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EPISODE.80
* * *
갸아아아아아아아아-!!!
다섯 개의 머리가 일제히 포효를 터뜨렸다.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용종의 위압감이 인간의 심신을 뒤흔들고, 그와 함께 히드라가 거체를 움직였다.
쿵, 쿵, 쿵, 쿠우우웅!
앞다리를 이용해 크게 파문을 일으킨다 싶더니 여러 개의 머리를 그대로 꿈틀거리며 그대로 몸을 비틀어 버린 것!
저 커다란 거구는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질량 병기라!
───────!!!
광풍이 몰아닥쳤다.
거체에 깔린 습지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박살 나며 그 파편 따위가 사방으로 비산하고-.
우지끈, 쾅.
콰저적!
이파(二波)로써 나무 파편 섞인 파도가 순식간에 몰아닥쳤다.
늪지에서도 해일(海溢)과 같은 파도가 일어날 수 있음이라.
순수한 질량만으로 그것을 재현해 내는 개체라니!
부유마법을 펼쳐 놈의 공세를 피해내며 러셀이 인상을 찌푸렸다.
‘통하지 않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용제로서의 지배력이 놈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복종하지 않더라도 주춤할 법은 한데,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닿기도 전에 가로막히는 느낌이지.’
무엇인가가 있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용제로서의 지배력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어 번 더 지배력을 행사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던바.
‘어쩔 수 없지.’
러셀이 길게 한숨을 뱉었다.
마력을 그러모았다.
화아악-
지배력으로 놈을 찍어 눌러 상대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차선의 수단 또한 충분했으므로.
게다가, 머리 다섯 달린 히드라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탑주급 마도사 두 명의 상대는 결코 될 수 없었던바!
쩌어엉-!
쩌저저저적-!
다섯 겹의 쉴드를 비스듬하게 세워 놈의 질량 공세를 흘려내고 몰아치는 파도를 그대로 얼려 버리며 앨런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다섯 개의 머리.
그중 하나가 입을 쩍 벌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놈의 아가리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처박았다.
쾅!
얼음이 만들어내는 무게에, 일순 놈의 머리가 크게 휘청였다.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려던 독기가 얼음에 틀어 막혔다.
─!!!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가 만들어지고 놈의 입에 정확하게 처박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초 이하의, 소수점 남짓한 단위였을 뿐.
놈이 다섯 쌍의 눈동자를 번득임과 동시에 입에 틀어박힌 얼음을 꽉 깨물었다.
이빨로 조금씩 얼음을 박살 내며 또 다른 입을 쩍하고 벌렸다.
체내에 모아두었던 독기를, 또 다른 입을 통해 방출하려는 것이다.
그 순간, 러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일대의 하늘을 장악했다.
수십, 수백 갈래로 나누어지며 비틀리고 회전해 와류를 만들어낸다.
화르르륵!
불꽃의 형상을 한 와류가 삽시간에 하늘을 수놓고. 수 백발에 달하는 파이어볼트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열기에 새벽의 찬 공기가 성큼 물러나고.
독기(毒氣), 브레스가 쏟아지는 것보다 먼저 수백 발의 불화살이 놈의 입안을 강타했다.
피비비빙, 퍼버버버버벙!
날카로운 파공음, 직후 폭발과 함께 놈의 피륙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입안과 목구멍을 가리지 않고 작열하는 불기운에, 독기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보다 빠르게 연소되었다.
평범한 생물이라면 저만한 숫자의 불화살이 입과 목, 체내에 처박히고도 살아 있을 수는 없을 테지.
허나 히드라는 평범한 생물이 아니었다.
신화(神話)가 끝을 맞이한 이 시대에서 용의 인자를 다량으로 물려받았다는 최상위 용종(龍種)의 한 갈래.
그러한 용종이 지닌 마법 방어력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였으니.
‘파이어볼트로 입안과 목구멍이 폭격을 당하고도 버텨낸다고?’
하위 마법이긴 했지만, 체내의 점막을 직접 가격한 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체내에서의 효과가 고작 저 정도라면, 표피 쪽에는 씨알도 안 먹히겠군.’
바깥쪽에서부터의 공격은 보다 고위 마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라.
