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EPISODE.84
파밧-.
빠른 걸음과 함께 러셀의 신형이 질풍이라도 된 듯 잘 정돈된 도로 위를 내달렸다.
마음 같아서는 비행마법을 사용해 단숨에 왕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허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왕도 내에서 도로 대신 비행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엄히 금지되어 있었던바.
어느덧 점심 무렵이 가까워진 시간이라, 많은 이들이 도로에 나와 있었지만 괘념치 않는다.
러셀의 동체시력과 반응은 이미 범인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으므로.
질풍처럼 움직이면서도 가볍게 보법을 밟아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고, 마주 달려오던 마차를 비켜내기까지.
라만차(La Mancha)에 포함된 보법이라는 운신법(運身法)의 응용이었다.
파밧-.
발을 박찰 때마다 주변의 풍광이 빠른 속도로 밀려나기 시작하고, 저 멀리 왕궁이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러셀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바로 긴급 전서 속에 쓰여 있는 내용 때문이었다.
비록 자세한 내막(內幕)까지는 쓰여 있지 않았으나, 그 내용만으로도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왕도 내에 존재하는 탑주(塔主)급 이상의 마법사는 물론, 달인(達人)급 오러 수련자들 역시 전언을 받는 즉시 왕궁 대회의실로 입궐할 것-이라니.’
달인(達人)급이란, 말 그대로 탑주(塔主)급 마도사와 비견 할 수 있는 오러 수련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니고 현재 왕도 내에 있는 그들 모두를 소집하다니.
사실상 준(準) 전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왕궁이 가까워지자, 속속들이 집결하고 있는 다른 마법사들의 모습 또한 눈에 들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급하게 전언을 받은 것인지, 하나같이 심각해 보이는 얼굴들.
마법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절그럭, 절그럭-.
거친 쇳소리와 함께, 저마다 특색 있는 갑주 차림을 한 오러 수련자들 역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약 십여 명.
사실상 엔디미온 왕국에 적(籍)을 둔 탑주급, 달인급 강자들 중 오분지 일가량이 이곳에 집합한 셈이라.
이 정도 규모의 전력이라면…….
‘초인(超人)급 전력을 맞상대하는 것은 물론 소규모의 왕국 하나쯤은 열흘 안에 멸망시킬 수 있을 테지…….’
인근에 자리한 국가의 고위직들이 보았다면 소름과 함께 외교적 결례라며 발작을 일으켰을지도 모르는 광경.
그들 사이에 있는 익숙한 얼굴들과 눈인사를 하며 러셀이 왕실의 정문을 통과했다.
빠른 걸음으로 대회의실로 향했다.
‘이만큼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승님이나 창탑주님, 그 외에도 다른 분들이 보이지 않는 걸 생각하면…….’
아마도 그들은 이미 대회의실 안에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함이 옳았다.
그런 러셀의 예상대로, 당도한 회의실의 상석에는 총 다섯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적, 청, 백, 황으로 대표되는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와 왕도를 수호한다는 웨펀 마스터, 길리언 펄슨이 바로 그들의 정체였던 바.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러셀이 배정된 자리에 가 앉았다.
그런 러셀의 좌우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버밀리온과 휴버트가 자리했다.
아무래도 네 명의 탑주를 제외한 다른 마법사들은 각 소속 마탑에 따라 자리를 나뉘어 둔 모양.
그 중 염탑의 숫자가 가장 많았지만, 그런 것으로 으스댈 성격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럴 분위기 또한 아니었다.
그렇게 회의장이 하나둘 채워지고, 이윽고 각 부처의 주요 인물들 또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무렵.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왕 폐하 입장하십니다!”
척, 척.
그 외침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어 반 호흡 늦게 모습을 드러낸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손을 들었다.
심각한 얼굴로 가볍게 손바닥을 저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불필요한 의례는 생략도록 하겠네. 모두 자리에 앉지.”
“예. 폐하-!”
