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7
17화
EPISODE.09
동굴의 깊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내부가 얼마나 깊었던지 한참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충 한 시간 정도 걸어온 것 같은데.’
산의 해는 일찍 지는 법이니, 어쩌면 바깥쪽은 이미 밤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굴이 거미줄처럼 복잡한 형태가 아닌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쭉 뻗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걷길 얼마간.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러셀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손바닥 위쪽에 떠 있던 라이트 마법을 앞으로 쭉 날려 보냈다.
화악-!
그것은 문이었다.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꽉 틀어막고 있는 거대한 문.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문의 양쪽으로 그것을 지키기라도 하듯 리자드맨의 형상을 한 거대한 석상 두 개가 서 있다.
‘문이라.’
아마도 미션에서 말하는 장소란 이 문 너머를 말하는 것일 터.
러셀이 문을 향해 다가서자, 구그그긍!
육중한 소리와 함께 양쪽에 서 있던 리자드맨 석상이 몸을 움직인다.
척척-!
각자가 들고 있던 창을 기울여 교차하며 X자를 만들었다.
쾅!
창과 창이 충돌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우고, 이어 석상 중 하나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의 마력으로 자격을 증명하라.
낮지만 분명한, 알 수 없는 힘이 서린 음성.
그 음성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자격?”
하지만 석상은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
-너의 마력으로 자격을 증명하라.
러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자격이라…….’
마력을 통해 어떤 자격을 어떤 식으로 증명하라는 말인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미션과 이런 장소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취향이 고약하거나.’
어쨌거나 자격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테니, 일단 마력이라도 끌어올려 볼 수밖에.
생각과 함께 세 개의 써클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우우웅-.
이윽고 은은하게 흘러나온 마력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장대를 가볍게 뒤덮었다.
그 마력에 반응이라도 한 듯, 스르릉.
두 석상이 교차했던 창을 치운다.
구그그긍-.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자격이 증명되었습니다.
-자격이 증명되었습니다.
마치 주인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만 같은 극공의 예.
석상이 표해 보인 예에 러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이게 끝이라고?”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석상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러셀의 머릿속으로 그럴듯한 추측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마석으로 쌓은 마나에 반응하는 건가?’
마석으로 쌓은 마나는 일반적으로 쌓은 마나보다 훨씬 더 정순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하여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현재로선 그것 말고는 딱히 이렇다 할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문을 향해 다가갔다.
한눈에 봐도 거대하고 육중해 보이는 이 문을 도대체 어떻게 열어야 할까?
고민하며 손을 뻗었다.
척-.
이어서 러셀의 손끝이 문에 닿는 순간.
러셀의 눈에 비친 세상이 일그러지며 뒤집어졌고.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가 러셀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빛의 소용돌이가 사라졌을 때, 러셀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지키고 있던 두 개의 석상이, 언제 그랬냐는 듯 꿇은 무릎을 풀고 본래의 자세로 돌아갔을 뿐.
구그그그그긍-.
* * *
“끙…….”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축축한 한기에, 러셀이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한 것 같은.
‘멀미라도 하는 기분이야.’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자, 그제야 정신이 깨어나며 주변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빙판?”
바닥이 완전히 꽁꽁 얼어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난 것인지 곳곳에 서리 비슷한 것들이 끼어있기도 했다.
‘분명 용암동굴 안으로 들어왔는데, 문 너머에는 빙판이라.’
완전히 불가능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리둥절해지는 상황.
몸을 돌려 주위를 살피자, 이내 자신이 있는 곳이 공동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들어온 입구는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공동의 벽 어느 쪽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나갈 때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겠지?’
지금으로선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바닥의 구할 가량이 빙판으로 뒤덮인 공동, 그 가장자리를 따라, 도합 열 개의 석상이 배치되어있는 것이 보인다.
바위인지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을 조각해 만든 듯한 석상들.
그리고 그 모든 석상의 시선이 향하는 공동의 정중앙에 제단이 있었다.
다섯 층계를 쌓아 높게 만든 제단, 그 위에 걸려 있는 것은 붉은빛을 뿌리고 있는 거대한 뿔이라.
치밀어 오르는 냉기에 러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열 개의 석상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 후,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제단이 이번 미션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넓은 공동을 가로질러 도착한 제단에 걸려 있는 뿔은, 러셀의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족히 3m는 될 것 같은 뿔.
“심장과 눈, 그리고 이번에는 뿔이라…….”
만약 다른 뭔가가 없었다면, 러셀은 틀림없이 이것을 용의 뿔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실제로 이곳은 과거 화룡, 레드 드래곤의 터전이기도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뿔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지.”
뿔의 모습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형태가 다른 드래곤의 그것과 일치하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그 어떤 문서에 기록된 용의 뿔과도 형태가 달라.’
신기한 마음에 러셀이 그것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붉은빛을 따라 미미한 열기가 새어 나오는 것만 같은 뿔에 러셀의 손이 닿는다.
그리고.
키이이잉-!
이명과 함께 알림이 울렸다.
녹색의 창이 떠올랐다.
[미션 – Ⅱ]공동 내의 모든 골렘을 쓰러뜨리고, 불의 시련을 통과하세요.
[보상]???
하급 마석x2, 최하급 마석x3
미션이 변화했다.