푸쉬쉬쉬쉭-.
불꽃의 포화를 받아낸 입으로 검은 연기를 쉬지 않고 토하고, 목을 크게 휘청이던 녀석이 돌연 눈을 부릅떴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브레스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인지.
입을 벌리지 않은 채 노기 가득한 눈알만을 뒤룩뒤룩 굴려대는 모습.
다섯 개의 머리, 열 개에 달하는 눈이 각기 다른 방향을 응시하는 것이 징그럽고도 매섭다.
이어 녀석이 선택한 것은 마법(魔法)이었다.
갸오오오오-!
내질러진 포효가 영창을 대신하고 흘러나온 노기가 주변의 마력을 준동시킨다.
그야말로 용종(龍種)다운 마법 발현법.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다섯 개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저건-!’
러셀의 눈이 빠르게 마법진의 구조를 읽어냈다.
인간의 그것과는 꽤 달랐지만, 본질이 마법인 이상 러셀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는바.
합리적 이성과 날카로운 직관이 마법진을 낱낱이 해부하며 결론에 도달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낙뢰인가?’
그것도 십 수 발에 달하는 강력한 낙뢰(落雷)!
늪지대에 떨어지게 된다면 적아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한 피해를 입힐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관없을 테지.
놈에게 있어 자신이 부리는 마물들은 체스판 위의 기물들보다 못한 존재일 테니까.
얼마를 잃더라도 다시 그러모으면 그뿐.
갸아아아악!
마법진이 뇌광(雷光)으로 화했다. 천둥, 전격이 검은 연기로 뒤덮인 하늘을 푸른색으로 물들이고.
쿠르르르릉-!
십 수발에 달하는 굵은 번개가 일대에 강림하는 순간!
────!!
이변을 감지한 히드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온몸의 비늘이 곤두서는 듯 서늘한 감각.
쿠르릉.
일직선으로 낙하해야 할 뇌격이 하늘을 따라 비스듬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흘러내리며 누군가의 손아귀 안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클라우디 링(Cloudy Ring).
순식간에 완성 시켜 떨구어냈다면 모르겠지만, 화력을 높이기 위해 벼락을 하늘 끝에 잠시 매달아 두었던 것이 패착이라.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클라우디 링을 이용해 쏟아지는 벼락을 쓸어 담는 것쯤이야 러셀에겐 일도 아니었으므로.
쿠릉, 쿠르릉-.
손끝을 따라 모여든 전격이 나선을 그리며 회전했다.
이내 한 개의 점으로 수렴하며 거대한 와류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5써클 최고 화력을 자랑하는 뇌격 마법이 우레 거인의 망치(Mjöllnir of Thunder Giant)라면.
지금 러셀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것은 거대한 작살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으니.
케라우노스(Κεραυνός).
그 옛날 올림피아 신족의 주신이던 제우스(Ζεύς), 그가 사용하던 벼락의 이름을 빌린 마법에 러셀의 손에 임했다.
쿠르르르릉-.
방전 현상이 일어나며 뇌광이 허공을 쉬지 않고 떨쳐 울린다.
마법이 완성되자, 기다렸다는 듯 앨런이 준비했던 마력을 수면 위로 내리찍었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얼음은 그 자체로도 절연체(絶緣體)라.
늪지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자연물 중, 순수한 물만이 얼어붙으며 히드라를 둘러싼 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러셀의 손끝을 떨쳤다.
케라우노스.
막을 여지 따윈 없는, 우람스런 낙뢰가 히드라의 등줄기를 강타했다.
─!!!!
* * *
하늘에서 떨쳐 울리는 벼락의 뇌성(雷聲)조차도 지상의 인간을 겁먹게 하는 법이다.
하물며 눈앞에서 거대한 벼락이 떨어졌음에야!
꽈르르르릉!
귀를 먹먹케 하는 굉음과 함께 새하얀 빛이 일대를 뒤덮었다. 쉬지 않고 발광과 암전을 반복하며 명멸했다.
벼락이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충격파가 일어나고, 일순 얼음벽 안쪽 늪의 물이 깨끗하게 증발했다.
푸쉬이이이이이-!
일어난 수증기가 일대를 자욱하게 가렸다.
