 절대 쉽지 않았을 거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러셀이 슬쩍 고소했다.
용병 생활을 한 덕에 노숙에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설마하니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를 위해 육체단련을 해둔 것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문제는 몬스터인데.
가능하면 기척을 숨겨 조심해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잘 때도 알람 마법으로 경계를 해둬야겠어.”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러셀은 잘 만들어진 관광객용 산길을 벗어났다.
그리고 전혀 정돈되지 않은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인 점은 나무나 수풀 따위가 그렇게까지 울창하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서, 따로 불을 피울 필요까진 없다는 건 좋네.’
오래지 않아, 저 멀리서 형체라도 보이던 관광객용 산길이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이내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산의 적막이 찾아왔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숲.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몬스터는커녕 짐승들의 기척 역시 거의 느껴지지 않은 것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데.’
이쯤 들어왔으면 고블린 한 마리라도 만나야 정상일 텐데.
“흠…….”
.
.
이상 현상은 비단 첫날뿐만이 아니었다.
둘째 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간간이 야생짐승 몇 마리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몬스터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마치-.’
포식자의 영역…….
러셀이 뭔가를 추측하려는 순간!
……우지끈, 쿵!
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무엇인가가 부러지고 무너지는 소리.
그 소리에 러셀이 본능적으로 그사이에 멈춰 섰다.
척.
그리곤 거대한 나무 등치에 몸을 반쯤 숨긴 채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용병 생활을 하던 당시에 익힌 습관이었다.
…우지끈, 쿵.
우지끈, 쿵. 우지끈 쿵!
그사이에도 부러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커져간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데.’
긴장된 표정으로 러셀이 마력을 끌어올렸고, 직후!
우지끈, 쿵-!!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처럼 딱딱한 등껍질과, 나무껍질처럼 거친 피부에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일법한 몸길이까지.
‘코모도 리자드!’
도마뱀의 형상을 한 그 괴물을 보며 러셀이 속으로 경악을 터뜨렸다.
‘젠장,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했더니. 코모도 리자드의 영역이었을 줄이야.’
코모도 리자드.
먼 옛날 멸종한 드래곤, 용(龍)의 인자를 물려받았다고 전해지는 용종(龍種)의 한 갈래.
그렇다고 하여 드레이크나 와이번 계열의 유명한 용종만큼 강력한 놈은 아니다.
물려받은 용의 인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인지, 그 능력 자체는 앞의 두 개체보다 훨씬 떨어졌다.
순수한 강함만 놓고 본다면 청소년기의 트롤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
하지만.
‘절대 쉬운 상대는 아니야.’
딱딱하게 굳은 등껍질은 어지간한 창이나 칼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용의 인자를 타고 난 만큼 어느 정도지만 마법저항력 역시 있었다.
‘최대한 기척을 숨겨서, 도망갈까?’
일순 든 생각.
이내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먹잇감이라는 건 십중팔구 나겠지.’
육중한 덩치에 비해 사냥에 나섰을 때 놈의 속도는 꽤 빠른 편이었다.
단단한 피부로 나무를 부수며 달려오는 놈의 돌격성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도망가도 쫓아올 테니 결국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라.
‘전생에서도 저거 한 마리 잡는다고, 용병단 두 개가 달라붙었었는데…….’
과거와 달리 3써클에 오른 지금이라면?
파이어 볼트.
‘아니. 차라리 움직임을 잠깐 마비시킬 수 있는 라이트닝 볼트 쪽이 나을지도.’
라이트닝 볼트를 최대한 많이 캐스팅하고, 거기에 회전을 더한 후 한 곳에 집중 점사한다면…….
쓰러뜨리진 못하더라도 상처를 만들고 순간이나마 마비 상태를 만들 가능성은 있었다.
‘그 후에 마저 쓰러뜨릴지, 그렇지 않으면 도주를 할지 결정한다.’
도주를 하더라도-
‘멈춰선 녀석의 코에 마법을 쑤셔 박아 후각을 마비시켜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러셀이 조심스럽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 순간.
우지끈-.
녀석이 고개를 틀었다.
정확하게 러셀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들켰다!’
기습을 노리던 그로서는 뼈아픈 상황이었으니, 일단 몸을 빼야 했다.
빠른 판단을 내린 러셀이 그렇게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녀석이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 먼저였다.
“어?”
러셀을 발견하는 순간, 육중한 몸을 내달려 공격을 가해오는 대신 녀석은 그 자리에 천천히 멈춰 섰다.
한동안 러셀을 응시하더니, 이내 두 개의 앞다리를 천천히 굽혔다.
이어 눈을 감고 고개를 바닥에 닿게 한다.
‘지금 저게 뭐 하는 거야?’
마치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절을 하는 것과 비슷한 자세.
전혀 예상치 못한 녀석의 행동에 러셀이 발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응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계속해서 그 자세를 유지할 뿐.
러셀을 향해 어떠한 위협이나 공격도 가해오지 않는다.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코모도 리자드는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적을 내버려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저런 모습이라니.
“음…….”
짧게 침음한 러셀이 일단 천천히 뒷걸음질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태세를 바꾸어 공격을 가해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러셀이 그곳을 완전히 떠나갈 때까지도 녀석은 계속해서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도 혹시 몰라, 멀리 돌아 자리를 벗어난 러셀이 중얼거렸다.
고민을 한다고 해서 딱히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허나 그럼에도 이 문제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행히도 그 후로 코모도 리저드나 여타 몬스터의 습격을 받는 일은 없었고, 우우웅.
x표기 근처에 온 것이 맞는지 양피지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화아악-.
양피지의 마력을 따라 흘러나오는 빛의 가루가 허공에서 뭉쳐지더니 러셀의 주변을 크게 돌았다.
이내 한 쪽 방향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빛이 길을 알려준다는 건, 이런 의미였나?”
콰과과과과과과과-!
빛의 가루를 쫓아 온 러셀을 반긴 것은, 거대한 폭포였다.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며 물보라를 만들어내고.
그 물보라에 햇살이 반사되며 곳곳에서 무지개가 생겨났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천혜의 절경.
빛의 가루는 거기서 멈춰 서지 않고, 폭포의 뒤쪽으로 날아갔다.
철벅, 철벅-.
뒤를 쫓아가자 물이 자박하게 고인 폭포의 뒤쪽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작은 동굴의 입구 하나.
빛의 가루는 러셀이 자신을 쫓아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 동굴의 입구 앞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폭포 뒤쪽에 동굴이라…….”
꽤 고전적이지만, 찾기는 어려울 듯했다.
애초에 폭포가 사람들의 인적이 먼 곳에 존재하고 있기도 했고.
“굳이 여기까지 와서 폭포 뒤쪽으로 와보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러셀이 무릎을 굽혔다.
아무래도 미션이 가리키는 곳은 이 안쪽인 듯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스윽, 스윽-.
바닥을 기다시피 자세를 낮춰 들어간 내부의 공간은, 러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어두워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라이트(Light).”
마력을 이용해 빛을 밝히자, 동굴 내부의 광경이 명확하게 보였다.
폭은 물론이거니와 높이 역시 수 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동굴.
그 동굴의 벽을 따라 생겨나 있는 물결무늬의 흔적들까지.
‘이건 마그마가 흘러간 흔적인데.’
그 흔적을 통해 러셀은 어렵지 않게 동굴의 생성 원인을 추측할 수 있었다.
“용암동굴(Lava Cave).”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쯧, 아직까지 응답이 없는 미션창에 가볍게 혀를 차 보인 후, 용암동굴 안쪽을 향해 러셀이 걸음을 내뻗었다.
저벅, 저벅.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