‘불의 시련?’
러셀이 그 미션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보다 빠르게, 쿠구구구궁!
공동 전체가 크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어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되어 있던 석상들의 표면이 깨져나가고.
쩌적, 쩌저적-!
쿵, 쿵, 쿵, 쿵, 쿵!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전신이 완전히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골렘(Golem)이었다.
“아이스 골렘(Ice Golem).”
오래된 던전에서나 나온다는.
고대 마법이 만들어낸 산물의 등장에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공동 내의 모든 골렘을 쓰러뜨리라는 것은 아마도 저것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골렘을 파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부에 있는 핵을 부수는 것이지.’
생각과 동시에 러셀의 손이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한다.
위력을 대폭 증가시킨 파이어 애로우!
화르륵!
불꽃의 화살이 캐스팅되기 무섭게, 허공을 꿰뚫었다.
쐐애애액, 퍼엉!
느릿하게 움직이던 아이스 골렘 한 기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킨다.
얼음과 불은 상극이니 분명 효과가 있을 터.
허나 그런 생각과는 달리.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고?’
깨진 자국은커녕 녹아내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으면!”
러셀이 짜증 섞인 외침을 토하며 재빠르게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윈드를 이용해 바람을 내뿜는 것으로 놈들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벌릴 셈이라.
하지만 웬걸.
“……?”
마법이 전혀 캐스팅되지 않았다.
당황하는 순간, 느릿하게 다가온 녀석이 커다란 주먹을 들어 올리는 게 보이고.
“큭.”
이를 악물며 러셀이 바닥을 박찼다.
위저드 바디를 활성화시키며 그 자리에서 높게 솟구쳤다.
콱!
도약의 순간 러셀의 몸이 그대로 솟구쳐 올랐다. 이어 그를 둘러싼 시계가 변모했다.
“어?”
족히 2, 3미터는 될 법한 높이.
평범한 3써클의 마법사가 육체적 능력만으로 보일 수 있는 도약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의 그것과 비견될 만한 도약을 러셀이 선보인 것이다.
생전 처음, 전심전력을 다해 펼친 위저드바디의 위력!
콰아아앙!
뒤이어 러셀이 서 있던 자리에 골렘 한 구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쩌적, 적!
그 일격에 빙판이 깨져나가며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개중 몇 개가 러셀의 볼 끝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간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광경에 러셀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만약 직격당했다면 쥐포가 되어 그 자리에서 압사했으리라.
그와 동시에, 쿠타당.
떨어져 내린 러셀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골렘의 위력에 시선을 빼앗긴 데다, 한순간 너무 높게 뛰어오른 탓에 낙법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라.
“끅.”
어찌 되었건 간에 거리를 벌리는 데는 성공.
신음을 참으며 몸을 일으킨 러셀이 놈들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자신을 향해 몰려온 놈들은 공동의 중앙에 있었고, 자신은 어느새 공동의 가장자리까지 날아온 상황.
거리는 꽤 있었다.
‘공동이 넓은 게 이럴 때 다행이군.’
또한 강인한 화염 내성과 강력한 일격에 비해 움직임이 그렇게 재빠르지는 않은 듯했다.
‘하긴, 움직임까지 빨랐으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마법이 나가지 않았지.’
윈드 마법이 제대로 나갔다면, 낙법에 실패하고 바닥을 뒹굴지는 않았을 텐데.
서둘러 다른 마법을 시험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능한 것은 무(無) 속성과 화염 속성의 마법뿐.
“불의 시련.”
불현듯 미션창에 쓰여 있던 글이 러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의 시련이라는 건 바로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결국은 화염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해 쓰러뜨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후욱.”
러셀이 숨을 들이쉬며 두 개의 마법을 캐스팅했다.
“스트랭스(Strength), 헤이스트(Haste).”
강인함과 쾌속함.
두 개의 마법이 몸을 뒤덮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러셀은 위저드바디와 오버로드를 동시에 활성화했다.
이렇게 한다면 육체적 성능은 뛰어난 기사 못지않을 터였다.
‘방금 전 그 높이뛰기가 우연이 아니라면 말이야.’
쿵, 쿵, 쿵, 쿵-!
그런 가운데 지축을 울리며 다가서는 놈들을 러셀이 노려봤다.
‘파이어 애로우로 안된다면, 파이어 볼트로 마법을 바꿔서.’
여러 발을 먹일 수밖에.
크기는 작아졌어도, 회전을 더해 한곳에 점사한다면 그 위력은 파이어 애로우를 몇 배나 상회할 것인즉.
‘가라!’
러셀이 손바닥을 뻗기 무섭게 그 궤적을 따라 다섯 발의 파이어 볼트가 쏟아졌다.
펑, 펑, 펑, 펑, 펑!
연달아 폭음이 울리며 후끈한 열기가 러셀에게까지 흘러들어온다.
‘이 정도라면……!’
기대감을 가지고 러셀이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곧이어 먼지가 걷히고, 그 너머의 광경이 드러난다.
쿵, 쿵, 쿵, 쿵-.
열 마리 모두 건재한 모습.
파이어 볼트에 점사 당한 녀석의 가슴팍이 조금 깨져 있긴 하지만 그뿐.
치명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 정도 상처나 충격으로 내부에 있는 핵이 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
러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