문자 그대로 대(大)파괴의 한 장면이라.
그 엄청난 굉음과 충격적인 장면에 마물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들이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을 정도!
“무, 무슨…….”
쿠르르르르르르-.
늪지의 물을 타고 전해지는 파문과 미미한 충격파에 기사들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침을 꿀꺽 삼키기까지 했다.
아무리 히드라라고 하더라도, 저만한 일격을 몸으로 받아냈다면 즉사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허나 정작 히드라와 대치를 이루고 있는 두 마법사의 생각은 달랐다.
‘효과는 충분했지만…….’
‘일격으로 목숨을 끊어놓지는 못했나?’
갸으어어어어어-.
두 마법사의 생각대로, 히드라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엄청난 상처를 입고, 두 개의 머리가 검게 타 죽어 버렸을지언정.
여전히 세 개의 머리를 꿈틀거리며 거구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직격 한다면 거대한 절벽조차 쪼개 버릴 수 있는 일격이었다.
어쩌면 쏟아지는 강물조차 거꾸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일격에 적중당하고도 숨이 붙어 있다니.
강인한 수준을 넘어 경이적이기까지 한 마법 방어력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승기는 자신들 쪽으로 넘어와 있었던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러셀과 앨런이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
.
서거걱!
거대한 얼음의 검이 히드라의 몸을 저며내는가 싶더니, 이어 불꽃의 창이 몸통을 관통했다.
화르르륵, 펑!
몸을 파고든 불꽃의 창이 폭발하며, 일순 히드라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외부는 물론 내장까지 진탕시키는 일격!
물론 히드라라고 해서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격을 위해 계속해 마법을 쏘아냄과 동시에 거구를 움직여 폭풍을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아!
그것으로도 모자라 호시탐탐 독기 어린 브레스를 쏘아내기 위해 기회를 살피기까지!
평범한 범인, 아니 설혹 단련된 정병이라 할지라도 저 셋의 전투에 휘말렸다간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게 될 터.
싸움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그것은, 차라리 재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듯했다.
지원은커녕 감히 끼어드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
그러한 상황 속에서 레인켈 백작이 내린 결론은 지극히 합당한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전열을 뒤로 물리도록!”
자칫 아군이 휘말릴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이,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무대를 확보해주는 것.
백작의 의도를 알아차린 기사들이 연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거리를 유지해! 일단은 늪지대를 벗어나 습지에서 방어벽을 다시 구축한다!”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말도록! 마법사들이 후퇴한 직후, 빠르게 움직여라!”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히드라가 아닌, 놈이 부리는 마물들이다!”
아군의 기척이 조금씩 거리를 벌리는 것을 느끼며 앨런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것으로 조금 더 마음껏 마법을 쏘아낼 수 있을 테니까.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일대가 얼어붙기 시작하고, 놀랄 만큼 정밀하면서도 쾌속한 마력의 준동에 앨런이 나직이 감탄했다.
‘이게 6써클…….’
한 계단.
고작 한 계단 올라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만한 차이라니.
높게 솟은 산의 정상을 정복하기라도 한 듯, 고양감이 차올랐다.
물론 그 고양감이 사그라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
격류(激流).
무시무시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엄위(嚴威)한 마력의 준동에 앨런이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허공을 비행하며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러셀의 모습을 일견했다.
‘그 짧은 찰나에, 이만한 마력이라니…….’
같은 경지라곤 하나 그간 쌓아 올린 숙련도와 경험치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올라선 산과, 러셀이 올라선 산은 꽤 다른 듯했다.
‘과연 러셀 경.’
잠시나마 가졌던 자만심이 얼마나 알량한 것이었는지.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저 마법이 최후의 일격이 될 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 죽어가던 히드라의 상념 속으로.
음성 하나가 흘러들었다.
-이대로 끝을 내기엔, 꽤 아쉬운 싸움일테지.
황량하고 메마른, 목소리에 색이 있다면 검정이지 않을까 싶은 음성.
-내가 네게 나눠준 용혈의 힘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닐진대, 일어나라. 나의 권속아.
음성 함께, 검은 그림자가 히드라의 전신을 뒤덮었다.
화아아아악!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