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EPISODE.82
덜컹-!
문이 열리며 널찍한 연회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넓이에 비해 화려한 면 없이 소탈한 연회장이었다.
금은보화로 이루어진 장식품이나 샹들리에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장식이라곤 석재나 목재를 깎아 만든 것들이 대부분.
개중에 그나마 화려한 것은 색을 입힌 유리를 쌓아 만든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였다.
여러 색조가 뒤엉킨 불투명 유리에 빛이 반사되며 연회장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던 것.
여타 왕도 귀족들의, 아니. 일반적인 귀족가의 그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소탈한 모습이라.
공공재의 목적으로 비축했다곤 하나, 영지의 어려움을 위해 망설임 없이 곳간을 열 정도로 인망 높은 백작.
“백작님의 평소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연회장인 것 같습니다.”
앨런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듯 작게 중얼거렸다.
“신성공(晨星公) 레이먼드 백작님을 비롯한 왕도의 마법사단께서 입장 하십니다-!!”
반 호흡 가량 늦게 터져 나온 시종의 우렁찬 외침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연회장의 입구로 향한다.
인근 몇 개 영지를 통틀어서 대도시를 가진 유일한 영지, 레인켈 백작령.
때문일까.
연회장에는 꽤 많은 수의 귀족들이 참석해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이 연회에 참석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겉으로는 레인켈 백작령의 승리와 무탈함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을 테지만-.
‘그중 태반 이상이 중앙 정계와의 연줄을 잡겠다는 의도를 숨기고 있을 테지.’
오랜 왕도 생활을 통해, 중앙 정계의 귀족들과 몇 번이고 맞닥뜨릴 기회가 있었기 때문인지.
속내를 숨기는 데 능숙했던 그들에 비하면 지방 귀족들의, 투명하게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눈동자는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고개를 돌리자, 그러한 귀족들과 함께 온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가솔-.’
-그중에서도 딸이나 질녀가 대부분일 터. 한껏 꽃단장을 한 그녀들의 모습에 러셀이 가볍게 실소했다.
‘아무래도 앨런 경이나, 젊은 마법사들이 곤욕을 좀 치르겠군.’
아무리 대담한 작자라 하더라도 왕실의 일원이자 국왕의 부마인 자신에게까지 저런 수작질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들의 첫 목표는 앨런이 될 것이었고, 다음의 목표는 저(低)써클의 마법사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비록 러셀이나 앨런만큼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왕도 마탑에 입탑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가능성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기에.
짧은 찰나 연회장 내의 상황을 파악한 러셀 일행을 레인켈 백작이 맞이했다.
“백작령의 영웅분들께서 오셨구려-!!”
환하게 웃은 그가 러셀을 비롯한 마법사단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간 잘 쉬셨는지는 모르겠소.”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레인켈 백작은 마법사단의 휴식과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과일과 약재 따위를 일부 구해왔을 뿐만이 아니라, 경상을 입은 마법사들을 극진히 보살펴주기까지.
“잘 쉬셨다니 다행이구려. 혹여라도 미흡한 점이 있을까, 걱정했거늘…….”
그렇게 얼마간 레인켈 백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분위기가 조금씩 무르익는 것을 느끼며 그들을 향해 다가서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일단은 가솔들을 물린 채, 먹잇감을 노리던 승냥이처럼 접근하는 무리들.
“레인켈 백작님. 괜찮다면 우리들에게도 백작령의 영웅분들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바로 인근 영지의 귀족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
.
그리 마음에 드는 자리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연회의 분위기를 파투 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떨떠름한 속내를 숨기며 러셀이 인근의 귀족들과 천천히 인사를 나누었다.
“허허. 레이먼드 백작님. 신성공에 관한 소문은 자주 들었습니다만…….”
“듣던 것보다 훨씬 헌앙…….”
“……아직 부족함이 많아 왕실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늘 걱정입니다. 다만, 여러 영주분들께서 그리 말해주시니 다행이군요.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처음 귀족 사회에 발을 들였던, 당시의 어수룩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능숙한 대처.
와인잔에 비친 자신 모습을 보며 러셀이 실소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라더니.’
아무래도 늘어난 것은 마법적 성취만이 아니었던 모양.
러셀이 영주들로부터 해방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무려 열넷에 달하는 영주들과 인사를 마친 후였다.
러셀과 앨런이 참석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는지, 인근의 여섯 개 영지 외에도 꽤나 먼 곳에서부터 참석한 영주들 역시 있었으므로.
물론 영주들이 물러간 것 또한, 마냥 자의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무도회가 시작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되었을 뿐이지.
─, , ♬─, , ──.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도회는 젊은 남녀(男女)들의 시간이었으니까.
슬그머니 시선을 움직이자, 왕도의 마법사들과 여인들이 쌍을 이루어 무도회를 즐기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 능숙한 앨런 페이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있는 모습.
‘그럴 만도 하지.’
젊은 나이에 왕도 마탑에 입탑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공부벌레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남자건 여자건 간에, 하나 같이 숙맥이라는 말이었다.
문제는-.
‘저 양반들인데…….’
흘깃흘깃, 자신을 바라보는 영주들의 모습에 러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설명한 바 있듯, 무도회라고 하나 자신은 왕실의 부마. 그런 자신에게 춤을 신청하는 간 큰 이는 없었다.