자리에서 일어났던 이들 모두가 착석하고, 이어 국왕이 네 마탑주와 길리언 펄슨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미 알고 온 이들도 있겠지만, 사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다시 한번 상황을 이야기해 줄 이들을 부르겠네.”
‘상황을 이야기해 줄 이라고?’
그 말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국왕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거나, 혹은 관료의 입을 빌려 브리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사안은 특별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
“그들을 들라 하라!”
국왕의 음성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두 개의 기척이 회의실 밖에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기척에 자리에 모인 강자들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밖에서 느껴졌던 기척이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평범한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이했다.
‘이 기척은……?’
둘 모두 러셀이 한 번 이상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기척이었다.
오래지 않아 회의실의 문 중 하나가 열리며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등나무 부족의 첫 번째 수호자, 아즐란이 엔디미온의 주인께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상아를 조각해 만든 듯 뽀얀 피부와 극상의 미(美). 그 외에도 금발 금안과 길쭉한 귀를 갖추고 있는 사내였다.
뒤이어 그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의 인영이 입을 열었다.
“킁. 언더월드의 매더스가 엔디미온의 국왕께 인사드리겠소.”
말할 때마다 콧김을 내뿜는 특징부터 시작하여 땅딸막한 체구에 성인 장정의 허리통과 비슷한 둘레의 팔과 장딴지.
조금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으나, 두 종족 고유의 특징만큼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던바.
“저희 둘 모두 인간족의 예절에 무지함을 용서 바랍니다.”
모습을 드러낸 두 인영의 외견에 회의장 가득 술렁임이 퍼져나간다.
“엘프?”
“엘프와 드워프가 함께 본국에 방문했다는 말인가?”
개중 일부는 지금까지 드러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진실에 가까운 추측을 해내기도 했다.
“언더월드와 대수림이라면, 둘 모두 왕국의 남서부 아닌가?”
“설마 왕국의 남서부에 뭔가 일이라도…….”
곳곳에서 흘러나온 웅성거림에 국왕이 손끝을 들어 올렸다.
저마다 한마디씩 늘어놓던 인물들이 입을 다물길 기다리며, 국왕이 입술을 달싹였다.
“피곤하고 지친 상황인 것은 충분히 이해하오. 허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재차 들려줄 수 있겠소?”
“예. 엔디미온의 주인이시여.”
스스로를 아즐란이라 소개한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른 등나무 부족의 첫 번째 수호자이자, 대수림에 존재하는 모든 요정족의 대표로서 엔디미온의 주인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부디 위험에 빠진 대수림을 도와주십시오.”
뒤이어 드워프, 매더스가 첨언했다.
“나 또한 언더월드의 모든 드워프들을 대표해 부탁드리겠소. 언더월드와 붉은 협곡을 도와주시오.”
* * *
결론부터 간략하게 털어놓은 후, 이어진 본론을 요약하면 상황은 간단했다.
갑작스럽게 증식한 마물들이 군세를 이루며 주변을 닥치는 대로 습격했고 엘프를 비롯한 요정족들이 그 숫자에 밀려 대수림 바깥쪽까지 밀려났다는 것.
뿐만 아니라 대수림 밖으로 쏟아져 나온 놈들이 언더월드가 위치한 붉은 협곡을 활개 치며 돌아다니기까지 했으니-.
‘엘프와 드워프들이 동시에 지원을 요청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인가.’
문제는 마물들의 숫자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의 마물들이 존재하면, 대수림에 존재하는 모든 요정족들 뿐만 아니라 언더월드의 드워프들까지 엔디미온에 지원을 요청해 온다는 말인가.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 역시 그 사실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군세라고 부를 정도라면 마물의 숫자가 상당히 많을 터인데, 어느 정도인지 정보를 알 수 있겠소?”
“물론이라오.”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을 열었다.
아무래도 아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아티펙트를 소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 아공간을 통해 꺼내 놓은 것, 그것은 철로 만든 커다란 상자에 동그랗고 투명한 유리가 붙어 있는 무언가였으니.
“얼마 전, 우리 언더월드에서 새롭게 개발한 영사기(映寫機)라오. 이렇게 돌리면…….”
