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EPISODE.83
* * *
온통 녹음(綠陰)만이 짙게 우거져 있어야 할 대수림(大樹林)이건만 오늘따라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기류가 숲 전체에 깔린 것이, 곳곳에서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
키에엑,
크캬캬캬캬캬캭-!
갸르르르륵!
오로지 광기(狂氣)로 점철된, 살의 가득한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에서 이성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바.
불길함을 감지한 엘프 수호자 하나가, 번을 서고 있던 다른 엘프들에게 소리쳤다.
“경계 태세를 조금 더 강화하도록 해! 근래 들어 마물들의 움직임이 흉포해지긴 했지만, 오늘은…… 뭔가 좀 더 이상해.”
자연 중에 흩어져 있던 정령들의 존재가 오늘따라 유독 옅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모습을 숨긴 정령들이 어쩐지 겁에 질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혹시나 해서 몇몇 정령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들 역시 도리질만 칠 뿐.
자신들이 왜 공포를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정령들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안개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날이 지날 때마다 짙어지고 있는 이 회색의 안개였다.
어떻게 되먹은 것인지, 안개에 닿을 때마다 몸이 쭈뼛하고 얼어붙는 것 같았으니.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몸이 아니라 영혼이 동결되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세상의 안개가 아닌 듯한 감각. 그 감각에 눈을 날카롭게 홉 뜨며 엘프 수호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층 신중한 눈으로, 숲 저편을 노려봤다.
그들 종족에겐 늘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며, 항상 안정감만을 전해주던 숲이 근래 들어 왜 이리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때였다.
───!
멀리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람을 타고 날아든 소리와 흙먼지가 엘프 특유의 예민한 감각에 걸려든다.
투두두두두두-!
파밧, 팍, 철렁!
일단의 무리가 숲을 내달리는 소리, 무엇인가가 나뭇가지와 덩굴을 박차며 날아오르는 소리.
그 외에도 날갯짓 소리와 기괴한 울음소리 등등. 온갖 잡스런 것들의 소리가 멀리서부터 전해진다.
그 소리에 번을 서고 있던 어린 엘프 하나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마물들의 대……이동인 건가?”
근래 들어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곤 하나, 대수림은 본래부터 꽤 많은 수의 마물들이 존재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들 중 한 무리가 이동한다면 저런 소리가 충분히 날 수 있었으므로.
그 추측에 처음 명령을 내렸던 엘프 수호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마물의 이동 따위가 아니야.”
일반적으로 마물의 대이동이라 함은, 같은 종족들의 마물이 모종의 이유에 의해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만큼 발소리 또한 일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들려오는 소란은 어떠한가?
발자국의 종류만 십수 가지 이상!
하물며 그 소란이 이곳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습격! 마물들의 습격이다!”
엘프 수호자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경보를 울려!”
등에 걸려 있던 활이 순식간에 손으로 넘어오며 한계까지 당겨진다.
꾸드드드득-.
활대가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엘프 수호자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발걸음 소리만 놓고 보면 습격하는 마물의 숫자는 수백 이상…….’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엘프들을 모조리 규합하더라도 그 정도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중 어린 엘프는 제외하고, 전력 교환비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그렇기에 당겼던 활을 쏘아내며 수호자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른, 다른 부족에도 연락을 해서 지원을 받아야 해!”
쐐애애애액, 퍽!
허나, 그런 수호자의 바람과 달리…….
갸르륵, 캭캭!
으캬캬캬캬캬캭!
인근에 위치한 여섯 개의 마을 중,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부족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습격, 습격이다!”
“막아!”
“어린아이들부터 후방으로 보내!”
엘프뿐만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요정족의 마을 모두가 마물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역사상 단 한 번도 유례가 없었던 마물들의 대규모 공격에 대수림 안쪽에서부터 절망과 공포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
.
“으아아악!”
“가, 갑자기 어디서 이만한 숫자의 마물들이-!!”
“북풍(北風)이여, 저들의 진격을 멈춰주소서!”
아비규환(阿鼻叫喚), 혹은 아수라장(阿修羅場).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대수림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 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교도 사내, 히프노스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절망과 공포, 비명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합주는, 피와 죽음을 숭상하는 그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음악의 악장이었으므로.
그런 그의 손에는 두 개의 쇠말뚝이 들려져 있었던바.
“이제 곧이겠군.”
흉흉한 안광을 토하며 히프노스가 시선을 움직였다.
녹음의 한복판, 대수림의 일부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어둠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제 곧 타르타로스(Τάρταρος)가 열린다-!”
그 뚜껑을 못 박고 있던 봉마의 쐐깃돌들 중 상당수가 제거된 상태다.
몇 개 남지 않은 쐐깃돌들로 타르타로스의 봉인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 역시, 아주 조금 열린 틈을 통해 일어나는 전조현상에 불과할 뿐.
시간이 흘러 봉인이 점점 약해지게 된다면, 아직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놈들 역시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 옛날……파괴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던-!’
과거 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선주종족의 하나.
[Τiτᾶνες]대지를 뒤집고 산악을 통째로 뽑아버릴 역발산(力拔山)의 힘을 가진 괴물들이었다.
신화(神話)가 거의 사라진 지금 이 시대에서, 놈들을 맞상대할 수 있을 만한 강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중 몇 마리나 타르타로스 속에 살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그중 한 마리만이라도 살아 있었다간, 대수림과 붉은 협곡은 물론 엔디미온의 일부까지도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던바.