때문일까. 홀로 남은 자신을 바라보는 영주들의 시선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필히 다시 저들과 엮이게 되겠지.’
그리 생각한 러셀이 슬그머니 마력을 끌어올렸다.
끌어 올린 마력을 주변의 그림자와 동화시키는 것으로 기척을 죽인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존재감이 확연히 줄어든 만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 역시 함께 줄어들게 될 것인즉.
귀족들의 시선이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길 잠시간.
일순, 러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딘가 기묘하면서도 이질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이건…….’
그 감각에 러셀이 고개를 틀었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확인했다.
그곳에서 러셀이 마주한 것은 이질적인 시선만큼이나 특별한 외견을 한 사내였다.
‘흑색 장발…….’
온통 흑의 일색인 옷차림은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카락 역시 대륙에서 흔치 않은 흑발이라니.
차이가 있다면 러셀의 그것과는 달리 사내의 흑발은 조금 더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쩐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기묘한 퇴폐미를 만들어낸다.
때문일까.
사내의 외견은 잘생긴 겉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꺼림칙한, 다가가기 꺼려지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러셀과 눈이 마주친 사내가 입꼬리를 삐죽 끌어 올리고-.
“─!!”
벼락이라도 맞은 듯 러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無底坑), 그 입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
놀라운 점은 그만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회장에 있는 그 누구도 사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러셀과 사내, 두 사람이 있는 공간만을 따로 유리시킨 것처럼.
게다가…….
‘이 익숙한 시선은 분명─.’
히드라와 싸우던 당시, 몇 번이고 등허리를 따라붙던 바로 그 시선이 아닌가.
‘그 외에도…….’
몇 차례 정도 겪어본 적 있는, 익숙한 존재들의 눈빛이라.
저도 모르게 미간이 깊게 패어 든다.
러셀의 얼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끼며 사내가 몸을 틀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연회장을 벗어나, 천천히 테라스를 향해 신형을 옮겼다.
러셀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
.
덜컹-.
테라스의 문이 열리자,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
사내가 서 있는 곳은 테라스의 난간 위라, 자칫 잘못하면 아래로 추락할 것이 분명한 그 위를 사내는 평지마냥 밟고 서 있었다.
창백하게 떨어지는 월광(月光).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백작령의 축제 소리.
모두가 흥에 겨운 밤, 이 적막 속엔 오로지 사내와 러셀뿐.
서늘한 밤바람과 적막 따위가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사내의 불길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와중에, 러셀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
“혹시 드래곤입니까?”
조금 이질적이긴 했지만, 사내의 시선은 전날 만났던 은룡이나 화룡과 공통된 부분이 많았으므로.
만약 이런 존재가 존재한다면, 블랙 드래곤, 혹은 마룡(魔龍)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게다가 이 사내가 히드라가 말하던 그분, 배후의 존재라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되었다.
‘용의 힘이라면, 히드라를 강제로 성장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런 러셀의 물음에 사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글쎄…….
메마르고 건조한 이야기로 고개를 갸우뚱했을 뿐.
별안간 사내가 난간을 박찼다.
화아악!
밤하늘만큼이나 새카만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그의 날갯짓에서 시작된 광풍이 테라스를 비롯해 아래쪽 정원을 크게 뒤흔들고-!
콰과과과과-!
마침내 바람이 멎었을 때, 사내의 모습은 더 이상 그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사내가 남기고 간 음성만이 서늘한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었을 뿐…….
─한때는 분명 그렇게 불리기도 했었지.
알림이 들려왔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히드라 격퇴에 대한 보상으로 최상급 마석(식용)x5을 지급합니다.] [히드라의 비밀과 배후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최상급 마석(식용)…….]러셀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알림이었다.
* * *
연회장을 벗어난 사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레인켈 백작령에서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외딴 산속이었다.
가시나무나 침엽수 따위가 마구잡이로 얽혀들며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운 산자락.
스으윽-.
산자락의 어둠이 일그러진다 싶더니, 뒤틀린 공간을 통해 흑의 사내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탁-.
그렇게 어둠을 빠져나온 사내가 가시덤불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하다는 듯 그림자가 짙게 내린 산자락을 따라 신형을 옮기길 얼마간.
이내 사내의 걸음이 멈춰 선 곳은 울창하게 솟은 침엽수 사이에 가려진 거대한 암굴(暗窟)의 앞에서였다.
─…….
다른 이들은 어찌 느낄지 모르겠으나.
이 불길하고 축축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이 암굴이야말로 사내가 안락하게 여기는 유일한 거처였으므로.
돌연 사내가 왼팔을 떨쳤다.
콱!
“꺽-!”
그와 함께 목을 움켜쥐어진 사내 하나가 어둠 속에서 딸려 나오며 발버둥 쳤다.
“꺽, 컥, 꺼억-.”
붉은 안광을 흉흉하게 뿌려대는 사교도 사내.
─추잡한 냄새가 나니 할 말이 있거든 직접 찾아오지 말고 따로 전하라고 분명 경고했을 텐데-.
흑의 사내가 무감각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읊조렸다.
─죽고 싶은 거냐. 히프노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