화아악-!
유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한쪽 벽면을 비추기 무섭게 몇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기록해둔 이미지를 그 어떤 그림보다 선명하게 비출 수 있지.”
이미지 프레임 마법을 사용한 듯한 광경. 놀라운 기술력이었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그만큼이나 벽면에 투영된 이미지가 충격적이었으므로.
“허-!”
“바퀴벌레도 아니고 무슨 마물의 숫자가 저렇게나-!”
이미지 한 장 한 장에 보이는 마물의 숫자만 하더라도 천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규모.
심지어 모든 이미지가 각기 다른 지역을 촬영한 것을 감안해 계산하면-!
“족히 수만 이상이라는 건가…….”
국왕의 중얼거림.
좌중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저만한 숫자라면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밀려나는 것 또한 이해가 되었다.
아니,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언더월드마저 벗어나 엔디미온의 국경마저도 위협하게 될 터.
“지금 당장 토벌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남서부의 변경백들에게 토벌령을 내려 병사들을 징집해야 합니다!”
“워프 게이트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들과 기사들을 보내 지원한다면……!!”
상황의 다급함을 인지한 듯, 대소신료들이 저마다의 방안을 난만(爛漫)한다.
그 사이로 러셀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뭔가 의견이 있다면 말해보시게. 레이먼드 백작.”
국왕의 허락을 받은 후 모두의 주목을 받은 러셀이 입을 열었다.
“토벌대를 보내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생각해봐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근래 들어 한없이 높은 명성을 떨치고 있는 러셀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의견을 무시할 만한 멍청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해 봐야 할 점이라니. 레이먼드 백자. 그게 무슨…….”
마찬가지로 비슷한 것을 읽어낸 다리아와 헤밍웨이가 차가운 눈으로 영사기 속 이미지를 노려보며 뇌까렸다.
“확실히…….”
“마물들의 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걸 지목하고 싶은 것이냐. 막내야?”
“예. 스승님.”
두 사제의 대화에 몇몇 대소신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쯤이야 영사기 속 이미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었기에.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점이라니.
그것도 잠시, 먼저 마법사들 사이로 술렁거림이 번져나갔다.
“확실히, 러셀 경의 말씀 대로입니다.”
“대수림에 존재하는 모든 마물들을 끌어모으더라도 저만한 수가 나올는지…….”
“화수분처럼 쉬지 않고 마물을 뿜어내는 존재가 있지 않고서야…….”
뒤이어 황탑주와 백탑주가 한마디씩을 보탰다.
“마물의 종 또한 거슬리는군요.”
“응. 이거랑, 이거, 이거, 저거. 그리고 이것도…….”
백탑주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줄기가 영사기의 곳곳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리아와 마찬가지로, 평소의 졸음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 또렷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이 녀석들, 왕국의 남서부에서는 오래전에 옛날에 멸종된 마물들이잖아. 그런데 서식지도 아닌 곳에 왜 이렇게 많이들 몰려 있는 거야?”
“-아!!”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아차린 이들이 뒤늦게 탄식을 토했다.
이어 처음 이야기를 꺼낸 러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으음, 대단한 눈썰미로다…….’
‘과연 왕국 최고의 인재라는 말은 허울뿐인 명성이 아니었군!’
그들의 감탄 어린 시선을 뒤로하며 러셀이 영사기가 투영하는 이미지를 노려봤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이런 대사건이라-.’
러셀이 회귀로 되돌린 시간이 모두 끝나고, 약 석 달 정도가 더 흐른 시점에서의 일.
‘미래를, 원인을 알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미처 알지 못하는 시대의 격류까지 자신이 어찌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다.
아쉬움이 얕은 심마(心魔)로 화하는 것보다 먼저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잡스런 상념을 털어 버렸다.
자신이 운이 좋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는 기연을 가지게 되었을 뿐.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미래와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기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각오를 다지듯, 러셀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하나의 막(幕)이 끝나고.
러셀의 인생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테이지에 접어드는 시기에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