“엔디미온도 참 안되었군. 영토의 남서부뿐만 아니라, 왕도에도 횡액(橫厄)이 발생하게 생겼으니…….”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에 선하다는 듯, 히프노스가 혀를 끌끌거렸다.
“……당분간은 피와 죽음이 끊이지 않겠구나.”
물론 이를 숭상하는 그들, 사교도들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즐거운 광경일 따름이었지만.
* * *
헤카테와 함께 레이먼드 백작령을 방문했던 날로부터 며칠, 왕도로 돌아온 러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모리어티 교수의 수식을 응용하면…….’
개인적인 연구와 실력 향상을 위해 힘쓰는 것은 물론-.
“단계라는 측면에 있어 네 성취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측면에 속한단다.”
“허나, 그에 비해 체화(體化)는 그 경지를 쫓아가질 못하는구나.”
“아마도 점진적으로 올라갔어야 할 성취가 너무도 빠르게 올라가 버린 탓이겠지.”
“물론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마법사…….”
“초인(超人)이라 불리는 경지는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것만큼이나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가다듬는 것 또한 중요한 경지란다.”
“마법이란 근육과 같다. 혹사하면 힘들지만, 그만큼 자라나고 익숙해지게 되는 법이니…….”
“체화를 위해선 쉬지 않고 혹사하는 수밖에. 낄낄낄.”
-다리아에게 가르침을 받는 그런 나날들.
게다가 러셀에겐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 둘이나 더 있었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이 나라의 왕녀이자 약혼녀인 헤카테 라트모스였으며, 다른 하나는…….
‘에이단 아울.’
전날 쿠릴 아일랜드로 향하는 길에 만나 염탑에 추천서를 써주었던 에이단 아울이었다.
회복 포션의 기능을 몇 할가량 상승시키는, 기적적인 효능의 촉매제를 개발한 마법 약학의 천재.
회귀 전에도 꽤 성과를 내었던 인물인 만큼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정작 추천서를 써준 사람이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것도 좀 그렇지.’
러셀이 에이단 아울의 연구실을 찾은 것 또한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똑똑-.
“계십니까?”
러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쪽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자, 자,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러, 러셀님!”
뒤이어 당황한 듯 말 더듬는 소리가 들리고, 벌컥.
문이 열리며 에이단 아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며칠째 집엘 가지 않고 연구실에서 숙식을 한 것인지, 꾀죄죄한 옷차림과 떡이 진 머리. 게다가 한껏 내려온 다크써클까지.
“러, 러, 러셀님께서 제 연구실에는 무, 무슨 일로…….”
말을 더듬는 그의 모습에 러셀이 웃음을 지었다.
“천천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죄, 죄송합니다…….”
전날 받은 사인을 연구실 한쪽 벽면에 걸어 놓을 만큼, 에이단 아울은 러셀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때문인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을 더듬는 것의 반복이라.
심호흡을 하며 소요를 가라앉히는 그를 향해 러셀이 물었다.
“며칠째 퇴근을 못 하신 듯한데, 새로운 연구 때문입니까?”
포션 촉매제를 완성한 지 벌써 몇 개월, 그 사이 에이단 아울은 새로운 마법약의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에 돌입해 있었던 것이다.
“예. 인간의 말단과 말초신경계를 자극해서 특정 부분의 성장을 이뤄내는 약인데…….”
“말단과 말초신경계, 그리고 성장이라면 손발톱, 아니 효용성을 생각하면 키라고 해야겠군요. 키를 성장시키는 약입니까?”
“비슷하긴 합니다만……조금 다릅니다.”
조금 다르다는 말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단 아울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더듬더듬 덧붙였다.
“그……, 그게 그러니까. 터, 털. 좀 더 정확하게는 모발입니다.”
“모발이요?”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자라는 것이 머리칼이었다.
그런데 그걸 마법약을 이용해서까지 굳이 자라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담긴 표정에 러셀의 머리칼을 한 차례 응시한 에이단 아울이 어딘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이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슥 매만지며 답했다.
“러셀님께서는 절대로 이 비통함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아…….”
족히 열 가닥은 되어 보이는 머리카락이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며 러셀이 짧게 침음했다.
“여하간 한동안 연구에 진전이 없었는데, 그래도 요즘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다행히도 버밀리온 경께서 도와주고 계시거든요.”
“사형이 말입니까?”
“예. 요즘 쇠질……을 하다 보면 발아래에 머리카락이 계속 빠져 있으시다고…….”
“음.”
그때였다.
바깥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누군가의 기척이 에이단의 집무실 앞에서 멈춰선 것은.
똑똑-.
“러, 러셀 선배님. 계십니까?”
문이 열리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제 막 입탑해 프론트의 업무를 보고 있는 신입 마법사였다.
“연구실에 아, 안 계시길래, 다른 사람에게 이곳으로 들어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배님.”
러셀과 눈이 마주친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급보 전문을 러셀에게 건넸다.
“왕-실로부터의 긴급 전언입니다.”
긴급이라는 말에 빠르게 전언을 받아 든 러셀이, 재빨리 그 속에 담긴 내용을 훑었다.
‘긴급이라는 말을 붙인 걸 보면, 평범한 일은 아닐 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전서를 확인하던 러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